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이 사람의 삶

‘자연식 삶’ 연구가 김정덕

“오르가슴이 뭔 줄 알아? 머리와 마음이 하나 되는 게야”

  • 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

‘자연식 삶’ 연구가 김정덕

4/8
“병이 있으면 반드시 약도 있어요. 병이 흔하면 약도 그만큼 흔해요. 내 몸은 내 땅에서 나온 식물로 다 다스릴 수 있다고…. 식물은 봄이면 기운이 잎사귀로, 가을이면 뿌리로 가요. 단오 이전 쑥은 색과 향이 그윽하고 산뜻하지만 늦가을엔 땅에 묻힌 쑥뿌리를 캐서 항아리에 꾹꾹 눌러담고 도수 높은 술을 부어 쑥주를 담가. 3개월 후에 건더기를 건져내고 진국주를 하루 한 잔씩만 마시면 지칠 줄 모르는 스태미나가 생겨. 쑥으로 만들어 맛이 쓸 것 같지만 오히려 감미로워. 색깔과 향은 조니워커 같은 건 저리 가라지. 우리집에 오는 술꾼 중 이 술 싫다는 사람은 내가 한 명도 못 봤네.

사람들은 내게 ‘라이선스가 있느냐?’ ‘대각(大覺)을 이루었느냐?’ 묻지만 나는 그런 데 연연하지 않아. 일생이 다 배움인걸. 시절마다 내 코드에 맞는 학업이 눈앞에 있어 그걸 혼자 탐구했을 뿐. 그러니 라이선스가 있을 게 뭐야.”

스물일곱에 청상과부가 되어

그는 인천에서 태어났다. 집은 인천지역 건어물을 집산해 중국, 일본과 무역하는 거상이었다.

“상인상회라면 다들 알아줬지. 큰오빠가 일본 중앙대 법대를 나온 진빨갱이였는데 마루 밑에 그 책이 얼마나 쌓였어도 우리집은 뒤지지를 못했어요. 아버지는 길가에 끄나풀 하나가 떨어져도 꼭 주워오는 사람이지만 주변에 인심을 잃지 않았거든.”



살림살이가 넉넉하니 음식과 옷에 사치를 맘껏 부렸다.

“이만한 민어알을 말려서 참기름 발라 먹고 민어 대가리와 부레를 넣은 매운탕을 끓였지. 김은 논작논작하게 굽고 게를 까서 고추장 넣고 무쳐 먹었어. 콩나물은 콩의 한 배 반 길이로만 키워서 먹고 그때 이미 현미를 싹 틔워 먹을 줄 알았다니깐.”

박문소학교를 다닐 당시부터 그에겐 남들과는 다른 눈이 있었다.

“반 아이 얼굴을 턱 보면 상이 보여요. 엄마가 없는 것 같다든지, 집이 망한 것 같다든지 하는 느낌이 전해져 와. 물어보면 엄마가 분명 있는데도 내 눈에 그렇게 보이는 거야. 그런데 방학을 마치고 오면 그 아이 엄마가 죽었다는 거예요. 내가 무당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관용찰색(觀容察色)이라고, 잘 살피면 사람의 운명과 건강은 겉으로 드러나게 돼 있어요.”

서울로 유학 와 배화고녀를 다니다 졸업 무렵 인천고녀로 전학했다. 외교관 부인이 되길 꿈꿨다. 파티, 음악, 드레스류의 소녀다운 상상에 불과했지만. 서울대 불문과에 다니는 오빠 친구와 연애감정 비슷한 걸 나누면서 프랑스 유학을 계획했다.

“연애라고 해봤자 휘파람을 불면서 내 방 창문 앞을 지나가면 오빠 몰래 호롱불을 들고 창문 앞에 가서 내다보는 거지. 시 같은 연애편지나 주고받고…. 이화대학에 합격은 했는데 그 오빠가 이대는 첩딸들만 다니는 학교니 가지 말라는 거야.

당시 헬싱키올림픽 사이클 선수로 출전했던 임상조란 사람이 헬싱키에서 바바리코트를 사 입고 인천에 나타났어. 얼마나 멋지던지 그 바바리코트에 반해 내가 갑자기 그 사람을 좋아했다니깐.”

그러다 유학은 무산되고 스물두 살에 군 특무대에 근무하던 장교와 결혼한다. 혼인 전 찾아갔던 무당집에선 “봄에 갔다 가을에 올 걸 뭐하러 가?” 했지만 상관없이 혼인은 급속도로 진행됐다. 아이 둘을 낳았고 남편은 사고로 죽는다. 그의 나이 27세, 그야말로 청상에 과부가 된 것이다.

“남편과는 정이 없었어. 그가 김창룡(당시 육군특무대장)이 휘하에 있었는데 그때가 조봉암을 잡아 죽일 때였거든. 조봉암은 큰오빠 친구였어요. 멋있었지. 나 어릴 때 우리집에 놀러오면 귀엽다고 내 볼에다 뺨을 비비곤 했는데…. 그 오빠를 이 사람이 죽였나 싶어 그렇게 무섭고 싫었어. 음식을 너무 맵게 먹는 것도 악인이라서 그렇지 싶고…. 별일 아닌 일에도 권총을 들이대고 해서 내가 울화병이 났었어.”

이 시절을 그는 아주 상세히 기억한다.

“그 사람은 소령인데 특무대 경리장교였거든. 집에 돈을 하루 한 자루씩 가지고 와. 당시는 산에서 집채만한 나무들을 베서 서울로 싣고 오는데 특무대 대장의 인가가 없으면 트럭이 움직일 수 없었다고. 한주일 모으면 돈이 이런 궤짝에 가득 차는데 토요일이면 그걸 다 자기 아버지를 갖다줘. 나중 내가 일본에서 돌아오니 그게 다 날아가고 없어졌데….”

4/8
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
연재

이사람의 삶

더보기
목록 닫기

‘자연식 삶’ 연구가 김정덕

댓글 창 닫기

2022/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