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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자연식 삶’ 연구가 김정덕

“오르가슴이 뭔 줄 알아? 머리와 마음이 하나 되는 게야”

  • 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

‘자연식 삶’ 연구가 김정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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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황토찜질을 어떻게 하고 율무죽을 한 달만 먹으라’는 식으로 불쑥 말해놓고도 내가 깜짝 놀라, 나도 몰래 내 안에 내재된 힘을 믿게 됐어요. 우주와 영통하는 어떤 부분이 있었다고 할까.”

그게 소문이 나 절로 자연건강법의 전도사가 돼버렸다. 전국을 돌며 강연을 다니던 무렵 병천 사는 한 노인이 찾아왔다.

“와세다 대학 통신강의를 받는다는 깨인 농부였어요. 분홍색이 살짝 도는 ‘보까시’ 무를 가지고 왔는데 너무 예쁜 거야. 달이 농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루돌프 슈타이너식 농법을 실천하는 그 노인에게 당시 내가 가진 돈 전부를 투자했어요. 근데 그 돈을 못 갚게 되자 대신 이 땅 3000평을 날 준 거예요. 빌려준 돈이야 7000~8000평을 살 수 있는 액수였지만.”

그 땅엔 지능이 좀 모자란 노인의 아들 내외가 살고 있었다. 젊은 손자도 있었다. 병천 내려와 황토집을 지으면서 김정덕은 노인의 손자 김안식을 아들로 삼았다. 땅은 모두 양아들 명의로 했다. 며느리를 맞아 떡두꺼비 같은 손자 셋을 얻었고 어눌해서 더 착하고 부지런한, 양아들의 친부모까지 여덟 식구가 어울려 함께 살고 있다.

큰손자 용희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 물으면 대뜸 “우리 할머니!”라 대답한다. 아무리 더워도 그는 세 손자를 끼고 잔다. 아이들도 할머니 곁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손자를 위한 투자엔 아까울 게 없고 훌훌 떠난 여행길에서도 아이들이 보고 싶어 얼른 집에 돌아온단다. 그가 구현하는, 피로 얽히지 않은 신개념 가족의 아름다움을 나는 놀라움으로 지켜봤다.



食相이 보인다

올해 그는 병천면 탑원리 3000평의 밭에다 아들 내외와 함께 오이를 심었다. 병천에서 유일하게 무농약 농산물에 붙이는 품자 마크를 획득한 ‘아우내 오이’다. 병천에서 그는 농부다. 그냥 농부가 아니라 농약과 비료 없이 땅과 사람 사이의 진정한 의미를 살피면서, 씨앗이 싹터 자라는 일에 감격하고 마침내 맺히는 열매를 눈물어린 감사로 수확하는, 본질적 의미의 농부다.

그에겐 땅에서 솟은 잡풀 하나도 허투로 난 게 없다. 다 이유 있게 솟았으므로 제 쓸모를 알뜰히 찾아낸다. 산야초는 제철 가기 전에 뜯어 흰설탕에 재워 효소를 만들고 일찍 떨어진 과일은 짓이겨 천을 물들이고 돋아나는 싹과 뿌리들은 찌거나 말려 나물반찬으로 갈무리한다.

“나는 우주무당이라는 말을 좋아해. 인간의 힘으로 안 되는 일도 일월성신의 힘을 빌려오면 못 이룰 게 없지. 일월성신의 힘? 나는 그게 바로 마음이라고 봐. 인간은 호르몬의 작용으로 움직이는 존재지? 사람의 감정이 바로 호르몬이거든. 기분을 자꾸 잡치면 사람은 죽는거야. 황토집이 암만 좋다고 떠들어도 마음이 느끼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는 거지. 나는 머리와 마음이 하나 되는 게 오르가슴이라고 생각해. 내가 나니까 내 인생에 오르가슴을 느끼도록 살아줘야 할 거 아냐?”

그는 직관이 유난히 발달해 사람을 척 보면 주변에 흐르는 기운을 본능적으로 감지해낸단다.

“한번은 어떤 사람과 마주앉아 있는데 비린내가 몹시 나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다는데 내 코에만 그 냄새가 자꾸 나는 거예요. 알아봤더니 그의 부모 직업이 어부였다는 거지. 고깃내가 유난히 나던 사람은 집에서 정육점을 했다고 하고…. 뭔 소리냐 하면 지금까지 먹어온 음식이 현재의 그 사람을 만들었다는 거지. 예민한 사람에겐 냄새로까지 느껴지는 거고.”

김정덕 할머니에 따르면 사람에겐 식상(食相)이란 게 있다 한다. 음식 먹는 것을 보면 운명이 보인다는 것이다. 바른 자세로 밥을 먹느냐, 씹는 모양이 어떠냐 하는 정도가 아니라 무슨 음식을 좋아하느냐, 얼마나 탐식하느냐, 밥 먹는 태도가 음식을 귀히 여길 줄 아느냐 같은 건데, 그게 사람의 건강과 운명에 관여한다는 게 확실하다는 주장이다.

“사람 얼굴은 뱃속에서부터 먹어온 식품의 명세표예요. 인상학의 권위자인 시즈타 남부코도 ‘식(食)은 운명이다’라고 주장하거든. 난 이제 사람을 한번 보면 그가 먹어온 식품이 뭔지 알아요. 청진기보다 더 정확하지. 그걸로 과거나 미래를 점칠 수도 있다고. 사람의 일생은 먹는 것에 의해 정해져요. 길흉(吉凶), 화복(禍福), 현우(賢愚), 수요(壽夭), 미추(美醜), 선악(善惡)이 음식에 의해 결정된다면 내 말을 의심하겠지?

난 선악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먹을거리에 의해 선악이 좌우된다고 보는 거지. 고기 먹지 말고 곡식과 채소를 먹으면 기운이 맑아져. 동물성 음식말고도 곡식과 열매에 더 훌륭한 단백질이 얼마든지 들어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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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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