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미국 국빈 방문 때 박근혜 대통령은 댄 애커슨 GM 회장을 만나 GM이 한국에서 철수한다는 소문에 대해 물었다. 애커슨 회장이 “통상임금 문제를 해결해주면 철수하지 않고 9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답하자, 박 대통령은 “최대한 합리적 해법을 찾아보겠다”고 약속했다. 통상임금 문제에 관한 재판이 6년째 진행되는 상황에서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사건 당사자 격인 GM 회장에게 문제 해결을 약속한 것은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한 것이란 비판이 제기됐다. 6월 현재 우리나라 각급 법원에서는 100건이 넘는 통상임금 사건이 다뤄지고 있다. 통상임금이 뭐길래 이토록 많은 회사에서 집단소송을 진행하고, 대통령까지 논란에 휘말렸을까.
통상임금의 의미
근로기준법상 임금은 ‘사용자가 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임금, 봉급, 그 밖에 어떠한 명칭으로든지 지급하는 일체의 금품’으로 정의돼 있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임금을 평균임금과 통상임금으로 구분해 각기 다른 용도에 맞춰 사용하고 있다.
‘평균임금’이란 평균임금을 산정해야 할 사유가 생긴 날로부터 3개월 이전의 기간에 그 근로자에게 지급된 임금의 총액을 그 기간의 총일수로 나눈 금액을 말한다. 퇴직금을 예로 들면 퇴직일 직전 3개월간 퇴직자가 받은 임금 합계액을 90일로 나눈 것이 평균임금이 된다. 평균임금은 퇴직금, 휴업수당, 휴업보상, 장해보상, 유족보상, 장의비, 실업급여, 산업재해보상 등의 산정기준으로 쓰인다.
‘통상임금’은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所定)근로 또는 총근로에 대해 지급하기로 정한 급여를 말한다. 통상임금 여부를 결정하려면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의 3가지 요건을 모두 갖춰야 한다. 통상임금은 연장근로, 휴일근로에 대한 수당, 연차유급휴가수당, 해고수당 등 각종 수당 산정의 기준으로 사용된다.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 평균임금이 통상임금보다 적으면 통상임금을 평균임금으로 보기 때문에 통상임금은 근로자의 최저생계비를 보전하는 기능도 한다.
평균임금은 근로기준법에 정의돼 있지만 통상임금은 법률이 아닌 대통령령에서 정의하고 있다. 문제는 근로기준법에서 대통령령으로 통상임금을 정하도록 위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처럼 중요한 임금의 정의를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법률로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에서 현행 법령체계는 개선할 필요가 있다.
기형적 임금구조
통상임금 논란은 노동정책을 총괄하는 고용노동부가 대법원 판례를 따르지 않은 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평균 노동시간은 연간 2092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3위를 차지할 정도로 길다. 근로자의 장시간 근로를 억제하기 위해 근로기준법은 시간외 근로와 휴일근로, 야간근로에 대해 각각 50%의 가산금을 수당으로 지급하도록 했다. 연장근로를 시킬 경우 사용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마이너스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한 것. 장시간 근로관행을 없애지 않는다면 기업들로서는 막대한 시간외 수당 지출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그런데 기업들은 근로기준법의 취지에 따라 연장근로를 줄이는 대신 비용부담을 피해갈 수 있는 편법을 찾았다. 기본급을 줄이고 식대, 교통비, 체력단련비 등 각종 명목의 수당으로 총액을 맞춰 지급하는 편법을 개발한 것.
기본급은 움직일 수 없는 통상임금이지만 각종 수당은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급여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낮게 책정된 기본급만을 기준으로 연장근로, 휴일근로 수당을 산정해준 것. 기업주 처지에서는 비용도 줄이고, 근로자를 장시간 노동시킬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2년 5인 이상 상용직 노동자의 소정근로시간 시급은 1만8000원인 데 반해 초과근로시간 시급은 1만4000원에 불과했다. 법적으로는 초과근로시간 시급이 소정근로시간 시급보다 1.5배 많아야 하는데도 많기는커녕 0.8배로 오히려 더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고용주들이 기가 막힌 해법을 찾아낸 결과다.
대법원은 수당의 이름과 무관하게 실질적으로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된다면 그것은 통상임금 산정의 기준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조와의 임금단체협상을 통해 결정된 근로자의 개인연금보험료를 지급한 경우, 근무성적과 무관하게 1년 단위로 일정금액을 가산해 지급하는 근속수당, 가족이 없는 직원에게도 가족수당을 지급한 경우는 모두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례다.
대법원은 기업들이 기본급을 낮게 유지해 통상임금을 낮추기 위한 방편으로 수당제도를 악용하고 있다는 점을 간파하고, 이러한 시도가 법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판결을 통해 고용주들에게 계속 경고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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