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호

이재명이 승리할 수 있었던 5가지 이유

[강준만의 회색지대] 이재명 ‘만독불침(萬毒不侵)’의 역사⑧

  •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입력2026-04-03 08: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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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년 전 이재명이 문재인 팬덤과 빚은 갈등

    • “이재명의 진가를 확인해 준 계곡 정비”

    • 법조계 전관예우를 뿌리 뽑겠다더니…

    • 당선무효 위기에 전 대법관 등 호화 변호인단 꾸려

    • 21세기 ‘상상 못할 계엄령’으로 대통령이란 행운 얻어

    • ①극단적 위험 감수 전략 ②전대미문 싸움꾼 기질

    • ③능수능란한 SNS·유튜브 활용술 ④고강도 팬덤 관리술

    • ⑤절대 충성을 위한 용인술, 강점이긴 하나…

    • 민주주의는 겸손 위에서 번영한다는 점 유념해야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8월 15일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국민임명식 ‘광복 80년, 국민주권으로 미래를 세우다’ 행사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8월 15일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국민임명식 ‘광복 80년, 국민주권으로 미래를 세우다’ 행사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2019년 1월 5일 대통령 문재인의 열성 지지자 1000여 명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 의원회관에서 “문 대통령을 지키겠다”며 대규모 신년 행사를 열었다. 이들은 “소득 주도 성장을 이어가자” “북·미, 남북 관계 성공을 널리 알리자”며 노래와 춤을 곁들여 행사를 진행했다. 이날 영하 날씨에 450여 명을 수용하는 의원회관 대회의실은 무대와 복도까지 꽉 찼고, ‘꽃길만 걷자’는 피켓 1000장이 동났다. 행사장이 꽉 차자 일부는 의원회관 로비에서 유튜브 실시간 중계로 행사를 시청했다. 유튜브 실시간 채팅창에는 ‘문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등 문구와 함께 1만~10만 원씩 후원금을 낸 참여자들의 ID가 표시됐다.

    7년 전 이재명이 문재인 팬덤과 빚은 갈등

    민주당 소속이거나 지지자이면서도 문재인 팬덤의 신년 행사를 마냥 흐뭇한 기분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경기도지사 이재명과 그의 지지자들이었다. 문재인 팬덤과 이재명 팬덤 사이의 긴장과 갈등을 고조시켰던 ‘혜경궁 김씨 사건’은 경찰이 문재인 진영을 향해 인신공격을 퍼부었던 문제의 ID가 이재명 집에서 인터넷에 접속했다는 기록을 찾아냄으로써 곧 문재인 팬덤의 완승으로 끝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만독불침의 전사’인 이재명은 “문준용 특혜 채용 의혹을 먼저 규명해야 한다”고 치고 나감으로써 검찰이 김혜경을 불기소 처분하게 만든 승리를 거두었고, 전 한나라당 의원 정두언으로부터 “이재명은 탄복할 정도로 대단한 싸움꾼”이라는 찬사를 얻지 않았던가. 문재인 팬덤은 이 싸움의 결과에 수긍할 수 없었고, 그래서 이재명을 향한 반감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문재인 팬덤의 국회 신년 행사에서 이재명과 그의 후원자로 여겨진 민주당 대표 이해찬이 언급될 때 박수 대신 야유가 쏟아진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7년 전 의원회관에서 열린 신년 행사에서 “문파가 국회를 점령했다”고 말한 사회자는 “문 대통령 성공을 바라는 사람들끼리 놀아보자”며 인터넷 매체 관계자와 팟캐스터들을 무대로 불렀다. 이들은 “올해 대통령님에 대한 적폐들의 공격이 훨씬 세질 것”이라며 “서민 중심 소득 주도 성장과, 너무 잘되고 있는 북·미 관계, 남북 관계를 정직하게 최대한 열심히 알리자”고 했다. “문 대통령 임기 내에 통일까지 달성할 수 있도록 지지하자”고도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 출연자는 “‘성남의 조폭’을 파고 있다. 굉장히 많이 제보를 받고 있다”며 “이재명을 잡기 위해서라면 쫄지 않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이재명의 ‘성남 조폭 연루설’ 의혹을 언급한 것이다. 주최 측이 “우리에게 대통령은 문 대통령 한 분뿐”이라며 “차기 대선후보 여론조사는 반역 행위다. 레임덕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말하자 환호가 터졌다.



    이재명은 이런 문재인 지지자들의 싸늘하고 적대적인 마음을 돌리기 위해 문재인의 국정 운영에 적극 협력하는 자세를 취했다. 경기도는 2019년 1월부터 ‘국정과제 추진TF’를 확대하고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성공을 위해 본격적인 지원에 나섰다. 국정과제 추진TF는 문재인 정부가 밝힌 100대 국정과제를 비롯한 주요 공약 가운데 경기도와 관련된 주요 사업을 집중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이재명은 “문재인 정부의 성공이 곧 민선7기 경기도의 성과로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이후 이재명의 문팬 달래기 시도는 집요하게 이뤄지지만, 진정성이 없다고 여긴 건지는 몰라도 그들은 좀처럼 이재명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이런 갈등은 이후 7년 넘게 지속된다.

    그러던 중 이재명에게 아주 좋은 일이 일어났다. 2019년 5월 16일 오후 수원지법 성남지원 형사1부(부장판사 최창훈)는 1심 선고공판을 열어 이재명에게 적용된 친형 정신병원 강제 입원 시도, 검사 사칭, 대장동 개발 효과 과장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으니 말이다. 그간 이재명은 2018년 12월 11일 재판에 넘겨져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였으며, 검찰은 4월 25일 결심공판에서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징역 1년 6월, 3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벌금 600만 원을 각각 구형했다.

    재판부는 대장동 개발 효과 과장 혐의에 대해서는 “해당 사업을 통해 5503억 원의 이익을 얻게 될 상황은 만들어졌다”며 “방송 토론회에서 선거법상 허위 사실을 공표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검사 사칭에 대해서도 “(방송 토론회에서 한) 피고인의 발언이 구체적 사실로 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가장 관심을 모았던 친형 강제 입원 시도 혐의에 대해서는 이재명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재명 측은 재판 내내 친형 이재선에 대한 입원 시도가 강제 입원이 아닌 강제 진단을 위한 조치라면서 혐의를 부인했었다. 재판부는 이 같은 이재명 측 주장을 받아들여 이재명이 취한 형에 대한 일련의 조치는 시장으로서 할 수 있는 정당한 조치로 판단했다. 선거방송 토론회에서 이재명이 형 정신병원 강제 입원 시도와 관련해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한 발언에 대해 재판부는 “후보자 판단을 그르칠 수 있어 허위 사실 공표로 볼 수 있는 측면이 있지만 구체적 행위가 추출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3심이 남아 있어 아직 안심하기는 일렀지만 일단 1심 무죄로 한숨을 돌린 이재명은 문재인 지지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일에 박차를 가했다. 그는 1심 무죄선고 직후 지지자들에게 “‘큰 길’로 함께 가길 기대한다”며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중심으로 단결할 것을 강조했다. 또한 문재인과 호흡했던 청와대 인사들을 잇따라 경기도로 ‘초빙’하며 ‘문재인의 남자 끌어안기’에 나섰다.

    “이재명의 진가를 확인해 준 계곡 정비”

    이명박에게 청계천이 있었다면, 이재명에겐 계곡이 있었다. 하천·계곡 내 불법점유 음식점 등에 대한 철거 사업 말이다. 이명박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청계천 복원 사업은 칭찬했듯이, 이재명의 계곡 사업 역시 거의 모든 이의 칭찬 대상이 됐다. 물론 지지자들에겐 극찬의 대상이었다. 이재명 지지자인 ‘나꼼수’ 김용민은 “개혁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힘과 신뢰를 지녀야 한다”며 “계곡 정비는 이재명의 진가를 확인해 준 리트머스시험지였다”고 말했다.

    2019년 8월 12일 이재명은 경기도 확대간부회의에서 “경기도에서 하천을 불법점유하고 영업하는 행위가 내년 여름에는 한 곳도 없도록 바로잡겠다”며 “철거하고 비용도 징수하고, 안 내면 토지 부동산 가압류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경기도 하천·계곡 내 불법점유 음식점 등에 대한 강제 철거 작업이 시작됐다. 상인들이 불법 평상·천막을 설치해 자릿세를 받고, 시중 가격보다 비싸게 음식을 파는 등 텃세를 부린 것에 철퇴를 내린 것이다.

    초반엔 경기도 내부에서조차 “불가능하다. 무리하면 충돌이 벌어질 것”이란 우려가 컸다. 이에 이재명이 선택한 해법은 ‘정면 돌파’였다. 그는 2019년 8월 23일 경기 양주 일대 영업소 2곳의 철거 현장을 찾아 직접 작업을 지휘했고, 반대 주민들과 만나 공개 논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이재명은 “살짝 불쾌하다”고 하는 상인에게 “당연히 불쾌하죠. 저도 불쾌하긴 마찬가지”라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그는 “단칼에 다 없애면 어떡하냐”고 고성을 지르는 상인들을 향해 “그러면 불법 상태를 계속 방치할 거냐. 유예는 불가능하다”고 받아쳤다. 

    당시 상황을 찍은 영상은 47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봤고, 댓글이 2만 개가 넘었다. 이 영상을 본 SBS 논설위원 윤춘호는 “대화 분위기는 험악했다. 상인들은 지사를 면전에 두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주민들의 언성이 높았고, 가끔은 말끝이 짧아서 반말처럼 들렸다. 여차하면 책상을 엎고 물병이라도 집어 던질 기세였다. 자신들의 생계 수단을 이재명이 한순간에 철거해 버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21년 5월 26일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가 경기 가평군 용소폭포에서 열린 경기도 청정계곡 생활 SOC 준공식에서 불법시설물이 철거된 계곡을 살펴보고 있다. 당시 그는 경기도 25개 시·군 187개 계곡과 하천 근처를 불법 점거한 상인들을 철수시켰다. 뉴스1

    2021년 5월 26일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가 경기 가평군 용소폭포에서 열린 경기도 청정계곡 생활 SOC 준공식에서 불법시설물이 철거된 계곡을 살펴보고 있다. 당시 그는 경기도 25개 시·군 187개 계곡과 하천 근처를 불법 점거한 상인들을 철수시켰다. 뉴스1

    “이재명의 태도는 그들을 달래기보다 화를 돋우는 것처럼 보였다. ‘여러분들 기분 나쁘고 불쾌한 거 안다’며 ‘멱살을 잡아도 좋다’는 그의 말은 진담인지 농담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화를 내는 주민에게 그 역시 얼굴을 붉히며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유예기간을 달라는 한 주민의 요청을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단칼에 거절했다. 듣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였다. 유권자들이기도 한 주민에 대한 공손함이나 절제된 언행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경기도 산하 25개 시·군과 조율하는 것도 원만하지만은 않았다. 가평군의 경우, 초반엔 불법시설물 정비 속도가 더뎠던 탓에 이재명으로부터 불호령을 들었다. 그는 2019년 10월 경기도 확대간부회의에서 “불법을 방치한 것도 문제인데, 이렇게 버티면서 인력 없다고 있으면 어떻게 하나. 당연히 수십 년을 그대로 방치한 것 문제 아니냐. 직무 유기다”라며 가평군에 대한 감사를 지시했다.

    이 때문에 계곡 정비사업은 이재명의 농담처럼 “이재명은 거칠다”는 이미지가 각인된 사건이기도 했지만, 성과는 분명했다. 1년 후인 2020년 8월 기준 경기도 하천 내 불법시설물 1만1562개소 중 1만1342개소(98.2%)는 모두 철거된 상태였다. 오랜 시간 묵인 속에 이뤄졌던 하천·계곡 인근 상인들의 바가지요금과 평상·천막 등 불법시설이 사라졌다. 이 계곡 정비사업은 이재명의 정치적 입지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도지사 취임 직후인 2018년 7월만 해도 29.2%로 전국 17개 시·도지사 중에 꼴찌였던 이재명의 직무수행 지지도는 계곡 정비사업이 본격화된 뒤 상승세를 탔다. 

    법조계 전관예우 뿌리 뽑겠다더니

    2019년 9월 6일 이재명이 다시 큰 위기에 몰렸다. 4개월 전 친형 강제 입원·선거법 위반 등에 대해 모두 무죄판결을 내린 1심과는 다른 항소심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수원고법 형사2부(부장판사 임상기)는 친형과 관련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와 ‘검사 사칭’ ‘대장동 개발 업적 과장’과 관련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등 3가지 혐의에 대해선 원심 판결과 같이 ‘무죄’라고 판단했지만, 친형과 관련된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공표) 부분에 대한 원심의 무죄 부분을 파기하고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이로써 당선무효 위기에 몰린 이재명은 상고심 재판을 위한 변호인단 구성을 위해 모든 걸 다 걸다시피 했다. 그는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법조계 전관예우(前官禮遇)를 뿌리 뽑겠다고 공약한 바 있었다. 당시 이재명은 “대형 로펌은 재벌총수를 위해 담당 판검사와 인연이 있는 전관 변호사들을 총동원하고, 심지어 증거 조작까지 한다. 대가로 천문학적인 액수의 변호사 보수를 받는다”며 “전관예우,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형사사건 변호사 보수에 제한을 둬서 이들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제거해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재명의 전관예우 척결 주장은 ‘호화 변호인단’으로 인해 무색해졌다. 전 대법관 이상훈을 비롯해 전 대법관 이홍훈, 전 헌법재판관 송두환, 그리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전 회장 최병모와 백승헌,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나승철 등 전직 주요 변호사단체장들도 상고심 변호인으로 참여했다. 부인 김혜경이 ‘혜경궁 김씨’ 사건으로 수사를 받게 되자 변호인단에 수원지검 공안부장 출신 변호사 이태형을 영입한 것도 다시 구설에 올랐다. 김혜경을 수사하는 곳이 수원지검인데 수원지검 출신 변호사를 선임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2019년 10월 1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경기도 국감에서 자유한국당 의원 안상수는 이재명이 대법관 출신 변호사 선임과 관련해 “이상훈 변호사가 현재 이 지사님 배정 사건의 대법관과 함께 근무했던 분. 전관예우를 기대를 하시는 것은 아니냐?”고 물었다. 이재명은 “절대 아니다. 법리적으로 뛰어나신 분”이라고 답변했다. 안상수는 “자기가 편할 때 상대방을 공격하고 자기한테 엄격하지 않은 것은 국민이 정치인을 혐오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며 “국민과 도민을 위해 열심히 해야지 기회 있을 때마다 정치성 발언을 해서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의원 김영우는 이재명 선처를 구하는 구명운동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경기도에서 많은 분들이 이 지사 구명운동을 벌이는데 문제는 경기도 승인이 필요한 사업을 추진하는 기초단체로서 구명운동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며 “그런 압박을 많이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말했다. 김영우는 “심지어 경기도 공무원조차 구명운동 탄원서에 서명하지 않기가 힘들다고 한다”며 “구명운동은 자발적으로 해야 하는데 상급자 공무원이 서명을 해달라고 하는데 안 하기 힘들지 않겠냐”고 했다.

    2019년 11월 20일 ‘경기도지사 이재명 지키기 범국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각계각층이 서명한 탄원서 제출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2019년 11월 20일 ‘경기도지사 이재명 지키기 범국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각계각층이 서명한 탄원서 제출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어 “공무원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고, 법과 원칙을 따라야 한다”며 “공무원이 직접 경기도 자문위원에게 지지를 구하는 카톡을 보내는 것은 직권남용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또 “한때 이 지사와 초기에 각을 세웠던 경기도공무원노동조합도 공개적으로 나서는데 지사가 이들의 인사권을 가진 상황이다”라며 “지사가 유죄를 받으면 노조가 추진하는 사업이 취소될 수 있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냈는데 엄청난 협박 아니냐”고도 했다.

    그해 11월 20일 ‘경기도지사 이재명 지키기 범국민대책위원회’는 이재명의 무죄 선처를 구하는 시민 13만여 명의 탄원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범대위 측은 “사법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이재명 지사가 지사직을 내려놓는 불행한 일은 결코 있어서 안 된다”며 “그동안 전국 각지에서 모아온 탄원서를 취합해 상고심 재판부가 있는 대법원에 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팬덤이 있는 정치인은 무죄를 호소하고, 평범한 서민은 아무리 옳아도 지원을 못 받는다면 ‘팬덤 무죄, 무팬덤 유죄’인가”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재명은 자신이 ‘만독불침(萬毒不侵)’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고 큰소리쳤지만, 사실 그의 마음속은 이즈음 두려움에 떨면서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는 대법원 판결을 5개월 앞둔 2020년 2월 공개적으로 다음과 같은 글까지 썼을 정도로 말이다.

    “나 역시 부양할 가족을 둔 소심한 가장이고 이제는 늙어가는 나약한 존재다. 두려움조차 없는 비정상적 존재가 아니라 살 떨리는 두려움을 사력을 다해 견뎌내고 있는 한 인간이다. 누릴 권세도 아닌 책임의 무게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쉬울 뿐 지사직을 잃고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정치적 사형은 두렵지 않다. 그러나 이제 인생의 황혼녘에서 경제적 사형은 두렵다. 전 재산을 다 내고도 한생을 더 살며 벌어도 못 다 갚을 엄청난 선거자금 반환 채무와 그로 인해 필연적인 신용불량자의 삶이 날 기다린다.”

    대법원 판결이 만든 ‘어대명 현상’

    2020년 4·15총선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77석을 얻는 압승을 거뒀으며, 위성정당인 열린민주당의 3석을 합하면 180석에 이르렀다. 민주당은 특히 수도권(121석)에서 103석(85.1%)을 차지했는데, 서울 41석(87.2%), 인천 11석(84.6%), 경기 51석(96.4%)이었다. 경기도에선 문자 그대로의 ‘1당 독재’가 가능해진 것이었으니, 이는 이재명에게도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4월 17일 노무현재단 이사장 유시민은 유튜브 채널 ‘알릴레오’ 마지막 방송에서 “(이재명 지사는) 코로나19 과정에서 신속하고 전광석화 같은 일처리, 단호함으로 매력을 샀다”며 “앞으로 상당한 지지율 기반을 구축할 것”이라며 대권주자로서의 행보를 예견했다. 

    강화된 대권주자의 위상, 전관예우와 팬덤의 힘 덕분이었을까. 2020년 7월 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재명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다수의견으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다수의견(7명)은 불리한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를 반대 사실을 공표한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고 본 반면, 소수의견(5명)은 이 지사가 불리한 사실은 숨기고 유리한 사실만을 덧붙였다고 지적했다. 또한 검찰 측의 나머지 상고에 대해서는 모두 기각했다.(수원고등법원은 같은 해 10월 16일 열린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검찰이 재상고를 포기하면서 최종적으로 재판이 끝났다.) 

    2020년 7월 16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주재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재명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다수의견으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뉴스1

    2020년 7월 16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주재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재명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다수의견으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뉴스1

    이런 상승 무드가 한동안 지속되면서 이재명은 2021년 2월 초순 모든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기록했다. 그래서 여권 내부에선 “어대명(어차피 대선후보는 이재명)”이란 말까지 나왔다. ‘어대명 현상’의 1등 공신은 ‘SNS·유튜브 대통령’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현란하게 뉴미디어를 잘 활용해 팬덤을 키워나간 이재명의 ‘팬덤 정치’였다.

    2021년 7월 출간된 ‘2021·2022 이재명론’의 공동 저자인 장동훈은 “이재명은 ‘SNS 대통령’이라는 별칭을 들을 정도로 온라인상에서 많은 지지자를 확보하고 있다”며 “어쩌면 SNS 시대의 개막과 함께 정치를 시작한 이재명은 행운아다. 그는 SNS 시대에 최적화된 정치지도자인 까닭이다”라고 평가했다. SNS뿐만이 아니었다. 이재명이 유튜브 문법을 누구보다도 더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유튜브는 압도적으로 친명 성향을 보이고 있었다.

    2021년 8월 18일 대선후보 경쟁자인 이낙연 캠프 내부에서 작성한 ‘이낙연 후보 비방을 주도하는 유튜브 방송 실태’라는 제목의 8쪽 분량 문건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지만, 이 문건은 ‘유튜브 시장’의 현실을 입증해 준 것처럼 보였다. 이 문건은 김용민TV, 이동형TV, 새가 날아든다, 이송원TV, 시사타파TV 등 진보진영 유튜버들과 온라인 매체 고발뉴스, 열린공감TV 등이 “이낙연 전 대표에 대해 지속적·조직적으로 비난 방송을 하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들 유튜버는 경기도의 ‘경기호황쇼’와 연결돼 거액의 출연료를 받거나 기본소득 등 광고 수주를 통해 지원을 받으면서 이 전 대표 비방과 이재명 경기도지사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경기도 홍보비 관련 자료에 따르면 팟캐스트에 대한 예산은 지난 6월까지 2년 6개월간 총액은 4억5300만 원, 유튜브 예산은 8억7200만 원에 달한다.”

    이 문건에서 ‘이재명 지지’ 성향으로 지목된 6개 유튜브 채널은 공동입장문을 내고 “이낙연 캠프에서 (자신들에게) 비우호적이라는 예단으로 우리를 지목하고는 방송 성향까지 분석한 괴문서를 작성했다”며 “전형적인 블랙리스트”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낙연 캠프 관계자는 “캠프 내 모니터링 요원이 일상적인 업무를 하면서 정리한 내용”이라며 “블랙리스트라고 하면 권력자가 누군가에게 불이익을 주기 위해 만드는 문서인데 우리가 괴문서를 작성했다는 등의 주장은 억지”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참에 경기도는 유튜브 홍보 예산을 공개해서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2021년 9월 2일에 나온 ‘대선판 여론 유튜브는 안다’라는 제목의 경향신문 기사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구독자 수 기준으로 친(親)이재명 283만 대 친이낙연 10만으로, 친이재명 쪽이 28배나 넘는 화력 우세를 보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친민주당 성향 채널 중 가장 많은 50만7000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김용민TV가 8월 한 달간 이재명을 다룬 콘텐츠는 ‘이재명 ‘네거티브 중단’ 선언 “뭘 해도 완승” 계산 끝났다’ 같은 우호적인 논조인 반면, 이낙연에 대해서는 ‘이낙연 어서 와, 지옥은 처음이지?’ 같은 비판적인 콘텐츠가 대부분이었다. 다른 민주당 성향 채널들도 비슷한 기조였다. 

     유력 유튜버들이 이재명 쏠림 현상을 보였건, 이재명이 유튜버들을 어떻게 자기편으로 만들었건, 유튜브가 주류 미디어로 급성장하던 시기에 이재명이 압도적 우위를 보였다는 건 그가 여론 전쟁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정치적 우위를 확보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재명이 승리할 수 있었던 5가지 이유

    이재명은 7·16 대법원 판결 직후 “지금 여기서 숨 쉬는 것조차 얼마나 감사한지 새삼 깨달았다”면서 안도감을 표했지만, 모든 의혹이 다 해소된 건 아니었다. 판결 직후부터 불거진 이재명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과 ‘대법관 권순일에 대한 로비 의혹’, 2024년 대장동 개발 의혹 재판에서 제기된 ‘1심 재판 거래 의혹’ 등 이재명의 ‘사법리스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재명은 2025년 대통령이 되기 직전까지 12개 혐의로 5개 재판을 받고 있었다. 대통령 임기를 마친 후에 다시 열릴 재판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서라는 의혹을 받으면서도 민주당 의원들은 현재 ‘이재명 대통령 사건 공소 취소와 국정조사 추진을 위한 의원모임’까지 결성해 뛰고 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지만, 이재명 ‘만독불침’의 역사는 여기서 매듭을 짓기로 하자. 이재명이 오랜 위기와 시련 끝에 최종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미 7·16 대법원 판결 때까지 다 선을 보였고 이후엔 같은 패턴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윤석열이 계엄이라는 자폭을 하지 않았다면 이재명은 대통령이 될 수 없는 건 물론이고 감옥 생활을 한 후에 신용불량자의 삶을 살아야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하나 마나 한 가정이다.

    2020년대의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가 누가 유도한다고 해서 저지를 수 있는 범죄가 아니라는 데에 동의한다면, ‘이재명의 행운’이라는 말 이외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런 행운이 “이재명이 승리할 수 있었던 5가지 이유”의 설득력을 떨어뜨리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는 독자들은 이재명이 그런 행운을 누릴 위치에까지 갈 수 있었던 이유로 생각해도 무방하겠다. 

    첫째, 극단적 위험 감수 전략이다. 극단적 위험 감수를 한다는 건 그만큼 권력의지가 강하다는 걸 말해 주는 것이다. 그의 사법리스크는 모두 다 빠른 시간 내에 업적을 쌓으려는 그의 욕망과 관련돼 있다. 잃을 게 없는 언더도그로서 과격한, 때론 무모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 전략을 쓴 게 그의 초고속 성장을 가능케 했다. 권력의지가 강하다고 해서 일을 잘하는 건 아니지만, 이재명의 경우엔 일 자체를 즐기는 스타일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둘째, ‘금세기 다시 만나기 힘든 전대미문 싸움꾼’ 기질과 실력이다. 속된 말로 ‘깡’이 세다. 윤석열은 “이재명의 깡을 배우고 싶다”고 했는데, 사실 그가 계엄이라는 자폭을 한 결정적 이유는 ‘깡’과 ‘멘털’이 약한 데 있다. 윤석열은 ‘무데뽀’ 스타일이었을 뿐, 이재명의 지략(智略)은 없었다. 이재명에겐 ‘깡’과 ‘지략’이 결합된 치킨게임(chicken game)과 벼랑끝전술(brinkmanship)로 상대를 제압한 중요한 승리 사례가 많다. 

    이재명 대통령이 3월 6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대통령이 3월 6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셋째, 능수능란한 SNS·유튜브 활용술이다. 그는 침대 위에서 SNS를 보다가 굴러떨어지기도 할 정도로 SNS 중독자였는데, 그가 ‘신속 행정’ ‘추진력’이라는 이미지를 얻게 된 것도 사실상 SNS 덕분이었다. ‘친이재명 283만 대 친이낙연 10만’으로, 28배가 넘는 유튜브 화력 우세를 보인 거짓말 같은 이야기도 상당 부분 그가 사실상 직업적 유튜버와 같은 마인드와 실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넷째, 전무후무한 고강도 팬덤 관리술이다. 이전 글에서 지적했듯이, 연예 스타의 팬덤 관리 이면엔 기획사가 주도하거나 지원하는 체계적인 분업 체제가 자리 잡고 있지만, 이재명의 팬덤 관리는 자신이 스타이면서 동시에 기획사와 매니저, 심지어 팬클럽 회장 역할까지 도맡아 하는 1인4역 시스템이었다. 전무후무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 누구도 이재명처럼 자신이 직접 나서서 노골적으로 팬의 자격과 모집 요강을 밝히고 ‘응원 댓글’과 ‘좌표찍기’를 부탁하거나 요구할 정도로 대담한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다섯째, 절대 충성을 위한 용인술이다. 이재명은 측근 인사들이 자신에게 절대적 충성을 하게 만드는 용인술에 뛰어났다. 물론 이는 충성에 대한 절대적 보상을 해주기에 가능한 것이었겠지만, 원한다고 해서 아무나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2023년 이재명 주변 인물의 5번째 사망(자살) 사건이 터짐으로써 그의 용인술에 부정적인 의문이 제기되긴 했지만 말이다. 그는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여기면 다른 사람의 소개 없이 초면에 먼저 전화를 걸어 포섭하는 능력도 탁월했다. 

    이재명의 이런 강점들은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이제 그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만독불침’과 관련된 자신감이다.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진부하고 상투적인 말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독선과 오만이라고 해도 좋겠다. 상대편을 향한 독선과 오만은 강성 지지자들을 끌어모으는 데엔 효과적이었지만, 대통령직은 그런 팬덤 정치를 넘어설 걸 요구한다.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기까지 실천해 온 ‘만독불침의 문법’은 대통령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좀 달라질 필요가 있는데, 그런 변화의 핵심은 바로 겸손이다. 호주 정치학자 존 킨이 책 ‘민주주의의 삶과 죽음’(2017)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을 명심한다면, 성공에 훨씬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겸손 위에서 번영한다. 겸손은 얌전하고 순한 성격 혹은 굴종과 절대로 혼동해서는 안 되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덕이며 오만한 자존심의 해독제이다. 이는 자기 자신과 타인의 한계를 알고 인정하는 능력이다.” <끝>

    강준만
    ●1956년 출생
    ●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언론학 박사
    ● 저서 : ‘발칙한 이준석: THE 인물과사상 2’ ‘싸가지 없는 정치’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강남 좌파’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김대중 죽이기’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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