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1월호

반창연대 부활이냐, MJ 고사냐

  • 글: 김기영 hades@donga.com

    입력2002-11-04 13: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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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회창 후보가 기세등등하다. 노무현 후보도 반대파를 제압하고 있다. 정몽준 의원은 창당에 애를 먹고 있다. 이인제 박근혜 이한동 김종필 김윤환 등 정객들도 활로 찾기에 분주하다. 대선을 앞두고 본격적인 이합집산이 시작됐다.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대선, 관전의 맥을 짚어보았다.
    불씨가 댕겨졌다. 대통령선거를 앞둔 마지막 정계 대개편의 서막이 올랐다. 그 신호탄을 쏘아올린 이는 이완구(李完九) 전용학(田溶鶴) 두 의원. 자민련 소속이던 이의원과 민주당 소속이던 전의원은 지

    난 14일 소속 정당을 탈당한 뒤 곧바로 한나라당에 입당원서를 제출했다.

    이완구 의원은 충남 청양·홍성이 지역구인 재선의원, 전용학 의원은 충남 천안시갑 지역구의 초선의원이다. 충남 출신 두 의원의 입당은 한나라당 전체 의석이 두 석 늘어나는 것 이상의 산술적 의미가 있다.

    두 의원을 시발점으로 민주당과 자민련의 이탈세력이 동조탈당과 한나라당 입당을 강행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두 의원의 소속정당 탈당 소식이 전해진 14일 오후부터 정가에는 “4~5명의 자민련 의원과 민주당 의원 2~3명의 후속 탈당이 이어질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10월16일 경기지역 출신 반노성향 의원 9명이 집단으로 민주당을 탈당해 교섭단체 구성에 나서기로 결의했다는 소식도 알려졌다.



    왜 정치권은 정계개편에 안달이 나 있을까. 정계개편을 유발하는 구심력 구실을 하는 여야 대선주자들은 어떤 정치적 복안을 갖고 있을까.

    대통령 선거에서 중심은 후보다. 후보가 모든 가치에 우선이고 한 표라도 더 얻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는 게 선거라는 게임의 잔혹한 생리다. 권위주의 시대에는 그 한계마저 없어 득표를 위해서라면 금권선거, 관권 동원 등 불법행위도 서슴지 않았지만 요즘은 그렇게까지 막가지는 않는다. 그렇더라도 득표에 유리한 상황을 위해서라면 평소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짓을 과감하게 하는 게 선거정국의 특징임은 여전하다.

    막가파가 통하는 선거판

    이완구 전용학 의원의 탈당은 평시라면 ‘어림도 없는’ 행동이지만 선거 국면이기 때문에 용납되는 측면이 강하다. 당사자의 의사도 강했겠지만 그들을 끌어당긴 한나라당의 흡인력도 만만치 않았다. 두 의원이 탈당 기자회견을 하던 날, 한나라당 선대위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최근 개인적 인연으로 이인제(李仁濟) 의원과 통화를 했다. 이의원에게 정몽준 의원 중심의 신당에서는 이의원이 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을 탈당하더라도 정의원의 신당으로 가지 말고 당분간 제3세력으로 남아 있으라고 권했다. 그런 뒤 시간을 봐서 한나라당과 정치적 제휴를 맺어 대선에 기여해줄 것을 부탁했다. 이런 나의 제안에 이의원은 ‘알았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알았다는 이의원의 말이 긍정적인 대답으로 들렸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또 “며칠 전 전용학 의원과도 그의 거취에 관해 이야기했다. 나는 과감하게 움직일 것을 권했다. 어차피 한나라당으로 올 거라면 이당 저당 기웃거릴 것이 아니라 곧바로 민주당을 탈당해 한나라당으로 오는 것이 좋다고 제안했고 전의원도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고 정황을 소개했다.

    이 인사뿐 아니라 지금 물밑에서는 여러 경로로 민주당과 자민련 의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한나라당의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한나라당의 집권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의원 영입에 나선 한나라당 관계자들의 목소리에도 힘이 실렸고 제 발로 한나라당을 찾아와 기웃거리는 정객도 늘고 있다고 한다.

    앞서 말한 한나라당 선대위 관계자는 “전의원은 시작에 불과하며 민주당의 반노(反盧), 비노(非盧) 진영 의원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최종적으로 한나라당을 택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상황에 따라서는 이인제 의원 같은 ‘거물급’도 이회창 후보와 손을 잡는 극적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역의원의 당적변경이라는 급박한 사태가 발생하면서 한나라당의 막강 흡인력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을 뿐, 정계개편과 합종연횡의 움직임은 최근까지도 유력한 대선후보가 있는 곳에서 동시다발로 전개되고 있다.

    먼저 민주당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얼마 전까지만해도 민주당은 곧 깨질 듯 위태로웠다. 친노(親盧) 진영과 반노 진영 간 갈등의 뿌리가 너무 깊어 도저히 함께 당을 하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최근 상황이 달라졌다. 민주당의 변화는 두 군데에서 감지된다.

    먼저 노무현 후보진영. 노후보는 최근 들어 사실상 민주당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속내야 어떻든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다. 민주당 자체를 자신을 중심으로 한 선거대책위원회체제로 바꾼 것이다.

    선대위가 출범하면 당조직은 선대위에 흡수되고 당의 일상적인 활동은 정지된다. 비노(非盧) 성향인 유용태 사무총장이 가려 뽑은 최소한의 당직자 29명이 당의 일상 업무를 맡고, 나머지 당직자는 모두 선대위에 흡수돼 노후보의 대선을 돕기로 했다. 이후 들어오는 당비와 국고보조금은 선대위가 접수해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 주목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한 당직자의 전언.

    “선대위가 구성되고 사령장을 받는데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유용태 총장이 뽑은 29명을 제외한 민주당 당직자는 대략 150명이 안 된다. 그런데 선대위가 구성되고 보니까 인원이 무려 280명이 넘었다. 그러니까 민주당 기존 당직자 외에 130여 명이 더 들어온 것이다. 그들이 누군가. 모두가 노무현 후보가 개인적으로 선발한 인물들이다. 그러니까 노후보 진영에서는 만약의 사태, 즉 민주당이 분당되는 사태를 대비해 민주당을 접수할 예비인력을 준비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분당이 늦어지면서 갑자기 당직자가 2배로 늘어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눈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노후보 진영에서는 한편으로는 당을 가동할 기초인력을 준비하면서 비노 반노진영과의 당권다툼에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 노후보 비서실 사람들은 당내 반노세력을 향해 “탈당을 하려면 빨리 하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는데, 선대위 당직자 인선을 통해 이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인적자원 준비에 신경을 썼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상 당을 장악하고 재정마저 틀어쥔 노후보 진영은 그 어느 때보다 활력이 넘친다. 선대위 한 인사는 “이제야 민주당의 후보로 자리를 잡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노후보 진영은 정몽준 신당은 결국 성공하지 못할 것이고, 민주당의 정체성과 틀을 유지하고 있으면 노풍(盧風)은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신앙처럼 믿고 있는 분위기다.

    노후보가 당을 장악하는 사이, 반노·비노진영은 심각한 내분에 빠져들었다. 반노진영이 그동안 민주당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노후보가 지지를 잃어가는 반면, 정몽준이라는 대안이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

    사실상 정몽준 의원으로 후보를 교체해야 대선승리를 기약할 수 있다는 반노진영의 적극적 구애와는 달리 당사자인 정몽준 의원은 이들이 그다지 달갑지 않다는 태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정의원은 최근까지도 김근태 이부영 의원으로 대표되는 여야의 재야출신에게 집요하게 매달렸다. 재벌출신이라는 자신의 약점을 커버하기 위해서라도 개혁성향 의원들의 도움이 절실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김근태 의원은 “정의원이 노무현 후보와 경선을 하겠다고 선언해야 일이 순리대로 풀릴 것”이라며 정몽준 신당행을 고사하고 있는 상태다.

    정의원이 정작 욕심내는 인사는 정몽준 신당, 즉 ‘국민통합21’에 관심을 나타내지 않는 반면, ‘철새성향’의 의원만 신당을 기웃거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당장 절실한 현역의원 영입은 이뤄지지 않은 채 신당 구성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정몽준 신당 주변에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안동선 의원 같은 이는 “배부르고 힘 있다고 현역의원을 발로 뻥뻥 차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신당에 들어오겠다고 ‘애타게’ 신호를 보내는 현역의원들을 정의원이 모른 척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핵심 인사들 사이에서는 “국민들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는 참신한 신당을 만들지 못하면 현재의 지지율도 유지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도 커지고 있다. 사람은 넘쳐나는데 정의원이 말하는 “개혁적이고 참신한” 신당에 어울리는 사람은 없는, 풍요속의 빈곤이 정몽준 신당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라는 얘기다.

    한때 정몽준 의원과 함께하는 것이 기정사실처럼 생각되던 박근혜(朴槿惠) 의원마저도 정의원과 거리를 두는 분위기여서 신당 관계자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최근 정의원의 한 핵심측근이 영입의사를 타진하기 위해 박의원에게 전화를 했다가 냉대를 받았다는 소문도 나오는 등, 이래저래 두 사람이 함께 신당을 할 가능성은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 상황이다.

    최근 들어 또 다른 암초가 정몽준 신당의 출범을 가로막고 있다는 소문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반노진영을 대표해 정의원과 교섭에 나선 인물이 중부권 출신의 김아무개, 박아무개 의원이다. 이들 반노진영 대표의원들의 역할은 현역의원들이 민주당을 탈당해 정몽준 신당에 입당할 경우, 어느 정도 이후를 보장해줄 것인가를 두고 정의원의 동의를 끌어내는 것. 즉 과거 고(故) 정주영 회장이 국민당을 창당할 때 현역의원을 영입하면서 거액의 격려금을 지급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당적을 옮기는 데 대한 보상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게 일부 반노진영 의원들의 생각이다.

    하지만 이 역시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로 생각이 너무 달라 쉽사리 합의에 도달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만 무성하게 나돌고 있다.

    일부 대선후보 진영에서는 의도적으로 “양측이 제시한 금액의 차가 너무 커 협상이 결렬됐다더라”는 소문을 확산시키고 있는데 대다수 정치권 인사들은 이 소문이 어느 정도 사실일 것이라고 믿는 분위기다.

    비노진영의 한 인사는 “솔직히 민주당을 떠나 정몽준 신당으로 가려니 명분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현역의원들의 최대 관심사는 2004년 총선에서 당선되는 것이다. 유권자들의 의식이 높아져 당적을 옮긴 의원을 곱지 않게 보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현찰이라도 두둑히 받을 수 있어야 그나마 보상이 되지 않겠는가”라고 고백했다.

    유권자들의 철새정치인 심판

    반창연대 부활이냐, MJ 고사냐

    지난14일 민주당 탈당을 선언한 전용학 의원(오른쪽)

    유권자들이 철새정치인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예가 너무나 많아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다. DJ정권이 들어선 뒤 한나라당에서 국민회의(이후 민주당)로 당적을 옮긴 의원 가운데 수도권에 출마한 의원들이 모조리 낙선한 것이 가장 가까운 사례다. 구체적으로 김인영(수원시 권선구) 이성호(경기 남양주) 정영훈(경기 하남 광주) 김길환(경기 양평 가평) 서정화(인천 중 동 옹진군) 이강희(인천 남을) 서한샘(인천 연수) 전 의원 등이 당적을 옮겨 출마했다가 낙선한 정치인들이다. 이 가운데 일부는 16대총선 낙선을 계기로 영원히 정치권을 떠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아무튼 유권자의 심판은 무서웠고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정치인들이라 지금까지 설(說)은 무성하지만 탈당과 당적이탈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민주당 반노의원들은 ‘당적변경=낙선’이라는 징크스에도 불구하고 정몽준 신당의 문을 두드렸다가 주인인 정의원이 뜻밖에 냉대하자 지금 크게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나가지도, 그렇다고 당에 남아 있기도 어색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들 반노진영 의원들이 엉거주춤하는 사이, 노무현 후보는 앞서처럼 당을 사실상 장악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어색한 공생관계는 어떤 식으로든 곧 마무리될 것이다. 반노진영 인사들을 끌어당기는 외부의 힘이 만만치 않은 까닭이다.

    반노진영 의원들은 굳이 정몽준 신당이 아니라도 다른 활로를 찾아서 탈당을 결행할 태세다.

    현재 정가에서는 이들의 앞날에 대해 몇 가지 관측이 나돌고 있다. 대부분 반노진영 의원들과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는 전망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이인제(李仁濟) 의원과 이한동(李漢東) 전 국무총리가 연대하는 제3세력을 구축하는 방안이다. 이인제 의원을 따르는 민주당 중부권, 충청권 의원들이 탈당한 뒤 원내교섭단체 수준의 정치세력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박근혜 의원이 가세할 수도 있다. 이를 근거로 정몽준 신당과 세력간 통합으로 신당을 만들어 대선에 참여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둘째는 앞서 한나라당 관계자의 전언처럼 같은 경로로 민주당을 탈당해 제3세력을 만들지만 대선에서는 이회창 후보의 손을 들어주는 방안이다.

    반창연대 부활이냐, MJ 고사냐

    지난 6일 상암동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국신협인대회에 나한히 참석한 대선후보들

    당초 정가에서는 민주당 반노세력의 진로는 첫째 방안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정몽준 의원을 노무현의 대안으로 삼아, 혹은 단일 후보로 내세워 한나라당과 맞서야 한다는 것이 반노진영 내부의 대체적인 공감대였다.

    70%가 한나라행 지지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그 방향이 바뀌고 있다. 특히 이인제 의원계 의원들 사이에 “정몽준도 우리의 대안이 아니다”라는 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인제 계보로 알려진 전용학 의원의 민주당 탈당과 한나라당 입당은 이런 이인제계의 고민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는 것이다. 항간에는 전의원을 시발로 이인제계, 특히 충청권 민주당 의원들이 한나라당 문을 두드릴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전용학 의원의 탈당과정을 보면 이인제계가 안고 있는 고민이 어느 정도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완구 의원과 나란히 한나라당 입당 기자회견을 했지만 비교적 당당한 이의원과 달리 전의원의 표정은 시종 어두웠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 전까지도 그는 비노진영에서도 그다지 노후보를 반대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역구 사정이 좋지 않았다.

    전의원은 민주당 탈당에 앞서 지역구 당원 300여 명에게 일일이 설문조사를 했다고 한다. 어느 방향으로 정치적 진로를 잡았으면 좋겠느냐고 물어본 것이다. 그런데 응답자의 70%가 한나라당으로 가야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민주당 당적으로는 2004년 총선에 당선되기 어렵지만 정몽준 신당도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게 지역구의 여론이었다는 것이다.

    지역구 사정만 놓고 본다면 다른 충청권 민주당 의원들도 나을 게 없다. 전의원의 탈당에 이어 민주당 주변에는 제2의 충청권 탈당자가 나올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구체적으로 H의원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데 그의 경우 이미 마음은 민주당을 탈당해 한나라당에 가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들 모두가 이인제 계보 의원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인 계파정치의 원칙에서 본다면 이들 충청권 민주당 의원들이 탈당이라는 중대 결심을 앞두고 계파의 리더인 이인제 의원과 상의를 하지 않았을 거라고 보면 난센스다. 분명 사전 교감이 있었을 것이고 최소한 이의원의 암묵적 동의하에 당적을 옮겼을 것이라는 게 정가의 중론이다.

    그렇다면 이인제 의원의 행보는 결국 한나라당이라는 얘기일까. 그의 속내를 보여주는 사례 하나. 이의원과 개인적 친분이 있는 한 인사의 증언. 그는 얼마 전 정치권 외곽에 있다가 한나라당에 입당했는데 자신의 정치적 선택을 뒤늦게 이의원에게 알렸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의원은 “잘했다. 그런데 그렇게 일찍 갈 필요가 있었느냐”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런 정황을 들어 이인제 의원과 그 계파 의원들의 한나라당행을 점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이회창 후보는 충청권 장악에 필요한, 막강한 우군(友軍)을 얻는 셈이다. 정몽준 의원과의 아슬아슬한 선두다툼에서 벗어나 단숨에 우위를 점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물론 이런 정계개편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한나라당 한편에서 누군가는 이인제계 영입에 따른 손익계산을 하고 있지 않을까.

    현재 한나라당에서 이의원을 집중 마크하는 이는 이병기 정치특보다. 이특보는 평소 이의원과 개인적 친분을 유지해온 사이인데 만약 이인제계의 집단 영입이 이뤄진다면 이특보가 그 과정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같은 충청권 인사들이지만 한나라당은 자민련 의원에 대해서는 민주당의 경우와는 반대로 문제를 풀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즉 집단영입이 아닌 선별 영입이 그것. 집단 영입을 할 경우 반대여론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당내 반발때문이다.

    이완구 의원을 시작으로 S의원과 J의원, 또 다른 J의원, L의원 등이 줄줄이 한나라당에 입당원서를 제출할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한나라당 입장에서 김종필(金鍾泌) 자민련 총재는 계륵(鷄肋)같은 존재다. 받자니 여론이 좋지 않고, 거절하자니 다른 후보에게 힘을 보태줄 것 같아 불안한 존재라는 얘기다.

    하지만 정작 한나라당이 JP 영입에 소극적인 것은 그를 영입할 경우 마땅한 예우방안이 없다는 것. 그의 정치 경력상 서청원(徐淸源) 대표와 비슷하거나 이상가는 대우를 해야 할 텐데 그럴 만한 자리가 없다는 것이 고민이다. 그렇다고 상임고문으로 두자니 뒷방노인 취급한다는 불만이 나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

    JP 쪽에서야 2004년 총선에서 충청권 공천을 보장받는다면 자리문제를 떠나 입당을 심각하게 고려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가며 JP를 영입하기에는 당내 반발이 만만치 않다.

    결국 자민련 의원들의 개별적인 이탈과는 별개로 JP는 당분간 외곽에 머물며 사태를 관망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로는 자민련이라는 틀을 유지한 채 특정 대선후보와 전략적인 공조를 맺는 방식으로 활로를 개척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나라당은 김윤환(金潤煥) 민국당 대표에게도 관심을 갖고 있다. 김대표를 집중 마크하는 인물은 김영일(金榮馹) 사무총장. 6공화국 때부터 가깝게 지내온 두 사람의 구연을 바탕으로 김총장은 김대표가 다른 대선후보 쪽으로 기우는 것을 막으려고 애를 쓴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한나라당은 요즘 이른바 ‘반창(反昌)연대’ 구성원들에 대한 각개격파와 우군 만들기에 총력을 쏟아붓고 있다. ‘이회창을 고립시키기 위한 연대’를 오히려 ‘이회창과의 연대관계’로 바꾸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최근 이회창 후보가 이종찬(李鍾贊) 전 국정원장의 자서전 발간 기념회에 간 것을 연대세력 확보전략의 일환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이종찬 전원장과는 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 의원이 가깝게 지내고 있다.

    한나라당은 박근혜 의원에 대한 관심도 끊지 않고 있다. 지금도 한나라당 젊은 의원 모임인 미래연대에서는 박의원을 영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있다. 박의원 측도 “원희룡(元喜龍) 의원을 비롯한 미래연대 소속 의원들과는 지금도 대화가 잘 통한다”며 이들과의 교감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한나라당 선대위의 한 관계자는 “만약 박근혜 의원이 정치적 진로를 선택한다면 정몽준 의원보다는 한나라당 재입당을 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이를 위해서는 미래연대 의원 정도가 아니라 이회창 총재 본인이 나서야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박의원 쪽에서는 정몽준 신당보다는 한나라당 복귀가 훨씬 부담이 적은 선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이렇게 강한 흡인력을 발휘하는 데는 튼튼한 당조직이 결정적 요인이라는 평가다. 외관상으로도 한나라당이 가장 견고해 보인다. 선거대책기구도 잡음없이 구성했으며 당도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사무총장이 ‘딴 살림’을 차린 민주당과는 달리 김영일 사무총장은 선거대책위 총괄본부장으로서 조직과 재정을 확고하게 틀어쥐고 있다. 김총장은 지난 97년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 후보진영의 ‘측근 7인방’으로 분류되던 인물. 이후보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당을 확고하게 장악하고 끌어간다는 평을 받고 있다.

    만약 한나라당 의도대로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재편될 경우, 세력을 얻지 못한 정몽준 의원은 중대한 고민에 빠질 것 같다. 지난 16일 정 의원은 신당창당 발기인 대회를 열고 창당을 공식화했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개혁성향의 정치인들이 참여를 주저하는 가운데 그나마 정몽준신당에 합류하겠다는 정치인마저 냉대하는 상황이 길어질 경우 창당하더라도 미니정당에 머물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만약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정몽준 의원에게 새로운 정치변화를 기대했던 국민들은 실망하고 지지를 철회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정의원의 지지율이 가라앉는다면 누구에게 이익이 될까. 노무현 후보가 정의원에게서 떠난 표를 자신의 지지로 모아갈 수 있을까. 반대로 이회창 후보에게 지지가 몰릴 것인가.

    현재로는 그 어느 것도 장담할 수 없다. 하나의 결론을 끌어내기에는 과정 자체를 흩뜨릴 수 있는 변수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한나라당이 지금 취하고 있는 보폭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회창 후보 진영은 지금의 3자대결구도가 급작스럽게 깨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나라당의 한 재선의원은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각종 조사에도 나타나지만 1대1 대결로 대선을 치를 경우, 이후보는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이후보의 지지율이 아직 30%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 여권에서 단일후보가 나온다면 어려워진다. 우리는 적어도 3자 대결구도로 선거가 치러지기를 바란다. 이 구도라면 지지층의 충성도가 높은 한나라당이 필승이다. 따라서 정몽준 노무현 어느 한 후보의 지지율이 급격히 꺾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 때문에 청와대와 DJ를 공격함으로써 우회적으로 노무현 정몽준 후보를 건드릴 뿐 직접적으로 두 후보를 향한 네거티브 공세는 자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회창의 행복한 고민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는 이회창 후보의 한나라당, 뭔가를 보여주지 못해 난처한 정몽준 신당, 불가능할 것 같던 당 장악에 성공하고 재기의 칼날을 가는 노무현 후보의 민주당. 그리고 유력 후보들 사이에서 선택의 고민에 빠진 정치인들. 이들이 한데 뒤섞이면서 정치권은 일순간 혼란스러워졌다.

    하지만 대선이라는 결전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하나씩 하나씩 가닥을 잡아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가닥을 잡아가는 시발점을 이완구 전용학 의원의 한나라당 입당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과연 그럴까. 본격적인 대선레이스가 이제 막 시작됐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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