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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관리법상 취급 제한 물질까지 버젓이 모기약으로 유통

사람 잡는 살충제

  • 송화선 기자│spring@donga.com

농약관리법상 취급 제한 물질까지 버젓이 모기약으로 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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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식약청이 안전성 재평가 중인 살충제, 지자체가 구입해 살포
  • ● 한번 허가받으면 문제 될 때까지 계속 생산
  • ● 발암성 확인돼 사용 금지한 살충제 성분, 전국 어린이집에서 검출
농약관리법상 취급 제한 물질까지 버젓이 모기약으로 유통

지난여름 전국 10개 지자체는 식약청이 재평가 중인 살충제를 구입, 사용해 논란이 일었다.

2011년12월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가습기살균제피해자모임은 서울 정동에서 피해자대회를 열고 지금까지 집계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자는 총 43명이라고 밝혔다. 간질성폐렴, 폐섬유화증 등을 앓는 피해자는 153명에 달한다. 이에 앞서 보건당국은 한때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산모와 영·유아만 공격하는 괴질’로까지 불렸던 급성 폐질환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또 1996년부터 판매돼온 가습기 살균제의 일부 제품에 대해 강제수거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정부가 지난 15년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시판된 적 없는 ‘치명적 화학물질’을 방치해왔다는 점에서, 생활용품 전반에 대한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살균제와 마찬가지로 강한 독성을 지닌 살충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2011년 9월 미국 ‘뉴욕타임스’는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이 벌레보다 더 위험하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보도에 따르면 2010년 미국 7개 주에서 살충제 남용으로 인한 부작용을 호소한 사람은 111명에 달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60대 여성은 살충제 남용으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2011년 5월 태국에서 휴가를 즐기다 갑자기 사망한 20대 뉴질랜드 여성의 사인이 살충제 과용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이 사건을 조사한 유해 화학물 전문가 론 맥도왈 유엔 자문위원은 “고인이 묵은 호텔방에서 채취한 샘플을 검사한 결과 독성 농약으로 분류되는 클로르피리포스가 나왔다”며 “이것이 사망의 유력한 원인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 주장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 언론에 보도됐다.

클로르피리포스는 빈대와 바퀴벌레 등을 잡는 데 효과적인 화학물질로, 부착형 바퀴약 등에 널리 쓰인다. 최근 미국 UC버클리대 연구진이 클로르피리포스에 노출된 임산부의 태아 지능이 정상아에 비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등, 유해성 논란이 끊이지 않아왔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2000년, 유럽연합(EU)에서는 2008년부터 사용이 중단됐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제한 없이 쓰이는 게 현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살충제 성분은 총 55개다. 이 중 클로르피리포스를 비롯해 △피리미포스메칠 △바이오레스메츠린 △알레스린 △바이오알레트린 △에스바이올 △붕산 △페니트로치온 △프로폭술 △히드라메칠논 △퍼메트린 △피페로닐부톡시드 △피레트린엑스 등 13개는 미국과 EU 등에서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사용을 금지한 물질이다.

부처 간 소통 난맥상



우리나라에서도 문제제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11년 5월 열린 중앙약사심의위원회에서 이 13개 성분이 함유된 제품의 허가 제한 및 생산중단 건의가 나왔다. 살충제의 관리 감독기관인 식약청도 7월 ‘의약외품 살충제 안전관리 개선방안’을 내놓고 문제의 13종에 대한 안전성 재평가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성분을 이용해 살충제를 만드는 업체 42곳에 2011년 연말까지 제품의 안전성을 입증할 수 있는 서류를 제출하도록 하고, 근거를 내지 못하면 2012년 상반기에 생산 중단을 지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나아가 2017년까지 55개 살충제 성분 전부의 안전성 검증을 마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하지만 식약청의 이런 계획은 정부 부처 내에서 공유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질병관리본부와 전국 10개 지방자치단체는 2011년 여름에도 해당 성분이 든 소독제를 대량 구입해 방역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등산로와 공원, 가옥 등에 살포하고 관내 경로당에 지원한 지자체도 많았다. 식약청 조사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이용된 고형살충제 14만개와 용액제 2만4000L에 이 13종의 물질이 들어 있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한 이유는 화학물질의 관리 감독 권한이 여러 부처에 갈라져 있기 때문.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은 4만3000여 종에 달한다. 이를 1차적으로 관리감독하는 기관은 환경부다. 하지만 특정 성분이 제품에 사용되면 담당 부처가 바뀐다. 공산품은 지식경제부, 의약품과 식품 첨가물은 식약청, 농약과 비료는 농촌진흥청이 관리하는 식이다. 이처럼 여러 기관이 각각 화학물질 관련 기준을 세우다보니, 한 부처에서 ‘위험물질’로 평가한 성분을 다른 기관에서 버젓이 사용하는 일도 벌어진다.

지난봄부터 많은 사람을 패닉 상태에 빠뜨린 가습기 살균제 ‘메틸 이소티아졸린’과 ‘클로로 메틸 이소티아졸린’도 이미 2009년 환경부가 ‘어린이 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환경유해인자’로 지정했던 것들이다. 환경부가 작성한 ‘클로로 메틸 이소티아졸린’의 특정 유해성 자료에는 ‘흡입, 섭취, 피부 접촉 시 심각한 부상 및 사망을 초래할 수 있음’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이 성분을 함유한 가습기 살균제는 이후에도 2년 이상 판매됐다. 질병관리본부가 2011년 11월 가습기 살균제의 동물실험 결과를 발표하면서, 피해자들의 폐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 물질로 지목한 ‘염화 에톡시에틸구아니디움’도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 농림수산식품부가 공동 운영하는 식품안전포털 식품안전정보서비스(www.foodnara. go.kr)에 유해물질로 소개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농약보다 강한 모기약

현재 이 사이트에서는 검색할 수 없지만, 포털 사이트의 고급 검색 기능을 이용해 해당 사이트 내 검색을 지정하고 이 성분명을 검색하면 과거 홈페이지에 정리돼 있던 ‘흡입 시 타는 듯한 느낌, 기침, 인후염 등으로 숨쉬기가 곤란함. 신선한 공기와 휴식이 필요’ 등의 설명이 나타난다. 신체 접촉 시 발진과 고통을 유발한다는 내용도 있다. 그러나 이 물을 ‘흡입’함으로써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때까지도 관계 당국은 문제의 원인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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