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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배철현 교수의 비유로 설득하라

에토스 | 로고스 | 파토스

위대한 지도자의 3가지 내공

  • 배철현 |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baech@snu.ac.kr

에토스 | 로고스 | 파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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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대한 지도자가 되려는 이는 많으나 실제로 그 단계에 이른 이는 적다. 대한민국 정치가들의 연설은 지루하고 CEO들의 리더십은 고루하다. 청중을 진정으로 설득하는 자질을 갖춘 이가 드물다. 신들의 세계에서 놀던 고대 그리스 철학가들과 위대한 문학예술인들은 그 세계로 들어가는 비법을 알았다.

1. 설득

인간은 혼자서는 인간답게 살 수 없다.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와 눈을 마주 보고 표정과 몸짓, 그리고 말로 다른 사람과 소통한다. 인간 대 인간의 소통은 다른 동물들과 인간을 구분하는 가장 획기적인 특징이며 오랜 진화가 만들어낸 인간만의 기적이다. 인간은 소통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소통이 형성한 공동의 이야기를 통해 공동체를 만든다. 인간 사회는 이야기가 만들어낸 비가시적 공동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조온 폴리티콘(zoon politikon)’이라 일컬었다. ‘도시에 거주하는 동물’이란 뜻이다. 인간은 도시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만나며 도시의 법과 관습의 지배를 받는 동물이다. 인간은 자아가 아닌 타자와의 소통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한다. 타자와의 공동 행위를 통해 도시 안에서 함께 산다는 공통 정체성을 형성한다. 공동체의 행위는 구성원들의 염원이 담긴 특별한 도구를 통해 표현된다. 이 도구를 ‘이야기’라고 한다. 이야기의 생명은 이야기 그 자체에 있지 않고 이야기 속 숨은 의도에 있다. 그것은 바로 ‘설득’이다.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인들은 가장 경제적이며 안정적인 인간 공동체 체제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주의’를 실험하면서 특별한 기술을 가진 아테네의 지도자를 선출했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역동적 원칙은 공평한 경쟁을 통해 지도자를 선택하는 투표였다. 지도자는 시민들에게 자신이 가장 탁월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탁월성은 업적과 명성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도자는 대중 앞에서 ‘연설’을 통해 자신이 가장 적합한 사람임을 전달해야 했다.

최고지도자의 자질


연설 능력은 우리가 ‘선진국’이라 하는 국가에선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 선진국에 도달하지 않은 나라에선 개인의 탁월함이나 수사학(修辭學)적인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 국민이 이러한 가치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운 적도, 경험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지도자를 뽑을 때 자질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막연한 소문이나 헛된 기대감에 기초해 선택하고, 결국 구태의연한 후진국에 머물고 만다.

신분에 상관없이 자신의 능력으로 최고지도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이 바로 설득의 기술인 수사학이다. 서양에선 수사의 능력을 갖춘 위대한 개인이 여럿 등장했다. 이런 위대한 개인을 ‘영웅’이라 한다.






2. 수사학

영웅이 되고자 하는 지도자들이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은 설득의 기술이다. 기원전 4세기, 아테네의 문명이 꽃피고 후에 등장하는 서양 문명의 규범을 창조하던 시절, 그리스에는 설득의 기술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두 부류가 있었다. 한 부류는 소피스트들이고 다른 부류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소피스트들을 파렴치범으로 취급했다. 그들이 사실과 진실을 왜곡해 사람들의 감정을 교란시키고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최고지도자의 최고 덕목으로 수사학을 꼽았다. 누군가의 말처럼 ‘철학은 플라톤 저작의 각주에 불과’하다면, 오늘날 수사학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저작들에 대한 각주다. 그가 남긴 저작 ‘레토리게’는 흔히 후대 라틴어 번역 ’아르스 레토리카(Ars Rhetorica)’, 즉 ‘수사학’으로 불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내용과 형식을 구분하지 않았다. 아무리 고상한 진리라도 그것이 실생활에서 구체화하지 않아 만질 수 없다면 허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수사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연설자가 전달하려는 내용과 전달 방법은 분리될 수 없다. 이때 내용을 ‘로고스(logos, 분별과 이성)’, 내용이 전달됐을 때 표출되는 감정을 ‘파토스(pathos, 주관적 정념)’라고 한다. 로고스가 중요하지만, 자신이 의도한 감정적 반응인 파토스를 유발하기 위해 효과적인 언변이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로고스와 렉시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이지만, 스승과는 다른 철학적 견해를 가졌다. 그는 파토스를 극대화하기 위한 연설의 스타일이나 방법을 ‘렉시스(lexis)’라고 칭했다. 렉시스는 로고스를 통해 공감을 형성한다. 현대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렉시스를 이렇게 설명한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진리라고 확신한 의견을 아무리 주장해도 그것을 솜씨 있게 전달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로고스의 목적은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다.

자신의 로고스가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순간 렉시스가 되어 상호이해라는 지평을 연다. 플라톤의 로고스는 인간의 정치적인 삶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정치담론으로 사라질 뿐이다. 우리가 사는 대중정치 사회에서는 로고스가 시민들에게 전달돼 공감을 일으키는 렉시스가 될 때 권력이 발생한다.

로마의 정치가이자 연설가인 키케로는 수사학을 예술의 경지로 올려놓았다. 르네상스 시대 인문주의는 키케로가 제시한 수사학의 부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수사학이 윤리학과 정치학의 기반이라고 말한다. 한 주제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자기 주장의 우월성을 변호하는 토론은 시민문화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연설가는 수사학적 담화를 통해 청중으로부터 자신이 속한 사회의 존경받는 일원이자 지도자라는 명예를 획득한다. 키케로는 젊은 시절에 저술한 ‘착상에 관하여(De Inventione)’에서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을 웅변술이라고 주장한다.

로마 수사학자 퀸틸리아누스는 12권으로 구성된 ‘웅변교수론(Institutio oratoria)’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로고스와 렉시스를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한다. 그는 그리스어 로고스를 라틴어 ‘레스(res)’로, 그리스어 렉시스를 라틴어 ‘붸르바(verba)’로 번역했다. 그는 인간의 말이 의미를 지니려면 ‘내용’과 ‘표현 방식’이 정교하게 결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3. 수사를 돕는 3가지 장식

자신이 전달하려는 내용이 의미를 지니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자신의 수사가 사실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그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 장식이 필요하다. 군인이나 무기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장식들이다. 이런 장식들이 없다면 전쟁을 치를 수 없을 것이다. 수사학에는 세 가지 장식이 있다.

첫 번째 장식은 ‘시의적절성(時宜適切性)’이다. 그 담론이 필요한 절대적인 시간과 장소가 있다. 시의적절성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는 ‘카이로스(kairos)’다. 카이로스는 일반적인 시간이 아니라 모든 것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시간이다. 연설자의 말이 효과적으로 영향을 끼치려면 그것을 실행하는 절체절명의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고대 그리스어에는 ‘시간’을 의미하는 두 가지 단어가 있다. 하나는 양적인 시간을 의미하는 ‘크로노스(chronos)’다. 크로노스는 누구에게나 골고루 주어지는 시간이다. 어떤 사람도 크로노스를 멈출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이 개입해 그 시간을 양적인 시간이 아니라 질적인 시간으로 만들 수 있는 장식이 있다. 이것이 ‘결정적인 순간’의 뜻인 ‘카이로스’다. 연설가와 작가는 자신의 글이나 연설이 그 시대가 요구하는 가장 적절한 시간에 실현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만일 자신과 대중이 모두 요구하는 카이로스를 찾지 못한다면 자신의 글이 아무리 훌륭하다 할지라도 기억해주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수사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두 번째 장식은 ‘청중이해(聽衆理解)’다. 모든 의도된 담론은 누가 그 연설을 듣고 그 글을 읽느냐에 따라 수정돼야 한다. 다시 말하면, 청중이나 독자의 성격이 담론의 내용을 결정하고 수정하기도 한다. 청중에 따라 담론의 형식이나 내용까지 수정하는 방식은 진리 자체를 탐구하고 전달하려는 철학적인 주장과는 전혀 다르다. ‘진리’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분명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천상에 존재하는 이데아가 아니라, 지상의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에 존재해 누군가가 애써 설득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시의적절, 청중이해, 적격


르네상스의 주역이 된 네덜란드 인문주의자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는 중세에서 벗어나려는 유럽인들을 위해 획기적인 사건을 준비한다. 그는 새로운 시대를 열 유럽 지식인들을 일깨우기 위해, 그들이 ‘진리’라고 지탱해온 라틴어 신약성서의 핵심 구절을 전혀 다르게 해석했다. 그는 그 진리가 제롬에 의해 번역된 ‘의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예수가 공적인 삶을 시작하면서 외친 문장 “회개하라!”를 다시 번역했다. 이 문장이 라틴어로는 ‘아기테 파이니텐티암(agite paenitentiam)’이다. 번역하자면 “고해성사하라!”다. 중세에는 인간 스스로는 신으로부터 죄를 용서받을 수 없기에 사제에게 가서 고해성사를 통해 고백해야만 했다.

에라스무스는 이 구절을 그리스어로 찾아 읽었다. “메타노이에테(metanoiete)!” 번역하자면 “마음을 바꿔라!”다. 신약성서가 기록된 그리스 원전에서 예수가 선포한 이 구절을 들은 유럽 지식인들은 충격에 빠졌다. 인간 스스로 신과의 만남을 통해 구원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성서 번역을 통해 처음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에라스무스의 르네상스 운동은 후에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이어졌고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과 같은 근대국가의 성립에 큰 영향을 끼쳤다. 에라스무스는 ‘청중’인 유럽 지식인들의 바람을 정확히 읽었고, 더 권위가 있지만 새로 발견된 성서 번역을 소개함으로써 르네상스를 일으켜 유럽을 지적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촉매제가 됐다.

담론을 효과적으로 주장하기 위한 세 번째 장식은 적격성(適格性)이다. 적격성이란 문학에서 등장인물이나 연설자의 행동과 말이 적절하게 표현되는 것을 뜻한다. 수사학 전체를 조정하는 개념이다. 연설자가 자기 생각을 적절하게 전달하지 못하면 그 연설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적격성은 연설이나 글을 작성하는 자가 오랜 시간을 통해 습득한 사회적, 미적, 윤리적 품성을 통해 드러난다. 이 품성은 그의 말이나 글을 통해 전달된다. 적격성은 청중이나 독자에게 자기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적절한 언어학적 수단으로 알레고리, 비유, 혹은 우화와 같은 장르를 사용한다.


4. 작가, 연설가의 3가지 내공

수사학을 학문적으로 처음 주장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담론을 제기하는 자의 내적인 힘이 설득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담론을 제기하는 자의 세 가지 내공을 통해, 담론을 접하는 독자나 청중은 담론 제공자가 의도한 ‘믿음’을 갖게 된다.

첫 번째 내공은 ‘인격’이다. 자신의 생각을 글이나 연설로 설득하는 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그 사람의 인격이다. 이 인격을 고대 그리스어로 ‘에토스(ethos)’라고 말한다. 에토스는 그 사람의 인격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내공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에토스가 연설자의 수사학적 전략으로 청중에게서 신뢰를 받을 수 있는 통로라고 주장한다. 에토스는 평소 습관적으로 선의를 행할 때 만들어지는 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스 윤리학’에서 에토스를 이렇게 설명한다.

“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지적인 덕, 다른 하나는 도덕적인 덕이다. 지적인 덕은 태어나면서부터 계속해서 가르침을 통해 늘어난다. 그러나 도덕적인 덕은 습관을 통해 생성된다. ‘에토스’라는 단어에서 ‘윤리적’이란 의미를 지닌 ‘에티케(ethike)’가 만들어졌다.”

두 번째 내공은 ‘논리적인 판단’ 혹은 ‘이성’이다. 그리스어로는 ‘로고스’다. 모든 소통은 이성을 통해 수월하게 이뤄진다. 소통을 전달하는 자와 소통을 받는 자가 지적으로 만나는 지점이 로고스다. 로고스는 담화 내용 그 자체다. 로고스는 인간의 특징으로, 자신의 이성적인 담화로 자신의 주장을 청중에게 전달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연설자가 일방적으로 자기 의견을 주장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연설이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쌍방간의 정교한 소통 예술이다. 연설자는 말을 청중에게 전달하지만, 청중의 눈빛이나 표정을 통해 무언의 요구로 자신의 말을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청중 희로애락을 내 것으로


세 번째 내공은 파토스다. 파토스의 원래 의미는 ‘고통’인데, 청중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인지하면서 생기는 카리스마다. 연설의 목적은 청중을 설득하기 위해 청중을 자신이 의도하는 감정 상태로 진입시키는 것이다. 연설자는 청중이 어떤 감정 상태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파토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감정이란 인간의 이성적인 판단력에 영향을 주고, 고통이나 쾌락에 의해 쉽게 변한다. 예를 들어 ‘화’라는 감정을 이해하려면 화난 사람들의 마음 상태, 누구에게 화를 내는지, 무슨 이유로 화를 내는지 알아야 한다.”

청중의 희로애락을 자신의 것으로 느낄 수 있는 마음은 평소에 그런 마음을 지니고 살아야 가능하다. 파토스는 다른 사람이 처한 곤경을 자신의 곤경처럼 느끼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마음까지 포함한다. 파토스도 에토스나 로고스와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 무아(無我)상태를 수련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신의 선물이다.




5. 알레고리와 비유

수사는 좁은 의미로 공개적인 장소에서 지도자가 시민들을 설득하고 정신적으로 고양하기 위해 사용하는 예술이다. 넓은 의미로는,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저자나 예술가가 자신이 의도한 철학적, 종교적, 문학적, 예술적 진리를 실생활과 관련된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진리의 추상적 세계를 우리가 가진 어휘로 묘사할 수 없기에 우리는 궁여지책으로 알레고리, 비유, 우화를 통해 진리에 접근한다. 연설자나 작가는 알레고리, 비유, 우화를 통해 청중이나 독자를 설득한다. 알레고리, 비유, 우화는 인간에게 익숙한 물건이나 생물을 통해 진리를 설명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알레고리는 묘사의 대상을 진실에 가깝게 표현하기 위한 문학적이며 예술적인 수단이다. 특히 서양 전통에서 시, 문학, 소설을 포함하는 문학작품들과 미술, 음악, 무용을 포함하는 예술작품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현생 인류의 조상인 크로마뇽인들의 동굴벽화 그림에서부터 현대시나 소설에 이르기까지 알레고리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서양 전통의 두 기둥인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경전과 문학작품들, 특히 연설문에서 알레고리의 등장과 다양성, 변천 과정을 발견할 수 있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힌두교와 조로아스터교, 그리스와 로마 문명, 그리고 유일신 전통인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문헌에 등장한다.

이 연재에서는 고전이나 경전에 포함된 알레고리, 비유, 우화 속 연설자나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특히 이런 이야기가 그들의 에토스, 로고스, 파토스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살펴볼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자들이 함께 이 글을 읽고 찬란한 미래를 준비하기 바란다.  



배 철 현

고대 오리엔트 언어와 문명에 매료돼 미국 하버드대에서 고전문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미래혁신학교 건명원에서도 가르친다. 최근 저서로는 ‘신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질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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