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앉은자리에서 해외 물건을 주문하기 쉽다는 건, 앉은자리에서 해외로 국내 물건을 팔기도 쉽다는 것을 뜻한다. 글로벌 e커머스 발전에 한류 붐이 겹쳐 역직구 개인 셀러에 도전하려는 이가 많은 요즘이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 밥은 없다!
나타야는 태국 방콕에서 온 20대 중반의 여기자다. 그녀와 나는 지난해 3월 타이베이에서 진행된 대만 정부의 해외 언론인 초청 프로그램에서 만났다. 한류 팬을 자처하며 한국어도 조금 배웠다는 나타야는 나를 ‘언니(Unnie)’라 불렀고 우리 둘은 금방 친해졌다. 호텔 앞에 세워둔 버스에서 일행을 기다리며 졸고 있던 나를 나타야가 다급하게 깨우며 연신 ‘BTS’를 외쳤다.
韓流로 돈 벌 생각
“응? BTS가 뭔데?”(나)“엥? 요즘 진짜 잘나가는 한국 아이돌인데 모른단 말이에요???”(나타야)
스마트폰을 꺼내 BTS를 검색했다. 방탄소년단. 엑소(EXO)와 비원에이포(B1A4)를 구분 못해 초등학생 조카에게 구박받는 30대 아줌마가 (당시 기준으로)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아이돌을 알 리가…. 전날 저녁부터 호텔 앞에 진을 친 200명쯤 되는 대만 소녀들의 정체가 궁금했는데, 방탄소년단의 팬들이라고 한다.
한국 아이돌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소식에 버스 안은 난리가 났다. 11개국에서 온 여기자 13명은 방탄소년단 사진과 영상을 돌려보며 멤버 중 누가 제일 잘생겼는지, 자기네 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한국 아이돌은 누구인데, 누가 더 멋진지 뜨거운 ‘토론’을 벌였다. 독일에서 온 안드레아가 말했다. “지남, 혹시 로비에서 BTS를 만나면 우리랑 같이 사진 찍도록 네가 잘 말해줘야 해!”
‘대만을 배워보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이었지만, 정작 많은 관심을 받은 것은 ‘코리아’에서 온 나였다. 국적을 불문하고 모두가 한류를 좋아했고 궁금해 했다. 스위스에서 온 마리안느는 “싸이 강남스타일 가사를 영어로 번역해줄 수 있어?” 부탁했고, 떡볶이를 좋아한다는 대만의 외교부 차관은 “한국 부모들은 다 자녀가 데려온 결혼 상대를 반대하느냐”고 물었다(그분 어머니가 한국 TV 드라마를 끼고 사신다 했다).
나는 내가 한국인임을 새삼 뿌듯해하며, 애국하는 마음으로 모든 질문에 성심성의껏 응했다. 잘 모르는 것은 인터넷을 뒤져 알아냈다. 이것이 내 한계다. 이수만, 전지현이 아니어도 한류로 돈 벌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페루 언니랑 ‘카톡’하고…
“‘네이처리퍼블릭’에 가서 남자친구한테 선물할 핸드크림을 1만5000원에 사고 사은품으로 아이돌그룹 엑소의 포토카드 세트를 받았어요. 그걸 이베이에서 30달러에 팔았죠. 배스킨라빈스 알바생이 중고나라에 아이돌그룹 포토카드를 올렸더라고요. 5만 원어치 사겠다고 하니까 왕창 보내줬어요. 그것도 다 팔렸고요. 연예인 포토카드 같은 사은품이 자주 나오는데, 손님들 대부분은 귀찮아서 안 받아가거든요. 매장 직원들도 달라는 손님한테만 줘요.”
얼마 전에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SM타운에 가서 소녀시대 태연 사진이 들어간 쿠션 커버를 두 장 사고 역시 사은품으로 SM 소속 연예인들의 포토카드 8장을 받았다. 쿠션 커버는 장당 2만 원 마진을 붙여 판매했고, 1장당 8달러에 올린 포토카드도 금세 다 나갔다. 거저 얻은 사은품으로 64달러, 우리 돈 7만5000원을 번 것이다.
“그걸 누가 사가요?”(나)
“그게 참 신기하더라고요.”(민영 씨)
민영 씨가 지금까지 해외 여행을 가본 곳은 캐나다, 태국, 캄보디아가 전부다. 그런데 그녀가 이베이에 내놓은 물건들은 미국, 중국, 일본은 기본이요, 북유럽 3개국과 이스라엘, 시리아, 심지어 아프리카의 섬나라 모리셔스로도 팔려나갔다. 그녀는 종종 페루의 단골 고객과 ‘카톡’을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열네 살 소녀와는 카카오 보이스톡을 했다. 시험 잘 보면 엄마가 사준다고 했다며 엑소 CD랑 포토카드 값을 깎아달라고 조르더란다.
인터넷과 글로벌 물류의 발달로 국경 너머 쇼핑이 쉬워졌다.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국경 너머로 물건을 팔기도 쉬운 세상이 됐다. 굳이 나만의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개인이 점포를 낼 수 있는 ‘마켓’이 한둘이 아니다. 이베이 외에도 지마켓 등 국내 업체들도 해외 고객을 공략하는 영문이나 중문 웹사이트를 운영한다. 아예 타오바오, 알리익스프레스 등 중국 온라인 쇼핑몰에 입점하는 한국인 셀러들도 있다.
‘大勢’ 중국과 역직구
종종 한국 TV 드라마에 ‘띡띡띡’ 번호를 누르고 문을 여는 장면이 노출돼서 그럴까. 이베이코리아 관계자는 “특별한 계기나 사건은 없어 보이고, 한국산 도어록이 디자인이나 기능적으로 가장 우수한 반면 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나도 개인 셀러로 나서볼까’ 하는 사람이 많다. 이베이코리아는 매달 두 차례 셀러들을 대상으로 CBT(Cross Border Trade) 교육을 실시하는데, 올해 들어 전년 대비 20%가량 교육자 수가 증가했다고 한다. 중국의 한 온라인업체에서 근무하는 K씨는 이렇게 분위기를 전한다.
“제가 중국에서 e커머스 쪽 일을 하니까 친척들뿐만 아니라 평소 소식 없던 친구들까지 연락을 해 와요. 자기가 무슨 물건을 싸게 구입할 수 있는데, 역직구를 좀 해볼 순 없겠냐고. 다들 직장이 불안하고 중국이 대세라고 하니까, 특히 중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역직구해 볼 생각을 많이들 하는 것 같아요.”
개인에서 법인으로
이베이에서 국산 화장품을 판매하는 윤동현(34) 씨의 역직구 성공기를 들어보자. 그는 게임기, 카메라를 수출하는 회사의 해외수출팀장으로 일하다 아예 역직구 사업가로 뛰어든 경우다.“2011, 2012년경 스마트폰이 날로 대중화하면서 게임기나 카메라 수출이 어려워졌어요. 그때 해외 바이어들이 찾는 것이 한국산 화장품이었어요. 거기 착안해 사업을 시작했죠.”
2012년 10월 집에 컴퓨터 2대를 놓고 아내와 함께 시작한 사업은 현재 하루 주문 건수가 500~1000건에 달할 정도로 커졌다. 고객은 미국, 중국, 유럽, 호주 등 전 세계에 걸쳐 있다. 직원은 15명으로 제품을 포장, 발송하는 직원 외에 중국, 러시아, 뉴질랜드 등 현지인 인력도 있다.
윤씨는 이베이를 통한 B2C(Business to Consumer,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에서 한발 나아가 B2B(Business to Business, 기업과 기업 간 거래)도 개시했다. ‘바잉파워(buying power)’를 가져야 제품을 저렴하게 확보해 저렴한 가격에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베이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해외 바이어들과도 연결돼 15개 국가에 국산 화장품을 수출하고 있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자사 화장품도 론칭했다. 국내 화장품 회사에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으로 제품 생산을 맡긴다.
‘셀러’ 세계에 학벌은 필요 없다. 동현 씨는 고등학교와 군대를 마치고 DHL코리아 글로벌영업부에서 계약직 사원으로 일하면서 처음 사업을 꿈꿨다. 주경야독으로 한양사이버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실용영어도 복수전공으로 이수했다. 그는 “대학 나와 회사 다니는 친구들은 지금 보통 과장급인데, 걔들보다 5배는 더 버는 것 같다”며 웃었다. 그의 목표는 연매출 1000억 원 이상의 회사를 만드는 것.
민영 씨는 개인 셀러다. 동현 씨는 개인 셀러에서 시작해 직원을 꽤 둔 법인사업자다. 그런데 이런 구분이 중요할까. 누구나 사업자등록증만 내면 ‘법인’을 만들 수 있다. 또 개인 셀러로 시작해 사업이 흥해 규모가 커지면 자연스럽게 법인으로 전환한다. 연매출 1000억 원을 돌파하고 NHN엔터테인먼트로부터 150억 원을 투자받아 화제를 모은 중국 역직구 업체 ‘에이컴메이트’의 강철용 대표도 처음에는 동대문시장에서 의류를 떼다가 중국에서 온라인 판매하는 것으로 사업을 시작한 인물이다.
롱테일 이론의 창시자 크리스 앤더슨은 ‘메이커스’(2013)에서 3D프린터가 발전하면 1인 혹은 소규모 제조업체가 많이 생겨날 것이라고 했는데, 글로벌 e커머스 세계에서는 이미 이러한 1인 회사가 대세가 돼가고 있다. ‘중국판 카카오톡’이라 할 위챗(Wechat) 관련 솔루션을 제공하는 ‘에브리코리아’ 조진태 대표는 “위챗에서 물건을 파는 웨이상(微商)이 공식 집계로는 1000만 명, 비공식 집계로 2000만 명인데 이들 중에는 주부, 농촌 청년도 있고, 대기업도 있다”며 “기업과 개인을 구분하는 것이 이미 애매해졌고 별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됐다”고 진단했다.
중국인의 ‘장사꾼 DNA’
하지만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 민영 씨는 이베이에서 신뢰도 있는 셀러로 자리 잡기까지, 팔면 오히려 손해일 정도로 제품 가격을 싸게 책정할 수밖에 없었고, ‘저거 해서 뭐하나’ 하는 어머니의 걱정스러운 눈길을 뒤로한 채 버스비라도 아낄 요량으로 발송할 제품을 싸들고 우체국까지 걸어 다녔다고 한다. 동현 씨도 처음 사무실을 열었을 때는 퇴근이 빨라야 새벽 3시였단다. 그나마 일주일에 한두 번 집에 가고, 사무실에서 먹고 자며 일했다. 그는 “요즘은 좀 나아져서 일주일에 한두 번 빼고는 밤 11, 12시에 퇴근한다”고 했다.중국 베이징의 온라인 결제사 ‘페이이즈’ 배연희 이사는 “과거와 달리 중국 온라인 시장 내 경쟁이 너무 치열해져서 특별한 강점이 없는 한 개인 셀러가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고 했다. 중국어, 중국 문화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중국에 사는 지인과 ‘협업’했다가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조 대표는 “중국 시장을 공략하고자 한다면 경쟁 상대는 한국인이 아닌 중국인 셀러”라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청년취업이 어려워지면서 개인 셀러로 나서려는 젊은이가 매우 많아요. 그러나 민족적 특성이랄까, 차이가 있어요. 중국인들은 실리주의가 강하고 개개인이 ‘장사꾼 DNA’를 갖고 있는데, 한국인들은 그렇지가 못해요. 좀 더 양반 성향이랄까요. 이런 중국인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합니다.”
민영 씨는 대학교 4학년 겨울방학 때 역직구 사업을 시작했다. 연예인 포토카드에서 시작해 수제 액세서리로 상품군을 넓혀가고 있다(액세서리는 가벼워서 배송비가 저렴하고, 분실사고가 나더라도 손실액이 크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그녀는 사업에 올인하기보다는 취업을 택했다. 지금은 나이가 어리니까 직장생활을 하며 조직과 사회를 배워야 하는 때라고 생각한다. 대신 주말을 이용해 역직구 사업을 작더라도 꾸준하게 이어간다. 그녀는 “시장에 계속 참여하면서 이쪽 세계의 흐름을 익히려는 것”이라며 “대박의 운도 실력과 노력이 있어야 찾아와주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했다.
민영 씨를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도 곰곰이 생각해봤다. 요즘 대세로 떠오른다는 웨이상들과 국산 화장품을 놓고 대결을 벌일 재간은 없으니, 뭔가 색다른 아이템으로 세계시장을 제패해볼까, 하는. Korean Fabric Diaper(천기저귀)? Korean apricot juice for relief from indigestion(소화불량에 좋은 매실액)? 벌써 한 달째 고민 중인데, 뾰족한 답이 안 나온다. 이것도 내 한계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