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호

1기신도시 용적률 500% 줬다간 삶의 질 보장 못해

특별법이 능사는 아니다

  • 김학렬 스마트튜브 소장

    입력2023-12-17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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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야 한목소리로 1기 신도시 특별법 처리

    • 법 제정보다 중요한 건 공공 주도 마스터플랜

    • 일부 주민 기대감 과해, 경고 목소리도…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아파트 단지 모습. [뉴스1]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아파트 단지 모습. [뉴스1]

    총선을 넉 달여 앞둔 2023년 12월 8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을 투표에 부쳐 가결했다. 정부와 여당이 2023년 2월 노후계획도시특별법 주요 내용을 공개하며 추진 의사를 밝힌 지 9개월여 만이다. 이른바 1기 신도시 특별법으로 불리는 이 법안은 분당·산본·일산·중동·평촌 등 노후화된 1기 신도시 공동주택을 포함해 전국 노후 계획도시의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핵심은 대상 아파트의 용적률을 높이고 안전진단을 면제하는 등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는 데 있다.

    특별법 적용 대상은 택지조성 사업 이후 20년이 넘은 면적 100만㎡ 이상 택지다. 적용 가능한 지역은 1기 신도시(분당·일산·중동·평촌·산본)를 비롯해 서울 노원구 상계·양천구 목동, 부산 해운대, 대전 둔산 등 전국 51곳, 주택 103만 가구다. 이들 지역에서는 정비사업을 추진할 때 재건축·재개발 관련 규제를 덜 받게 된다.

    기존 법으로는 정비에 한계

    2023년 11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노후계획도시 정비특별법 연내 통과 촉구를 위한 주민간담회. [뉴시스]

    2023년 11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노후계획도시 정비특별법 연내 통과 촉구를 위한 주민간담회. [뉴시스]

    해당 법안은 단기간에 주택이 대규모로 공급된 노후 계획도시는 기존 도시정비법상으로는 원활한 재건축·재개발이 어렵다는 문제 인식에서 별도로 추진됐다. 특별법은 노후계획도시로 지정된 구역에 안전진단 완화·면제, 용적률 상향, 통합심의 등 각종 도시·건축 규제 특례를 부여한다. 지자체 주도·정부 지원의 형태로 이주대책을 수립해 광역적 정비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생활 사회간접자본(SOC), 기여금 등 공공기여 방식을 다양화함으로써 기반 시설 재투자를 통해 도시 기능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한 것도 특징이다.

    정비사업 추진은 기본방침(국토부)→기본계획(지자체)→특별정비구역 설정→구역별 사업 시행의 절차로 이뤄질 예정이다. 국토부 기본방침과 1기 신도시별 기본계획은 2024년 발표되고, 특별법은 법안 공포를 거쳐 이르면 2024년 4월 시행된다.

    시행에 앞서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이 제안된 이유를 구체적으로 알아볼 필요가 있다. 1기 신도시 등 전국의 계획도시는 국민의 주거 안정 실현을 위해 대규모 주택공급 등을 목적으로 조성된 점에서 정책적 중요성과 공공성을 가진다. 그러나 계획도시는 주거 기능에 비해 자족 기능이 떨어지고, 광역교통망이 충분하게 구축되지 않아 주민들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진다는 비판이 있었다.



    또한 계획도시 조성 후 2020년대에 이르러 20년(2기 신도시)에서 30년(1기 신도시)이 지난 건축물의 안전 및 도시 인프라의 노후화 문제가 심각해지는 실정이다. 일시에 대규모로 주택공급이 이뤄진 1기 신도시 등은 기존의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광역적으로 정비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에 계획도시의 주거환경 개선과 자족 기능 확보, 대규모 이주 수요 관리를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 이러한 목소리를 반영한 특별법은 궁극적으로는 질서 있고 체계적인 정비를 통해 기존의 계획도시를 단순한 주거밀집지역이 아닌 자족 기능이 확충된, 지속 가능한 미래 도시로 재창조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가장 정비가 시급한 곳은 1기 신도시다. 이미 준공 30년을 넘긴 단지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계획 발표에서 입주까지 6년 만에 29만2000호를 공급한 대규모 주택공급 프로젝트는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단기간에 초고속으로 지은 아파트들은 30년 뒤 한꺼번에 노후 아파트가 됐으니 재정비 역시 기존의 방식으로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 수량도 압도적이다. 앞으로 10년간 재건축 대상이 될 수도권 아파트는 193만 호로, 이전 20년간 정비 대상 물량의 2.5배에 이른다.

    이러한 이유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여야는 모두 1기 신도시 특별법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2024년 총선이 다가오면서 여야는 특별법 적용 대상을 1기 신도시뿐 아니라 전국 노후 계획도시로 확대했다. 그런데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되지 않은 탓에 정부와 주민, 기업은 신도시의 미래상에 동상이몽을 가지고 있다.

    용적률 500%라야 사업성 有

    1기 신도시 주민들은 특별법 내용 가운데 블록 단위의 통합 정비를 도입하고, 특별정비구역에 안전진단 면제·완화와 최고 용적률 500%까지 확대하는 안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통합 정비를 하면 주민들은 아파트를 더 빨리, 더 높이 지어 수익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통합 정비는 이해관계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고, 그 탓에 정비사업은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단적인 예로 리모델링이 활성화됐던 평촌에서는 통합 재건축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30년간 이웃으로 살던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통합 재건축에 합의한 단지들은 ‘선도지구’ 지정을 두고 경쟁을 시작했다. 노후 계획도시 정비는 이주 분산을 위해 순환 정비(정비사업으로 철거되는 주택의 소유자 또는 세입자의 이주대책의 일환)를 유도하기 때문에, 주민들 사이에 ‘한번 순위에서 밀리면 재건축 속도가 느려진다’는 불안감이 조성된 것이다. 이로 인해 행정 지원을 받으며 재건축을 할 수 있는 선도지구로 지정받기 위해 분당에선 아파트 단지마다 앞다퉈 동의서를 모으고 있다. 적법한 동의서의 요건을 갖추려면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제정된 이후 양식이 정해지는데도 말이다.

    현재 1기 신도시 대부분의 단지가 선도지구에 지정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어떤 단지가 지정될지 될지 모른다. 게다가 선도지구에 대해서는 국토부 회의에서도 단 한 번도 논의되지 않았다. 더 빠른 속도로, 한꺼번에 재건축하게 해달라는 요구가 2024년 총선을 앞두고 계속 나올 것이다. 문제는 선도지구로 지정된 단지가 10% 미만일 것이라는 데 있다. 90%는 비선도지구일 텐데, 선도지구로 지정되지 않은 단지들의 후폭풍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1기 신도시에서 평균 용적률이 가장 높은 중동과 평촌, 산본에서도 특별법 통과에 따른 재건축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곳에서도 유효한 동의서 양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통합재건축과 선도지구 지정을 위해 동의서를 걷고 있다. 그러나 동의서보다 더 큰 문제는 용적률 500%가 가능해야 재건축 사업성이 나온다는 데 있다.

    그런데 무턱대고 용적률을 500%로 상향할 경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도시 중심이 아닌 수도권 외곽에, 자족 활동이 낮은 지역에 용적률을 높일 경우 사회적으로 매우 높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살아야 하는 도시가 된다. 대표적인 것이 통근 비용다. 외곽에 용적률 500%에 이르는 고밀도 개발이 이뤄지면, 그곳에 사는 많은 인구가 밤낮으로 출퇴근하면서 사는 구조가 된다.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게 발생하는 도시가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또한 주민들의 생각이 제각기 다르다는 것도 문제다. 주민들 간 합의가 안 되면 다른 조건이 다 갖춰져도 소용이 없다. 이 때문에 특별법을 기다리기보다 기존 방식대로, 개별 단지만 정비하겠다는 곳도 있다. 재건축 같은 정비사업은 시간이 사업성을 결정한다. 재건축 시기가 늦춰질수록 건축비는 계속 상승하고, 금융비용도 계속 발생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특별법 혜택을 받기까지 기다리기보다는 먼저 리모델링이든 재건축이든 시작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생각을 가진 주민들도 적지 않다. 2023년 12월 기준, 평촌 신도시는 리모델링 추진 단지의 수가 절반가량으로 54개 단지 중 26곳이 리모델링을 추진하거나 검토하고 있다.

    정부 재정 지원 없으면 특별법 소용없어

    국토교통부 관계자들이 2023년 3월 21일 경기 고양시 일산 신도시 내 노후 아파트단지에서 도보 답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국토교통부 관계자들이 2023년 3월 21일 경기 고양시 일산 신도시 내 노후 아파트단지에서 도보 답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이 밖에 생각해 볼 문제도 있다. 특별정비구역으로 지정되는 면적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막대한 기반시설설치비용이 수반될 것으로 예상돼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재정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원활한 정비사업 시행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며, 장기적으로 특별법이 유명무실해질 소지가 있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손대기 어려운 부분이다. 도시를 깔끔하게 정비하기 위해서는 마스터플랜을 수립해 그에 따라 체계적으로 정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특별법이 1기 신도시를 포함한 기존의 모든 노후 계획도시, 모든 단지에 재정을 투입해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같은 맥락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역량이 떨어진다는 것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특별법이 제안하는 도시계획은 문서상의 계획일 뿐이다. 정부가 택지개발부터 주도한 신도시 조성과 달리 노후 계획도시의 정비는 사유재산권을 가진 주민들의 선택에 따라 진행 여부가 결정된다. 중앙정부는 공공의 역할을 강조하며 신도시 정비의 상당한 책임과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넘겼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과 역량만으로는 사실상 재정비가 어렵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다.
    당장 우려되는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도 있다. 바로 이주 수요 대체지 확보다. 대규모 이주 수요는 전월세 시장 교란을 야기하기 마련이다. 1기 신도시 인구수만 해도 16만7000여 명인데 이들이 한꺼번에 재정비 사업으로 신도시를 벗어날 경우 광역적으로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현 정부는 개발 밀도를 정할 때 신도시 전체의 기반 시설 총량을 우선 고려하겠다고 강조했다. 사업성이 높고 주거환경을 좋게 한다고 해도 다른 지역에 불편을 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적정한 공급처리시설을 갖췄는지, 더 필요한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서 도시 차원에서 정비사업을 좀 더 체계적으로 봐야 한다. 정부가 노후 계획도시 지역에서, 주민들이 재건축 사업을 하거나 리모델링 사업을 하는 데 사업성을 높이고 부담금을 줄여주는 근시안적 태도로 특별법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1기 신도시와 관련한 공동주택 재정비 사업은 일부 주민의 기대감이 과도해진 데 대해 경고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부와 여야가 동시에 관련 법안에 대한 내용을 발표하다 보니 전부 꿈에 젖어 있다. 이제는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 자의적 해석으로 인해 장밋빛 희망만을 꿈꾸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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