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옷 아닌 예술품 만드는 캐시미어 名家 Loro Piana

[럭셔리 스토리]

  • 이지현 서울디지털대 패션학과 교수

    입력2024-01-15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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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기가 차가워지면 포근한 스웨터를 찾게 된다. 이왕이면 캐시미어 소재의 스웨터를 입고 싶어진다. 추위가 살갗을 파고들어 뼈까지 스미는 겨울 옷감으로 캐시미어와 울은 단연 첫손에 꼽힌다. 이탈리아의 대표적 인포멀 브랜드 로로 피아나(Loro Piana)가 럭셔리 브랜드 반열에 오른 것도 고급 캐시미어 및 울 소재 제품에 특화돼 있어서다. 로로 피아나는 방수가 되는 캐시미어 스키복을 선보일 정도로 럭셔리 소재 분야에서 탁월한 품질을 자랑한다.
    로로 피아나는 보드라운 캐시미어와 울 소재로 만든 제품을 선보여 명품 브랜드 반열에 올랐다. [로로 피아나]

    로로 피아나는 보드라운 캐시미어와 울 소재로 만든 제품을 선보여 명품 브랜드 반열에 올랐다. [로로 피아나]

    패션에 진심인 이들은 눈에 띄는 현란한 디자인보다 시간의 가치와 안목이 빛나는 소재를 선호한다. 패션에서 소재는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닌, 입어본 사람만이 아는 좋은 소재를 구분할 줄 아는 식견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소재를 고집하는 패션 브랜드들 역시 진정한 럭셔리 브랜드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소재 만드는 회사로 시작한 에르메네질도 제냐, 아뇨냐, 로로 피아나 등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럭셔리 패션 브랜드다.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원산지에서 원료를 직거래하는 방식만을 고집한다. 아뇨나는 1953년부터 발렌시아가, 발망, 피에르 가르뎅, 샤넬 등 럭셔리 패션 브랜드에 원단을 공급하는 울 제조업체로 시작해 고유의 우수한 소재와 기술력을 집약한 럭셔리 패션 브랜드로 성장했다.

    로로 피아나는 하이엔드 소재를 사용하는 브랜드로 유명하다. 원료를 생산하는 현지에서 제품의 품질을 검사한 후 세계 각국에 위치한 자사 패브릭 공장으로 운송해 캐시미어의 품질을 철저하게 관리한다. 타 브랜드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최고급 소재를 사용하기에 고급 캐시미어 및 울 소재 제품에 특화돼 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3대 럭셔리 포멀 브랜드가 키톤, 브리오니, 체사레 아톨리니라면 로로 피아나는 브루넬로 쿠치넬리와 함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럭셔리 인포멀 브랜드로 꼽힌다.

    1924년 탄생한 파인 메리노 울 브랜드

    [로로 피아나]

    [로로 피아나]

    로로 피아나 가문은 19세기 초 트리베로에서 모직물 판매업을 시작했고 산업화를 겪으면서 발세시아로 자리를 옮겼다. 1924년 피에트로 로로 피아나(Pietro Loro Piana)에 의해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을 자랑하는 파인 메리노 울 제품을 선보이는 로로 피아나가 탄생했다. 1941년 피에트로 로로 피아나의 조카 프랑코(Franco)가 그 뒤를 이었다. 1970년대 이후에는 프랑코의 아들인 세르조(Sergio)와 피에르 루이지(Pier Luigi)가 아버지의 경영권을 물려받아 3년마다 교대로 회사를 이끌었다.

    로로 피아나는 1992년 남성복 업체와 맞춤 양복점으로 한국에 진출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가 터지기 이전까지만 해도 한 해 100억 원 넘는 최고급 원단을 국내 남성복 업체와 양복점에 공급하며 한국 남성들의 럭셔리 수요에 부응했다. 2006년 로로 피아나는 패션에서 선보이던 기품 있는 디자인을 홈 데코 영역으로 확장하고자 인테리어 라인 ‘캐시미어 라이프 살로토(Cashmere Life Salotto)’를 론칭했다. 이 브랜드는 캐시미어로 대표되는 시그니처 패브릭 및 인테리어 아이템을 이탈리아에서 만들어 공급한다.



    2013년 7월 LVMH 그룹은 약 20억 유로를 들여 로로 피아나 지분 80%를 매수해 최대주주가 됐다. 고유의 기법으로 만든 소재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여기는 로로 피아나는 2015년 밀라노 아트페어에서부터 섬유와 예술의 교점을 찾는 아트 협업을 선보이고 있다. 2016년에는 로로 피아나의 인테리어 라인 캐시미어 라이프 ‘살로토’의 탄생 10주년을 맞아 특별한 의미를 담아 미국 섬유예술가 실라 힉스(Sheila Hicks)와 협업 작품을 선보였다.

    2020년 남성 라이프스타일 글로벌 럭셔리 편집숍 미스터 포터(Mr. Porter)와 로로 피아나가 편집숍과 첫 협업으로 출시한 10점 캡슐 컬렉션을 선보였다. 2021년에는 일본의 스트리트 브랜드인 히로시 후지와라와 함께 캡슐 컬렉션을 진행했다. 2021년 11월 LVMH 그룹은 크리스티앙 디오르 쿠튀르 대표이사 다미엔 버트랜드(Damien Bertrand)를 로로 피아나 CEO로 선임했다. 2016년 크리스티앙 디오르에 합류한 다미엔 버트랜드는 여성 의류 사업으로 리더십을 인정받아 남성 부문과 영유아 사업까지 함께 맡고 있었다.

    동물권·인권 챙기는 생산방식

    비쿠냐(왼쪽)와 베이비 캐시미어 소재의 트레치아 메조콜로 스웨터, 더 기프트 오브 킹즈® 브이넥 니트. [Gettyimage, 로로 피아나]

    비쿠냐(왼쪽)와 베이비 캐시미어 소재의 트레치아 메조콜로 스웨터, 더 기프트 오브 킹즈® 브이넥 니트. [Gettyimage, 로로 피아나]

    로로 피아나는 1924년부터 ‘타협하지 않는 품질’을 모토로 최상의 소재로 제품을 만드는 하이엔드 브랜드라는 명성을 지키고 있다. 명품 패션 브랜드에 최고급 원단을 공급하는 패브릭 메이커(원단 제작사)이기도 하다. 로로 피아나가 쓰는 베이비 캐시미어, 비쿠냐, 더 기프트 오브 킹스®(The Gift of Kings®), 알파카 등은 가장 값진 것으로 평가받는 하이엔드 소재다.

    이 소재들을 얻는 과정은 굉장히 섬세하다. 대부분 법에 의해 보호받는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의 털을 이용하기에 자연 상태에서 털을 깎지 않고 골라낸 것만 모아 사용할 뿐만 아니라 화학적 가공에 민감해 최대한 천연의 느낌을 살려 완제품을 만든다. 남미에 서식하는 야생 낙타류 중 하나인 비쿠냐는 2년마다 털을 깎고 최종적으로 약 120~150g의 털만 생산해 가격이 매우 높다.

    메리노 양은 주로 호주와 뉴질랜드에 서식하는데, 로로 피아나는 이 중 선별한 1000여 마리의 양에서 양질의 양모를 채집해 왕이 왕족에게만 선물로 내리던 메리노 울에 ‘더 기프트 오브 킹스®’라는 명칭을 붙인다. 더 기프트 오브 킹스®는 특유의 카네이션 향이 나며, 12미크론(1마이크론=1/1,000mm)밖에 되지 않아 캐시미어보다 더 가늘고 비쿠냐만큼 가볍다.

    캐시미어는 카프라 히르커스(Capra Hircus)라고 불리는 염소의 속 털로 비와 햇빛을 견뎌내기 위한 거친 겉 털과 달리 보드랍고 단열 효과가 뛰어나다. ‘베이비 캐시미어’는 생후 3~6개월 된 히르커스 아기 염소의 곱고 가벼운 속 털을 목동의 섬세한 빗질을 통해 채취한다. 여름엔 덥고 건조하며 겨울엔 매섭게 추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한 염소의 털은 귀한 캐시미어 원료다. 자연의 생명 주기를 고려해 털이 빠지기 시작하는 6월에 채취한다. ‘베이비 캐시미어’는 평생 단 한 번만 채집할 수 있고 1마리당 30g 정도만 얻을 수 있다. 그 희소성 때문에 더욱 값진 것이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캐시미어의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오직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사육 방식이 등장했고, 몽골 히르커스 염소의 생태계는 위험에 빠졌다. 방목하는 염소 떼가 늘어나 염소들이 먹어치우는 풀뿌리의 양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제 몽골 초원이 벌거숭이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최상의 소재는 자연에서 나오고, 자연을 보호해야 지금처럼 섬유산업이 성장할 수 있다. 이에 로로 피아나는 2009년부터 윤리적 책임을 실천하자는 취지에서 염소 목동의 헌신에 보답하고자 생산 공정, 기술을 지원했다. 아울러 중국 현지에서 캐시미어 생산을 장려했다.

    같은 해 로로 피아나는 네이멍구자치구 아라산 고원지대에서 생산한 캐시미어 품질을 최적화하기 위해 선택적 품종개량 시스템인 ‘로로피아나 방식(The Loro Piana Method)’을 개발했다. 로로피아나 방식은 염소 개체수를 줄이는 대신 방목 수준을 개선해 개체당 솜털 수확량을 많게 유지해 섬유 선도를 향상하는 데 탁월했다. 중국의 지린 농대, 네이멍구과학원, 이탈리아 카메리노대, ENEA(이탈리아 신기술·에너지원, 지속가능 경제개발기구)가 개발에 참여했다. 이 현대적 시스템은 이후 네이멍구 전체에 적용됐다.

    로로 피아나는 로로 피아나만의 방식으로 생산지를 보호하고, 주원료 공급지인 네이멍구 정부와 만나 생태 환경 정책을 마련하며, 해당 지역 대학 연구소 등에 기술을 지원하고 있다. 환경도 지키고, 품질도 최적화하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로로 피아나는 염소를 사육해 최고급 캐시미어를 채집하는 목동들을 지원하고 있다. 2015년부터 시상한 ‘올해의 로로 피아나 캐시미어 상’은 섬유의 섬도, 길이, 퀄리티를 기준으로 최상의 캐시미어를 생산한 목동에게 수여하는 것으로 목동에 대한 로로 피아나의 깊은 존경을 보여준다.

    로로 피아나는 시상을 위해 매년 전 세계 250만 타래(Bales)의 섬유 중 굵기가 가장 가는 섬유를 선정한다. 첫해에 수상한 캐시미어 섬유는 14미크론(1마이크론=1/1,000mm)이었다. 2019년에는 굵기가 13.6미크론까지 줄어들었다. 섬유가 가늘수록 원단은 가벼우면서 따뜻하다. 로로 피아나는 더 질 좋은 섬유에 더 나은 가격을 제시함으로써 목동과 사육자가 염소의 수를 늘리지 않고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신경 쓰고 있다.

    3월 15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서 전시한 로로피아나 선물 가방. [Gettyimage]

    3월 15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서 전시한 로로피아나 선물 가방. [Gettyimage]

    완제품에 이르는 여정을 기록하다

    매년 최고 품질의 재료를 공급하는 농장주를 선정해 글로벌 시상식을 치르는 것 외에도 가장 좋은 조건의 수매 제안으로 농장주와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다. 최상의 캐시미어를 확보하기 위해 베이징과 울란바토르에 있는 로로 피아나 몽골리아 주식회사를 통해 중국 정부 기관과도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페루에서는 비쿠냐의 멸종을 방지하기 위해 ‘프랑코 로로 피아나 자연보호 구역’을 만드는 등 의미 있는 활동을 벌인다. 페루에 서식하는 비쿠냐는 완전한 야생동물이어서 울을 얻기가 무척 어렵다. 로로 피아나의 시도가 있기 전까지 비쿠냐 울을 얻는 유일한 방식은 비쿠냐를 죽이는 것이었으나 로로 피아나의 비쿠냐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10년 만에 비쿠냐 개체수도 다시 증가했다.

    로로 피아나는 ‘펭귄: 위대한 모험, 2005’라는 다큐멘터리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뤽 자케(Luc Jacquet) 감독과 3년에 걸쳐 환경을 지키기 위한 로로 피아나의 패브릭을 위한 여정을 3부작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한다. 이 3부작 다큐멘터리는 로로 피아나를 대표하는 섬유인 캐시미어, 비쿠냐, 더 기프트 오브 킹스 울 섬유의 기원을 찾는 과정을 그린다. 몽골, 아마존, 남극을 배경으로 인간과 동물의 공생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진귀한 소재의 기원을 진정성 있게 짚어보고 최고의 캐시미어는 거친 대자연 속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동물과 사람이 만들어낸 기적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2019년 10월 중국 상하이 MIFA1862 아트센터에서 3부작 중 1부인 ‘캐시미어-비밀의 기원’을 공개했다. 로로 피아나에 가장 좋은 품질의 캐시미어를 제공하는 몽골 목동과 염소 떼가 공생하는 평화로운 삶의 방식을 20분 동안 보여주는 영상이다.

    2023년 로로 피아나는 디지털 정품 인증 및 생산 이력 추적 서비스를 실시함으로써 6세대를 거친 럭셔리 소재의 헤리티지를 이어간다. 2023년 봄여름(S/S) 컬렉션부터 전 세계 로로 피아나 매장에서 판매하는 더 기프트 오브 킹스® 소재의 신상품에 새로운 인증 제도를 적용했다. 고객이 더 기프트 오브 킹스® 울 상품의 라벨에 새겨진 QR 코드를 스캔하면 정품 여부와 함께 생산지부터 매장에 나오기까지 제품에 관한 모든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고객은 구매 아이템의 소유권을 등록할 수 있다. 소유권을 대대로 물려주는 것도 가능하다. 로로 피아나는 이 인증 제도를 통해 수직 통합된 공급망과 생산망으로 상품 탄생의 전 과정을 직접 관리한다. 또한 원섬유에서부터 완제품에 이르는 각 단계를 좀 더 투명하게 공개하는 한편 정품 인증, 이력 추적, 품질 보증 등의 디지털 인증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현대사회에서는 끊임없이 진품에 대한 의문으로 패션 아이템을 확인한다. 이는 하나의 캐시미어 스웨터가 리셀이나 경매 마켓에서 높은 가치를 지니며 대를 이어 보존할 만한 유산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온성이 뛰어나고 섬세한 소재를 사용해 얇고 가벼운, 즉 소재가 좋은 옷을 구입하려는 것은 사치가 아닌 옷의 가치를 알아보는 뛰어난 안목의 발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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