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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前 국정원장이 말하는 ‘대한민국의 길’

“국민 모두의 대통령 되겠다는 다짐에서 벗어나”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이종찬 前 국정원장이 말하는 ‘대한민국의 길’

  • ● 대통령 1차 임무는 국민 통합
    ● 내년 총선 시대정신은 자정(自淨)
    ● 말로만 정의 외치면 어느 국민이 믿나
    ● 과거에 부정한 것과 똑같이 행동하는 건 모순
    ● 한미동맹 흔들어놓으면 모든 게 흔들려
    ● 중국이라는 나라는 무섭고 굉장히 욕심 많아
    ● 국가가 모든 것 좌지우지하면 발전 못 해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10월 2일 이종찬(83) 전 국가정보원장은 서울 종로구 우당기념관에서 벽안(碧眼)의 독일 여성 솔베이그 토마스도티르 씨와 영어로 대화를 나눴다. 금발의 백인인 그는 독립운동가 화암 정현섭(1896~1981) 선생의 손녀다. 한국인 아버지와 아이슬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의 발자취를 좇아 우당기념관을 찾았다. 

이종찬 전 원장은 서전서숙 신민회 헤이그특사 신흥무관학교 의열단 등 항일운동 최전선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1867~1932) 선생의 손자다. 1936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태어났다. 1945년 11월 백범 김구, 우사 김규식 등 임시정부 요인들이 고국으로 돌아오려고 상하이에 모여 찍은 사진에서 백범 앞에 서 있는 9세 소년이 그다. 

이종찬 전 원장은 1980년 정계에 입문해 4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제15대 대통령직인수위원장, 국정원장(김대중 정부)을 역임했다. 현재는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장, 우당기념관 관장을 맡고 있다. 10월 2일 격동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원로(元老)를 만나 ‘대한민국의 길’을 물었다.


좌우 독립운동가 2000명 삶 전시

10월 2일 이종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장과 독립운동가 화암 정현섭 선생의 손녀가 우당기념관에서 대화했다. [박해윤 기자]

10월 2일 이종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장과 독립운동가 화암 정현섭 선생의 손녀가 우당기념관에서 대화했다. [박해윤 기자]

- 좌우 독립운동가 2000명 삶 전시-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은 잘 진행되는지요. 

“아주 큰 공사인 데다 기념비적 건물을 지어야 합니다. 설계 단계에서 원하는 작품이 안 나와 시간이 걸렸습니다. 현재는 계획대로 잘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은 2021년 완공 예정이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인근 옛 서대문구의회 청사 부지에 지어진다. 100년 전 임시정부의 통합 정신을 기려 좌우 독립운동가 2000명의 삶을 나란히 전시한다. 



- 올해가 임시정부 100년, 3·1운동 100년입니다. 식민 지배의 아픔과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부강한 나라가 됐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될까요. 

“경제적으로는 굉장히 성장했습니다. 국민소득 3만 달러에 인구 5000만 명 넘는 국가는 세계에 많지 않습니다. 러시아도 해당이 안 돼요.” 

이른바 30-50클럽에 속하는 나라는 한국,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일본 7개국이다. 

“경제력은 강해졌으나 내용적으로 보면 뭐랄까, 우리는 막 급하게 달려왔단 말이죠. 그러니까 다른 나라는 차근차근히 벽돌을 잘 쌓아서 올라왔는데 우리는 그냥 막 쌓아서 올라왔단 말이죠. 그런 탓에 아직 허점이 많죠. 그 허점을 메우는 단계에 우리가 서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진영으로 갈등하고, 세대로 갈등하는 게 발전사적으로 보면 뭔가 채워지려고 하는 하나하나의 단계라고 해석합니다.” 

-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이 상징적 건국이라면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실질적 건국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게들 얘기하는데 나는 이렇게 해석하고 싶습니다. 3·1독립선언서에는 ‘조선 건국 4252년’이라고 돼 있거든요. 건국은 돼 있고 정치 체제는 여러 차례 바뀌었습니다. 왕조도 흥망성세를 거듭했고요. 삼국시대, 남북조시대(신라, 발해), 고려, 조선, 대한제국,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한민국 이렇게 쭉 이어졌습니다.”


“임시정부, 역사의 진혼 속 한 토막”

- 4352년 전 건국된 나라에서 국체(國體)만 바뀌었다. 

“나는 그렇게 해석하고자 합니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이 조선 건국 4252년을 강조한 것도 그래서일 거예요. 대한민국 정부는 언제 수립했느냐? 1948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언제 세워졌느냐? 1919년. 이렇게 해석하자는 얘기예요.” 

- 그렇게 정리하면 건국 시점을 둘러싼 논란도 줄어들겠습니다. 

“왜 그렇게 해석하는 게 타당하냐면 국제법적으로도 그게 맞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굉장히 현명한 분이에요. 조선왕조가 1882년(고종 19년)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에 그걸 왜 안 지키느냐고 묻습니다. 이 양반이 일관되게 그런 생각을 가졌어요. 1948년 그 양반이 ‘대한민국 30년’이라고 했거든요. 우리가 지금 일본과 뭘 가지고 다툽니까. 1965년 맺은 조약을 두고 다툽니다. 건국 시점은 일본과의 역사 갈등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1965년 체결한 한일기본조약 2조는 ‘1910년 8월 22일(조약 체결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돼 있다. ‘이미 무효’를 두고 한국과 일본의 해석이 다르다. 

“영어로 ‘already(이미)가 어떤 already냐’는 겁니다. 우리는 1905년, 1907년, 1910년 조약은 너희들이 강제로 체결했으니 다 무효라는 겁니다. 일본 사람들은 너희가 1948년에 건국했으니 건국 이전까지는 유효, 1948년 이후부터는 무효라고 얘기합니다. 1948년 이전의 식민 지배가 불법이 아니라는 거죠. 우리가 1948년에 건국했다고 주장하면 일본의 논리를 따르는 꼴이 됩니다. already는 일본처럼 해석하면 안 돼요.” 

그가 덧붙여 말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에 조미수호조약을 준수하라고 요구한 것처럼 나라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게 옳습니다. 임시정부는 역사의 진혼 속에 한 토막이었습니다. 갑자기 생기고 갑자기 사라진 게 아니에요” 


“文대통령, 포용의 길에서 벗어나”

그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을 건립하면서 통합을 강조하고 있다. 

“이승만, 김원봉 다 들어가야 해요. 나는 역사는 역사라는 주의를 갖고 있습니다. 내 주장은 뭐냐 하면 임시정부 역사를 김구의 역사다, 안창호의 역사다, 이렇게 만들면 영웅의 역사가 돼버리고 맙니다. 이승만도 한 부분, 안창호도 한 부분, 김구도 한 부분일 뿐입니다.” 

- 누구의 임시정부냐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렇게 하는 건 아니다, 이거예요. 참여한 모든 사람이 임시정부예요.” 

- 북한은 임시정부를 부정합니다. 

“북한 사람들은 임시정부가 부르주아 집단의 하나에 불과하다,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그 사람들이 부정할수록 우리는 그렇지 않다, 계급이나 세대, 이념을 초월해 성립됐다고 얘기해야죠.” 

- 한국 사회가 진영으로 나뉘어 갈등합니다. 산업화, 민주화를 압축적으로 이뤄내면서 벽돌이 단단하게 쌓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런 면이 있죠.” 

- 지금의 갈등을 나중에 봤을 때 건강했다, 나라에 도움이 됐다고 느낄 수 있을까요.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해나가야 해요. 건강한 것으로 만들어가야죠. 있는 그대로의 역사뿐 아니라 현재 만들어가는 역사도 역사니까요.” 

- 나라가 둘로 쪼개졌다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어수선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다짐한 것과는 달리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길에서 벗어났어요.”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10일 취임사에서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 국민으로 섬기겠다. 오늘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인사가 한정된 사람에게서 맴돌아”

5월 2일 문재인 대통령은 사회 원로 12명을 초청해 국정 전반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 대통령에게 어떤 말씀을 했는지요. 

“독립운동가 후손에게 많은 혜택을 주는 것에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어렵게 사는 독립운동가 후손을 지원해준 것은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두 번째로 얘기한 것은 적폐청산은 1년 내에 끝내는 것이다, 1년 넘어가면 적폐청산 자체가 피곤하게 된다, 자칫 잘못하면 적폐청산이 정치적 청산으로 오해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덧붙여 말했다. 

“대통령의 1차적인 미션(mission·임무)이 뭐냐? 국민 통합입니다. 어떤 대통령도 자기 사람들만으로는 대통령을 할 수가 없어요.” 

- 대통령은 정파의 수장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이지요. 

“국민 대표니까 다 끌어안아야 합니다. 오늘부터는 나를 찬성한 사람은 물론이고 나를 반대한 사람들을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취임사에서 얘기했잖아요. 그런데 인사니 이런 게 너무나 한정된 사람들에서 맴도니까 많은 사람이 자꾸 비판으로 가는 것이다, 이렇게 보거든요. 대통령이 스코프(scope·범위)를 넓혔으면 좋겠습니다.” 

- 넓게 봐야 한다? 

“사회 원로 초청 모임에서 대통령은 적폐청산을 해야 하고, 일본과의 문제도 대법원 판결이 나왔기에 방법이 없다는 취지로 말하더군요. 대통령이 고집이 세고 사안을 좁게 보는 측면이 있다고 느낍니다.” 

그가 자리를 고쳐 앉으면서 덧붙였다. 

“대통령을 만난 날이 5월 2일이었습니다. 5월 1일 일본에서 레이와(令和) 시대가 시작됐거든요. 대통령에게 ‘아베는 문제가 많은 사람이지만 아베와 일본 국민을 혼동하면 안 된다. 모든 이웃과 더불어 잘사는 일본을 만들겠다는 게 레이와의 의미 아니냐. 대통령이 일왕에게 더 좀 친하게 잘 지내자는 표시라도 하는 게 좋겠다’고 건의했습니다. 아베를 의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10월 22일 일왕 즉위식에 총리가 가는 것으로 돼 있는데 나는 대통령이 직접 가라는 겁니다. 아베는 만나도 좋고 안 만나도 좋고요. 아베가 일본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것도 아닌데 일본 국민을 생각하면 대통령이 가야 합니다.”


“야당 행태는 보수주의 아닌 복고주의”

- 야당도 외면받는 모습입니다. 야당이 건강해야 여당도 긴장할 텐데요. 야당에 조언한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우리가 보수주의라고 말하는 데 야당이 지금 식으로 하는 건 보수주의가 아닙니다. 그게 뭐예요, 복고주의죠. 보수정당에 보수의 가치가 없어요. 이승만, 박정희가 좋다? 그게 복고주의예요. 나는 이승만, 박정희 다 위대하다고 봅니다. 할 일을 많이 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 시기로 다시 가서는 안 되잖아요. 보수의 가치를 강조하고 발전시키는 게 보수정당이 할 일이죠. 그러니까 보수주의라야지 수구주의가 돼서는 안 돼요. 자꾸 수구로 가는 것 같아요. 그러면 국민이 지지를 안 합니다. 보수의 새로운 가치를 찾아서 그리로 가라고 야당에 권고하고 싶습니다.” 

- 386 운동권 세력이 정권의 중추를 이뤘습니다. 그 사람들의 정치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집권층 대부분이 386인데 지금 식으로 가면 굉장히 비판받을 겁니다. 발걸음을 돌려야 합니다. 문을 열어야 해요.” 

- 집권 세력이 폐쇄적이라는 뜻인가요. 

“우리가 하는 건 다 정의(正義)고, 남이 하는 건 다 부정의(不正義)다, 이런 도그마에 빠져서는 안 돼요.” 

- 선악 프레임으로 세상을 본다? 

“그 시대에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는 게 먼저예요. 그 시대를 부정해버리면 자신들이 비판하던 이들과 닮아가게 됩니다. 실제로는 자신들이 비판하던 이들과 똑같아지고 있으면서 말로만 자꾸 정의를 얘기하면 어느 국민이 믿어요? 안 믿죠. 그 친구들이 우리가 민주화 세력의 주력이라고 얘기하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러나 주력이라면 주력답게 행동해야죠. 자신들이 부정했던 것과 똑같이 행동하는 건 자기모순 아니냐 이거죠.”


“한미동맹이 가장 중요한 축”

- 조국 사태는 어떻게 봤습니까. 

“형사처벌할 내용이 있는지, 없는지는 재판 과정에서 가려지겠죠. 의혹의 사실 여부에 대해서 내가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은 얘기를 안 하겠는데 하여간 그렇게 시비가 되는 사람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한 거는 잘못됐던 거다, 이거예요. 법무부 장관이라는 자리는 다른 장관하고는 다릅니다. 뭐랄까, 말하자면 ‘저울’이다 이거예요.” 

- 법무부 장관이 영어로는 ‘Minister of Justice’ ‘정의부 장관’입니다. 

“그게 저울입니다. 저울 자체를 흔들리게 만들면 안 되지요. 통상장관이나 이런 자리는 도덕적 잣대로만 잴 수 없겠으나 법무장관은 굉장히 냉철해야 한다고요. 시비가 나오면 그 사람은 아닌 거였습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10월 14일 사퇴했다. 

-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하는 모습입니다. 한국 외교는 어떤 지향을 가져야 할까요. 

“조선조 말에 김홍집 통신사가 일본에 갔을 때 중국 외교관 황준원이 ‘조선책략’이란 책을 줬습니다. 거기에 길이 있어요.” 

- ‘조선책략’은 연미(聯美) 친중(親中) 결일(結日)을 말합니다. 

“친중국 해라, 결일본 해라, 연미국 해라, 이랬잖아요. 그 프레이즈(phrase·문장) 바로 밑에 뭐라고 써 있느냐면, 미국이라는 나라는 영토적 야심이 없고 사람을 천시하지 않는다고 토를 달아놨어요. 동양에 위치한 중국이나 일본이나 러시아는 전부 영토적 야심이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 영토적 야심이 없는 미국과 잘 지내라고 한 겁니다. 나는 그 대목에 상당히 유념합니다. 그게 뭐냐, 이승만 대통령 시절부터 미국을 끌어들인 게 동양 평화에 균형자 역할을 했습니다. 한미동맹은 이승만 대통령이 만들어낸 구조(structure)인데 굉장히 잘 만들었습니다. 미국이 우리나라와 동맹을 맺고 미군이 주둔하면서 동양의 나라들이 서로 견제하는 구도가 형성됐습니다. 나는 조선조 말 때부터 지금까지 이 구조가 기본이라고 봅니다. 한미동맹이 가장 중요한 축이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이걸 흔들어놓으면 다른 게 다 흔들려요.” 

- 중국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형국입니다. 

그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과 가까워지는 것도 한미동맹의 축석(築石) 위에서 이뤄지고, 일본하고 가까워져도 한미동맹을 축으로 이뤄져야 해요. 그 기본 축을 흔들면 안 된다는 거야, 그 축에서 시작하는 게 국가 전략이다, 이 얘기를 강조하고 싶어요.” 

그는 “기본 축을 딱 유지하면서 나라를 운영해야 한다”고 연거푸 강조했다. 

“나는 중국에서 태어났기에 태생적 친중파인데도 중국에 위협을 느껴요. 중국이라는 나라는 굉장히 욕심이 많아요. 변방에 있는 나라를 다 동화시키거든요. 동화 안 된 게 우리하고 베트남밖에 없습니다. 동북공정이니 하는 게 다 뭡니까. 경우에 따라 우리를 동화시키겠다는 얘기 아닙니까.”


“동아시아에 ‘공동의 집’ 짓자”

우당기념관. 우당 이회영 선생과 독립운동을 함께 한 31인 애국지사의 삶을 전시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우당기념관. 우당 이회영 선생과 독립운동을 함께 한 31인 애국지사의 삶을 전시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자신에게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라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 되는 얘기입니다.” 

- 북한이 핵을 포기할까요. 

“나는 비핵화가 상당히 어렵다고 봅니다. 생존할 수 있는 다른 걸 갖다주기 전에는 핵 포기 못 합니다. 그런 게 있을까요. 나는 스몰 딜은 있을 수 없고, 빅 딜만이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빅 딜도 한꺼번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데 딜레마가 있어요.” 

- 여론조사를 하면 청년 세대는 통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더군요. 

“그게 당연하다고 봅니다. 통일을 얘기할 때가 아니라 평화를 얘기해야 해요. 통일은 북한도 싫어합니다. 통일을 얘기할수록 통일이 더 멀어져요. 내 주장은 뭐냐, 당장은 통일이 어렵습니다. 서독 총리이던 빌리 브란트가 뭐라고 얘기했느냐면, 통일을 얘기하기 전에 유럽부터 통합시키자고 했습니다. 유럽이 통합되면 통일은 자연스레 떨어지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우리도 동아시아에 공동의 집을 만들어 그 안에 다 녹이자, 이겁니다. 그런데 중국과 일본의 행동을 보면 그게 되겠어요? 유럽처럼 문지방이 낮춰지겠어요? 우리 세대에는 공동의 집을 짓는 게 어렵겠구나,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동양의 평화부터 이룩하면서 하나씩 매듭을 풀어가야 해요.” 

- 유럽은 했는데 동아시아가 못한 이유는 뭘까요. 

“유럽은 내셔널리즘(nationalism·민족주의)을 벌써 극복했는데 동양은 못하고 있잖아요. 내셔널리즘을 포기하라고도 하는데 포기하기가 어렵습니다. 일본이 안 하고 중국이 안 하는데 어떡해요. 욱일승천기를 게양하고 일대일로를 추진합니다. 우리만 무장을 해제하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차돌처럼 단단하게 뭉쳐 다른 나라가 건드리지 못하도록 해야죠. 고슴도치가 돼야 합니다. 말하자면 딴딴해져야죠.” 


“여당, 야당 모두 내로남불 돼버려”

- 일본과 갈등에서 분출한 민족주의는 어떻게 봅니까. 

“과한 측면이 있어요. 그거를 또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 측면도 있고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공동의 집을 세워야 합니다. 민족으로서 각자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공동의 집을 짓는 노력을 해야 해요.” 

- 내년 총선이나 다음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총선이나 대선을 통해 자정(自淨)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국회에서 여야가 싸우는데 이익을 두고 다툽니다. 네 편이니까 반대하고 내 편이니까 찬성해요. 전부 내로남불이 돼버렸습니다.” 

- 정당이 이익집단이 됐다는 말씀인가요. 

“그런 행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국회가 계속 헛바퀴 돕니다. 국민으로부터 멀어져 간다고요. 1구1인제는 승자독식이거든요. 1표라도 이기면 독식입니다. 소선거구제 탓에 우리 정치가 강퍅하게 돼갑니다. 1구1인제는 어느 정당 공천을 받느냐가 중요합니다. 공천 못 받을까 봐 허튼 소리 하고, 입을 다뭅니다. 정치가 오히려 후퇴했어요. 왜 후퇴했느냐? 1구1인제 때문입니다. 1구다인제로 선거제도를 바꿨으면 합니다. 그래야 호남에도 여야가 생기고, 영남에도 여야가 생깁니다. 1구1인제 탓에 다양성이 없어져버렸습니다.” 

- 광복 100년인 2045년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가 돼 있기를 바라는지요. 

“굉장히 걱정되는 면이 많습니다. 지금처럼 가면 인구가 반으로 줄 수도 있어요. 중국이 무섭습니다. 신장위구르나 티베트를 보세요. 홍콩 사태는 또 어떻습니까. 중국이 지방에 권한을 더 주는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홍콩에는 자치권을 주고요. 공산당이 모든 걸 틀어잡고 가는 나라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중국이 분화하고 나뉘어야 해요. 이 얘기를 중국 사람이 들으면 펄쩍 뛰겠지만 그런 나라가 좋은 나라입니다.


“집권 후반기 정책 대전환해야”

우리나라도 국가(nation)에 얽매이지 말고 좀 더 개방됐으면 좋겠습니다. 부산 울산 경남과 한반도에 가까운 일본 지역이 경제공동체를 꾸리고, 인천과 산둥성(省)이 미래를 함께 준비하는 동양이 되기를 바랍니다. 부산에서 시모노세키를 연결하는 해저터널을 뚫어 지방끼리 하나 되는 동양을 바랍니다. 국가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면 발전할 수 없어요. 우당의 정신도 그렇습니다. 우당은 ‘중앙권력을 약화시켜라, 지방은 지방대로 강화해 지방끼리 협력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대한민국이 그런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종찬 전 원장은 인터뷰를 마친 후 “문재인 정부가 발걸음을 돌려 집권 후반기 정책의 대전환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면서 “인터뷰 기사를 쓸 때 그 점을 강조해달라”고 했다.




신동아 2019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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