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호

이달의 경제보고서 | LG경제연구원

기버(giver) 키우고 테이커(taker) 걸러라

기업의 숨은 성공요소

  • 노용진 |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입력2016-01-26 10:2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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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직의 성공을 결정짓는 요인은 무엇일까. 도전적인 비전, 조직의 명확한 역할분담(R&R, role and responsibilities), 강력한 리더십, 적절한 보상제도, 효율적인 자원활용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 하버드대 리처드 해크먼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이런 요인보다 구성원 간에 주고받는 ‘도움(help)’의 양이 성공의 가장 중요한 선행요인이라고 한다. 높은 성과를 내는 조직은 자신의 동료를 위해 코칭하고 자문하는 일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반면, 낮은 성과를 내는 조직은 서로 돕기보다 각자 자신의 일로 고군분투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애리조나대 나삿 팟사코프 교수팀이 다양한 국가의 사업 조직 3500여 개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이와 유사한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베푸는 행동(giving behavior)이 기업의 수익성, 생산성, 고객만족, 비용경쟁력 등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였다는 것. 베푸는 행동이 효율적인 문제 해결과 조정 활동을 촉진하고, 더 나아가 고객과 공급자 등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giver, taker, matcher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애덤 그랜트 교수는 호혜(give & take)의 관점에서 사람들을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더 좋아하는 기버(giver), 반대로 주는 것보다 더 많이 받으려고 하는 테이커(taker), 그리고 받은 만큼 상대에게 돌려주려고 하는 매처(matcher). 기버들은 배려하고 양보하고 베풀며, 때로는 자신을 희생한다. 이처럼 심성이 착한 이들을 우리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들은 이기적인 인간들에게 이용당하고 손해 보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본성을 이기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은 이기적으로 타고난다. 따라서 관대함과 이타주의는 가르쳐야만 한다”고 지적한다. 인간은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하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오해가 생긴다.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므로 현실 세계에서는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성공에 이르는 길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행동하는 이들이 테이커다.  
    애덤 그랜트 교수에 따르면 많은 이의 예상처럼 기버 중에는 저(低)성과자 비율이 높다고 한다. 기버들이 남을 돕는 데 에너지를 쓰느라 정작 자기 일에는 소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과 후나 주말에 자기 일을 하게 되고, 결국 스스로 번아웃(burnout, 소진)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이들은 동료들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아는 테이커들에게 ‘호구(doormat)’가 된다. 이들이 기대되는 성과를 내려면 이들을 부당하게 이용하지 못하도록 보호하는 규정이 있어야 할지 모른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인 기버들이 실상은 ‘법이 있어야 살 사람’인 셈이다.
    기버들은 정녕 루저가 될 수밖에 없을까. 하지만 연구에서 밝혀진 예상 밖의 사실은 조직 내에서 가장 뛰어난 성과를 올리는 성과자들도 기버라는 점이다. 엔지니어를 대상으로 한 스탠퍼드대 프랭크 플린 교수의 연구나 의대생을 대상으로 한 겐트대 필립 리븐스 교수의 연구, 세일즈맨을 중심으로 한 애덤 그랜트 교수의 연구에서 이런 현상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기버가 가장 높은 성과를 내는 것은 상대와 신뢰를 쌓은 덕분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기버가 도움을 청하면 흔쾌히 자신의 인맥, 정보, 시간, 노력을 기울여 돕곤 한다.


    ① 도움 주고받기를 장려하라
    기버의 특징 중 하나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 청하기를 꺼린다는 점이다. 민폐를 끼치기 싫은 탓이다. 이들에게 ‘당신들도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하라’는 식의 조언은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장려 정책을 제도로 만들면 얘기가 달라진다.
    미시간대 웨인 베이커 교수가 창안한 ‘호혜 고리(reciprocity ring)’ 프로그램도 그런 아이디어다. 참가자 10여 명이 1시간~1시간 반 동안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프로그램인데, 링컨파이낸셜, 에스티로더 등의 기업에서 매주 또는 매월 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콜센터 서비스 기업 애플트리 앤서스는 ‘드림온(Dream on)’ 프로그램을 통해 직원들의 ‘꼭 하고 싶지만 이루기 힘든 소원’을 동료들이 함께 힘을 모아 해결해준다. 프로그램 도입 6개월 이후부터 고질적인 이직률 문제 개선과 역대 최고 수준의 분기 수익을 달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프로그램과 함께 신입 인력을 위한 지도사원 제도나 임원 및 핵심 인재들을 위한 리더십 코치 제도 도입도 큰 범위에서 보면 도움 주고받기를 장려하는 제도적 장치의 사례다.

    ② 기버를 인정하고 보상하라
    국내 기업들이 구성원과 조직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선호하는 방법의 하나는 조직 개발보다 보상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비교적 즉각적이고 통제가 용이해서다. 문제는 이런 보상 방식이 기대하는 바처럼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워싱턴대 마이클 존슨 교수는 참가자들을 두 부류로 나눠, 한쪽은 과제를 해결했을 때 팀 단위로 보상하고 다른 쪽은 가장 잘한 개인에게 보상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후자가 팀의 속도는 빨라졌지만 정확도는 떨어졌다. 중요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팀에게도 팀 전체 성과로 보상하는 것으로 기준을 바꾸고 다시 실험해봤다. 그런데 정확도는 오르지 않고 도리어 속도까지 느려졌다. 한 번 서로를 경쟁자로 인식한 다음에는 기존 보상 구조가 제거돼도 구성원의 마인드는 변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기버 규범을 강화하려면 단순히 결과 중심의 보상보다 좀 더 포괄적인 보상 구조를 고려해야 한다. 결과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나 집단에 미친 영향까지 포함하는 평가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관리자의 성과를 평가할 때는 팀 성과뿐 아니라 팀원들의 성장 정도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여기에서 한 가지 주의할 것은, 건전하고 건설적인 경쟁은 훼손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레스토랑 팁(tip) 원리 도입을 고려할 수 있다. 자신을 도와준 동료에게 칭찬 메시지와 함께 작은 금액을 보상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구글, 사우스웨스트항공, 자포스 등의 기업에서 상호 협력을 증진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때 인센티브는 즉각적으로 지급되는 작은 금액이어야 한다. 이런 노력과 리더의 분명한 메시지가 있어야 ‘조직 전체’의 협력이 증진될 가능성이 커진다.

    ③ 테이커를 걸러내라
    이상의 2가지 접근 방안은 조직 내에 테이커들이 없을 때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가 지적하는 것처럼, 기버가 미치는 긍정적 영향보다 테이커의 부정적 영향이 더 크다. 패트릭 던롭과 이기범의 공동연구에서도 마찬가지로 ‘썩은 사과의 법칙’이 작동한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그래서 기버 규범을 구축하기 위해 고려돼야 할 방안의 하나가 테이커 솎아내기(screening out takers)다.
    실제로 버크셔 해서웨이, IDEO 등 많은 기업에서 테이커들을 채용 단계에서부터 걸러내려고 노력한다. 자신을 과시하려는 행동, 권력에 아부하는 해바라기형 특성, 동료 험담하기 등의 공격적 성향을 걸러내는 심리 도구를 활용한다.
    기업에서의 성공은 재무적 성과, 즉 매출과 이익으로 연결돼야 한다. 이것이 전제가 돼야 투자와 고용도 지속될 수 있다. 베푸는 행동이 조직 내 긍정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더욱이 거절하지 못하는 기버는 자칫 조직의 규율을 흐트러뜨릴 수 있고 다른 구성원의 성장을 해칠 수 있다. 기버 문화가 정착되면 ‘실패 기버’들도 훌륭한 성과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커진다. 이러한 성과가 쌓이면 조직 시민행동이 활성화하는 진정한 기버 문화가 정착되고 조직 성과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기업 문화를 구축한다는 건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다. 인간 존재의 다양성과 복잡성, 여기에 더해 상호작용 과정의 역동성으로 인해 기업 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예측하거나 제어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다. 단기간 내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꾸준히 노력해나가야 한다. 채용 단계에서부터 썩은 사과를 걸러내는 인사 파트의 노력과 일선 리더들의 커뮤니케이션 및 코칭 역할은 그 첫 단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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