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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년생 ‘강남 우파’ 한동훈 대통령론 나오는 이유 [+영상]

非한총련 X세대, 대권 잠룡 떠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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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4-01-0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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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잡이’, 프레임이긴 해도…

    • 서울·충청·화이트칼라 선전

    • 올드라이트도 뉴라이트도 아닌

    • 극우 보수에 맞선 자유주의?

    • 김건희 두고는 궁색한 태도

    [+영상] 73년생 한동훈을 말하다_1



    [+영상] 73년생 한동훈을 말하다_2



    대구(2023년 11월 17일) → 대전(11월 21일) → 울산(11월 24일) → 서울 여의도(12월 6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정계 입문 전 거친 행보다. TK(대구·경북), 충청, PK(부산·경남)를 거쳐 국회를 찾아 여당 정책 의원총회에 참석했다. 잘 짜인 전략에 맞춰 움직인 모습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2021년 3월 대구를 찾아 더불어민주당에 각을 세우는 메시지를 냈다. 한 위원장이 현직 법무부 장관 신분이었듯, 윤 대통령도 당시 현직(검찰총장)이었다.

    메시지에서도 색깔이 드러난다. 대전에서 한동훈은 “여의도에서 300명만 쓰는 고유의 화법이나 문법이 있다면 그건 ‘여의도 사투리’ 아니냐”라면서 “나는 나머지 5000만 명이 쓰는 문법을 쓰겠다”고 했다. 2020년 8월 3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신임 검사 신고식에서 꺼낸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쓴 독재와 전체주의 배격’ 발언이 떠오른다. 2023년 12월 26일 비대위원장 수락 연설에서는 “우리는, 상식적인 많은 국민들을 대신해서,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과, 그 뒤에 숨어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운동권 특권세력과 싸울 것”이라고 했다. 보수의 정파성을 드러내지는 않되 방향성은 또렷하게 언급한다는 점에서 접접이 보인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023년 12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위원장 취임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이날 2022년 5월 법무부 장관 취임식 당시 맸던 훈민정음 패턴의 넥타이를 매고 연단에 섰다. ‘경천근민(敬天勤民)’ 정신을 강조한 용비어천가 글귀가 담긴 넥타이다. [박형기 동아일보 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023년 12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위원장 취임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이날 2022년 5월 법무부 장관 취임식 당시 맸던 훈민정음 패턴의 넥타이를 매고 연단에 섰다. ‘경천근민(敬天勤民)’ 정신을 강조한 용비어천가 글귀가 담긴 넥타이다. [박형기 동아일보 기자]

    “좀 과하긴 하다”

    야당은 ‘정치인 한동훈’의 잠재력을 평가 절하한다.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같은 해 11월 21일 페이스북에 한동훈을 두고 “최약체 후보”라고 썼다. 이튿날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윤비어천가’에 이어 ‘훈비어천가’를 부르는 국민의힘”이라고 했다. 박주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도 같은 날 CBS 라디오에 나와 “(한동훈은) 중도 확장력에서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온건파로 꼽히는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에게 물었다. 그는 신중한 투이긴 했으나 역시나 “보수 지지층에만 소구력이 있어 보인다”고 했다.



    그럴 만도 하다. 두뇌 회전이 빠른 한동훈은 상대방의 논리적 허점을 파고드는 데 능하다. 오랜 특수 수사로 배양된 능력이다. 야당 의원과는 기 싸움을 불사한다. 보수 지지자에게는 청량감을 준다. 그러나 ‘한동훈은 싸움꾼’이라는 인상을 여론에 남긴다. 여권이라고 마냥 반기는 건 아니다. 몇 달 전 여당 고위 관계자와 전직 재선의원, 현직 초선의원이 함께한 자리가 있었다. 이내 한동훈이 화제에 올랐다. 그날의 대화를 재구성하면 이렇다.

    전직 재선의원 “한 장관이 국회에서 야당과 싸우려는 태도를 보이는 건 문제다.”

    여당 고위 관계자 “좀 과하긴 하다.”

    현직 초선의원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림).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정치학) 교수는 “한 위원장이 언변에 대해서도 신경 쓸 필요가 있다”면서 이렇게 부연했다.

    “순발력이 좋다 보니 즉자적으로 반응하는데, 그 과정에서 상대를 조롱하는 듯한 발언을 할 때가 있다. 지금이야 팬덤을 형성하지만, 대권을 꿈꾼다면 갈라치기보다 통합의 이미지를 보여야 한다. ‘제2의 윤석열’이라거나 ‘칼잡이’라는 것은 그를 흠집 내기 위한 프레임이긴 해도 현실을 일정 부분 반영한 건 사실이다. 아니라는 점을 입증할 책임은 한 위원장에게 있다.”

    공격적 메시지는 스윙보터에겐 나쁜 신호를 준다. 반복되면 피로감이 쌓인다. 한데 ‘정치인 한동훈’에 관한 데이터를 보면 반전이 있다. 서울과 충청에서 성적이 좋다. 공히 표심의 유동성이 큰 지역이다. 직업적으로는 화이트칼라에 해당하는 사무·관리직에서 선전한다. 세대로 보면 30대에서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뒤지지 않는다. 윤 대통령에 대한 비토 정서가 큰 유권자층이다. 이와 동시에 호남과 진보층에서도 유의미한 지지율을 얻는다. 그 얘기를 해보자.

    차기 대통령감 여권 1위

    한국갤럽이 2023년 12월 5~7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에게 차기 대통령감을 물은 결과(자유응답) 이재명 민주당 대표 19%,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당시 법무부 장관) 16%, 홍준표 대구시장 4%,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3%, 김동연 경기지사·오세훈 서울시장·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2%로 집계됐다. 직전 조사에 비해 이재명 대표 지지율은 2%포인트 내렸고, 한동훈 위원장 지지율은 3%포인트 올랐다. 두 사람 간 지지율 격차가 오차범위 내로 좁혀진 건 이때가 처음이다.

    한동훈은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41%의 지지율을 얻었다. 세대로 보면 60대(28%), 70대 이상(26%), 50대(16%), 30대(12%), 40대(10%), 18~29세(6%) 순이다. 직업의 경우 무직·은퇴·기타(25%), 주부(24%), 자영업(19%), 기능·노무·서비스(16%), 사무·관리직(12%) 순서다. 지역별로 보면 대구·경북(27%), 대전·세종·충청(20%), 부산·울산·경남(18%), 서울(16%), 인천·경기(14%), 광주·전라(4%)다. 직전 조사 당시 14%였던 대구·경북에서의 지지율이 한 달여 만에 두 배 가까이 치솟았다. 보수가 결집하기 시작했다. 서울서 2%포인트 내렸지만, 인천·경기서 2%포인트 올라 만회했다. 정치 성향으로는 보수(31%), 중도(13%), 진보(5%)다.

    2019년 12월 3~5일로 시계를 돌린다. 한국갤럽이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06명에게 차기 대통령감을 물었다. 결과는 이낙연 국무총리 26%,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13%, 이재명 경기지사 9%, 안철수 전 의원 6%로 집계됐다.

    단, 이때는 예비조사로 선정된 10인의 이름을 조사 대상자에게 불러주는 방식을 취했다. 이에 의견 유보층이 18%에 그쳤다. 자유응답 방식을 택한 2023년 12월에는 의견 유보층이 43%다. 이 대목은 중요하다. 보기에서 한 사람을 고르는 것과 보기 없이 정치인의 이름을 말하는 것 사이에는 적잖은 차이가 있다. 후자가 더 적극적인 지지 행위다. 현재 한동훈의 지지율이 과거 황교안에 비해 탄탄하다고 볼 여지가 생긴다.

    4년 전 황교안은 자유한국당 지지층에서 49%의 지지율을 얻었다. 세대로는 60대 이상(26%), 50대(14%), 40대(9%), 30대(5%), 19~29세(2%) 순이다. 직업으로는 주부(24%), 무직·은퇴·기타(14%), 자영업(17%), 블루칼라(10%), 화이트칼라(6%)다. 지역별로 보면 대구·경북(20%), 부산·울산·경남(18%), 인천·경기(13%), 서울(12%), 대전·세종·충청(11%) 순서다. 정치 성향으로는 보수(28%), 중도(12%), 진보(1%)다.

    앞에 소개한 두 조사(각각 12월)와 같은 해 11월에 각각 실시된 두 조사를 종합했다. 스윙보터 성향이 강하거나, 보수정당에 취약한 유권자 집단으로 좁혀 만들었다. 추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이하 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리버럴과 우파 개혁

    지난해 11월 26일 배우 이정재(왼쪽) 씨와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서울 서초구의 한 식당 앞에서 찍은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지난해 11월 26일 배우 이정재(왼쪽) 씨와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서울 서초구의 한 식당 앞에서 찍은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2023년의 한동훈은 공개 행보를 시작한 뒤 30·40세대와 화이트칼라, 중도·진보 유권자층에서 지지율을 소폭 끌어올렸다. 2019년의 황교안과 크게 다르다. 잠정적으로 도출된 결론은 이렇다. 한동훈은 세간의 인상 비평과 달리 (아직까지는) 확장성을 입증하고 있다. 지역 기반도 TK에 치우치지 않고 비교적 골고루 퍼져 있다. 그간 명멸해 간 보수 잠룡 사이에서도 독특한 사례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강남 우파’라는 키워드에 주목한다. 한동훈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는 현대고를 졸업했다. 최근에는 배우 이정재 씨와 찍은 사진이 공개돼 화제가 됐다. 두 사람은 1973년생 동갑내기로, 고교 동기다. 박 대표의 분석이다.

    “‘강남성’은 X세대를 상징한다. 이정재와 한동훈은 각각 연예계와 검찰로 갔지만 그러한 1990년대 분위기를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강북 우파다. 과거 김근태·노회찬 같은 분들은 강북 좌파로 볼 수 있다. 부모 처지에서는 강북 좌파를 물론 존경하지만 자식이 이왕이면 ‘강남성’이 있는 조국(전 법무부 장관)처럼 되길 원한다. 좌파니 우파니 여부는 다음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한동훈은 젊은 엄마들한테도 소구력이 있을 것이다. ‘강남성’ 정도가 아니라 압구정에 있는 현대고 출신이니까.”

    X세대는 1990년대에 신(新)인류로 불렸다. 소비대중문화의 개화기이자 탈냉전의 초입이었다. 탈권위주의로 이행하는 과도기였다. 세계화라는 단어가 스멀스멀 퍼져가던 때였다. 1993년에는 영화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유하 감독)가 개봉했다.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과 ‘서태지와 아이들’이 동시에 기지개를 켠 양면의 시대이기도 했다.

    이 시기에 20대를 보낸 1970년대생 정치인이 없지는 않다. 흔히 97세대(1990년대 학번·1970년대 출생)라고 불린다. 민주당 97세대는 ‘한총련 세대’의 정체성을 갖고 정계에 데뷔했다. 박용진(1971년생), 박주민(1973년생), 이탄희(1978년생)가 그랬다. 세 사람 모두 학생운동을 했다. 총선 출마 채비를 하는 상당수의 민주당 97세대도 마찬가지다. 반면 한동훈과 이정재를 이해하는 열쇠말은 리버럴(liberal)이다. 따라서 한동훈의 등장은 세대교체를 넘어 가치 교체의 시발점일 수 있다. 박성민 대표는 이 대목에서 “세 가지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첫째는 ‘강남성’이다. 둘째는 정치철학으로서의 자유주의다. 1990년대 보수정당에서는 김영삼의 정치적 자유주의가 헤게모니를 쥐고 김종필의 보수주의가 뒤를 받쳤다. 그러다 이회창 등장 이후 (자유주의가) 밀렸다. (한동훈의 등장은) 극우 보수주의에 맞서 자유주의가 부활할 수 있느냐를 판단할 바로미터다. 셋째로, 넥스트 라이트(next right)다. 올드라이트나 뉴라이트는 586 세력을 청산하는 주체가 되기 어렵다. 올드라이트는 친일·독재·쿠데타 프레임에 갇힌다. 뉴라이트는 변절자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런 면에서 넥스트 라이트인 이준석과 한동훈을 주목하는 것이다.”

    궁색한 태도

    수도권에서 열세인 여당에 한동훈은 유용한 패다. 강남 주민이 ‘강남 우파(혹은 좌파)’를 선망하는 게 아니다. 강남 바깥의 주민이 ‘강남성’을 선망한다. 한국인이라면 “마음은 언제나 대치동에 가 있다.”(정아은, ‘잠실동 사람들’ 중)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유권자의 정서적 자기장이라는 렌즈로 이해할 문제다. ‘한동훈 간판’이 강남 3구(강남구‧서초구‧송파구) 뿐 아니라 젊은 화이트칼라가 밀집한 지역에서 소구력을 발휘할 여지가 있다.

    서울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수도권 중도층의 표를 얻으려면 TK 색채가 강한 인물로는 안 된다. 세련되고 유능한 이미지를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면서 “한 위원장은 과거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사한 검사 출신이라 보수가 안고 있는 부채로부터도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게 ‘여당이 수도권에서 한 위원장을 앞세워 얻는 효과’를 물었을 때 들은 답변이다.

    한동훈의 한계도 명확하다. 윤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에 관해 그가 내놓은 “잘 알지 못한다”(2023년 12월 6일)는 답변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대위원장 취임식에서도 ‘김건희 여사 특별검사법’에 대한 질문에는 “(저는) 특검은 총선용 악법이라는 입장을 충분히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야권을 상대로는 임기응변에 능한 그가 김 여사를 두고는 궁색한 태도로 일관한다. 자칫 ‘윤석열의 울타리’에 갇힐 수 있다. 정권 말기에는 유리할 게 없는 위치 설정이다.

    반대로 보면 그에게는 ‘윤석열과의 차별화’라는 카드가 남아 있다는 뜻도 된다. ‘강남 우파’나 ‘넥스트 라이트’ 모델로 생존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면 독자 노선을 택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용인하면 될 일이다. 장관과 달리 비대위원장은 자기 정치를 할 수 있는 자리다. 물론 선택은 한동훈의 몫이다.


    [+영상] 미리 본 22대 총선





    고재석 기자

    고재석 기자

    1986년 제주 출생. 학부에서 역사학, 정치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15년 하반기에 상아탑 바깥으로 나와 기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유통, 전자, 미디어업계와 재계를 취재하며 경제기자의 문법을 익혔습니다. 2018년 6월 동아일보에 입사해 신동아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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