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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남 기자의 국경 없는 쇼핑백

高價 횡포에 뿔난 직구족 국내 판매가 끌어내렸다

‘인플레’ 막는 해외직구

  • 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高價 횡포에 뿔난 직구족 국내 판매가 끌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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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귤 젤리 비타민, 아이허브 7275원, 백화점 1만6500원
  • ● 700만 원대 삼성 TV를 ‘절반 값’ 만드는 해외직구
  • ● 직구족 마음 돌리려면 ‘최대 20%만’ 비싸게?
  • ● “해외직구 탓하기보다 경쟁력 강화 계기 삼아야”
‘런던의 밤’을 떠올릴 때마나 나는 달콤한 꿀 향기가 나는 것 같다. 12년 전 일이다. 생애 첫 해외출장이자 첫 유럽행(行). 새로 산 트렁크를 드르륵 굴리며 찾아간 런던 시내의 작은 호텔엔 어메니티(amenity)로 비누 한 조각 구비돼 있지 않았다. 스물다섯 살의 나는 호텔 프런트에 문의해볼 주변머리조차 없었는지, ‘영국 물가가 엄청 비싸다더니, 호텔 서비스가 본래 쩨쩨한가 보다’ 하며 목욕용품을 사러 밖으로 나갔다.
마침 코벤트가든(Covent Garden)이 숙소 근처에 있었다.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에서 오드리 헵번이 춤을 추며 꽃을 팔던 곳. 훗날 서로 사랑에 빠지는 히긴스 교수와의 인연이 시작되는 곳. 옛날엔 수도원 부설 채소시장이었다는 코벤트가든을 호기심 반, 흥분 반 모드로 돌아다니다가 향긋한 냄새와 알록달록한 진열 상품에 이끌려 어느 가게로 들어섰다.
‘러쉬(Lush)’였다. 영국에 본사를 둔 수제 화장품 회사. 한국에도 들어와 있지만(2002년 명동에 첫 번째 매장이 생겼다고 한다), 나는 코벤트가든에서 러쉬를 처음 보았다. 두루두루 가게 구경을 마친 뒤, ‘여보, 애들은 내가 씻겼어(Honey I Washed The Kids)’라는 이름의, 꿀과 야생 오렌지, 알로에, 베르가못 오일로 만들었다는 비누를 샀다. 비록 혼자였고 일하러 간 것이지만, 런던에서 보낸 일주일은 꿀과 캐러멜 향이 섞인 이 비누처럼 지금도 달콤한 추억으로 남았다.



서울 오면 콧대 높아져

회사에 돌아와 동기에게 ‘런던 무용담’을 풀어놓으면서 ‘런던 꿀비누’에 대해서도 떠들었다.
“런던에 ‘러쉬’라는 가게가 있는데, 거기 비누가 말야….”
“그거, ○○백화점에도 있는데?”
역시 쇼핑 좋아하기로는 나보다 한 수 위인 친구. 그날 점심시간, 우리 둘은 백화점으로 ‘러쉬 탐사’에 나섰다. 서울 가게도 런던만큼이나 알록달록, 아기자기하고 향기로웠다. 하지만 나는 이내 동기 팔을 잡아끌며 속삭였다.
“런던보다 너~무 비싸, 그냥 가자.”
기억을 더듬건대 서울 백화점 가격이 런던의 두 배쯤 됐던 것 같다. 매일 사용하는 소모품을, 게다가 집에 엄마가 사다놓은 우유비누며 오이비누가 그득한데도 굳이 두 배 값을 내고 살 대범함(?)이 내겐 없었다.
한국에서 콧대 높은 러쉬를 콧대 ‘깎아’ 살 방도가 있으니, 그렇다. 해외직구다. 해외직구 좀 하는 여성치고 ‘러쉬 직구’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보통 영국 또는 일본 공홈(공식 홈페이지)에서 주문한다). 나는 2013년 여름 영국 공홈을 이용했는데, 당시 기록을 뒤져보니 4개 제품을 26파운드, 약 4만5000원에 주문했다(배송료 포함). ‘똑같은 제품을 한국에서 사면 10만9660원이 든다’는 메모도 해놓았다. 배송료를 포함해도 2배 이상 가격 차이가 나는 것이다.
사람들이 해외직구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싸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해외직구족에게 ‘외국 좀 다녀봤다고 외제에 환장하는 된장남녀’라는 시선을 보낸다면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광고연구’ 2014년 겨울호에 실린 ‘소비자의 해외직접구매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해외직구라는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인은 ‘유용성’이다. 이익이 있으니 행동하는 것이다. 직구족은 해외에서 물건을 주문하는 자신을 남보다 더 돋보인다고 여길 거라고? 이 연구에서 ‘우월감’은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8월 대한상의 조사에서도 해외직구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로 ‘국내 동일 상품보다 싼 가격’이 꼽혔다(응답률 67%). 내가 해외직구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도 돌쟁이 아기의 ‘폴로(Polo)’ 겨울 재킷을 미국에서 8만 원에 주문한 경험 때문이다. 당시 서울의 백화점에는 똑같은 재킷이 28만 원이라는 가격표를 뽐내며 걸려 있었다.
수입상품의 국내 판매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도 인정한다. 2014년 4월 9일자 기획재정부 보도자료(‘독과점적 소비재 수입구조 개선 방안’)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요 소비재의 수입가격과 판매가격 간 격차는 2~5배에 이른다. 해외 판매가격과 비교하면 10~40% 높은 수준이다. 기획재정부는 그 이유를 주요 소비재의 수입구조가 독과점적인 데 있다고 본다. 병행수입이나 해외직구 등 ‘대안수입’ 비율은 5% 수준에 불과하다(2013

년 기준).
나는 얼마 전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 지하 식품코너에 갔다가 ‘레인보우 라이트 구미 비타민’을 발견했다(쫀득하고 달콤한 젤리형 비타민으로, 기운 떨어질 때 먹으면 좋은 간식이다). 정가가 3만 원인데 40% 할인해 1만6500원에 팔고 있었다. 이거, 아이허브에서는 7275원인데!
해외직구로 기껏해야 몇 만 원 아끼는 나는 얼마 전 ‘고수’를 만났다. 20대 청년인 그는 2014년 가을 부모님 댁에 75인치 삼성 LED TV를 ‘놓아드렸다’. 당시 이 제품의 국내 판매가는 700만 원대. 하지만 그는 미국 아마존에다 동일 제품을 주문해 400만 원이 채 들지 않았다고 한다. 무려 300만 원 이상을 아낀 셈이다.





독과점 수입 탓 가격 거품

그 내역을 구체적으로 살피자면, 아마존 내 ‘Samsung’이라는 셀러가 내놓은 ①제품가 2658.73달러(약  280만 원), ②국내 세금 약 53만 원(TV에 대한 관·부가세율은 18.8%) ③배송대행료 약 50만 원으로 총 383만 원(①+②+③)을 지출했다. 주문에서 배송받기까지 걸린 시간은 3주가량. 그는 “삼성은 해외에서 산 제품도 국내에서 AS를 해주고, 제품 자체의 전압도 ‘free’여서 둥근형 돼지코(콘센트 어댑터)만 사서 끼우면 된다”며 “지금까지 아무 문제없이 잘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삼성전자는 “해외직구 제품은 1년간 AS 서비스가 가능하고 경우에 따라 추가 비용이 발생될 수 있다. 프리볼트라도 지역별로 TV에 적용되는 규정이 달라 각 국가에 맞게 TV를 세팅해 판매한다”고 밝혔다). 이 고수의 다음 타깃은? “유명 브랜드 침대 매트리스를 해외직구 하면 수백 만 원 싸게 살 수 있대요. 누나가 결혼할 때 해주려고요.”
물론 해외직구는 불편하다. 물건을 직접 만져보거나 입어볼 수도 없고, 상점에서 손님 대접받는 기쁨(?)도 포기해야 한다. 배송대행업체에 신청서를 쓰고 결제하는 것도 좀 귀찮고, 무엇보다 물건이 배송되기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것도 참 감질나는 일이다.



하지만 많게는 절반 값에, 적게는 30%가량 싸게 살 수 있다면? 이런 불편함, 얼마든지 참을 수 있는 게 스마트 소비족이요, 해외직구족이다. 한국소비자원 보도자료(2014년 7월 2일)에 따르면, 해외직구 이용 경험자들은 해외직구가 30% 정도 싸다고 느낀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최창복 연구위원은 “소비자는 품질을 직접 확인해볼 수 있는 편의성 등을 감안하면 오프라인에서 구매할 때 온라인보다 물건값을 8~22% 더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 해외직구의 확산으로 매출에 타격을 입은 사업자라면, 국내 판매가를 해외직구 가격 대비 20% 수준으로만 높여놓으면 고객을 매장으로 유인할 수 있다. 실제로 국내 사업자들은 이러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또 영국 브랜드인데, 꽃무늬 가방으로 유명한 ‘캐스키드슨(Cath Kidson)’의 국내 공식 수입업체 (주)스타럭스 관계자는 “해외직구를 의식해 2012년 가을부터 가격을 다소 낮췄다”고 했다. 어쩐지. 지난해 언니, 동생들과 연합해 캐스키드슨 제품을 영국 공홈에서 주문했는데, 국내 가격 대비 10~15%밖에 저렴하지 않아 김이 샜더랬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직구 아이템으로 인기 있는 것 중 하나가 네스프레소(Nespreso) 커피캡슐이었다. 국내에서 8250원인 커피캡슐 1줄이 유럽에서는 3.5유로(약 4600원)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커피캡슐 가격 인하의 진실

그런데 지난해 4월 이후 이럴 필요가 없어졌다. 네스프레소코리아가 커피캡슐 가격을 30%가량 낮춰, 해외직구 메리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종종 이용하던 독일 구매대행업체의 경우, 배송료를 포함하면 국내에서 사는 것과 값이 똑같다(게다가 국내 네스프레소 매장에 가면 커피 한 잔을 공짜로 마실 수도 있다). 네스프레소코리아는 가격 인하를 발표하면서 “지난 8년 간 한국에서 성장함에 따라 네스프레소만의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이 주는 혜택을 전해드릴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밝혔지만, 나 같은 소비자들은 ‘해외직구에 무릎 꿇은 것’으로 이해한다.
이쯤 되면 더 이상 ‘호갱’이기를 거부한 해외직구족이 불합리한 국내 가격체계에 반기를 듦으로써 유통구조를 합리화하는 데 기여하고, 나아가 물가 안정에도 이바지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전체 소매시장에서 해외직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낮다. 국내 소매판매액 대비 해외직구 비율이 2010년 0.1% 수준에서 2014년 0.5%로 상승했고, 2015년에는 0.7% 수준으로 상승할 전망이다(현대경제연구원, ‘해외직구 시장규모 전망과 시사점’, 2015년 11월 13일).  
그러나 최창복 연구위원은 이 같은 해외직구 현황이 우리 경제에 ‘작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으므로 통화정책에 해외직구라는 새로운 ‘변수’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해외직구에 따른 유통구조 변화와 인플레이션 효과’, 2015년 11월 4일). 그는 “해외직구가 아직 규모는 작더라도 국내 판매가를 낮추는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물가상승률을 최대 2%포인트 하락시키는 효과를 나타낼 것으로 분석된다”고 했다.



해외직구 말려봤자…

‘물가상승률 2%포인트 하락 효과’는 어느 정도의 파워를 가진 것일까. 한국은행은 매년 목표치를 두고 물가상승률을 관리하는데, 2013~2015년 목표치가 연간 3%포인트(±0.5%포인트)였다. 물가가 해마다 3%포인트 이상 인상되지 않도록 한국은행이 관리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비록 ‘장기적’이라는 단서가 붙지만) 물가를 2%포인트 하락시킬 수 있는 해외직구의 ‘파워’는 꽤나 유의미한 것이라 하겠다.
최 연구위원은 “특정 분야 소비가 감소했을 때 수요 부진, 경기 부진으로만 해석할 게 아니라, 해당 소비를 해외직구를 통해 해결했는지 여부를 함께 살피면서 통화정책을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가 통화정책을 마련할 때 해외직구를 고려해야 할 정도로 해외직구가 유의미한 구조로 커진 것이다. 2014년 현재 해외직구의 연간 규모는 15억4500만 달러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20년 해외직구 연간 규모가 최대 207억 달러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다만 2015년에는 원/달러 환율 상승 등의 여파로 15억2342만 달러로 전년 대비 1.4% 감소했다).
그런데 문제는 요즘이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이 고민인 시대란 점이다. 한국은행도 2016~2018년 물가관리 목표치를 과거 3%포인트에서 2%포인트로 낮추면서 “저물가 탈피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불황을 타개하려면 소비가 늘어야 한다. 그런데 해외직구는 ‘해외소비’라 국내 경기 활성화와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이제 해외직구는 비(非)애국 소비로 구박 받아야 하나.
최 연구위원은 “글로벌 전자상거래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메가 트렌드이기 때문에 단기적인 경기부양을 위해 해외직구를 말려봤자 소용없다”며 “상품 경쟁력을 높이고 유통비용을 줄이는 등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보다 근원적인 처방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에 공식 수입업체가 있는데도 한국 고객들의 해외직구를 수용하는 영국 본사에 대해 러쉬코리아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기회로 활용하는 양상이다. 러쉬코리아 관계자는 “영국으로 우리 제품을 주문하는 것도 고객의 당연한 권리”라며 “오히려 해외직구가 후속 구매를 유발하고, 고객 스스로 주변에 우리 브랜드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 ‘진상 고객’ 때문에 ‘직구 시대’ 위기? ▼해외직구로 러쉬 제품을 저렴하게 구입하기가 쉽지 않아졌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 제품 가격 차가 줄었고, 둘째, 배송료가 올랐다.
일명 ‘슈렉팩’으로 유명한 각질제거 팩 ‘마스크 오브 매그너민티(Mask of Magnaminty)’ 315g짜리를 보자. 2013년 한국 가격은 5만7960원, 영국 가격은 1만3000원(7.29파운드)으로 가격 차이가 무려 4배를 넘었다. 그러나 2016년 현재 동일 제품의 한국 가격은 3만6700원, 영국 가격은 1만8000원(9.95파운드)이다. 여전히 2배 이상 가격 차이가 나지만, 그래도 그 폭이 과거보다는 많이 줄었다. 러쉬코리아가 일부 제품을 영국 본사에서 수입하는 대신 국내에서 생산하고, 국내 직구족 증가에 대응하기 때문이 아닌가 짐작해본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원인은 배송료 인상에 있다. 영국 러쉬는 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 1kg까지는 1만8000원(9.95파운드), 2kg까지는 3만1000원(17.95파운드)의 배송료를 부과한다. 하지만 지난해 3월, 오직 한국으로의 배송료만 5만2000원(30파운드)으로 대폭 인상했다. 이 때문에 스테디셀러 리햅(Rehab) 샴푸 4개를 영국에서 주문한다고 해도(£18.5×4+£30=19만6200원), 한국에서 사는 것(₩56,900×4=22만7600원)보다 3만 원쯤밖에 싸지 않다.
러쉬가 한국으로의 배송료를 인상한 까닭은 유독 한국에만 많은 ‘진상 고객’ 때문이다. ‘제품이 훼손됐다’거나 ‘주문 상품을 받지 못했다’는 고객 불만이 한국에서 자주 날아왔다(이 회사는 이러한 경우 똑같은 제품을 무료로 다시 보내준다). 이에 ‘배달사고’를 막고자 저렴한 영국 운송업체 로열메일(Royal Mail) 대신 글로벌 톱 운송사로 운송료는 비싸지만 배송 추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UPS만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글로벌 e커머스 관계자는 “유럽 셀러들 사이엔 상품 재발송을 노리고, 물건을 받아놓고도 받지 않았다고 거짓말하는 한국의 블랙 컨슈머를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사실이라면, 좀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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