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호

테이스터 박영순의 커피 인문학

달이고, 우려내고 향미(香味) 변주곡

  • 박영순 | 경민대 호텔외식조리학과 겸임교수 twitnews@naver.com

    입력2016-07-27 16: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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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류는 커피를 먹기 시작한 지 1000여 년 만에 ‘달이기’의 한계를 벗어나 ‘우려내기’에 눈을 떴다.
    • 커피의 향미에 몰입하면서 다양한 추출법이 등장했다.
    23년 전만 해도 “커피는 식물의 어떤 부분을 먹는 것일까?”라고 질문하면 머뭇거리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콩처럼 털어 먹는다”는 답변과 함께 “줄기나 잎의 즙을 짜 마신다”는 말도 나왔다.

    커피는 앵두나 체리처럼 빨간 열매 속의 씨앗만 골라내 겉에 묻은 점액질을 물로 씻거나 햇볕에 잘 말린 뒤 볶아 먹는 것이다. 더욱이 볶은 것을 그냥 먹는 게 아니라 설탕이나 소금 입자 굵기로 갈아 뜨거운 물이나 찬물로 그 속의 성분을 추출해야 한다.

    커피 나무의 태생지 에티오피아는 기원전부터 커피를 마셨다고 주장하는데, 어떻게 그 먼 옛날에 이토록 복잡한 방법을 깨우친 걸까. 한참을 양보해, 예멘이나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슬람권 국가들의 주장을 따라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시점을 기원후 7~8세기로 잡더라도 디테일한 커피 음용법을 그때부터 알아냈다고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



    ‘음료’ 아닌 ‘음식’

    커피를 처음 먹은 것으로 알려진 에티오피아 카파(Kaffa) 지역 원주민은 커피 열매를 음료가 아니라 음식으로 대했다. 이때가 언제인지는 명확히 알려진 게 없다. 에티오피아가 525년 예멘을 침공함으로써 아라비아 반도에 커피를 전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관점에서 보면 이보다는 앞선 시기일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지금도 에티오피아 산악지대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갈라(Galla) 부족에겐 커피 열매를 음식으로 먹는 관습이 일부 전한다. 커피 열매를 동물성 기름과 함께 볶은 뒤 당구공만 하게 만들어 갖고 다니며 먹는다. 늙은 염소가 빨간 커피 열매를 먹고 활동이 왕성해지는 것을 보고 인류도 열매를 따 먹게 됐다는 ‘칼디의 전설’을 봐도 커피는 초기엔 과일처럼 열매를 먹는 것이었다.

    이슬람권에서 전해지는 유래설에서도 커피는 열매를 그냥 먹거나 끓여 마시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슬람 창시자 마호메트(570~632)와 관련한 기원설에서도 극도로 쇠약해진 마호메트가 가브리엘 천사의 계시로 커피 열매를 따 먹고 기운을 차린 것으로 전해진다.

    기록에 커피가 처음 언급된 시기는 10세기 초반이다. 이라크 바그다드병원장 라제스(865~923)가 쓴 ‘의학보고’에 “커피는 사지를 튼튼하게 하고 피부를 맑게 한다. 커피를 마시면 좋은 체취가 난다”는 대목이 있다. 커피는 이 시기에 이미 소아시아 접경에 이르기까지 아라비아 반도 전역에 퍼져 그 효능을 인정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커피의 기원설에 등장하는 ‘셰이크 오마르’는 이슬람 학자로서 커피 열매를 달여 마시게 해 전염병을 막은 인물로 묘사된다. 커피의 기원에 대한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압달 카디르의 ‘커피의 합법성 논쟁과 관련한 무죄 주장’(1587년)에는, 이 시기가 1258년이며 병을 치료하기 위해 오마르가 커피 열매를 달여 마시게 했다고 적혀 있다. 13세기 이슬람 신비주의 수피교도 알 샤드힐리는 커피 마시기를 수행 방법으로 삼았다고 하는데, 그는 커피 열매가 아니라 잎이나 줄기를 끓여 먹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전언들을 종합해보면, 적어도 13세기 중반까지는 커피 열매를 그대로 먹거나 달여 마시는 방법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1500년대 전후 ‘로스팅’

    커피 열매에서 씨앗만 골라내 볶아 먹은 것이 언제부터인지에 대해선 명확한 기록이 없으니 실마리를 통한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아덴(예멘)의 율법학자 게마레딘이 1454년경 에티오피아에 갔다가 커피를 예멘으로 가져가 전파했다는 기록도 있는데, 여기서도 음용법은 열매를 달여 마시는 것이었다. 커피는 예멘을 통해 이슬람권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급속히 확산된다. 졸지 않고 밤새 기도하게 만드는 커피의 효능은 무슬림들로서는 ‘신의 축복’으로 받아들일 만했다.

    무슬림들이 얼마나 커피를 마셨던지, 예멘은 아예 커피를 경작하기에 이른다. 메카, 메디나, 이집트, 터키 등 이슬람 국가들에서 커피 주문량이 쇄도했다. 예멘의 한 항구인 모카가 지금까지도 커피를 일컫는 상징이 됐을 정도니 당시의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 커피를 멀리 떨어진 이란-이집트-시리아-터키 등지로 대량 운송하는 과정에서 무슬림 상인들은 커피의 씨앗만 있어도 효능을 볼 수 있으며, 오히려 향미가 더 좋다는 것을 깨우친 듯하다.

    윌리엄 우커스는 저서 ‘올 어바웃 커피’에서 16세기 예멘에서 커피가 대중화하고 메카, 메디나, 이집트, 이스탄불을 거쳐 17세기 초엔 이탈리아를 통해 유럽으로 퍼졌다고 적었다. 이 시기쯤에 비로소 커피 로스팅에 대한 얘기들이 나온다.

    1700년대 유럽 여러 국가의 학자들이 쓴 문헌엔 변용된 칼디설과 오마르설이 등장했다. 이전의 문헌과 달리 “칼디에게서 열매를 받은 수도승이 불결하다며 불 속으로 던졌더니 멋진 향기가 났다”거나 “오마르가 산속을 헤매다 열매가 달린 마른 가지를 땔감으로 쓰다가 향기 나는 커피 열매를 발견했다”는 식이다. 씨를 로스팅해 마시는 커피 음용법이 자리 잡으면서 로스팅을 포함한 이야기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1711년 프랑스에선 주전자에 천주머니를 달아놓고 원두가루를 그 안에 채운 후 뜨거운 물을 부어 마셨다. 인류가 커피를 먹기 시작한 지 1000여 년 만에 ‘달이기(decoction)’의 한계를 벗어나 마침내 ‘우려내기(infusion)’에 눈뜬 것이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커피의 향미에 몰입하면서 다양한 추출법이 등장한다. ‘인류, 커피의 향미에 빠지다’는 커피 역사에서 18세기를 정의하는 문구일 것이다.

    커피의 향미를 북돋우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게 로스팅 기법이다. 1705년 처음으로 석탄을 이용한 상업용 로스터가 개발된 기록만 봐도 18세기에 로스팅 노하우가 얼마나 축적됐을지 짐작되고도 남는다. 우려내기가 보편화한 뒤 커피 추출법의 진화엔 또 다른 개념이 스며든다. 그것은 편의성 또는 신속성이다. 이를 키워드로 추출에 삼출(percolation)과 압력(press)을 동원하려는 아이디어가 싹트게 되고, 훗날 에스프레소 머신의 등장을 불러온다.



    편의성, 신속성

    그러나 편리함은 대가를 치르는 법. 삼출식은 달임법이 지닌 잡미와 쓴맛이 주는 부담감을 극적으로 해소하진 못했다. 이 문제는 20세기에 들어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게 된다.

    1908년 독일의 멜리타 벤츠 여사가 삼출과 여과를 통합한 드립법으로 커피 추출법의 새 지평을 열었다. 종이 필터를 사용하는 동시에 커피를 물에 잠기게 하지 않고 양철 드리퍼를 통과시킴으로써 위장에 부담이 되는 지방산과 잡미를 획기적으로 줄였다.

    이탈리아에선 1906년 밀라노 박람회에 ‘Cafe Express’라는 글자가 선명한 원통형 머신이 등장해 시선을 사로잡았다. 루이지 베제라가 커피를 빨리 추출하기 위해 증기압을 이용하도록 만든 머신이다. 이 시기엔 세계적으로 사람이 일일이 힘을 들이지 않고 ‘작동케 하는 장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붐을 이뤘다. 카를 벤츠가 자동차 내연기관을 선보인 데 이어, 미국에선 1903년 라이트 형제가 동력 비행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런 ‘자동화’ 분위기에서 ‘머신의 귀재’라는 밀라노 장인들은 커피 추출 머신의 기능을 개선해갔다.

    그러나 베제라의 머신은 증기압을 활용하기에 물의 끓는점을 섭씨 120도까지 올라가게 만들어 잡미를 너무 많이 우러나게 하는 치명적 단점이 있었다. 그의 아이디어는 1840년대에 개발된 사이폰(Syphon)에서 따온 것이다. 사이폰은 지금도 작은 커피 매장이나 가정에서 수증기압을 활용해 깨끗한 맛이 부각되도록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으로 애용된다.

    1933년 이탈리아에선 비알레티가 가정에서도 에스프레소 맛을 즐길 수 있도록 모카포트(Moka pot)를 발명했다. 세탁통 바닥에 있는 비눗물이 가운데에 있는 파이프를 타고 위로 올라와 세탁물 위로 뿌려지는 것에서 착안한 도구였다. 압력이 1~3bar 정도지만 커피에서 지방산과 오일 성분을 추출해 크레마를 웬만큼 만드는 동시에 향미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도구다.

    제1, 2차 세계대전 와중에 이탈리아에선 이처럼 장차 세계 커피 시장을 장악할 에스프레소가 움트고 있었다. 커피에서 탄 맛이나 잡미가 나오지 않도록 물의 끓는점을 낮추면서도 커피를 머신으로 빨리 추출하는 방법을 찾은 사람이 이탈리아에서 나왔다.    

    1948년 아킬레 가치아가 레버에 피스톤을 연결함으로써 끓는점 오름을 해결하는 동시에 9기압을 가함으로써 크레마를 형성케 하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개발했다. ‘빠르다’를 의미하는 에스프레소라는 용어는 베제라가 먼저 썼지만, 크레마를 만들어냄으로써 이탈리아 정통 에스프레소 머신의 정체성을 구축한 이는 가치아였다. 에스프레소 머신의 정체성은 빠른 커피 추출에만 있는 게 아니다. 추출하는 사람의 손맛을 타지 않고 일관된 맛을 내도록 추출하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커피 추출법이 쏟아져 나온다. 좋은 향미를 내기 위해 커피가루, 물, 온도, 압력, 시간이 만들어내는 ‘향미의 변주곡’은 커피 애호가들이 있는 한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박 영 순


    ● 충북대 미생물학과 졸업, 고려대 언론대학원 석사
    ● 세계일보 기자, 메트로신문사 취재부장, 포커스신문사 편집국장  
    ● 現 인터넷신문 커피데일리 발행인, 커피비평가협회장, 경민대 호텔외식조리학과 겸임교수, 경민대 평생대학원 바리스타과정 전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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