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부터 선거마다 등장한 수도권 광역화론
‘국토 균형발전’ 역행, 대개 선거용 공약으로 그쳐
김포, 규모 커져도 교통 인프라 부족해 집값 저평가
“주택시장 활성화엔 도움 안 될 것”
2023년 11월 1일 경기 김포시 장기동의 한 건널목에 서울시에 편입되는 것이 더 좋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붙어 있다. [뉴스1]
2017년 말 남경필 당시 경기지사는 이듬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소 도발적인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는 다음 날 열린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직접 나섰다. 이른바 ‘광역서울도’ 구상을 공표했다. 한국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초강대도시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후 경기지사 후보자 토론회에서 “경기도가 경제 규모와 인구 등 모든 면에서 서울을 앞선다”며 “(경기도가) 서울을 품고 상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곧 이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당시 자유한국당 부산시장 후보 출마를 선언한 박민식 전 의원(윤석열 정부에선 국가보훈부 장관을 지냈다)은 “남 지사의 광역서울도 구상은 수도권 이기주의의 극치”라고 비판했다.
남 전 지사와 경쟁하던 이재명 당시 경기 성남시장(현 더불어민주당 대표)은 “경기·서울 통합은 고등유기체를 거대 아메바로 만들자는 황당한 주장”이라고 꼬집었다. 이후 선거에서 남 전 지사가 이 시장에게 패하면서 광역서울도 논의는 더는 진척되지 않았다.
남 전 지사의 주장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앞서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2006년 지방선거에 당선된 뒤 꺼내 든 ‘대수도론’과 닮았다. 김 전 지사는 서울과 경기, 인천을 포함한 수도권을 일본의 도쿄권이나 중국의 베이징권과 같이 광역화해 국가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역시도 비수도권 지역 광역자치단체장을 중심으로 여야 양쪽에서 비판받았다.
2017년 12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남경필 당시 경기지사가 수도권 광역화를 골자로 하는 ‘광역서울도’ 구상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정치권 ‘뜨거운 감자’ 메가시티 담론
서울, 경기도 등 수도권을 통합해 몸집을 키우자는 주장은 도시의 규모가 커질수록 경쟁력도 커진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실제 주요 선진국에서 메가 리전(Mega Region·초거대 도시 연결권) 작업이 추진돼 성공을 거둔 사례가 있다. 영국의 ‘더 그레이터 런던’이나 일본의 ‘도쿄도’, 프랑스의 ‘그랑파리’ 등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런던의 면적은 1572㎢다. 유럽 전체 대도시 가운데 가장 크다. 인구는 2019년 기준 880만 명 정도다. 196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런던과 주변 지역이 합병돼 ‘그레이터 런던’이 됐다. 이젠 그레이터 런던을 곧 런던이라 한다.
도쿄도 비슷한 경우다. 도쿄는 아시아의 대표적 메가시티다. 면적은 약 2190㎢, 인구는 1400만 명을 넘는다. 1943년 현재 도쿄도 행정구역이 완성됐다. 23개 특별구를 중심으로 서쪽 다마 지역과 남쪽 도서부로 구성된다.
문제는 서울이 수도권을 흡수할 경우 지방의 입지가 더 좁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에 인구 절반이 쏠리며 지방 소멸에 대한 우려가 큰 가운데 ‘국토 균형발전’은 국가적 과제가 됐다. 역대 정부도 이를 중시했고, 윤석열 정부 역시 ‘지방시대위원회’를 대통령 소속 자문위원회로 출범시키고 ‘지방시대 종합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방의 자치 역량을 강화하고 양질의 교육과 일자리 인프라를 확충하겠다는 취지다. 결국 광역서울도나 대수도론은 선거용으로 그칠 수밖에 없었다.
선거가 다가오자 해묵은 메가시티 담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국민의힘이 경기 김포시의 서울시 편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화두를 던졌다. 2023년 10월 30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수도권 신도시 교통 대책 마련 간담회에서 “김포시가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 서울시로 편입하겠다는 절차를 거친다면 주민들 의견을 존중해서 적극적으로 김포시를 서울시에 편입하는 절차를 당정 협의를 통해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메가시티 담론은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가 되는 듯했다. 김포뿐 아니라 구리와 고양, 하남, 광명, 부천, 성남, 남양주 등 서울과 인접한 지역도 서울에 편입될 수 있다는 여지가 생기면서 수도권 전체가 들썩였다.
단순히 수도권 표심을 노린 전략일 뿐만 아니라 김동연 경기지사가 추진하던 경기분도 구상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점에서 정치적 묘수로 평가받기도 했다.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는 김동연 경기지사의 핵심 공약이다.
김포시의 위치도 논란을 키우고 있다. 경기 북부로 보기엔 다소 모호하다. 북쪽으로 북한에 접해 있기는 하지만 한강에 가로막혀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경기 남부로 보자니 남쪽이 인천시에 막혀 있다. 마치 섬과 흡사한 형태를 보인다.
국민의힘은 김포시 편입을 먼저 이슈화한 뒤 점차 논의의 판을 키웠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김병수 김포시장을 시작으로 백경현 구리시장, 이동환 고양특례시장, 신계용 과천시장 등을 줄줄이 만나며 보폭을 확대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메가시티 담론을 “총선용”이라며 평가절하하면서도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당성이나 실현 가능성을 떠나 국민의힘이 수도권 선거 이슈를 선점했다는 점에서다. 이에 김포시의 서울 편입을 반대하는 대신 서울 지하철 5·9호선 연장안을 다시 꺼내 들었다. 1기 신도시 특별법을 신속하게 처리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실제 이때부터 여야는 그간 지지부진하던 1기 신도시 특별법 논의에 속도를 붙이기도 했다.
“선거용 정치쇼”
부동산 전문가들은 경기 김포시의 서울시 편입이 이 지역 주택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사진은 2022년 11월 10일 경기 김포시 운양동 한 아파트 단지 전경. [뉴스1]
김포시 주민의 불만은 극에 달해 있다. 정부·정치권에서 김포시의 규모만 키워놓고 정작 교통 인프라를 마련하는 데에는 뒷전이었던 역사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김포시 인구는 현재 외국인을 포함해 50만 명을 넘어섰다. 인구 증가 계기는 한강신도시 개발이다. 노무현 정부가 발표한 2기 신도시 가운데 한 곳으로 정해진 뒤 개발이 시작됐고, 2010년대 초부터 입주가 이어지며 인구가 늘었다.
동쪽 지역의 경우 신축 아파트 비중이 높고 도시 정비가 잘돼 있어 주거 환경이 좋다는 평가를 받지만 열악한 교통 환경 탓에 서울 인근 지역 중에서도 집값이 저평가돼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김포시가 경기도 내에서도 활황기엔 집값이 늦게 오르고 침체기엔 먼저 떨어지는 특징을 보인다고 설명한다. 2023년만 봐도 인근의 파주시나 고양시는 하반기 들어 집값이 상승하는 흐름을 보였지만 김포시는 뚜렷한 반등세를 만들지 못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김포는 서울로 출퇴근하는 이들이 많은 위성도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에 비해 도로나 지하철 등 교통이 불편하다는 점에서 지역민의 불만이 크다”며 “다른 신도시에 비해서도 교통이 열악한 만큼 김포시만 소외받고 있다는 목소리도 많다”고 설명했다.
서울 편입론이나 지하철 연장안은 이러한 김포시민의 표를 얻기 위한 전략이라는 의심을 사고 있다. 김동연 경기지사는 김포시의 서울시 편입에 대해 “김포 시민을 표로만 보는 개탄스러운 선거용 정치쇼”라고 비판했다.
공약 잇달아 나올 듯, 실현 가능성은 글쎄…
선거를 앞두고 정부·정치권이 내놓을 개발 정책과 공약이 지속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규제 완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며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이슈도 되살리고 있다.GTX-A 수서~동탄 구간은 2024년 3월 말 조기 개통한다고 밝힌 바 있다. 원래 6월 개통이 예상됐지만 시점을 선거 전으로 앞당겼다. 여기에 GTX-B, C 노선은 조기 착공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신설 노선인 D, E, F 구간에 대해선 임기 내 예비타당성 조사를 비롯한 모든 절차를 완료하고 공사가 시작될 수 있게 준비를 마무리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취임 후 GTX D, E, F 노선 사업에 대한 의지를 밝힌 건 처음이다.
그간 선거 과정에서 이런 공약이 발표될 경우 개발 기대감 등으로 집값이 들썩이는 경우가 많았다. 해당 지역민들의 기대가 커지는 것은 물론 투자 수요가 쏠리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번 선거에서는 그런 효과가 크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간 정치권에서 경쟁적으로 내놓은 개발 공약들이 선거용으로 끝난 경우가 많은 데다가 최근 들어선 국내 주택시장이 침체됐기 때문이다.
실제 가장 이슈화된 메가시티 담론의 경우 논의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가 실현 가능성에 대한 불확실성의 영향으로 해당 지역 주택시장의 반응은 미적지근한 상태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여당 내에서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국민적 공감대도 없는 정치공학적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고, 홍준표 대구시장 역시 “서울을 더 비대화시키는,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김인만 소장은 “김포시 서울 편입론은 처음엔 이슈몰이에 성공했지만 이후 구체적 후속 조치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반대 여론도 있다 보니 김포 시민들 사이에서도 ‘결국에는 총선용이 아닌가’ 하는 반응이 늘고 있다”며 “특히 지금은 집값 상승기가 아니기도 해서 시장에 영향을 더욱더 미치지 못하는 듯 보인다”고 분석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개발 공약의 경우 집값이 올라갈 때는 시장을 자극하는 불쏘시개가 될 가능성이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특히 일부 지역이 서울로 편입된다고 해서 해당 지역의 입지 등 체질이 근본적으로 변하는 게 아니다 보니 영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선거 이후 논의가 더 구체적으로 진행된 뒤에야 주택시장이 반응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2024년 건설·부동산 경기 전망 세미나’에서 “4월에 있을 총선을 전후해 부동산 시장 흐름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며 “GTX 개통 등 이벤트가 있으나 이미 해당 지역 집값에 반영된 듯하다”고 분석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주택시장 분위기가 가라앉은 데다가 현실화 가능성 역시 알 수 없기 때문에 수요자들도 섣불리 움직일 필요는 없다”며 “메가시티 담론이 수도권의 공감을 얻어 여당이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논의가 진척될 가능성이 있지만 반대로 야당이 이긴다면 관련 논의가 더는 이뤄지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