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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관의 조선사회 뒷마당 ②

조폭 날뛰고 포주 설쳤다

劍契와 왈자

  • 글: 강명관 부산대 교수·한문학 hkmk@pusan.ac.kr

조폭 날뛰고 포주 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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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날뛰고 포주 설쳤다
하지만 나는 검계를 민중 저항과 연결시키고 싶지 않다. 그것은 그렇게까지 거창한 사건이 아니었다. 이 자료를 ‘조야회통’의 자료와 연관지어 다시 한번 꼼꼼하게 검토해 보자. ‘조야회통’의 자료는 다음과 같다.

① 갑자년에 왜(倭)의 국서가 온 뒤로 소란이 날로 심해져 동대문으로 나가는 피난민의 가마와 짐이 꼬리를 물었다. 무뢰배들이 모여들어 계를 만드니, 혹은 살략계(殺掠契)라 하고, 혹은 홍동계(?動契)라 하고, 혹은 검계(劍契)라 하였다. 어떤 때는 한밤중에 남산에 올라가 태평소(角)를 불어 마치 군사를 모으는 것같이 하고, 어떤 때는 중흥동(重興洞)에 모여 진법(陣法)을 익히는 것같이도 하였다. 간혹 피난하는 사람을 쫓아가 재물을 빼앗기도 했는데, 어떤 경우 사람의 목숨을 해치기까지 하였다.

② 청파(靑坡) 근처에 또 살주계(殺主契)가 있었는데, 목내선의 종[奴] 또한 가입하였으므로 목내선이 즉시 잡아 죽였다. 좌우 포도청에서 7,8명을 잡아서 살주계의 책자를 얻었는데, 그 약조에 ‘양반 살육’ ‘부녀자 겁탈’ ‘재물 약탈’ 등이 있었다고 한다. 또 그 무리는 모두 창포검(菖蒲劍)을 차고 있었다. 우대장 신여철(申汝哲)은 관대하게 용서한 적이 많고, 좌대장 이인하(李仁夏)는 자못 엄하게 다스렸다. 적당들이 남대문 및 대간(大諫)의 집에 방을 걸었는데, “만약 우리가 모두 죽지 않는다면, 끝내 너희 배에다 칼을 꽂고 말리라”고 하였다.

③ 광주(廣州)에 사는 과부 한 사람이 피난하다가 길에서 적한(賊漢) 일곱 명에게 잡혀 강간을 당했는데, 적당을 잡고 보니, 그중 하나가 과부의 서얼 사촌이었고 검계의 당원이었다.

④ 교하(交河)의 깊은 산골에 시골 사람이 많이 모였다. 한 사람이 “장차 난리가 일어나면 우리도 양반으로 마누라를 삼을 수 있다”고 하자, 숙수(熟手) 개천(開川)이란 자가 큰 소리로 “듣자니 양반의 음문은 아주 좋다는데 이제 얻을 수가 있구나” 하였다. 그 마을의 양반이 이 소리를 듣고, 50대의 볼기를 쳤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광주의 적한과 함께 목을 베지 못함을 한스럽게 여겼다.



⑤ 광주의 적당을 잡아 신문할 때 청탁의 편지가 분분히 날아들자, 과부가 날마다 관문(官門)에 와서 울부짖었다. 적한이 사형되자, 과부도 목을 매어 죽었다.

‘반양반’적인 조직들

먼저 갑자년(1684년 숙종10년) 왜의 국서라는 것부터 간단히 설명해두자. 이 국서는 한 해 전인 1683년 12월 대마도주가 보낸 것인데, 그 내용인즉 명이 청에 망한 뒤 반청(反淸)운동의 잔존세력으로 대만을 근거로 삼고 있던 정금(鄭錦)이 조선을 침입한다는 것이었다. 이 근거없는 말에 조야(朝野)가 발칵 뒤집혔고, 이 난리판에 불만세력들이 준동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자료의 해독에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 자료가 어느 한 조직만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 그렇다면 어떤 조직이 있는가. ①에는 살략계(殺掠契) 홍동계(?動契) 검계(劍契)란 세 가지 명칭이 나온다. 그리고 ②에는 살주계의 존재를 말하고 있다. ‘조야회통’은 적어도 둘 이상의 조직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①의 살략계, 홍동계, 검계는 동일한 조직으로 보인다. 습진한다는 것이 숙종실록에도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주계는 살주란 말에서 보듯이 노비가 주인을 죽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이다. 검계와는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서로 다른 조직이 왜 같이 취급된 것인가. 이 조직들은 모두 양반 체제를 위협한다는 공통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④의 조직과 전혀 관계가 없는 일반 백성의 이야기가 끼어든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조야회통’의 필자는 반양반적 조직과 의식이면 구분하지 않고 한 가지로 보았던 것이다.

이런 조직은 원래 그 성격이 비밀스럽다. 역사적인 대사건이 아닌 한 기록에 소상히 남을 리가 만무한 것이다. 그렇다면 검계는 숙종 때의 소탕으로 소멸된 것인가. 뜻밖에도 검계는 사라지지 않았다. ‘조야회통’의 자료와 동일한 자료가 홍명희의 ‘비밀계’(임형택·강영주 편, ‘벽초 홍명희와 임꺽정의 연구 자료’, 사계절)에 수록되어 있다.

물론 원자료는 아니고, 이원순(李源順)이란 사람의 ‘화해휘편’이란 책을 전재한 것인데, 모두 ‘조야회통’과 같고, 다음과 같은 끝부분이 첨가되어 있는 것만 다르다. “검계는 영조 때에 이르러 다시 말썽을 피워 포도대장 장붕익(張鵬翼)이 그들을 다스렸다. 검계의 당은 모두 칼자국이 있는 것으로 자신들을 남과 구별했기에 몸에 칼자국이 있는 자를 모두 잡아 죽이자, 마침내 검계가 사라졌다(劍契至英祖朝猶作梗, 捕將張鵬翼治之, 其黨皆以劍痕爲別, 故凡身有劍痕者, 皆殺之, 遂息)”.

영조대에 와서 검계가 다시 소란을 떨었기 때문에 포도대장 장붕익이 일망타진했다는 것이다. 이 자료의 기록자는 숙종의 검계와 영조대의 검계를 동일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실은 실록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것이 아쉬운 것이다. 좀더 면밀한 자료 검색이 이루어진다면 혹 모르겠으되, 현재로서는 가망이 없다(향도계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모른다).

뒤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장붕익의 검계 소탕은 매우 잔혹하고 철저했던 것 같다. 장붕익의 일망타진으로 검계는 완전히 사라진 것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이런 비밀조직은 잘라도 없어지지 않는 법이다. 조폭이 어디 한번 소탕으로 사라지던가. 알 카포네의 죽음으로 마피아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면 그건 오산이다. 순조실록에 검계는 다시 한번 몸체를 슬쩍 드러내고 있다. 순조 3년(8월9일) 사간 이동식(李東埴)은 상소에서 검계를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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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명관 부산대 교수·한문학 hkmk@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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