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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의 미술과 마음 이야기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피난 열차

  • 박상희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피난 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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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월, 김환기가 뉴욕에서 쓴 일기의 한 구절입니다. 김환기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왜 그렸는지, 무엇을 담으려 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움입니다. 두고 온 조국, 두고 온 도시, 두고 온 사람들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이 작품에는 살아 있습니다.

김환기는 전라남도 한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도쿄, 파리, 뉴욕에서 공부하거나 활동했지만 삶의 본거지는 당연히 한국이었습니다. 두고 온 나라를 생각하면서 점을 하나 찍습니다. 그 점에는 그리운 사람이 담겼습니다. 다시 두고 온 나라를 생각하면서 점을 하나 더 찍습니다. 그 점에는 그리운 풍경이 담겼습니다. 그렇게 점들을 캔버스 가득히 채워두면 그 점들이 밤하늘로 올라가 빛나는 별이 된 것은 아닐까요. 밝고 희미한 별들이 가득 채워진 밤하늘에선 애틋한 추억이 현재가 되고, 그 현재는 언젠가 미래에 다시 만나고 싶다는 그리움이 됩니다.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 못지않은 감동을 받은 것은 미국에서 잠시 생활하던 때였습니다. 2013년 미국 캘리포니아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방문학자로 지냈습니다. 어느 날 밤 동네를 산책하는데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제게 밤하늘에 있는 별자리들을 물었습니다. “이쪽에 보이는 별들이 북두칠성이고, 저쪽에 보이는 별들은 오리온자리야”라고 말해주는 순간 이 작품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추상 또는 半추상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피난 열차

‘피난 열차’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에서 이 작품을 찾아보면서 저는 그리움에 사로잡혔습니다. 미국에 온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그때 저는 두고 온 서울이, 서울에 있는 이들과 풍경이 너무도 그리워졌습니다. 내가 살아왔고 살아갈 곳은 태평양 너머 저편에 있는 서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셈이지요.



어떤 이들은 김환기가 현실로부터 한 걸음 떨어진 작품만을 그렸다는 아쉬움을 표명합니다. 김환기의 작품 대다수는 추상 또는 반추상에 기울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는 화가가 선택할 결정이지 그에게 강제할 문제는 아닙니다.

그가 널리 인정받은 화가이자 미술대학 교수라는 안정된 자리를 박차고 파리로, 뉴욕으로 떠난 것은 예술가로서의 도전정신 때문입니다. 이른바 ‘본바닥(어떤 일의 중심이 되는 근거지)’에서 자신의 미술 세계를 펼쳐 보이고 싶다는 그의 꿈과 도전정신은 높이 평가받아야 할 것이겠지요.

‘피난 열차’(1951)는 이채로운 작품입니다. 현실을 바라보는 김환기의 시선이 담긴 그림입니다. 6·25전쟁의 비극을 담은 이 작품은 단순합니다. 두 개의 레일 위에 사람들을 가득 실은 열차가 달려갑니다. 열차는 마치 콩나물시루 같습니다. 그런데 열차 안의 수많은 얼굴에는 표정이 없습니다.

제겐 이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전쟁이란 공포 속에 어디로 실려 가는지 모르는 두려움, 불안, 체념, 서러움, 분노 등의 감정을 저는 표정 없는 얼굴들에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작품이 전쟁의 참상을 제대로 고발하지 않았다고 비판했습니다.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 그림은 그 자신의 방식으로 전쟁의 참상과 고통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게 아닐까요. 살아온 정든 곳을 떠나야만 하는 피난 열차는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생생히 보여주는 현장입니다. 그 속에서 피난민들이 겪은 크고 작은 고통을 관람객들로 하여금 다양한 상상을 통해 느끼게 하려는 것이 화가의 의도가 아닐까요.



부암동 환기미술관

전쟁이 일어나자 김환기 역시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친구인 화가 이준의 집 다락방에 살면서 이 작품을 그렸다고 합니다. 주황색 대지와 푸른 하늘, 그 사이에 놓인 검은 열차와 표정 없는 수많은 사람. 이 그림은 김환기의 모더니즘이 현실과 만날 때 어떤 모습으로 형상화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리얼리즘 화가는 리얼리즘 화풍으로, 모더니즘 화가는 모더니즘 화풍으로 삶과 세계, 마음과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하는 것은 예술가라면 누려야 할 당연한 자유가 아닐까요.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고 결혼해 아이를 낳은 제게 서울은 삶의 모든 공간입니다. 이런 의미를 갖는 서울에서 제가 좋아하는 동네가 부암동입니다. 서촌을 지나 자하문을 넘으면 부암동이 펼쳐집니다.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에 포근하게 안긴, 서울에선 드문 다소 한갓진 동네가 바로 이곳입니다.

중국집과 만두집과 카페들이 유명한 부암동에 김환기의 삶과 예술을 기리는 환기미술관이 있습니다. 무더운 이 여름엔 김환기가 남긴 작품답게 모던하게 지어진 이 미술관에 가서 서늘하면서도 따듯한 그의 미술 세계를 만나보는 건 어떨지요. 분명 유쾌하고 뜻 깊은 시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피난 열차
박 상 희
● 1973년 서울 출생
●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문학박사,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방문학자
● 現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JTBC ‘사건반장’ 고정 패널
● 저서 : ‘자기대상 경험을 통한 역기능적 하나님 표상의 변화에 대한 연구’ 등




신동아 2016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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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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