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의 정치’ 가로막는 이준석의 ‘너 죽어라’ 비판
호의적 조언에도 피해자 탓한다며 맞대응
자기중심주의 성격이 비극의 씨앗… 성찰 불능 상태
“이준석은 공도동망(共倒同亡)의 길로 가고 있다”
민주당 이길 컴퓨터지만 인간애가 없다는 흠결
윤석열 실패한다면 그것이 이준석의 승리일까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2023년 11월 26일 대구 북구 엑스코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우리의 고민’ 토크 콘서트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영상] 이준석 즉문즉답
윤석열·이준석 화해는 가능한가
2023년 12월 4일 조선일보에 실린 ‘이준석, 보수에 경쟁과 활기를 줄 사람… 젊을 때 YS 닮았다’라는 제목의 인터뷰 기사에서 조갑제닷컴 대표 조갑제가 한 말이다. 11월 16일 ‘이준석이라는 ‘어린 놈’’(김창균 기자)이라는 제목의 칼럼에 이어 조선일보 지면에 실린 두 번째 이준석 옹호론이다.이준석 옹호론은 이준석이 예뻐서라기보다는 이준석이 신당을 차려 총선에 임하면 국민의힘, 더 나아가 보수의 필패라는 냉정한 현실 인식 때문에 나온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이준석 화해의 칼자루는 윤석열이 쥐고 있다. 아니 ‘칼자루’라는 표현은 듣기에 민망하다. 말이 좋아 화해지, 윤석열의 일방적 굴복이 필요한 일이 아닌가. 윤석열에게 굴복하는 용단을 내리라고 촉구하거나 호소하기 위해선 이준석이 국민의힘에 꼭 필요한 이유를 납득시켜야 하며, 그 과정에서 윤석열 자신이 대통령이자 정치인으로서 자질과 능력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깨닫게 하는 게 불가피하다.
그런데 그랬다간 오히려 화해를 어렵게 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윤석열에 대해선 “통이 크다”는 등의 칭찬만 하거나 아예 언급을 피한 채 “이준석을 다시 보자”며 이준석을 미화하는 쪽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준석 옹호론은 듣기에 민망한 수준의 사실 왜곡이 어느 정도 들어가게 마련이다. 물론 관점에 따른 해석의 차이일 수 있으므로, 이건 단지 내 생각일 뿐이라는 점은 분명히 해두는 게 좋겠다.
나는 ‘타협의 정치’를 역설해 온 사람으로서 윤석열·이준석의 화해를 환영한다. 동시에 다당제를 원하는 사람으로서 신당 창당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다. 화해가 이뤄진다 해도 나는 그게 두 사람이 영혼을 쏟아서 이야기를 한 결과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선 기간에 이뤄진 두 번의 화해에 대해 민주당이 내린 진단처럼 “반창고로 땜빵한 불안한 봉합”이 총선을 앞두고 또 한 번 이뤄진 것에 불과하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런데 나는 윤석열·이준석의 화해를 원하는 사람들이 왜 자꾸 이른바 ‘싸가지론’의 오·남용으로 이준석의 성찰 가능성, 즉 발전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는지 그게 안타깝다. 이준석이 싸가지 문제 때문에 당했다는 식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한데, 이건 매우 잘못된 오해요 착각이다. 이렇게 보는 사람들은 이준석을 당대표로 뽑아준 2021년 6·11 국민의힘 전당대회 결과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준석이 싸가지가 있어서 뽑아준 건가. 아니면 그때까진 싸가지가 있었는데, 당대표가 된 후에 싸가지가 없어진 건가.
화해 어렵게 만드는 ‘너 죽어라’ 비판
세상에서 흔히 쓰는 용법의 싸가지로 말하자면, 싸가지가 없는 건 이준석의 장점이자 강점이었지 약점이 아니었다. 문제의 핵심은 싸가지가 아니라 성격이었다. 싸가지 문제도 성격으로 볼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한두 단계 더 근본적인 성격의 문제라는 뜻이다. 이준석은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걸 싸가지 문제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게 아니다. 자기중심적 권위주의다.예컨대, 이준석이 입당 전 윤석열을 ‘비빔밥의 당근’ 정도로 비유하고, 입당 후 윤석열에게 ‘연습문제’를 내고 그걸 수행하면 자신도 선거전에 적극 나서겠다고 제안한 걸 상기해 보라. 이건 싸가지와는 다른 문제다. 물론 그의 비유나 제안은 신선한 아이디어를 관철하기 위한 재미있는 꾀로 볼 수도 있는 것이었지만, 중요한 건 이게 그가 윤석열을 대하는 방식의 전형이었다는 점이다.
세상의 짐작과는 달리 이준석은 그간 젊은 나이 때문에 불이익은커녕 오히려 이익을 본 경우가 더 많았다. 가장 큰 이익은 그의 자기중심적 권위주의를 은폐해 준 효과다. 권위주의는 성격의 문제임에도 나이의 문제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이준석이 갈등을 빚는 주요 상대는 윤석열을 포함해 50~60대의 중진 정치인들이었기에 이건 매우 중요한 문제다.
30대가 60대의 권위주의를 비판하는 건 다른 사람들의 지지와 공감을 얻기 쉬운 반면, 60대가 30대의 권위주의를 비판하면 사람들은 60대를 향해 포용력이 없다거나 나이 차별을 한다는 등 엉뚱한 꼰대 타령을 해대는 경향이 있다. 이준석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청년 정치인과 싸우는 걸 본 적이 있는가. 이때 비로소 그의 약점이 드러난다.
2022년 8월 18일 당시 청년재단 이사장이던 장예찬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이 국회 소통관에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행보에 대해 비판 성명을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평소 나의 지론이지만, 바람직한 의미의 ‘타협의 정치’를 위해선 ‘너 죽어라’ 비판과 ‘너 잘돼라’ 비판을 구분해서 평가해 주는 게 필요하다. ‘너 죽어라’ 비판은 상대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타격을 입혀 망하기를 바라면서 하는 비판이다. 그 반대편에 ‘너 잘돼라’ 비판이 있다. 비판자의 입장에서 비판의 대상에게 어떤 식으로건 도움이 될 수 있게끔 소통의 선의와 진정성을 갖고 하는 비판이다.
조갑제는 앞서 언급한 인터뷰에서 “이준석 씨는 현직 대통령과 맞짱 뜨려는 사람이다. 그런 용기가 여권에선 드물다. 내가 젊을 때 취재했던 김영삼과 닮았다”고 했다. 그간 ‘내부 비판’을 적극 옹호해 온 사람으로서 나 역시 대통령과도 맞짱 뜨려는 이준석의 자세는 긍정 평가할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준석이 윤석열을 겨냥해 발사한 비판의 대부분이 상호 화해를 매우 어렵게 만드는 ‘너 죽어라’ 비판이었다는 게 중요하다. 나는 이준석의 성찰과 성장을 위해선, 더 나아가 한국 정치의 비판 문화 발전을 위해선 이걸 깨닫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 그런 욕을 먹었는지도 생각해 봤으면”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2022년 8월 13일 ‘성상납 증거인멸 교사’ 의혹으로 중징계를 받은 이후 36일 만에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감정에 북받쳐 울먹이던 그는 “이 새끼 저 새끼 하는 사람을 대통령 만들기 위해 당대표로서 열심히 뛰었다”며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고, ‘윤핵관’과는 끝까지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뉴시스]
그러나 보수층이나 국민의힘 지지층의 생각은 크게 달랐다. 그들은 이준석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봤다. 보수층 응답자는 이준석 34.4%, 윤석열 30.9%, 권성동 및 윤핵관 23.9%였다.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도 이준석 43.9%, 권성동 및 윤핵관 27.2%. 윤석열 15.3%였다.
여론조사마다 다르긴 하지만, 일관되게 나타나는 건 책임을 묻는 일에 서 여권 지지층과 야권 지지층 사이에 나타나는 큰 차이였다. 여권 지지층은 이준석에게, 야권 지지층은 윤석열에게 가장 비판적 모습을 보였다. 양쪽 모두 정파적 관점에서 보는 것일지라도, 여권 지지층은 문제 해결을 더 원한 반면 야권 지지층은 야권에 유리한 결과를 더 원했기 때문이었을 게다.
그해 8월 4일 보수 진영에서 쓴소리를 잘하는 공론센터 소장 장성철은 유튜브 방송인 ‘한겨레TV’의 ‘공덕포차’에 출연해 “국민의힘이 윤 대통령을 버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함과 동시에 “이준석 대표가 신당을 창당해 다음 총선과 대선의 판을 흔들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준석이 언제부터 신당 창당의 가능성을 만지작거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8월 중순 이후 그의 윤석열 비판의 강도는 서로 완전히 끝장을 본 것처럼 강해졌다.
이준석에게 호의적이던 대구시장 홍준표는 이준석이 8월 13일 기자회견에서 “이 새끼 저 새끼 하는 사람을 대통령 만들기 위해 열심히 뛰었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왜 그런 욕을 먹었는지도 생각해 봤으면”이라고 말했다. 이거야말로 정말 이준석을 아끼는 좋은 조언이었다. 이 조언에 대해 이준석은 ‘피해자 탓하기’라는 식으로 대응했지만, 이는 자신의 성찰 불능 상태만 폭로했을 뿐이다. 왜 자신이 받은 상처만 기억하고 자신이 남에게 준 상처는 눈치조차 채지 못한 건지, 그의 이런 자기중심주의 성격이 비극의 씨앗이었다.
생각해 보라. 2022년 1월 7일 윤석열이 이준석과 화해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를 올리자, 민주당과 진보 언론은 윤석열을 가리켜 ‘이준석 아바타’라고 비난했다. 고집 세고 독단적인 윤석열이 누구의 아바타 노릇을 할 사람인가. 그 정도로 윤석열이 이준석의 ‘지시’를 잘 따랐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 식의 ‘윤석열 장악’이 가져올 부작용은 생각하지 못한 채 8·13 기자회견에서 억울하다고 울기만 했던 이준석의 둔감함이 딱했다. 이준석이 일방적으로 잘못했다는 게 아니다. 이준석은 정치 신인 윤석열에게도 으스댔듯 ‘프로’가 아닌가. 정치판에서 그 나름대로 산전수전 다 겪은 프로라면 자신의 언행이 초래할 결과에 대해 그렇게까지 둔감해선 안 될 일이었다.
검찰의 상명하복 문화에 길든 윤석열의 권위주의를 적당히 이용할 생각을 해야지 그걸 깨부수겠다며 모욕감을 느끼게 하는 방식까지 쓰는 게 과연 프로가 할 일이었느냐는 것이다. 왜 이 점에 대해선 성찰하지 않은 채 갑자기 순진한 아마추어 청년으로 돌아가 공개된 자리에서 억울하다고 울어댄 걸까. 두 얼굴을 필요에 따라 바꿔 쓰는 편의주의는 아닌가.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말하는 화법
이준석은 8월 15일 윤석열의 대통령 취임 100일 성적에 25점을 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25점도 후한 점수였다. 사흘 후인 8월 18일 이준석은 윤석열에 대해 사실상 사기 혐의를 제기했으니 말이다. 20여 일 전에 꺼낸 ‘양두구육(羊頭狗肉)’ 혐의를 구체화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집을 분양했으면 모델하우스랑 얼마나 닮았는지가 중요한 거다. 모델하우스 가보니까 금 수도꼭지가 달려 있고 (분양받은 집에) 납품된 걸 보니까 녹슨 수도꼭지가 달려 있다. 그러면 분양받은 사람이 열받는 것이다.”윤석열은 녹슨 수도꼭지를 금 수도꼭지라며 팔아먹은 사기꾼이었나. 녹슨 수도꼭지라는 건 이준석의 주장일 뿐 아직 검증된 건 아니었다. 만약 이준석의 주장이 옳다면, 그 아파트 판매의 총책을 맡았던 그는 무슨 죄를 지은 것이었을까. 그가 녹슨 수도꼭지임을 알고서도 판촉에 나섰다면, 이준석이야말로 사기꾼이 아닌가.
이준석을 가리켜 “크게 이길 대선을 질 뻔하게 만든 인물”이라는 주장도 있긴 하지만, 이준석이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온몸과 영혼을 바쳐 애를 썼다는 걸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게다. 그가 윤석열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선거 기간 내내 ‘금 수도꼭지’를 외쳐댔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없을 게다. 그랬던 그가 이제 와서 자신의 판매 제품이 사기이거나 25점짜리라고 주장하면 어쩌자는 건가.
그 주장에 진정성이 있다면 이해할 수도 있다. 아니 감명을 받을 수도 있다. 이 경우에 진정성은 자신의 과오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사과를 수반하는 것이어야 한다. 결코 당당하게 큰소리치는 모습이어선 안 된다. 자신이 언제 ‘녹슨 수도꼭지’임을 알게 됐는지 소상히 밝히면서 결과적으론 자신도 피해자임을 납득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의 주장엔 호전성만 두드러졌을 뿐 진정성은 없었다. 이준석은 당 징계의 위협에 시달리던 7월 3일 “제가 제대로 역할을 맡으면 윤석열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도 하락 문제를 20일이면 해결할 자신이 있다”고 했다. 단 20일 만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어떻게 25점과 ‘녹슨 수도꼭지’로 나아갈 수 있었던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준석은 논리의 세계를 떠나 상상력의 세계로 깊숙이 진입했다. 그의 상상력은 날개를 활짝 편 것처럼 보였다. 그는 8월 22일 밤 MBN ‘판도라’에 출연해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거론하며 자신은 주인공인 장군 출신 노예 검투사 막시무스, 윤석열은 막시무스를 내친 황제 콤모두스로 각각 빗대며 이렇게 말했다. “검투사가 대중의 인기를 받게 되고, 인기를 잠재우기 위해 황제 본인이 직접 검투사와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황제가 자신감이 없으니까 경기가 시작되기 전 옆구리를 칼로 푹 찌르고 시작한다.”
이에 홍준표는 이준석이 자신을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주인공 막시무스에 빗댄 점을 활용해 “막시무스는 구질구질하지 않았다. 자신이 살려고 동료 집단을 매도하는 비열한 짓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나가면 코미디가 된다”고 자중을 요청했다.
이준석은 도대체 왜 그런 걸까. 한겨레 기자 오연서가 ‘이준석 ‘독설 난사’ 프로게이머 닮았다… 상대가 쓰러질 때까지’라는 제목의 8월 23일자 기사에서 이준석을 잘 아는 한 국민의힘 인사의 입을 빌려 답을 제시했다. “이준석은 프로게이머처럼 정치를 한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말싸움으로 상대방을 공격해서 게임처럼 이기는 것을 정치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말로 상대방이 고통스러울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말을 한다.”
사실 그런 능력에 관한 한 이준석은 라이벌이 없는 국내 최고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해서 얻는 게 도대체 뭐냐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다. 프로게이머로서 전설을 남길 수는 있을망정 정치판의 문법으론 그의 정치는 사실상 전설을 위해 자신을 죽이는 ‘순교자 정치’였다.
이준석의 복수혈전(復讐血戰) 정치는 급기야 윤석열을 ‘신군부(新軍部)’에 비유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효력 정지 가처분 인용을 호소하는 내용의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는데, 그 내용이 8월 23일에 알려졌다. 그는 자필 탄원서에서 “사태를 주도한 절대자는 지금의 상황이 사법부에 의해 바로잡아지지 않는다면 비상계엄 확대에 나섰던 신군부처럼 비상 상황 선포권을 더욱 적극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썼다.
“적을 미워하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당내에서는 “전직 여당 대표가 소속 대통령을 신군부에 빗댄 것은 선을 넘었다”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이준석은 그런 비판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국민의힘을 유출자로 지목하며 비판했다. 세상에 이런 자해(自害)가 또 있을까. 윤석열은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사라질 정치인에 불과했지만, 국민의힘은 자신이 몸담은 정당이 아닌가. 앞으로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실현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터전이 아닌가. 그런데 왜 그런 국민의힘과 당원들마저 자신의 적으로 만들면서까지 윤석열과 싸운 걸까.이 또한 게임의 전설을 만들기 위한 ‘순교자 정치’ 외엔 달리 생각할 길이 없지만, 내가 지난 호에서 인용한 명언에 그 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절대로 적을 미워하지 마라. 판단력이 흐려진다.” 영화 ‘대부 3’에서 대부 마이클 콜레오네가 한 말이다. 나는 이 말을 대선 전 이준석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민주당 진영 사람들을 향해 던졌지만, 이젠 이준석 자신에게 어울리는 말이 됐다는 게 씁쓸하다. 이준석은 윤석열에 대한 미움과 증오로 판단력이 흐려진 것이다. 그는 만 36세 2개월의 젊은이에게 당대표직을 맡긴 자기 정당의 놀라운 혁신 의지를 믿지 않은 채 윤석열과 벌이는 전쟁에 눈이 먼 나머지 모든 판단을 그르치고 말았다.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2023년 8월 30일 대구 달서구 두류야구장에서 열린 ‘2023 대구 치맥 페스티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홍 시장은 이 전 대표가 2022년 8월 SNS에서 당 지도부를 향해 연일 막말을 쏟아내던 당시 “이젠 독가시를 가진 선인장이 돼버린 이 전 대표를 윤 대통령 측에서 품을 수 있을까”라고 우려를 표했다. [뉴시스]
8월 26일 법원이 이준석이 제기한 주호영 비대위원장 직무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하자, 전 민주당 의원 금태섭은 “이번 결정은 국힘(국민의힘)의 완패인 것이 틀림없지만, 누구의 승리라고도 말할 수 없는 정치의 완패”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금 정부가 겪는 가장 큰 문제는 방향이나 노선보다 오히려 실력 부분이 더 큰 것 같다”며 “핵심적인 일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구성원의 질과 실적이 참담한 수준”이라고 평했다.
자신의 승리임을 확신한 이준석은 8월 28일 페이스북에 영화 ‘반지의 제왕’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올린 후 등장인물 아라곤의 대사 “오늘은 아니다, 오늘 우리는 싸운다”를 영어로 적어 올렸다. 이에 이준석과 가까운 의원 조해진은 페이스북에 “최근 이 전 대표의 행보는 정치적 생존을 위한 자기방어, 자구행위를 넘어 이판사판,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공도동망(共倒同亡)의 길로 가고 있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그는 “대통령과 정부, 당은 살아남지만, 이 대표는 죽는다”며 “이 전 대표는 정치적 자폭 테러를 협박하지만, 둘 다 죽는 경우는 절대 생기지 않는다.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고 했다.
온라인에서 ‘준석맘’이란 별명을 얻은 정미경은 중앙일보 8월 31일자 인터뷰에서 “이준석은 컴퓨터 같은 존재다. 너무나 훌륭한 컴퓨터, 민주당을 이길 수 있는 컴퓨터다. 그런데 사랑이 빠진 컴퓨터다. 정치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인간애가 부족한 점이 안타깝다”고 했다.
이준석은 2022년 9월 7일 저녁과 8일 아침 잇따라 국민의힘과 윤석열을 저격하는 듯한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동영상이나 사진)’을 SNS에 게재했다. 그러자 홍준표는 SNS를 통해 “끝없는 조롱 정치로 분탕질을 계속하면 자신도 조롱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며 ”박근혜·손학규·안철수를 조롱할 때와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른데 똑같은 상황으로 착각하고 계시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신군부 다음엔 북한인가. 이준석이 9월 30일 페이스북에 올린 다음 글은 어떤가. “핵을 가질 때까지는 어떤 고난의 행군을 걷고 사람이 굶어 죽고 인권이 유린돼도 관계없다는 휴전선 위의 악당들을 나는 경멸한다. 마찬가지로 당권, 소위 공천권을 갖기 위해서는 어떤 정치 파동을 일으키고 당헌·당규를 형해화하며 정권을 붕괴시켜도 된다는 생각을 가진 자들에 대한 내 생각도 다르지 않다.”
‘고슴도치 딜레마’의 극단적 형식
그러나 세상은 이준석의 뜻대로만 돌아가진 않았다. 2022년 10월 6일 법원은 이준석이 당과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 및 비대위원들을 대상으로 제기한 3·4·5차 가처분에 대해 일괄 각하 및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준석은 대표직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추가 징계까지 받았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6일 저녁 7시부터 회의를 시작해 5시간 30분이 넘는 마라톤 회의 끝에 7월 8일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중징계를 내린지 3개월 만에 당원권 정지 1년 중징계를 추가로 내림으로써 이준석은 치명적인 정치 위기에 몰렸다.물론 이준석 측 인사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하태경은 “윤리위 징계는 옹졸한 정치 보복”이라고 비판했는데, 타당할망정 적합한 비판은 아니었다. 옹졸한 정치 보복은 여론으로 응징할 수 있는 것인데, 문제는 이준석에 대해 보수 진영의 다수가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그러는 당신은?”이라는 의문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예컨대, 조선일보 논설위원 선우정은 ‘보수 여당 대표의 처신’(2022년 9월 14일자)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보수의 관점에서 이 대표의 핵심 문제는 도덕성이다. 논란이 많은 성 매수 주장을 들추려는 게 아니다. 보수주의는 좌파처럼 순결한 사람만 정치를 해야 한다고 위선 떨지 않는다. 다만 문제가 생겼을 때 법에 앞서 도덕성을 처신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대표의 정무실장은 성 매수 주장과 관련된 제보자에게 7억 원 투자 각서를 써줬다고 한다. 만약 대통령 부인의 비서관이 유흥업소 취업 주장과 관련된 제보자에게 투자 각서를 써준 사실이 드러났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차이가 없다고 본다. 보수정당 대표라면 그는 이 일만으로 스스로 물러났어야 한다. 그런데 그는 일가족 비리 수사 때 조국 교수와 당시 집권자들이 보여준 행동을 따라 하고 있다. 도덕성이 아니라 대중 선동을 처신의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사실 문제의 핵심은 이준석이 사라진 이후의 국민의힘이 더 나아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하겠다는 듯, 경향신문의 2022년 10월 18일자 기사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이준석 사라지고 ‘도로한국당’’. 그렇다. 바로 이게 문제였다. 이준석과 윤석열의 관계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선 같이 붙어 있어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서로 찌르는 ‘고슴도치의 딜레마’의 극단적 형식인 것처럼 보였다.
이준석의 적, 아니 원수가 된 윤석열이 실패할 가능성은 높다. 나는 매우 높다고 보는 편이다. 중요한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게 이준석의 승리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윤석열의 몰락 위기가 이준석에게 움직일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은 열어줬지만, 궁극적으로 윤 정권의 실패 책임은 윤석열 다음에 이준석이 지게 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선 윤석열은 이미 진 해요, 이준석은 떠오르는 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윤 정권의 실패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사람은 바로 이준석이다.
윤석열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준석도 자신의 약속을 어겼다. 비빔밥론을 내세우면서 “저는 다른 생각과 공존할 자신이 있다”고 한 2021년 6·11 당 대표 수락 연설 때의 마음은 어디로 갔는가? 성찰은 윤석열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라 이준석에게도 필요하다. 이건 양비론으로 대해야만 풀리는 문제다. 다음 호에선 바로 이 점에 대해 더 살펴보기로 하자. (다음 호에 계속)
강준만
● 1956년 출생
●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언론학 박사
● 現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 저서 : ‘발칙한 이준석: THE 인물과사상 2’ ‘싸가지 없는 정치’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강남 좌파’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김대중 죽이기’ 外
신동아 1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