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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가 크고 ‘대물’이면 수태력도 좋을까

[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 이야기]

  • 난임전문의 조정현

    입력2023-08-1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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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가 크면 음경이 크다는 속설을 믿은 선조들은 석상의 코를 만짐으로써 아이를 가질 것으로 기대했다. [Gettyimage]

    코가 크면 음경이 크다는 속설을 믿은 선조들은 석상의 코를 만짐으로써 아이를 가질 것으로 기대했다. [Gettyimage]

    “남자의 코(nose)가 크면 성기(性器)가 크다”는 속설이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음경(陰莖)은 곧 남성성을 상징한다. 그래서인지 석상의 코를 만지면 아기를 낳을 수 있다는 미신을 믿거나, 갓 태어난 사내아기의 코를 오뚝하게 만들려고 만져주는 것이 예사로웠다.

    필자도 궁금하다. 코 크기가 정말 음경 사이즈, 남성성(정력)과 연관성이 있을까. 코가 크고 콧구멍이 넓으면 호흡이 원활해져서 폐와 심장 기능이 좋아질 수야 있겠지만, 코가 음경 크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억지스럽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코 크기와 음경 크기의 연관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고 한다.

    2년 전 일본 교토 현립 의과대학 법의학자들이 법의학적 부검 사례를 연구하기 위해 남성 시신(사망 3일 이내) 126구를 조사했다. 시신의 신체는 물론이고 음경을 면밀하게 살폈다. 죽은 자의 음경이기에 한껏 쪼그라졌겠지만, 수직으로 당겨서 길이를 측정할 수 있었다. 또한 눈 사이의 정중앙부터 콧구멍이 시작되는 지점까지의 거리를 코 길이로 규정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큰 코를 가진 남성이 작은 코를 가진 남성보다 더 큰 음경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 체중이나 신장과 음경 크기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었다. 조사 결과를 좀 더 살펴보면, 코 길이가 작은(4.6cm 이하) 남성은 음경 길이가 10.37cm 이하, 코 길이가 5.6cm 이상인 남성은 13.42cm 이상으로 나타났다. 중간 크기의 코를 가진 남성은 평균 음경 길이가 11.4cm였다고 한다. 그러니 선조들이 남성의 코를 보면서 음경 크기를 상상한 것은 일리가 있는 셈이다.

    정력이라는 로망

    남성에게 정력은 살아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관심거리이자 로망일지 모른다. 심지어 스트레스로 인해 리비도(Libido·성욕)가 저하된 남성일지라도 강한 남성성을 꿈꾼다. 남성에게 정력이 단순한 쾌락만은 아니라서 그렇다. 생존의 힘이자 정신적 에너지의 원천이므로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음경 크기가 남성성을 상징할지는 몰라도 수태력(임신시키는 능력)과는 연관성이 없다. 굳이 신체 특징과 수태력을 따진다면 선조들은 허벅지가 튼튼할수록 수태력이 뛰어나다고 여겼다. 허벅지 근육이 발달하면 허벅지 주변 혈류량이 증가해 음경으로 가는 혈류가 왕성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수태력의 지존이 되려면 정자 수가 많고 남성호르몬(테스토스테론)이 잘 분비돼야 한다. 그래야 리비도가 넘쳐난다.

    그런 의미에서 고환이 매우 중요하다. 남성다움과 수태력은 고환의 업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환은 정자를 만들고 남성호르몬(안드로겐, 테스토스테론)을 생성하는 생식 공장이다.

    고환과 남성호르몬 분비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다. 테스토스테론은 고환에서 생성되고 분비되는 호르몬이므로 정자 생산량과 비례한다. 정자가 많이 생산되면 테스토스테론 분비량이 늘고, 정자 생산에 문제가 생기거나 생산이 되지 않으면 테스토스테론 분비량이 급하강 곡선을 그린다. 중년 이후에는 혈중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감소할 수 있지만 젊더라도 지나친 흡연, 음주, 스트레스 등이 나이보다 더 나쁜 영향을 끼친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감소하면 정자 수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만약 고환에서 정자가 전혀 생산되지 않는 비폐쇄성무정자증이라면 남성호르몬(테스토스테론) 수치가 현저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남성호르몬 수치가 턱없이 떨어진 비폐쇄성무정자증 남성을 만나 보면 고환의 사이즈가 육안으로도 현저하게 작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결국 남성 정력의 핵심은 수태력이다. 수태력은 리비도가 최상일 때 가장 높다. 성교 횟수가 많을수록 임신률이 높을 수밖에 없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젊고 건강한 아내라고 해도 맞벌이를 하는 경우 성교 횟수가 잦아도 임신이 힘들 수 있다. 업무 스트레스 등으로 육체적으로 고단하고 정신적으로 지치면 리비도만 저하되는 게 아니라 정자의 수태율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주말부부는 배란 시기를 못 맞추기 일쑤다. 배란 시기에 맞춰 잠자리를 갖는다고 해도 수태율이 올라가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본다. 정자도 주인(당사자)의 몸과 마음 상태와 결코 별개일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 생식의학의 힘은 위대하다. 난임 클리닉에서 여러 가지 임신 보조 시술을 통해 임신에 성공할 수 있다. 간단하게는 자궁 안에 활동성 있는 정자만 주입하는 자궁 내 인공수정술(IUI)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더 나아가 시험관아기시술(IVF)을 하게 되면 정자를 선택해 시술받을 수 있다.

    세포질 내 정자 직접 주입술(ICSI·Intra Cyto plasmic Sperm Injection)도 있다. 미세수정은 가는 유리침으로 정자 하나를 골라내어 난자 안에 직접 주입하는 방법이다. 정자들끼리 난자 주위에서 서로 경쟁해 가장 센 놈이 난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인위적으로 하나를 골라 난자 안에 직접 주입하는 방법(lCSI)보다 더 좋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자를 하나 골라 난자 내로 주입하는 것이 수정률이 더 높고 수정 후 배아 발달(세포 분열)률도 더 높은 경우를 자주 본다. 이렇듯 생식을 연구하는 숙련된 박사들이 양질의 정자를 선택할 수 있기에 정자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얼마든지 임신에 성공할 수 있다.

    부부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수태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Gettyimage]

    부부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수태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Gettyimage]

    부부가 마음 편하고 즐거워야

    최근 시험관아기를 갖기 위해 미국 뉴욕에서 필자를 찾아온 부부가 있다. 아내는 미국에 유학을 갔다가 신랑을 만나 결혼했는데, 5년 동안 아이가 없어 필자에게 온 것이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난임의 고통을 겪는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도 그만큼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시험관아기를 갖기 위해 한국에 온 아내의 표정이 한껏 밝아졌다. 그립던 친구를 만나는 등 너무 행복한 나날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런 아내를 보며 남편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서일까. 미국에서는 채취한 정자가 부실해 IVF에 실패하곤 했는데 이곳에서 채취한 정자는 아주 건강했다. 보름 전, 임신 테스트 키트에 붉은 두 줄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진료실로 들어오는 부부의 얼굴엔 싱글벙글 웃음이 가득했다.

    이처럼 남성의 정력은 혼자만의 몫이 아니다. 아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더더욱 강해진다. 또 수태력도 좋아진다. 인체는 알면 알수록 신비하지만 너무 많이 알면 어렵고 복잡해진다. 무지무우(無知無憂)가 오히려 득이 될 수 있다. 아는 것이 적으면 걱정이 없는 법. 남성다움으로 상남자로 인정받고 싶다면 한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서 살갗이 발개지더라도 아랑곳하지 말고 하루 30분씩이라도 걷고 아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된다.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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