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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대통령이 소명과 본분 망각하고 대통합 아닌 대분열 행보

이제부터는 ‘조국 사태’가 아니라 ‘문재인 사태’다

  •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대통령이 소명과 본분 망각하고 대통합 아닌 대분열 행보

  • ● 통치력 정통성 근원적으로 의문시돼
    ● 文정권의 돌이킬 수 없는 내파(內破)
    ● 심리적 내전이 사회적 내전으로 확대
    ● 조국 사태는 새 시대 도래 예고(豫告)
    ● 대한민국은 공화(共和)의 시대정신 열망
대통령이 소명과 본분 망각하고 대통합 아닌 대분열 행보
조국 법무부 장관이 전격 사퇴했다. 국민 다수가 조 전 장관 임명을 반대한다는 여론조사가 쏟아지고 대통령 지지도와 여당 지지도가 함께 수직 추락하자 더 버티기 어려웠다. 총선을 앞둔 민주당도 문재인 정부의 통치 헤게모니가 급격히 유실돼가는 상황을 더는 감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조국 사태의 심각성은 권력비리 피의자인 법무장관의 진퇴를 둘러싼 정치 공방을 넘어섰다. 조국 사태가 문재인 정부의 통치력과 정통성이 근원적으로 의문시되는 문재인 사태로 비화했기 때문이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는 어디로 갔나

조국 사태를 순리에 따라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장관 임명 발표 전후로 불법과 비리 의혹에 휩싸인 조 장관이 검찰개혁의 대의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자진 사퇴하는 게 가장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조국 법무장관 임명에 부정적인 민심을 수용하면서 검찰개혁을 앞당기는 방식으로 출구 전략을 구사할 수 있었다. 만약 그랬다면 정국이 지금처럼 대(大)혼란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국 사태는 광장과 광장이 충돌하고 심리적 내전이 사회적 내전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위중한 상황을 초래했다. 조 전 장관 사퇴만으로는 이미 문재인 사태가 돼버린 현실을 헤쳐나가는 데는 역부족이다. 조국 사태 자체를 문 대통령의 거듭된 실기(失機)의 결과로만 보는 것은 사태를 피상적으로 읽는 것이다. 

조국 사태가 문재인 사태로 커진 근원적 배경에는 위대한 촛불 혁명의 경험이 자리한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 정신을 자기 정당화의 최종 근거로 삼아 왔다. 촛불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공명정대한 나라를 외쳤다. 2016~17년의 엄동설한을 뜨거운 가슴으로 녹여낸 한국 시민들의 열망이자 국민적 일반의지의 표현이었다. 박근혜 정권 탄핵은 박정희 패러다임이 실효(失效)했음을 웅변하는 과정이자 주권자인 국민의 일반의지를 제도적으로 재확인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합헌적 탄핵의 도정(道程)에서 우리는 충만한 주인의식으로 정치적 효능감(效能感)을 극대화했다. 

촛불은 정의와 공정의 상징이며 나라다운 나라의 영혼이다. 촛불 정부를 자임하면서 그런 촛불의 상징 자산을 전유(專有)해온 것이 문재인 정부였다. 문재인 정부가 정권 출범 시 90%에 가까운 압도적 지지율을 향유했던 배경이다. 그런데 조 전 장관과 그 가족을 둘러싼 온갖 불공정과 부정의는 촛불 정부의 정통성을 치명적으로 균열시켰다. 문재인 정부에서 조 전 장관이 촛불을 상징하는 인물로 여겨져왔기 때문이다. 촛불이 드높인 정치적 효능감의 기억을 현재진행형으로 간직하고 있는 시민들의 환멸은 민주공화정의 주권자로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는 조국 사태에 대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경향적으로 드러나는 민심의 흐름이기도 하다. 

적폐의 대명사로 전락해버린 조국을 개혁의 전도사로 고집했던 문 대통령의 행보가 조국 사태를 문재인 사태로 비화시켰다. 문 정부 열성 지지자들과 진보 진영에서조차 대통령의 조국 집착증을 의아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결국 조국 사태는 촛불 대통령으로서의 문재인 대통령의 장엄한 자화상을 산산이 깨트려버렸다. 조국 사태가 문재인 사태로 커지고 있는 현실은 문재인 정권의 돌이킬 수 없는 내파(內破)를 뜻한다.




정권의 오판(誤判)인가, 적대정치의 산물인가

문재인 정부 임기가 반환점을 돌고 있는 지금, 국민은 광화문과 서초동 두 갈래로 쪼개졌다. 조국 사태에 대한 입장 차이가 가족과 친구들까지 분열시켰다. 모두가 모두를 손가락질하는 폐허의 공간에서 우리의 마음은 차가운 날씨처럼 황량하다. 나라 전체가 심리적 공황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 전 장관 전격 사퇴는 민심의 분단이라는 깊은 상흔(傷痕)을 치유하기보다는 ‘조국 사태 제2라운드’로 옮아갈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동안 사회 심리적 내전 상황을 치유하는 대(大)통합자(統合者)의 역할을 거부해왔다. 오히려 조국 장관을 옹호하는 서초동 집회만을 직접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격려하던 대(大)분열자(分裂者)의 행보를 지금도 완전히 거두어들이지는 않았다. 조 전 장관 사퇴 때 문 대통령은 국민 분열에 대해서는 사과하면서도 조 전 장관을 임명한 결정이 잘못된 것이었다고는 인정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조 전 장관이 추진하던 검찰개혁의 대의를 재확인했을 뿐이다. 두 달이 넘는 조국 사태 와중에 각기 정의롭다고 자처하는 두 군중 집단과 진영도 이견(異見)을 가진 상대방 진영에 대한 적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조국 사태에 관한 한, 한국 사회에서 합리적 목소리는 사라지고 말았다. 진영 논리가 난무하면서 사회적 소통이 단절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현실정치의 요체는 결과를 중시하는 책임윤리이므로 문재인 정권의 지난 두 달간 행적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모든 국정이 조국 사태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면서 내우외환의 위기가 고조됐다. 실물경제가 어려움에 봉착하고 민초들의 고통이 하늘을 찌르건만 문재인 정권은 조국 사태의 출구를 오랫동안 외면했다. 조국 사태를 풀기는커녕 문재인 사태로 비화시켜온 문 대통령의 행보를 정권 차원의 잇단 실기(失機)와 오판의 연속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문 정부가 보여온 국정 운영의 총체적 무능이 조국 사태에서 최악의 형태로 재연됐다는 해석이다. 이는 문 정부의 무능과 혼미에 대한 비판이긴 하지만 그나마 문 정권의 정치적 선의(善意)를 인정하는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경쟁자를 타도할 적(敵)으로 규정하면 민주주의 지속 불가능

하지만 조국 사태가 문재인 사태로 확산하는 현실을 방치하는 수준을 넘어 조장했던 문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행보에 대한 전혀 다른 독해(讀解)도 가능하다. 그것은 조국 사태를 정권 재창출을 위한 문 정권의 전략적 정치공학으로 읽는 방법이다. 특정 정치 주체의 의도를 판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문 정부 출범 이후의 정치 행태를 돌아보면 일정한 그림이 그려진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문 정권은 일관된 정치적 족적을 밟아왔다. 그것은 바로 문 정권이 현실정치를 적과 동지의 구분법 위에 서 있는 적대정치로 여긴다는 사실이다. 스스로가 진리와 정의를 구현한다는 자기 확신이 넘치게 되면 나(우리)를 반대하는 자들은 자동적으로 허위와 불의의 적폐 세력이 되고 만다. 정치적 경쟁자가 청산과 박멸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는 정확히 문 정권이 지난 2개월간의 조국 사태에서 밟아온 길이다.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자유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와 언론·출판·집회·결사·양심의 자유가 보장된다. 시민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삼권분립과 법치주의를 제도화한다. 이는 자명한 현대 민주주의의 정석(定石)이다. 민주 정당들은 정책 경쟁과 각종 선거를 통해 민심을 수렴하고 사회 갈등을 조율한다. 따라서 민주주의 체제의 정당들은 서로 간에 정치적 경쟁자의 위상을 갖는 것이지 결코 타도해야 할 적(敵)이라고 할 수 없다. 정치적 경쟁자를 적이라고 선언하고 정치 행동의 실제 강령으로 삼을 때 민주주의는 지속 불가능하다. 

정상적인 국정 운영 대신 적폐청산을 국정 최대 과제로 삼아온 지난 2년간의 행보가 문 정권의 적대정치를 증명한다. 특히 조국 사태에서 문 대통령의 적대정치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문 대통령과 여당이 조국 사태를 수습하고 출구를 모색하기는커녕 자꾸 확산시키고 악화시켜온 것은 적(敵)과 동지의 싸움에서 결코 물러설 수 없다고 스스로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문 대통령과 그의 정치적 동반자인 조 전 장관은 조국 사태가 초래한 전면적 정치 위기를 적과 동지로 갈라 쳐서 돌파하려는 일관된 모습을 보였다. 전선(戰線)을 시민사회 전체로까지 확장해 무한 소모전으로 치닫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적대정치가 오늘의 한국사회를 천하대란의 수렁에 빠트렸다.


文정권 열성 지지층도 적대정치의 신봉자들

2017년 3월 11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집회. [동아DB]

2017년 3월 11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집회. [동아DB]

문 대통령과 조 전 장관은 자신들을 비판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아무리 크고 합리적 호소력이 있어도 무시하는 행태를 보였다. 건곤일척의 권력투쟁에서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문 정권 열성 지지층도 적대정치의 신봉자인 것은 마찬가지다. 이들은 악의 세력인 한국 보수에게 정치적 주도권을 넘겨줄 수 없다고 확신한다. 상대적으로 다수인 ‘광화문 시민들’을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했던 문 대통령이 ‘서초동 시민들’만을 진정한 민심으로 상찬한 것도 적대정치의 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렵다. 

문 정권 특유의 적대정치는 분할 통치(divide and rule) 기법에 크게 의존한다. 문 정권은 타파해야 할 적을 쪼개고 파편화함으로써 무력하게 만들되, 극성 지지층을 강고하게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적 전투의 비밀이자 선거 승리의 방법이라고 믿는다. 설령 자신들을 지지하는 국민이 상대적 소수여도 이들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다. 사법부·언론·강성 노조·시민단체를 우군으로 만들고 어용 지식인들이 공론장을 장악해 여론 시장을 관리하면 건곤일척의 싸움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인식이다. 강고하게 조직화된 열성 지지층을 이런 배경과 결합하는 게 선거 승리의 요체라는 것이다. 

적대정치와 분할 통치의 정치 기법은 광장정치를 직접민주주의의 표현이라고 강변하는 데서 절정에 이른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직접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간접민주주의)로 진화한 데는 필연적 이유가 있다. 직접민주주의의 고향인 고대 아테네에서도 직접민주주의는 전체 인구 중 소수에 불과한 성인 남자 시민만의 엘리트 민주주의에 머물렀다. 고대 아테네에서조차 국가 운영과 안보 분야를 이끈 지도자들이 시민들의 뜻을 ‘대의’했음은 물론이다. 보편적 참정권과 자유 언론 및 비밀투표에 기초한 현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광장 참여자들의 자유토론이 억제되고 내부 이견과 상호비판이 집단 논리에 의해 금기시되면서 일사불란한 구호만 지배하는 광장은 진정한 광장 민주주의의 현장이 아니다. 변질된 광장정치는 오히려 성숙한 광장 민주주의와 충돌한다. 

정치적 경쟁자를 적으로 여겨 말살하려는 진리정치와 적대정치의 밑바탕에는 파시즘의 유혹이 자리한다. 그리고 파시즘은 민주공화국을 파괴한다. 파시즘의 득세 뒤에는 살아 있는 권력을 열렬히 옹호하는 국민들의 자발적 지지가 있었다는 게 무서운 역사의 교훈이다.


진리정치 밑바탕에는 파시즘의 유혹이 있다

디지털 민주주의의 축복이 디지털 독재의 악몽으로 변신해 포퓰리즘의 대중독재가 강화되는 현상은 21세기 민주주의의 타락을 상징한다. 현실권력이 분할 통치를 선호하는 건 오래된 권력 법칙이지만 살아 있는 제왕적 권력이 삼권분립을 무력화하고 사회 세력을 식민화하면서 공론장을 왜곡할 때 민주주의는 치명적 위기를 맞는다. 한국 민주주의의 성취인 촛불 혁명의 적자(嫡子)임을 자처한 문재인 정권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총체적 위기에 직면했다. 

조국 사태의 끝에 문재인 정권의 최대 기획인 정권 재창출의 탄탄대로가 기다리고 있을지, 아니면 정권 붕괴와 국가의 쇠멸(衰滅)이 올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물론 조국 사태는 한 개인이나 가족의 일로 그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자유롭지 않은 한국 사회 욕망의 지형도를 압축해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거시적 구조 분석을 앞세워 조국 개인의 구체적 불법과 권력 비리를 면책(免責)하려드는 담론은 설득력이 없다. 

우리네 삶의 근본인 원칙과 상식을 위협하고 신뢰의 사회자본을 붕괴시킨 건 조국 사태의 결정적 해악이다. 조국 사태가 시민들의 상호 신뢰에 결정타를 가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경제력·군사력·문화력 등 종합 국력에서 세계 10위권임에도 사회적 신뢰지수는 매우 낮다.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의 2018년 부패인식지수로 세계 45위다. 경제협력개발구(OECD) 국가 중에서 최저 수준이다. 문재인 정권은 조국 사태로 한국 사회의 총체적 아노미(anomie·무규범 상태)를 무한대로 증폭시켰다. 조국 사태는 무법(無法)과 무규범이 일상이 되고 사회윤리가 총체적으로 붕괴하는 단초가 돼버렸다. 

조국 사태에서 유명 지식인들의 정의 담론이 기득권을 은폐하거나 독단적 진영논리에 악용되는 현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궤변과 요설로 조국 응원에 복무한 진보 지식인들의 행태는 그렇지 않아도 만성적 저신뢰 사회인 한국사회의 신뢰 자본을 치명적으로 훼손했다. 조 전 장관 사퇴로 조국 사태가 봉합되기는커녕 이 사태는 한국인의 내면에 치유하기 어려운 사회적 트라우마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이제 한국 시민들은 그 누구의 말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게 됐다. 그야말로 ‘불신의 지옥’이 우리네 현실이 되고 만 것엔 조국 사태의 책임이 결정적이다.


조국 사태는 새 시대의 도래를 앞당기고 있다

조국 사태는 한국 현대사 초유의 사회 심리적 환난이자 정치적 재앙이다. 하지만 회복탄력성이 강한 정치 공동체는 위기를 기회로 바꾼다. 한국 현대사야말로 그런 도전에 성공적으로 응전해온 역사였다. 칠흑 같은 어둠의 현실을 ‘지성의 비관론과 의지의 낙관론’으로 뚫고 전진한 역사였다. 조국 사태라는 사회적 재난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승화시키는 과제는 결국 우리들의 몫이다. 

조국 사태는 국가적 난제인 검찰개혁을 한국 사회의 합의로 격상시켰다. 여·야와 보수·진보 모두와 검찰조차 검찰개혁의 중요성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검찰개혁의 핵심은 상호 보완적인 두 가지 사항으로 압축된다. 제왕적 대통령에게서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고, 공룡화한 검찰 권력을 분산시켜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과제다. 문 정권의 공수처 안은 이 과제에 역행한다. 지금은 불패(不敗)의 거대 권력인 검찰에 대한 의회와 시민의 통제를 제도화할 때다. 검찰의 수사권·기소권 분리와 검경 수사권 조정을 관철할 최적(最適)의 순간이다. 조국 사태가 이런 역사적 기회를 제공했다. 

조국 사태는 한국 현대사를 규정한 산업화 대(對) 민주화의 대립구도가 종언을 고하고 있음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적 산업혁명을 선도(先導)한 보수는 성공에서 온 질주의 대가로 갑작스럽게 스러졌다. 박근혜 정권의 전격 퇴장이 그 결과였다. 박근혜 탄핵은 산업화를 이끈 보수에 대한 국민적 불신임을 의미하며 철회된 신임은 아직도 회복되지 않았다. 한국적 민주혁명을 이끈 진보도 적대정치와 진리정치의 오만(傲慢)으로 굉음을 내면서 무너지고 있다. 조국 사태야말로 그 현재진행형의 신호다. 민주화를 견인한 진보는 조국 사태의 폭주로 국민적 신망(信望)을 잃어버렸다.


총체적 재난을 새 시대의 축복으로

옛것은 사라졌지만 새것은 오지 않았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대립이 만든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존 관계는 종언을 고했다. 민주당 지지를 철회한 다수 시민이 한국당으로 가지 않고 중간에서 유동(流動)한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시효(時效)가 끝난 역사의 공간에 폭풍 같은 정치적 에너지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2012년 대선 정국을 강타한 ‘안철수 현상’은 그 실패한 전조(前兆)였다.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딛고 도약할 새로운 공화(共和)의 시대정신을 열망하고 있다. 총체적 재난인 조국 사태를 새 시대의 축복으로 바꿀 때 성숙한 민주공화정이 탄생한다. 조국 사태가 새 시대를 앞당기고 있는 현실이야말로 역사의 아이러니다.


대통령이 소명과 본분 망각하고 대통합 아닌 대분열 행보

윤평중
● 1956년 출생
● 고려대 철학과 졸업, 미국 서던일리노이대 대학원 박사(철학)
● 동아일보 객원논설위원,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 민간위원
● 現 한신대 철학과 교수
● 저서 : ‘포스트 모더니즘의 철학과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논쟁과 담론’ 外




신동아 2019년 11월호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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