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내내 크리스마스 무드

맑은 여름날이면 영국의 공원은 일광욕을 하러 나온 사람들로 뒤덮인다. 글래스고 식물원 잔디밭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
가이 포크스 데이가 지나가면 사람들은 바로 크리스마스 준비에 돌입한다. 대형 마트와 거리의 상점에는 빠짐없이 크리스마스 트리와 장식품, 카드들이 줄줄이 진열되고 사람들은 ‘올해의 카드와 선물 리스트’를 들고 챙겨야 할 사람들을 일일이 세어가면서 카드와 선물을 사고 포장하고 보낸다. 크리스마스 선물 공세는 학교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박사과정 학생들은 지도교수에게, 그리고 초등학교 학생들은 선생님에게 카드와 선물을 보내야 한다. 이걸 챙기는 일 또한 만만하지 않다. 거의 한 달 가까이를 선물과 카드 리스트를 들고 빠진 사람이 없는지 꼼꼼히 챙겨야 한다. 박사과정의 외국인 학생들끼리 모여 “너, 올해에는 지도교수님께 무슨 선물할 거야?” “다른 교수님들께는 카드만 보내도 되겠지?” 같은 의논을 하기도 한다.
그저 선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크리스마스 휴가에는 여기저기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다 모이는 가족 파티가 열린다. 이외에도 친구들, 직장 동료들, 연인들, 클럽과 학교 등에서 수많은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린다. 내가 영국 친구들에게 “우리 남편은 올해에 쓸 수 있는 휴가를 다 써버려서 이번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엔 영국에 못 온다”고 하면 대부분 기절할 듯이 놀란다. “아니, 크리스마스에 가족이 모이지 못한단 말이야? 어떻게 그렇게 기막힌 일이…”하면서 말이다.
영국 영화 ‘러브 액추얼리’는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모든 갈등과 짝사랑이 다 해소되고 가지각색의 사랑이 맺어지는 동화 같은 해피엔딩을 이루는데, 실제로 영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크리스마스가 바로 이런 모습니다. 으르렁대던 양당 정치인들도 크리스마스에는 휴전 모드로 돌입하고 어디든 “자, 한 해 동안 수고 많이 했으니 힘든 일은 모두 잊고 따스한 크리스마스를 즐겨요!” 하는 화해 무드가 넘실댄다. 해마다 BBC TV에서 여왕의 크리스마스 담화가 발표되는 것도 영국만의 특이한 행사라면 행사다.
그럼 12월25일이 지나면 이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대번에 사라져버릴까. 천만의 말씀. 26일부터 31일까지는 ‘복싱데이(Boxing Day)’라고 해서 쇼핑센터와 상점들이 일제히 반액 세일을 실시한다. 사람들은 1년 내내 기다리던 크리스마스가 끝나버렸다는 허전함을 쇼핑으로 왕창 풀어버린다.
이러니 12월 내내 영국 전역에선 크리스마스 무드가 넘실댄다.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과장되게 크리스마스를 챙기는 걸까. 나 혼자만의 생각인지는 몰라도 아마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준비하면서 길고 어두운 겨울의 우울함을 잠시나마 잊어보려는 게 아닐까 한다.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이라도 하지 않으면 3시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 줄기차게 계속되는 밤, 그리고 사흘 중 이틀은 비바람이 부는 우중충한 날씨를 어떻게 견뎌내겠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