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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 르포

학대받는 우리 아이들

온몸 칼로 난자, 매질 끝에 장기 파열, ‘똥싼다’며 손발 묶고 굶기기도

  • 박은경 자유기고가 siren52@hanmail.net

학대받는 우리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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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녀와 동반자살’. 잔혹한 살인이자 극단적 아동학대인 이 패륜행위가 심심치 않게 자행되는 현실은 대한민국의 아동인권지수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런 환경에서 오늘도 우리 아이들은 흉기에 난자당하고, 매질로 장기가 파열되고, 장롱 안에서 굶어죽는다. 가해자는 가장 가까운 어른들이다.
학대받는 우리 아이들
을유년 새해를 며칠 앞두고 터져 나온 ‘장롱 속에서 죽은 아이’ 사건은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대구시 불로동 김모(4)군의 죽음은 온 국민에게 ‘우리나라에 아직도 굶어죽는 어린이가 있다니…’ 하는 당혹감을 안겼다.

김군의 사인을 조사한 대구동부경찰서 형사계는 우선 부모의 고의적인 방치를 의심했다. 하지만 김군을 3년간 진료한 소아과 전문의가 “김군은 ‘선천성 척수성 근위축증’을 앓고 있었다. 이 병은 말기가 되면 몸무게가 급격히 줄어 얼른 보면 굶어죽은 것으로 보일 수 있다”고 밝히면서 여론은 ‘부모보다는 사회적 무관심과 허술한 복지체계가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에 경찰은 2차 부검을 실시, 사체에서 채취한 근육조직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 정밀조사를 의뢰했다. 그 결과 김군의 사인은 ‘영양실조에 의한 기아사’인 것으로 확인됐다. 검사를 맡은 경북대 법의학교실 이상한 교수는 “주검으로 발견될 당시 김군의 상태는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야위어 있었고 위 속 내용물도 거의 없었다. 이런 점들로 미뤄보아 제대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하고 방치되다가 결국 사망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논란이 됐던 ‘선천성 척수성 근위축증으로 인한 사망설’은 잘못된 것으로 판명됐다. 김군이 모종의 근육질환을 앓아왔지만 사인과는 무관하다는 것.

담당형사는 “쌀 한 톨이 없어 아이가 굶어죽었다는 언론 보도는 잘못됐다. 빈곤가정이긴 해도 그 정도는 아니다. 따라서 부모가 고의적으로 아이를 굶어죽게 했는지 여부를 집중 수사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김군의 두 살 난 여동생도 극심한 영양실조 상태인 것으로 드러나 현재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강서아동학대예방센터 박병기 소장은 “부모가 아픈 아이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고 굶어죽도록 내버려뒀다는 얘긴데, 최근 이와 같은 방임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아픈 아이를 치료하다 병원비가 없어 결국 부모가 치료를 포기해 숨지는 아동도 적지 않다. 자녀 양육에 대한 부모의 적극적 의지와 책임의식이 그만큼 희박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결국 부모와 우리 사회가 함께 김군을 죽인 셈”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급증하는 방임, 유기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학대예방센터가 지난해 발표한 ‘2003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에 따르면 굶고 매맞고 버려지는 등 한 해 동안 발생한 아동학대 건수가 2921건에 달했다. 전국 20개 센터(현재 38개로 증가)에 신고 접수된 아동학대 의심사례를 더하면 총 3536건에 이르렀다. 이는 2002년에 비해 20%, 2001년에 비하면 35.7%나 증가한 수치다.

2000년 개정된 아동복지법에 따른 아동학대 유형에는 우발적 사고가 아닌 상황에서 신체적 손상을 입히거나 신체 손상을 입게 하는 신체학대 행위, 언어적·정서적 위협과 감금이나 억제 및 가학적 행위를 가하는 정서학대 행위, 성적 만족을 위해 아동의 신체에 접촉하는 성학대 행위, 고의적이고 반복적으로 아동양육과 보호를 소홀히 함으로써 정상적인 발달을 저해하는 방임 및 고의로 아이를 버리는 유기 등이 있다.

중앙아동학대예방센터가 2003년 발생한 2921건의 아동학대 유형을 분석한 결과 한 가지 유형 이상의 학대가 가해진 중복학대가 1155건(39.5%)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방임 965건(33.0%), 신체학대 347건(11.9%), 정서학대 207건(7.1%), 성학대 134건(4.6%), 유기 113건(3.9%) 순으로 드러났다.

중앙아동학대예방센터 이호균 소장은 아동학대 발생원인으로 ▲아동을 부모의 소유물로 인식 ▲부부불화 또는 가정불화 ▲경제적 위기 등을 꼽았다. 이 소장은 “아동학대의 80%가 가정에서 발생한다. 이는 부모가 자녀를 인격체가 아니라 자신의 종속물로 여기는 데서 기인한다. 아동학대 현장에서 만나는 부모 열이면 열 모두가 ‘내 자식 내 마음대로 하는데 당신들이 왜 참견하느냐’고 항의한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센터에 신고된 아동학대 사례의 절반 가까이가 부모의 가출 또는 이혼에 의해 불거진 것이다. 최근 급증하는 방임은 빈곤 문제와 직결돼 있다”고 덧붙였다.

유기 문제도 심각하다. 지난해 전국 지방경찰청 장기미아추적전담반이 찾아낸 장기미아 60명 중 33명이 친부모에 의해 고의로 버려진 것으로 밝혀졌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가출, 미아, 유기, 부모의 양육포기 등으로 시설(양육시설과 일시보호시설 포함)에서 보호중인 아이는 2003년 12월 현재 전국 총 275개 시설에 1만8818명. 부모로부터 버려지는 유기아동만 한 해 평균 1000여명에 달하고, 미혼모가 버려 다른 가정으로 입양되는 아이를 합치면 그 수는 1만여명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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