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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

다 버리고 사랑하고 싶다

‘하바나’와 아바나

  • 글 · 사진 오동진 | 영화평론가

다 버리고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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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의 구릿빛 피부처럼 정성스럽게 태닝한 몸이 카리브 해의 끝자락 바라데로 해변의 에메랄드 빛깔 바닷물에 어른거렸다. 그녀는 이른 시각임에도 자신을 주목하는 남자가 한둘이 아님을 직감했다. 아침 일찍 호텔 방을 나서기 전 둔부가 거의 드러난 비키니를 입으면서 너무 야하지 않을까 살짝 걱정한 게 생각났다. 대신 챙이 넓은 모자를 골랐고 얼굴을 거의 가릴 정도의 큰 선글라스를 쓰면서 아무러면 어떠냐고 스스로를 달랬다. 여기는 쿠바 해변이고 사람들 거개가 몸을 드러내는 것을 마다하지 않느냐고. 햇빛은 아침부터 작열하고 있고, 소설 ‘이방인’의 뫼르소는 저 강렬함이 결국 살의를 불러일으켰다고 증언했지만, 솔직히 그건 도무지 이해 가지 않는 일이며, 관념의 극치에 불과한 일일 뿐이다. 쏘는 듯한 햇빛은 정욕을 끓어오르게 하지, 타자에 대한 혐오를 가져오게 하지 않는다. 카뮈는 무슨 목적으로 그런 글을 썼을까….


아침부터 펄펄 끓는 바라데로 해변에서 비키니 차림의 여자를 보며 문득 소설을 쓰고 싶다는, 강렬한 느낌을 받는다. 첫 문장이 술술 풀리며 머릿속에서 굴러다닌다. 쿠바의 바라데로는 그런 해변이다. 이런 바다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물은 따뜻하고 맑으며 사람들을 스스럼없이 개방하게 만든다. 쿠바의 남녀들이 평균 4번 가까이 이혼하고 스스럼없이 몸을 섞으며(확인된 바 없는 소문이긴 하다) 성적으로 자유로운 것은 다 그렇게 만드는 자연 탓이다.



몸과 마음을 여는 사람들

무엇보다 살사를 추는 민족이다. 다이키리(럼주와 사탕수수를 베이스로 하고 그 위에 얼음을 갈아서 얹는다. 헤밍웨이가 쿠바에서 ‘노인과 바다’를 쓸 때 한 번에 13잔까지 마셨다고 해서 유명해진 술이다)와 모히토를 일상에서 물처럼 마시는 사람들이다.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몸과 마음을 여는 사람들을 이데올로기적으로 강박할 수 있을까.

쿠바가 사회주의 국가이고 혹자들에 의하면 가혹한 공산독재 국가라고 하지만, 실제로 여기 와서 보면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냥 ‘알아서 놀며 알아서 산다’. 호텔과 레스토랑, 기념품점 대부분이 국가 소유라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한 달에 25쿡(CUC),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3만 원 정도의 월급밖에 못 받고 살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삶을 영위해간다. 청바지도 사서 입고, 스마트폰도 하나씩 가지고 있으며, 주말이면 흥청망청 술을 마시고 클럽에서 진탕 춤을 추며 논다. 알아서 운영되는 공산주의다.



아직은 국가 시스템이 방방곡곡으로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쿠바 공산당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공산혁명 이후 60년 가까이 지났지만 사람들의 자본주의적 욕망이 해소되지 않았음을, 아니 결코 해소시킬 수 없음을, 그들을 강하게 억압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 것임을.

그런 분위기야말로 이곳 쿠바를 북한과 천양지차의 나라로 만들고 있음을 직감한다. 북한은 사람들의 욕망을 과도하게 억압함으로써 스스로 전체주의 국가의 길을 선택했다. 반면에 남한은 사람들의 욕망을 과도하게 분출하게 함으로써 천박한 자본주의 국가로 전락할 위기에 처하게 했다. 그렇다면 쿠바는 그 가운데, 균형점에 있는 것일까. 아니다. 그건 아직 모르는 길이다. 이들이 어느 길로 갈지, 이른바 또 하나의 실패 사례인 중국식 자본주의의 길로 갈 지도 확실하지가 않다.

사람들이 쿠바, 쿠바 하는 것은 그들의 길이 아직 미지(未知)의 상황에 놓여 있고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기대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쿠바가 만약 새로운 길을 연다면, 그래서 세계적인 롤모델의 국가가 된다면, 벼랑 끝에 선 세계 자본주의의 환경은 개선될 여지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지금 거의 모두는, 그들이 좌파적 정치관을 가졌든 아니면 우파의 그것을 가졌든 한 가지 점엔 동의하고 있다. 그건 바로 현재의 자본주의는 갈 데까지 간, 이제 마지막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며 더 이상은 이런 식의 약육강식 체제로는 삶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세상은 진정으로 종언(終焉)을 고하고 있는바, 새로운 사회의 건설, 곧 복지가 확장된 형태의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다시 한 번 묻게 된다. 쿠바가 그럴 수 있을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쿠바 최초 한국영화제

최근 두 차례 쿠바 여행을 떠났다. 5월 말에는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과 수도 아바나(La Havana)를 먼저 한 차례 다녀왔다. 쿠바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제1회 한국영화제 때문이었다. 이 영화제는 한-쿠바 교류협의회(대표 김이수)가 오랫동안 준비해 개최한 것으로, 초기 단계는 아바나 국제영화제의 특별 섹션으로 한국 영화가 상영되는 정도였다가 이번에 독립 운영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어려운 관문이 몇 가지 드러날 수밖에 없었는데, 그중 가장 큰 걸림돌이 북한이었다.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은 한국영화제 개최를 극력 저지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영화제는 당초 2월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그 같은 ‘방해공작’ 탓에 5월로 연기된 것이다. 현대사를 돌아보면 그도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미국과 ‘혈맹’ 관계로 70년 가까이 지낸 것처럼 북한과 쿠바 역시 오랜 세월 동안 형제 국가처럼 지냈다. 아바나에 있는 다른 외국 대사관들에 비해 북한대사관이 시설이나 규모 면에서 월등해 보이는 것도 그런 양국의 관계를 반영하는 듯하다. 그럴진대 한국영화제라니. 북한으로서는 가능하면 막고 싶었을 것이다.

제1회 쿠바 한국영화제는 매우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영화 편수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총 7편이 상영됐는데 편수보다는 라인업이 흥미로웠다. 김성훈 감독의 ‘끝까지 간다’를 개막작으로 박찬욱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김기덕의 ‘뫼비우스’, 한준희의 ‘차이나타운’, 장형윤의 ‘우리별 1호와 얼룩소’, 김용화의 ‘미녀는 괴로워’, 박훈정의 ‘신세계’ 등이다. 흥미롭다 못해 신기했다.

한 달에 1인당 계란 9개를 배급받는 사람들이 부패 경찰의 얘기를 다룬 ‘끝까지 간다’를 보고서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영화의 엔딩 장면은 주인공 고건수(이선균) 형사가 무심코 창고 문을 따고 들어가 파드득하며 형광 불빛이 켜진 후 엄청나게 쌓여 있는 돈 무더기를 보고 기겁하는 모습이다.

이를 지켜보던 쿠바 관객들 사이에서 한숨인지, 환호성인지, 웃음인지, 하여튼 뭔지 모를 소리들이 우, 하고 쏟아져 나왔다. 마치 저 돈 좀 봐, 하는 소리 같았다. 돈을 보면서, 뭉텅이도 그냥 뭉텅이가 아니라 부당한 짓으로 엄청난 돈을 눈앞에 둔 주인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다. 부당한 짓이면 어때, 라고들 하는 것 같았다. 그냥 영화일 뿐이잖아, 라고 하는 것 같았다.



통제와 관리의 경계

보통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영화라도 그런 얘기를 하면 안 될 것처럼, 그렇게 경직돼 있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쿠바는 쿠바다. 쿠바에 올 때 들은 얘기, “거기는 쿠바예요, 쿠바(당신이 사는 서울 같은 곳이 아니라고요)”라는 말이 떠올랐다. 쿠바는 쿠바, 다른 데와 다르다는 것이다.

아무튼 여기도 지금 돈이 필요한 것이다. 물이 필요하고(쿠바는 식수가 부족해서 구 아바나 시내를 걷다보면 오후 2, 3시쯤 탱크로리가 식당을 다니며 물을 공급해주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석유가 필요하며(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정권이 들어선 이후 석유 수입이 어려워지면서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각종 생필품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들은 ‘신세계’ 같은 한국 영화를 보며 돈이 있으면 저렇게 살아가고, 또 돈이 저렇게 일정한 역할을 하며, 돈 때문에 저렇게 사람이 죽고 사람을 죽이는 일이 생기는구나, 이제는 우리도 일단 돈 좀 가져보자는 마음을 갖게 될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돈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이라는 것도 일단 돈이 있은 후 겪어본 다음에 잘잘못을 가릴 수 있는 법이니까.

쿠바 공산당이, 라울 카스트로가 저렇게 ‘드글거리는’ 욕망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심히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무릇 욕망은 무조건 통제만 하면 안 된다. 관리해야 한다. 그런데 그 두 가지, 통제와 관리 사이에는 경계가 너무 짧고 얇다. 관리한다고 하다가 잘못하면 강압적인 통제가 되기 십상이다. 그 선을 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대체로 많은 국가는 그 점에 서 실패했다.

쿠바는 일단 아바나 얘기부터 해야 한다. 아바나를 얘기해야 산타클라라(쿠바 비야클라라 주의 주도)와 트리니다드(쿠바 상크티스피리투스 주에 있는 도시)와 시엔푸에고스(쿠바 중부 시엔푸에고스 주의 주도), 모두(冒頭)에 얘기한 바라데로 해변, 그리고 비날레스(아바나에서 서쪽으로 120km 떨어진 지역) 등을 얘기할 수 있다. 섬 동쪽의 산티아고를 제외하고는 쿠바를 대체로 일주하는 코스다.

지난 7월 말에 두 번째로 쿠바를 방문했을 때는 이 코스로 약 열흘 동안 다녔다. 한국처럼 뜨거운 여름이었는데 굳이 이 일정을 고집한 것은 7월 26일이 쿠바혁명일이기 때문이다. 굳이 한 번쯤은 혁명일에 맞춰 쿠바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여행사는 이런 일정을 권하지 않을 것이다. 한 번 경험해본바, 쿠바의 여름은 견딜 만한 날씨가 아니다. 쿠바 일주 여행은 여름보다는 겨울이 낫겠다는 생각을 골백번 하게 된다.

자, 어쨌든 아바나는 통상 구(舊) 아바나와 신(新)시가지로 나뉜다. 그건 우리가 강남을 개발한 이후 서울을 강북과 강남으로 나누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나누고 나니 지역의 시설에도 차이가 생겼지만 무엇보다 문화와 의식이 달라졌다. 쿠바도 마찬가지다. 구 아바나는 ‘아바나 비에하(Vieja)’로 불린다. 신시가지는 ‘베다도(Vedado)’라고 한다.

물론 베다도가 아무래도 편한 맛이 있다. 고급 호텔이 몰려 있는 곳이라 관광객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특히 내시오날 호텔은 1930년대에 지어져 바티스타 정권 때 호화로움이 극치를 이뤘던 곳인데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같은 쿠바 재즈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호텔 주변은 유럽과 러시아, 중미, 남미 관광객이 넘쳐난다. 내시오날 호텔 뒤편 정원의 카페는 말레콩 해변을 정면으로 마주하게끔 설계됐다. 말레콩 해안에는 약 7km 길이의 세계 최장 방파제가 건설돼 있는데, 카페에서는 이 해안 건너 광활한 대서양을 집 앞 연못인 양 감상하면서 앉아 있을 수 있다.

그 한가운데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다이키리와 모히토를 즐기는데 한국인은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이다. 역시 중국 관광객이 급속도로 느는 형국이다. 앉아 있으면 주변에서 툭툭 사람들이 말을 건다. 대부분 스페인어다.


“핑양? 오! 쏘울!”

이틀 정도 스페인어를 듣고 있자면 갑작스레 반성하는 마음이 든다. 세계의 절반 혹은 절반 이상이 스페인어권인데 오로지 영어만 생각하며 살아왔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건 세계의 절반이 무슬림인데 기독교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다. 이건 세계사나 그에 준하는 교육 면에서 한국이 얼마나 편향돼왔는지를 인식게 하는 계기가 된다.  

어디서 왔냐는 말에 코레아라고 하면 쿠바노(쿠바 사람)들은 대개가 어색한 발음으로 “핑양?” 하고 묻는다. “노” 라고 답하면 사람 좋은 웃음을 함박 흘리며 “오! 쏘울!” 한다. 그리고 이상하게 서로 낄낄댄다. 이런 사람이 웨이터이거나 웨이트리스라면 꼭 팁을 건네야 한다. 아니, 쿠바에 가서 서빙하는 남자든 여자를 만나면 꼭 팁을 주는 것이 올바른 태도다. 그들은 국가가 주는 월급만으론 살 수가 없다. 관광객의 팁이야말로 주요 생계 수단일 수 있다.

그러나 적선하듯이 주면 안 된다. 알다시피 쿠바는 무상 교육과 무상 의료의 나라다. 야구와 춤, 시가의 나라로도 불린다. 아무튼 가진 것은 적지만, 나눠 쓰고 나눠 먹는 게 일상화한 사람들이고, 그런 가운데 교육 수준은 높기 때문에 자존심이 강하다. 그런 사람들에게 돈을 줘가며 하인 부리듯 하는 태도를 보이면 안 된다. 그건 정말로 교양 없는 짓이다.

 얘기가 나온 김에 한 마디 더 하자면 쿠바엔 ‘횡령’이 많다. 내시오날 호텔 같은 데는 당연히 국가가 식재료를 공급한다. 그런데 그 원자재의 30~40%를 호텔 직원들이 ‘뒤로 빼간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은 그런 행위를 로보(robo, 도둑질)라고 하지 않고 네세시다드(necesidad, 필요성)로 받아들인다. 필요하니 다들 나눠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경찰들도 알아서 번다. 관광객들은 툭하면 교통위반에 걸리는데, 그럴 때마다 자연스럽게 경찰과 흥정해야 빠져나올 수 있다. 보통 20쿡(약 2만4000원) 정도를 주면 된다. 택시도 미터기가 없고 탈 때마다 흥정해야 한다. 베다도에 있는 호텔에서 공항까지 보통 30쿡(약 3만6000원)이 든다. 그러니까 결론은 아직 자본주의적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5년, 10년 안에 현대화의 속도가 붙으면 붙을수록 이런 문제들이 정리될 것이다. 아직은 그 모든 것을 조금은 귀여운 수준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콘텍스트的 해석

어설프게 쿠바를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영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 영화를 만든 사람이 빔 벤더스인지, 빔 벤더스가 그 다큐를 만들 때까지 라이 쿠더라는 뮤지션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그다지 관심 있어 하지 않는다. 특히 빔 벤더스가 독일의 어떤 거장인지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영화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거기까지 인지하지 않으면 그가 왜 그 영화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생각으로 확장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왜 하필 특정 시기에 이런 내용의 영화를 만들었을까에 대한 콘텍스트(context)적 해석이 이어지지 않는다. 빔 벤더스는 왜 하필 1999년에 쿠바의 재즈 뮤지션 콤바이 세쿤도 등에 대한 얘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려고 했을까. 영화를 통해 알아야 할 부분은 바로 그런 지점에서 찾아진다.

개인적으로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보다는 아예 아바나 이름을 딴 영화 ‘하바나’에 대한 기억이 더 많다. 옛날에는 아바나(Havana)를 영어식 발음인 하바나로 읽었다. 알렉산더 호도로프스키 감독을 알렉산더 조도로프스키로 읽은 것과 마찬가지다. 어쨌든 ‘하바나’는 1991년 작인데 지금은 고인이 된 시드니 폴락이 만들었다. 도박사 얘기인 척하지만 사실은 러브스토리다. 배경은 1959년 쿠바 혁명 전야다.

주인공인 잭(로버트 레드퍼드)은 뛰어난 도박사인 만큼 돈이 있는 곳을 찾아다닌다. 도박사가 뭉칫돈을 만지려면 부패가 만연한 곳일수록 좋다. 바티스타 정권 말기 쿠바 아바나가 딱 그랬다. 돈에 관한 한 냉혈한에 가깝게 침착하고 까다로운 인물인 잭은 그러나, 아바나로 오는 배에서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데 그녀의 이름은 바비(레나 올린)다.



‘하바나’식 로맨스

그런데 문제는 그녀의 연애가 중혼(重婚) 같은 것이라는 점이다. 그녀는 따로 애인이 있다. 그 남자는 혁명군이다. 그녀는 남자의 혁명관에 동의한다. 그러나 혁명하는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는 삶에 지치게 마련이다. 그럴 때는 따뜻한 남자에게 빠지기 쉽다. 바비가 잭에게 느끼는 것은 바로 그 점이다.

격렬한 시기인 만큼 정치적 학살과 고문, 납치, 살인이 횡행한다. 바비의 남자는 살해당하고, 여자는 정부군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한다. 잭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 바티스타 정부 당국자를 찾아간다. 그리고 모종의 거래를 한다. 그는 여자를 살린다. 그러나 사랑까지 살리지는 못한다. 진짜 사랑은 때론 사랑을 포기하게 만든다. 흔히들 순애보라고 얘기하는 것은 바로 그런 대목 때문이다.

‘하바나’를 보고 있으면 저런 사랑을 하고 싶어진다. 저런 곳에 가서, 저런 여자를 만나, 저런 여자와 흐드러지게 같이 잠을 자고, 저런 카지노에 가서 돈을 왕창 따고, 저런 일 때문에 모든 걸 버리고 여자를 살리고 싶어진다. 그렇게 사랑을 완수하고 싶어진다. 시드니 폴락이 2000년을 향해 가는 길목에서 복원하고 싶었던 것은 저런 로맨스의 심정 같은 것 아니었을까. 한결같이 팍팍하고, 도통 자기희생이라는 가치가 상실돼가는 정점의 시대에 그것을 회복하는 길은 거대 담론의 주창(主唱)이 아니라 한 개인의 구체적인 러브스토리를 통해서라고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바나’를 본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아바나 베다도의 한 호텔 테라스에 앉아 바다를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자니 그때 기억이 불쑥 떠오른다. 우리는 그런 사랑을 해오며 살아왔는가. 우리의 사랑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아바나의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간다.  

※쿠바 이야기는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신동아 2016년 9월호

3/3
글 · 사진 오동진 |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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