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은 한일 국교정상화(한일협정) 40주년이 되는 해다. 양국 정부는 2005년을 ‘한일 우정의 해’로 명명하고, 각종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축제는 지난해 이미 시작돼 ‘피크’를 이뤘고, 민간 레벨의 교류는 새로운 차원으로 치닫고 있다. ‘한류(韓流)’의 빠름과 강함, 즉 한국 대중문화의 격렬함에는 확실히 일본 국민이 눈을 번쩍 뜨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다.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이웃한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불협화음이 그칠 날이 없었다. 1970년대 전반 일본 신문사의 서울 특파원이던 필자는 양국 국민의 반목과 상호 불신의 충돌을 현장에서 여러 차례 목격했다. 그 때문인지 필자는 솔직히 ‘후유 소나 현상’을 접하면서 ‘믿기 어려운 것을 보았다’는 당혹감을 숨길 수 없다. 사람들은 어떻게 저 높은 불신의 벽을 이토록 가볍게 넘어섰을까. 밀월처럼 여겨지는 현재의 상황은 과연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한일 두 나라 사이에 과거와 같은 심각한 마찰이 또다시 일어나지는 않을 것인가. ‘우정의 해’ 초입에 몇 가지 사안에 대해 검증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용사마’ 첫 입국은 ‘사회적 사건’
일본 공영방송 NHK는 2004년 봄 한국 KBS의 드라마 ‘겨울 연가’를 ‘후유노 소나타’라는 제목으로 내보냈다. 이것이 엄청나게 히트해 주연 남자배우인 배용준은 일약 일본인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열기의 막이 오른 것은 지난해 4월. 배용준은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 도쿄 하네다(羽田) 공항에 내려섰다. 이날 아침 일찍부터 입국터미널을 메우고 그를 기다리던 무리는 결코 젊다고 할 수 없는 일본 주부들이었다. 그 수가 무려 4000명에 달했는데, 이는 할리우드의 대스타나 유럽의 축구 귀공자, 이미 전설이 된 영국 황태자비 다이애나를 마중 나갔던 팬의 수를 훌쩍 넘어선 것이다. 그들은 절규하듯 ‘용사마’를 외치며 디지털카메라를 들이댔고, 떨어져나갈 듯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후유 소나’라는 말이 ‘시사용어’가 된 것은 상당히 나중의 일이다. “배용준의 인기나 드라마 ‘후유노 소나타’가 기록한 높은 시청률은 결국 일과성(一過性)이고, 쉽게 물리는 성격의 일본 여성들은 곧 다른 꽃으로 시선을 돌릴 것이 분명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유행에 정통한 사람들은 그렇게 내다봤다.
그러나 7개월이 지난 2004년 11월 ‘용사마’가 다시 일본에 왔을 때 나리타(成田) 공항에는 3000명 가까운 팬이 몰려와 공항 로비를 가득 메웠다. 다음날 아침 그가 팬 사인회에 가기 위해 호텔을 나서는 순간, 기다리던 여성들이 ‘용사마’가 탄 차로 몰려들며 서로 밀치는 바람에 여러 명이 넘어져 구급차에 실려가는 소동이 벌어졌다.
그 며칠 후 부산에서 열린 배용준 사진전에는 약 500명의 일본 여성이 찾아와 하네다 공항에서 보여준 ‘광란’을 재연했다. ‘후유 소나 현상’은 TV방영이 끝나면 곧바로 시들어버리는 일과성의 ‘장식화’가 아니라 지속되는 인기로 싹트는 새로운 교류의 싹이라는 사실을 일본 여성들이 증명해 보인 것이다.
‘후유 소나’ 현상이 한일교류사에 있어 신기원을 이루는 중대사건임은 사람의 왕래라는 극적 변화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지난해 11월 부산 거리에서 보았듯 ‘용사마’의 인기에 들뜬 일본 여성들은 가볍게 현해탄을 뛰어넘었다. 필자는 그 점에 주목한다.
40년 전 국교가 정상화가 될 즈음 한일간 왕래는 연간 2만명에 불과했다.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 이후 한일 양국의 상대국가 방문객은 비약적으로 늘어나 하루 1만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후유 소나’ 현상으로 이젠 그 숫자마저 갱신될 참이다. 일본항공(JAL)에 따르면, 2004년 5월 현재 항공기 이용 방문객(일본→한국)은 전년 같은 기간의 198%를 기록했다. ‘후유 소나’의 인기가 높아지자 2, 3주도 채 안 되어 일본 여성들이 드라마 로케현장 방문에 나섰다. 같은 해 6월에는 267%, 7월에는 219%로 늘어났다. ‘겨울 연가’의 로케 현장에 일본 아줌마들이 대거 몰려든 광경은 한국의 강원도 주민들도 관찰했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