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의 앞뒷면처럼 유기적으로 결합한 시정 철학
약자와 동행, 계층이동 가능한 희망도시 만들기
안심소득, 수입 적은 가구 더 많이 지원받도록 설계
기후동행카드, 시민 교통비 부담 확 낮출 것
오세훈 서울시장. [박해윤 기자]
서울특별시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세계인 누구나 방문하고 싶은 ‘매력도시’, 시민 누구나 매력적인 삶을 함께 누리는 ‘동행특별시’를 목표로 시정을 이끌고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파워 도시지수 7위
오세훈 서울시장 집무실 한쪽 벽에 붙어 있는 ‘글로벌 파워 도시’. 오 시장은 현재 7위인 서울의 매력을 키워 순위를 끌어올리려 하고 있다. [서울시]
“약자와의 동행을 지속하면서 서울을 매력도시로 만드는 데 역량을 좀 더 투입할 예정이다. 서울을 매력적인 도시로 만들어 살고 싶고, 일하고 싶고, 투자하고 싶은 도시로 이끌겠다.”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을 준비하나.
“경제와 문화, 환경과 인프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서울의 매력을 높여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핀테크 등 경제 활력을 키우기 위해 세계 수준의 IT 인프라를 구축하고, 문화·예술·관광 등 소프트파워를 강화해 서울 어디서든 사시사철 볼거리·즐길 거리가 넘쳐나는 펀(Fun)시티로 조성하고 있다. 한강르네상스 2.0과 도심 대개조로 시민 삶의 질을 높이고, 건물과 거리, 공원 등 공공시설을 아름답게 가꿔 서울을 다시 찾고 싶은 도시, 매력이 넘치는 도시로 가꿔나가려 한다.”
오 시장이 서울시정의 키를 다시 잡은 2021년 이후 서울은 도시경쟁력 척도라고 할 수 있는 ‘글로벌 파워 도시지수’(GPCI·Global Power City Index) 평가에서 7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오 시장은 아직 만족하지 못한 듯하다.
“저기를 보세요. 서울이 여전히 맨 뒤에 자리하고 있어요. 순위를 앞으로 끌어올려야 하는데….”
오 시장이 집무실 한쪽 벽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런던, 뉴욕, 도쿄, 파리, 싱가포르, 암스테르담, 그리고 서울 순으로 도시 이름과 현재 시각이 표시돼 있었다. 그가 재선 서울시장으로 시정을 이끌던 2011년, 서울은 ‘글로벌 파워 도시지수’ 평가에서 6위를 기록한 바 있다. 그런데 그가 시정에서 손을 뗀 10년 동안 서울의 도시경쟁력은 추락하기 시작했고, 8위까지 미끄러졌다.
2021년 4·7 보궐선거를 통해 오 시장이 다시 서울시정의 키를 잡은 후 서울의 글로벌 파워 도시지수는 7위로 다시 올라섰다. 그는 “서울을 살고 싶고 일하고 싶고 투자하고 싶은 매력특별시로 만들어 글로벌 톱5 도시로 도약시키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매력도시도 좋지만 시민의 경제력을 높이는 것이 우선 아닌가.
“도시의 매력이 높아지면 사람과 자본, 기술이 자연스럽게 모여들어 경제가 활성화한다. 그 과정에 좋은 일자리가 생겨나 시민의 소득도 함께 늘게 된다.”
한국 사회 관통하는 시대정신
매력도시를 강조하다 보면 약자동행이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수 있다.“약자동행과 매력도시는 동전의 앞뒷면처럼 유기적으로 결합된 시정 철학이다. 서울이 최고의 매력도시로 도시경쟁력이 높아져 각종 산업이 활성화하면 그 과정에 창출되는 일자리를 약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 한강과 남산이 서울을 대표하는 매력 명소로 발전하면 약자를 포함해 서울시민 누구나 여가를 즐기는 공간이 된다. 도시의 매력을 높이는 활동은 약자의 생활도 더 윤택하게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된다.”
2023년 한 해 오 시장은 “누구나 노력하면 계층이동이 가능한 희망의 도시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달려왔다”며 “약자와의 동행을 바탕으로 한 포용성장은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약자와의 동행을 시정 우선순위로 삼은 이유는 뭔가.
“5년, 10년 뒤가 아니라 50년, 100년 뒤에도 흔들림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함이다. 행복을 향한 계층이동 사다리는 누구에게나 절실하다. 양극화로 갈라져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상황에서 ‘약자와의 동행’은 우리 사회를 미래로 튼튼히 이어주는 가교 구실을 할 것이다.”
오 시장은 약자와의 동행 덕에 현장에서 긍정 시그널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매달 빚내서 살던 분이 ‘안심소득’을 받고 나서 공과금 걱정을 덜었다고 하고, 공부에 관심 없던 자녀가 ‘서울런’ 양질의 인강(인터넷강의) 덕에 원하는 학교에 입학했다는 분도 있다. 쪽방촌 주민들은 ‘동행식당’ 덕에 눈치 보지 않고 원하는 메뉴를 골라 편하게 식사할 수 있게 됐다며 좋아하신다. 무료 급식이란 이름으로 시행해 오던 정책을 방식을 조금 달리한 것인데 이용하는 시민 만족도는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2023년 12월 14일 돈의동 쪽방상담소에서 진행된 무료치과진료센터 1주년 성과보고회. [서울시]
과거 쪽방촌 주민들에게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는 물품을 일괄 지급하던 것에서 ‘온기창고’를 마련해 주민이 필요한 물건을 받아가도록 시스템을 바꿨다. ‘주는 대로 쓰라’가 아니라 ‘원하는 것을 사용’하는 것으로 프로토콜을 바꾼 것이다.
‘동행식당’의 경우 길게 줄 서서 주는 대로 먹어야 했던 무료 급식에서 벗어나 식사 쿠폰을 주민들에게 나눠줘 동행식당에서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메뉴를 선택할 수 있도록 바꿨다. 식당과 메뉴에 대한 주민 선택권을 크게 확대한 것이다.
동행식당과 온기창고
2023년 12월 14일 성과보고회 때 한 쪽방촌 주민은 동행식당에 대해 만족감을 이렇게 표시했다고 한다.“(무료 급식 때는) 추운데 줄 서서 먹기 창피해서 할아버지들만 서 있지 아주머니들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식권으로 동행식당에서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 먹게 되면서 누구나 찾아가서 먹으려고 한다. 그게 달라졌다.”
몇 달 전 동행식당에서 쪽방촌 주민과 식사를 함께 한 오 시장은 고기 반찬에 손대지 않는 주민에게 “고기를 싫어하시나요”라고 물었다. 주민은 “이가 안 좋아서 고기 못 먹은 지 오래됐다”고 답했다. “치아 건강 상태가 쪽방촌 주민 영양에 미치는 영향이 크겠구나”라고 생각한 오 시장은 우리금융미래재단의 지원을 받아 행동하는 의사회와 함께 ‘쪽방주민 무료치과진료사업’을 본격 시작했다.
1년 동안 100명 넘는 주민이 진료 935건을 받았다. 단순히 치아 관리에 머문 게 아니라 임플란트와 틀니 관리까지 진료 범위가 점차 확대됐다. 구강 관리를 넘어 실질적 치아 치료로 진화 발전한 것이다.
우리동네 치과진료센터에서 구강 관리를 받고 동행식당에서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온기창고에서 원하는 물품, 필요한 물품을 선택해 받아갈 수 있도록 바꾼 것은 서울시 쪽방촌 주민에게 ‘선택할 자유’를 줌으로써 시민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행사할 수 있도록 한 모범 행정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오 시장은 “동행식당이 그렇게 많은 변화를 가져올지 몰랐다”며 “시민들께서 만족해하시니 보람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시민에게 편리한 시스템을 더 많이 확산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며 “시민이 더 행복할 수 있도록 시장 역할을 빈틈없이 수행하는 게 지금 내가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약자와의 동행’ 차원에서 도입한 동행식당과 온기창고는 쪽방촌 주민 등 이용하는 시민들로부터 높은 호응을 받고 있다. [서울시]
특히 서울시 ‘안심소득’은 한국 사회 저소득층 복지에 대한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복잡한 신청 절차와 재산의 소득 환산 등으로 수급 문턱이 높아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에 비해 서울시 ‘안심소득’은 상대적으로 간편한 선정 절차와 기준 소득을 넘어도 수급 자격을 박탈하지 않아 저소득층의 인간다운 삶을 지원하는 대안적 복지제도가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23년 12월 20일 ‘서울 국제 안심소득 포럼’에 참여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에스테르 뒤플로 MIT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처럼 경제 규모가 크고 발전한 나라에서는 보편적 기본소득보다 선별적 재정 지원을 선택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밝혔다.
오 시장은 “서울시 안심소득은 소득이 적은 가구에 더 많이 지원하는 하후상박 제도”라며 “일을 해서 소득이 높아져도 수급이 유지되도록 설계해 저소득층 상당수가 실질적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약자와의 동행’ 정책에 대한 시민 체감도와 만족도를 측정하기 위해 ‘약자동행지수’를 개발해 2024년 상반기부터 운용할 예정이다. 생계돌봄과 주거, 의료건강과 교육문화, 안전과 사회통합 등 6개 시민 생활 영역별 취약성을 체계적으로 평가하고 모니터링을 통해 약자동행이 시급한 분야를 찾아내 우선적으로 추진하기 위함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약자동행지수는 한정된 예산을 약자와의 동행 사업에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기준으로 구실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약자동행 정책을 처음 도입한 2022년을 ‘100’으로 놓고 해마다 측정해 100보다 낮아지면 그 원인을 분석해 모든 사업을 약자 관점에서 재설계할 예정이다.
약자동행, 매력도시에 이어 오 시장이 꺼내 든 새로운 정책 중 하나가 바로 ‘기후동행카드’다.
기후동행카드를 도입한다. 계기가 있나.
“불가피하게 대중교통 요금을 인상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서비스를 시민들께 돌려드릴까’ 고심하다가 독일의 49유로티켓의 성공 사례를 참고해 탄생한 게 기후동행카드다. 버스와 지하철, 자전거는 물론 새해 도입할 리버버스까지 다양한 대중교통을 한 장의 카드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1월 시범사업을 거쳐 하반기에 본격 도입할 예정이다.”
기후동행카드는 월 6만5000원으로 서울 지하철과 시내버스는 물론 마을버스와 자전거 ‘따릉이’까지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만능 티켓이다. 앞으로 한강을 오가는 리버버스와 도심항공교통(UAM)으로까지 이용 범위를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메가시티, 자치권과 재정 중립성 보장이 관건
서울시장 접견대기실에는 오세훈 시장이 역점을 두고 추진 중인 ‘동행특별시’ ‘매력특별시’ 주요 사업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박해윤 기자]
“편리하고 좋은 대중교통 통합 대안에 더 많은 주민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방법을 찾는 것은 자치단체장들이 해야 할 일이다. 인천시와 김포시는 기후동행카드에 참여키로 했고, 추가로 몇몇 자치단체와도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많은 시민이 기후동행카드 도입을 원하면 다른 수도권 지자체도 참여할 것으로 예상한다. 경기도의 경우 버스 운영 방식이 민영제와 공영제가 혼용돼 있어 개별 자치단체와 논의하는 게 더 빠르고 쉬울 수 있다. 서울시는 참여를 요청하는 지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김포시를 서울시에 편입하는 ‘메카시티’에 대한 입장은 뭔가.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서울과 주변 도시 사이에 ‘생활의 벽’은 상당히 무너져 있는 상태다. 앞으로 ‘행정의 벽’을 어떻게 조정할 것이냐를 논의할 필요는 있다. 다만 그 이슈를 서울시가 주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반보 뒤에서 상황을 갈무리하면서 가겠다는 생각이다.”
오 시장은 “도시 편입에는 많은 변화가 수반되기 때문에 단기간에 행정조직과 재정 배분에 변화가 생기면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며 “갑작스러운 편입으로 지역에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자치권과 재정 중립성을 보장하는 완충 기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초지자체 권한이 서울시 자치구 권한보다 훨씬 많기에 현재의 단체장들이 그 권한을 중도에 포기하면서까지 적극 논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6년이면 재선 단체장의 3선이 끝나고, 10년이면 초선 단체장의 3선이 끝나게 되니 그때쯤이면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상태에서 시민을 위한 객관적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 시장은 “메가시티의 목적은 행정구역과 무관하게 직장과 일상생활이 연결된 시민들 삶의 질을 향상하고 도시경쟁력과 국가경쟁력을 높여 국토의 균형발전을 추구하는 데 있다”며 “무엇보다 서울시민이 만족하고 동의해야 진정한 메가시티가 완성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현재 메가시티를 통한 최상의 효과를 창출하기 위해 ‘지자체별 공동연구반’을 구성해 편입 시 장단점 등 지역 특성에 맞는 연구와 분석을 추진하고 있다. 도시별 논의가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모든 도시가 참여하는 ‘통합연구반’을 꾸려 충분한 숙의 과정을 거칠 예정이다.
‘정치인 오세훈’의 다음 행보가 무엇이냐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시민 삶이 나아지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서울시에서 벌여놓은 일들이 많다. 그 일들이 차질 없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점검하기에도 벅차다.”
오 시장은 ‘팽이 돌리기’에 빗대 하는 일을 설명했다.
“처음에 힘차게 돌던 팽이도 시간이 지나면 속도가 줄어 회전력을 잃고 멈추게 된다. 느려졌다 싶을 때 채로 한 번 더 팽이를 때려주면 힘차게 다시 돈다. 시정도 비슷하다. 새로 시작하거나 준비하는 일도 있지만 시행 중인 정책이 잘 진행되는지 속도가 느려진 것은 없는지 관심을 갖고 점검하고 독려하고 있다.”
신동아 1월호 표지.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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