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1월호

絶景과 전통문화 어우러진 ‘체험형 관광도시’

전라북도 남원시

  • 글: 양영훈 여행작가 travelmaker@hanmir.com, www.travelwriters.co.kr

    입력2002-11-05 18: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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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원시는 농업과 제조업, 서비스업의 균형있는 발전을 추구한다. 드넓은 옥토를 바탕으로 농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농업정책을 펴는 한편, 농공단지를 조성하고 투자유치팀을 가동하면서 유망 제조업체를 끌어들인다. 또한 아름다운 풍광과 전통문화를 관광상품화하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낸다.
    絶景과 전통문화 어우러진 ‘체험형 관광도시’

    지방 유일의 국립국악원인 국립민속국악원. 어현동 남원관광단지에 있다.

    ”동문 밖에 나가오면 장림숲 천은사 좋사옵고, 서문 밖 나가오면 관왕묘(關王廟)는 천고영웅 엄한 위풍 어제오늘 같사옵고, 남문 밖에 나가오면 광한루, 오작교, 영주각이 좋사옵고, 북문 밖에 나가오면 푸른 하늘에 금부용 꽃이 빼어나 괴팍하게 우뚝 섰으니 기암 둥실 교룡산성 좋사오니 처분대로 가시이다.”

    판소리 ‘춘향가’에서 방자가 새로 부임한 사또의 아들 이몽룡에게 남원 고을의 경치를 이르는 대목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동문, 서문, 북문, 남문은 옛 남원성의 성문인데, 모두 난리 중에 불타거나 헐려 없어지고 지금은 지명만 남아 이곳 토박이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그러나 천은사(선원사), 관왕묘, 광한루, 오작교, 영주각, 교룡산성 등은 옛 모양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채 여태껏 남아 있다.

    오랜 옛날부터 남원은 인근 여러 고을의 중심지 구실을 해온 고장이다. 도시의 역사는 삼국시대의 고도(古都) 경주나 부여, 공주 못잖게 유구하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서원경(청주), 북원경(원주), 중원경(충주), 금관경(김해) 등과 함께 5소경(小京)의 하나인 남원경이 들어섰고, 고려 때에는 순창, 임실의 2개 군과 장계, 장수, 구례 등의 7개 현(縣)을 거느린 남원부가 자리했다. 조선시대 들어서는 남원도호부로 승격해 담양부와 순창군 이외에 무주, 진안, 장수, 임실, 구례, 곡성 등을 포함한 9개 현을 관장함으로써 전라좌도의 경제·문화·행정·교통 중심지 구실을 했다.

    ‘沃野百里 天府之地’

    오늘날에도 남원은 전라북도 동부와 지리산 권역에서 가장 큰 도시다. 하지만 그 비중과 기능은 옛 시절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도시의 성장이 사실상 정체상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남원 사람들이 제 고장의 변화와 발전이 더디다는 점을 강조할 때는 흔히 지리적으로 가까운 전주시와 순천시를 비교상대로 든다. 남원은 일제 때인 1931년에 전주, 순천 등과 함께 읍(邑)이 되었다. 그런데 순천과 전주는 불과 18년 만인 1949년에 시로 승격된 반면, 남원은 그로부터 30여 년이나 뒤진 1981년에야 시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오늘날의 전주시가 60여 만 명의 인구를 가진 도청 소재지이고, 순천시가 인구 27만명의 중견도시로 성장한 데 비해 남원시는 인구 10만명의 아담한 소도시에 불과하다.

    이런 현실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큰 ‘인물’과 공장이 없어서 지역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급속한 공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적잖은 부작용을 겪고 있는 여느 도시들보다는 차라리 지금의 남원이 더 살기 좋다는 것이다. 사실 지역경제의 ‘낙후성’을 불만스러워하는 사람들조차도 “안정적인 생업만 확보된다면 남원만큼 살기 좋은 도시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남원은 사람 살기에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고장이다. 명산 지리산 자락이 병풍처럼 두른 분지(盆地)인 데다 청류(淸流) 섬진강의 지류인 요천(蓼川)이 일군 옥토가 사방으로 너르게 펼쳐진 덕택이다. 특히 남원은 예로부터 ‘옥야백리 천부지지(沃野百里 天府之地)’라 했을 만큼 땅이 기름진 고장이다. 실학자 이중환이 쓴 ‘택리지’에도 이런 내용이 기록돼 있다.

    “땅이 기름지다는 것은 토양이 오곡과 목화를 가꾸기에 알맞음을 말한다. 논으로 말하자면 볍씨 한 말로 나락 60말을 거두는 것이 제일이고, 40∼50말을 거두는 곳이 다음이며… 나라 안에서 가장 기름진 땅은 전라도 남원과 구례, 경상도의 성주와 진주 등 몇 곳뿐이다. 이곳에서는 볍씨 한 말을 뿌려서 많게는 140말, 보통 100말, 아무리 못해도 80말은 거두는 곳인데, 다른 데는 그렇지 못하다… 전라도에서 좌도의 지리산 곁은 모두 기름지다.”

    제조업체 끌어들이기

    이처럼 남원은 농지가 비옥할 뿐만 아니라 둘레 800리의 지리산 품에 안긴 산간지방 치고는 농지(전체의 23%)도 비교적 너른 편이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쌀 생산이 과잉상태에 이른데다 농업분야에 대한 국가차원의 보호막이 한 겹 한 겹씩 걷히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마당에 농지가 너르고 비옥하다는 것만으로는 농업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남원시는 안정적인 농업생산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경지정리, 기계화 경작로 포장, 관개·수리시설 정비 등에 적잖은 예산을 투입해왔다. 또한 최근에는 농업생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친환경농업 육성시책으로 청정미생산단지와 친환경농업지구 조성, 친환경농업마을 선정, 축산분뇨 액비화(液肥化) 사업, 우리밀 재배확대, 퇴비증산 등에 진력하고 있다. 그밖에도 ‘춘향골 흑돼지’ 등의 고소득 특화상품 생산 지원, 물류표준화사업과 농·특산물의 브랜드화를 통한 유통구조 개선, 농축산물의 해외시장 개척, 농업인의 정보화 교육 강화, 정보화시범마을(운봉읍 동하마을) 조성, 신지식농업인의 발굴 등 농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시책들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하지만 농업경쟁력을 어느 수준까지 높였다고 해도 농업만으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더욱이 남원시 주민들 가운데에는 “지역발전이 상대적으로 더딘 것은 이렇다할 제조업체가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이가 많다.

    남원에서는 오늘날까지도 목기, 부채, 한지, 상(床), 식도(食刀), 담뱃대, 유기(鍮器) 등과 같은 전통공예품이 꾸준히 생산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남원 목기는 특유의 향기와 함께 모양이 정교하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나무질이 단단해서 조선 초기부터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특산품이다. 지금도 남원 목기는 전국 생산량의 5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인기가 높다.

    지금은 사양길에 접어들었지만, 고려시대부터 이 지방에서 만들어온 부채 또한 전주의 합죽선과 함께 전통 부채의 대명사다. 흔히 ‘방구부채’라 불리는 남원 부채는 대나무 살에 깁(명주실로 바탕을 거칠게 짠 무늬 없는 비단)이나 종이를 붙여서 둥글게 만든 태극선인데, 일제시대에는 일본이나 만주로 수출할 정도로 번창했다고 한다. 그밖에 이 지방에서 생산되는 한지, 상, 담뱃대 등도 여전히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영세업체거나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생산되기 때문에 지역경제에 대한 기여도는 미미한 편이다.

    그래서 남원시에서는 지방자치제 실시 이전부터 고용창출효과가 높은 제조업체를 끌어들이기 위해 애써왔다. 또한 남원시 광치동과 어현동, 인월면에 4개의 농공단지를 조성하고, 어현동과 조산동, 운봉읍에는 목공예단지를 만들었다. 최근에는 노암동에 총 85억원의 투자비가 소요되는 신규농공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또한 용정동에는 전문기술인력을 양성하는 전북직업전문학교를 유치했다.

    그런데도 현재 남원시의 249개 제조업체 가운데 종업원이 100인 이상인 업체는 한국담배인삼공사 남원원료공장, 태전방적 등 4개 업체에 불과하며, 300인 이상 업체는 단 한 곳도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제조업체 종사자 수가 꾸준히 증가, 2000년 2549명에서 올 상반기에는 3295명으로 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남원시에서 ‘투자유치팀’을 운영하여 유망기업의 창업과 유치, 중소기업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에 힘써온 덕택이다.

    국악의 聖地

    그러나 극히 소량이라 하더라도 오염물질의 배출과 환경파괴가 필연적으로 수반될 수밖에 없는 공업화는 전통문화와 관광의 도시인 남원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어쨌거나 아직도 남원시의 산업구조에서 광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2%에 불과하다.

    또한 남원시의 재정자립도는 전국 시(市) 평균치(47.2%)에 훨씬 못미치는 15.9%다. 이런 상황에 시의 재정자립도와 주민들의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2차 산업의 비중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남원시의 산업구조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서비스업(49.4%)이다. 이는 제조업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관광산업 의존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원 시내에서 가장 흔한 게 음식점과 의류점이다. 특히 남원시 전체에 음식점이 1400여 곳에 이르는데, ‘그 많은 음식점이 어떻게 다 먹고사나’ 싶을 정도로 곳곳에 밀집해 있다. 이처럼 많은 음식점과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생업을 유지하려면 관광객을 한 사람이라도 더 유치해야 하고, 일단 찾아온 관광객들은 좀더 오랫동안 머물러 있게끔 만들어야 한다.

    남원의 관광자원은 풍부하다. 우리나라 최고의 명산 지리산과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운 강으로 꼽히는 섬진강의 품에 안긴 덕택에 천혜의 관광자원만큼은 어느 고장에도 뒤지지 않는다. 바래봉과 봉화산의 철쭉, 뱀사골과 달궁계곡의 녹음과 단풍, 만복대의 억새밭, 구룡계곡의 수많은 폭포와 소(沼) 등은 산수 좋은 남원의 대표적인 절경들이다.

    남원은 전통문화의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우리 고전문학의 백미인 ‘춘향전’과 ‘흥부전’의 무대일 뿐만 아니라 판소리 동편제의 탯자리도 여기에 있다. 동편제 판소리는, 여성적이고 섬세한 서편제와는 달리 남성적이고 웅장하다. 이는 높고 큰 지리산 자락에 깃들인 남원의 지리적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지리산 아래 자리잡은 운봉읍 화수리 비전마을은 가왕(歌王) 송흥록과 명창 박초월을 낳은 국악의 성지(聖地)다.

    조선 순조 때 활동했던 송흥록은 특히 귀곡성(鬼哭聲)에 능했는데, 그가 ‘춘향가’ 중 옥중 장면의 귀곡성을 할 때면 갑자기 하늘에서 뇌성벽력이 치고 음산한 귀신소리가 들렸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또한 그가 기생 맹렬(孟烈)과 이별할 때 즉흥적으로 불렀다는 자탄가(自歎歌)는 진양조 가락을 갖춘 최초의 판소리였다고 한다.

    송흥록의 아우인 송광록, 그리고 송광록의 아들 송우룡, 송흥록의 손자 송만갑도 당대에 내로라하는 명창으로 꼽혔다. 특히 송만갑은 약 200년의 판소리 역사에서 가장 많은 제자를 배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밖에 유성준, 김정문, 장행진, 여류명창 이화중선과 요즘 활발하게 활동하는 안숙선씨도 모두 이 고장 출신 국악인이다. 이처럼 국악의 역사와 뿌리가 든든한 남원에는 전국 유일의 국립민속국악원이 들어섰고, 지방자치단체로는 드물게 시립국악단과 시립농악단이 운영되고 있다.

    오랜 역사를 지닌 남원지방은 국보 1점, 보물 24점, 사적지 6곳 등을 포함해 국가지정 문화재만도 35점이나 보유하고 있다. 이는 전라북도 전체의 약 30%를 차지하는 양이다. 이처럼 다양한 역사유적과 전통문화를 간직한 남원은 오래 전부터 관광산업에 크게 의존해왔고 외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관광객은 광한루만 한바퀴 빙 돌아보고는 서둘러 차에 오르곤 했다. 한해 수십만명에 이르는 지리산 등산객들도 남원을 지리산의 관문쯤으로만 여기며 지나쳤을 뿐 이 고장의 다양한 역사유적이나 전통문화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찾는 이는 많아도 하룻밤 이상 머무르는 이는 많지 않았다는 뜻이다.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 남원시가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중점적으로 추진한 사업은 크게 기반시설 확충과 대대적인 홍보로 나뉜다. 우선 체류형 관광지로 만들기 위해 체험형 관광상품을 꾸준히 개발했다. 광한루에서는 전통혼례식과 떡메치기, 연지 뱃놀이 등의 체험행사를 운용하고, 지리산 뱀사골의 고로쇠 약수제(3월)와 단풍제(10월), 바래봉과 봉화산의 철쭉제(5월) 등과 같은 생태관광축제를 활성화했다.

    또한 어현동 관광단지에는 동편제거리와 음악분수대를 조성해 남원 시민과 외지 관광객들이 편안한 쉼터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남원관광단지에는 2003년까지 145억원을 투자해 춘향테마파크를 조성할 계획이며, 고(故) 최명희씨의 대하소설 ‘혼불’의 무대인 사매면 노봉마을과 상신마을에는 49억원을 들여 ‘혼불 문학마을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밖에도 연중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6∼8월에는 남원시내 일원과 지리산 일대의 관광명소를 돌아보는 ‘사랑의 남원 시티투어’(입장료 이외에는 무료)를 운영하는데, 외지 이용객들로부터 대단한 호평을 받고 있다.

    남원시에는 남원시장(회장)을 포함, 관내 여행관련 업체와 문화계 인사, 지역유지 등이 총망라된 ‘남원관광발전협의회’가 조직돼 관광상품 개발과 홍보가 효율적, 체계적으로 이뤄진다. 관광도시 남원을 널리 알리는 일도 예전과는 확실히 달라졌다는 평을 듣고 있다. 해외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일본, 중국, 동남아 등에서 현지홍보를 벌이는가 하면, 관광공사와 전라북도가 연계하는 팸투어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지난해에는 1만6000여 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남원을 찾았고, 올해에는 2만명이 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런 변화들은 관광산업 비중이 절대적인 남원시의 현실을 감안할 때에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남원의 예스러운 정취와 넉넉한 인심에 매료된 이들에게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관광도시 남원’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한번 잃어버린 것은 되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관광기반시설의 확충’이라는 명분으로 하루아침에 사라진 풍경이 적지 않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동림교와 승사교 사이 요천수의 맑은 물길에는 말바위, 소바위, 거북바위, 각시바위 등의 바위들이 저마다 독특한 형상과 전설을 간직한 채 자리잡고 있었다. 광한루 부근 둑길에는 가지를 늘어뜨린 수양버들과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여름날 밤, 요천변 둑길 버드나무 아래에 앉아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금암봉 기슭의 국악원에서 들려오는 판소리 한 대목을 듣는 낭만은 남원 여행의 백미였다.

    남원시의 가장 큰 관광자원은 그윽한 옛 정취와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풍류다. 그것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고 오롯이 지켜지는 관광도시 남원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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