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호

영화로 본 브렉시트 & 대처리즘

‘애매모호한 영국’ 안개 낀 늪에 빠지다

  • 이명재 | 아시아경제 논설위원

    입력2016-08-02 10:4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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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투표에서 탈퇴 표가 쏟아져 나온 지역 중엔 예전에 탄광이던 곳이 많았다. 그것은 일종의 ‘분노 투표’였다. 그 분노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설명해주는 영화 몇 편이 있다.

    코미디물 ‘풀 몬티(The Full Monty)’부터 보자. 1997년 작인 이 영화의 제목 ‘풀 몬티’는 영국 속어로 ‘홀딱 벗다’는 뜻이다. 직장이 문을 닫으면서 하루아침에 실직자 신세가 된 중년 남성들이 돈을 벌기 위해 제목 그대로 옷을 벗고 스트립쇼 무대에 서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의 배경은 영국 남부 요크셔 주의 탄광이다.

    ‘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라는 영화도 탄광을 배경으로 한다. 탄광 노동자의 아들 빌리가 발레리노가 되는 이야기인데, 강경 노조원이던 아버지가 아들을 무용학교에 보낼 돈을 마련하기 위해 동료들을 배신하고 파업 대열에서 벗어나 조업에 참여하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다.

    두 영화가 탄광과 광부들을 배경과 주요 인물로 등장시킨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탄광업은 영국에 매우 특별한 산업이다. 영국 제조업의 번영과 쇠퇴, 경제적 변천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산업이다. 영국 산업혁명의 동력을 제공한 주역이었으나 이제는 명맥만 근근이 유지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영국에 마지막으로 남은 지하 탄광이 폐쇄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켈링리’라는 이름의 이 탄광은 영화 ‘풀 몬티’의 배경이 된 요크셔 주에 있다. 이곳에서 일해온 한 광부가 목이 멘 듯 하는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52세의 이 광부는 탄광 폐쇄가 “한 시대의 종말”이라면서 “우리는 이번 주에 역사가 된다. 영국은 석탄 위에 세워졌다”고 했다. 자부심과 긍지, 그래서 그만큼의 비애가 담긴 말이다. 광부를 비롯한 노동자들의 실의와 좌절감, 그것이 이번 브렉시트 가결을 이끌어낸 주요인 중 하나였다.





    ‘영국 정신’ 위한 전쟁

    탄광업의 몰락은 산업구조의 고도화, 탄소 배출 오염원이 되는 화석연료의 사용 축소 움직임 등이 큰 원인이었다. 그러나 경제 발전의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흐름과는 다른 요인들이 직접적으로 작용했다. 대영제국의 태동을 이끈 석탄산업이 정점을 찍은 것은 1910〜1920년대다. 당시 영국의 탄광업 종사자는 120만 명, 석탄 생산량은 2억9000만t(1913년)에 달했다. 그 후 석탄은 석유, 천연가스, 바이오연료 등 다른 자원에 자리를 내주며 쇠퇴해갔으나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1984년부터 1년간 이어진 마거릿 대처 정부의 탄광 폐쇄였다.

    ‘철의 여인’ 대처 총리가 밀어붙인 탄광산업 폐쇄에 맞선 탄광 노조는 완패했다. ‘빌리 엘리어트’에서 탄광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파업이 “미래를 위한 전쟁일 뿐 아니라 영국의 정신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공권력을 동원해 강경 진압에 나선 대처는 의회 연설에서 “광부들에게 굴복하는 것은 ‘의회민주주의에 의한 통치’를 ‘폭도들에 의한 통치’에 양도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영국의 정신’을 ‘폭도’와 ‘적’으로 가차 없이 몰아붙인 것이다. ‘대처리즘’엔 그런 인식이 깔려 있었고, 이는 1980년대 이후 지난 30여 년간 영국 사회가 걸어온 신자유주의의 행로가 됐다.

    영국 노동자들은 화가 많이 났다. 1996년에 개봉된 영화 ‘브래스드 오프(Brassed Off)’도 영국 속어로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는 뜻이다. 이 영화도 탄광촌이 배경이다. 가상의 북부 탄광촌에서 일자리를 잃게 된 광부들이 ‘브라스 밴드’를 통해 공동체의식과 희망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영국 산업의 몰락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은 탄광업이지만, 다른 제조업 노동자의 처지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이번 국민투표 개표 직후 브렉시트 찬반 성향이 해당 선거구가 지닌 인구 구성의 특질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 노동자층에서 60%가 유럽연합(EU) 탈퇴를 선택했고 중부 공업지대에서 탈퇴 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드러나 노동자들의 깊은 불만을 짐작게 했다.



    ‘현재’에 대한 거부감

    ‘내비게이터(The Navigators)’에서도 노동자들의 힘겨운 처지를 엿볼 수 있다. 리얼리즘 작가인 켄 로치 감독이 요크셔 지방의 철도건설 노동자 이야기를 다룬 영화인데 제목 ‘내비게이터(항해자)’는 19세기에 영국의 수로와 철도 공사에 동원된 아일랜드 노동자들을 가리키던 말이다. 민영화 과정에서 철도 노동자들에게 닥쳐온 현실이 험난한 파도를 헤쳐가는 항해와도 같다는 의미가 담겼다.

    낙천적이고 유머러스한 철도 노동자들은 처음에는 민영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실감하지 못한다. 그러나 근무 여건이 갈수록 열악해지면서 자신들에게 찾아든 변화가 어떤 것인지를 차츰 깨닫는다. 그 깨달음은 머리와 함께 몸으로 오는 것이어서, 노동자들은 과중한 노동에 하나둘씩 병으로 스러지고 죽음을 맞는다.



    영화의 내용은 실제 철도 노동자가 로치 감독에게 보내온 편지를 바탕으로 했다. 작업 현장에서 암에 걸린 이 노동자의 얘기가 영화로 옮겨진 뒤 이 편지의 발신자는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노동자들이 좌절한 것은 삶의 질이 뒷걸음질치고 팍팍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대적 박탈감에서 비롯된 면이 더 크다.

    마침 올해는 ‘금융 빅뱅(Big Bang)’ 30주년이다. 1986년 10월 영국 정부가 밀어붙인 대대적인 금융개혁 정책을 가리키는 금융 빅뱅은 금융회사 간 경쟁 촉진 및 시장 자유화가 골자였다. ‘더 시티(The City)’로 통하는 런던 금융가는 지금 세계 금융업의 메카가 돼 있다. 미국 월가로만 향하던 기업공개(IPO) 물량이 시티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헤지펀드 자산운용사들도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특히 유로화 체제에서 시티는 더욱 번성해 유로화 거래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영국은 유로화를 쓰는 유로존에 속해 있지 않지만, 발달한 정보기술(IT) 덕분에 런던에서 모든 형태의 금융 비즈니스가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티에서 금융업에 종사하는 전문 인력은 지난 15년 사이에 50% 늘었다. 시티의 발전과 다른 한편으로 EU 체제와 세계화의 과실을 특정 계층이 독차지한다는 불만과 불신도 그만큼 높아졌다.

    브렉시트 투표 결과의 원인을 노동자들의 불만에서만 찾는 것은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사안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다. 지금의 영국 사회가 뭔가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으로 돼 가고 있다는 것, 뭐가 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는 것, 그것이 명료한 불만이든 막연한 불안이든 ‘영국의 현재’에 대한 영국민들의 거부감을 보여준 결과로 봐야 할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와 푸들

    실직자들의 얘기를 다룬 ‘풀 몬티’ 같은 영화가 다소 직설적인 화법으로 영국 사회의 환부를 드러냈다면, 은유와 암시로 사회를 비판한 영화도 있다.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라는 1989년 작품이 그런 영화다. 런던에 있는 바로크풍 호화 레스토랑 ‘르 올랑데’를 배경으로 일주일여 동안 벌어지는 기괴한 에피소드를 다뤘는데, 표면적으론 식욕과 성욕의 억압과 해방을 그린 듯하다. 그러나 실은 대처 시대(와 그 이후)에 영국 사회를 질식시킬 정도로 극성이던 자본주의의 탐욕을 풍자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매트릭스’로 유명한 워쇼스키 형제가 2005년 제작한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는 미래의 런던이 배경이지만 오늘날의 영국 현실에 대한 풍자로 읽힌다. ‘브이’라는 혁명가를 중심으로 한 체제 전복 시도를 그린 이 SF물의 원작은 대처 시절인 1980년대에 발표된, 같은 제목의 그래픽 노블이다. 어린이 관객들을 겨냥한 클레이 애니메이션 ‘치킨 런’조차 풍자를 담았다. 예컨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치킨 파이 자동 제조기가 대처리즘에 대한 알레고리가 아니냐는 식이다.

    “우리는 대륙에 속했으나 대륙과는 떨어진 곳에 있다는 사실을 늘 잊어서는 안 된다.” 앙드레 모루아의 ‘영국사’는 영국의 계몽사상가 헨리 볼링브로크의 말로 시작한다. 영국의 지정학적 위치, 그 본질적인 특성을 잘 정의한 말이다. 떨어져 있되 고립돼 있지는 않은 것이다. 지난 2000여 년간 영국의 역사는 대륙으로부터 이탈과 대륙으로의 편입이 교차한 역사였다. 이탈이냐, 편입이냐는 우선 지리적 위치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영국의 국력과 경제력,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의해 좌우되는 딜레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그 딜레마가 어느 때보다 심화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국민투표에서 이민자가 많은 지역이 토박이가 많은 지역보다 EU 잔류 지지율이 높았던 것은 그런 딜레마의 표출이다. 저교육·저소득 지역에서 탈퇴 성향이 강했던 것은 이민자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다는 불만이 주민들 사이에 확산됐기 때문으로 해석됐다. 지난 150여 년 동안 자유화와 세계화를 선도해온 영국의 궤적과 대비되는 장면이다.



    내부의 새 균형 찾아야

    쥘 베른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 영국 신사 필리어스 포그가 세계를 돌면서 보여준 것은 19세기 빅토리아 왕조 시대의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자신감과 여유였다. 1세기 반이 지난 2003년의 영화 ‘러브 액추얼리’에서 영국의 총각 총리는 옆에 선 미국 대통령을 통쾌하게 한 방 먹인다.

    “영국은 작은 나라지만 강합니다. 우리에겐 셰익스피어, 처칠, 비틀스, 숀 코넬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해리 포터도요. 축구선수 베컴의 왼발도 있습니다. 물론 오른발도요(웃음). 힘에는 힘입니다. 미국은 대비해야 할 겁니다.”

    그렇듯 당당하던 모습은 이제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게 된 게 현실이다. 2003년 영국이 미국을 따라 이라크전 참전을 결정했을 때 ‘미국의 푸들’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이 말에 예전 같지 않은 오늘날 영국의 국제적 위상이 집약적으로 표현돼 있다. 이젠 더 이상 필리어스 포그와 같은 상류층은 물론 중산층과 노동자들도 제국주의의 과실을 누릴 수 있었던 빅토리아 시대가 아니다. 영국 사회는 내부의 새로운 ‘균형’을 찾아야 한다.

    대처가 타계하기 2년 전인 2011년에 개봉된 영화 ‘철의 여인(Iron Lady)’에서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영화 속 대처는 치매로 기억이 오락가락했다. ‘치매 환자’ 대처는 자기가 주도한 일이 영국 사회를 어떻게 변모시켰는지, 어떻게 변모시키고 있는지 자신조차 제대로 알 수 없을 것이라는 은유처럼 읽힌다.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 붙인 제목 ‘애매모호한 일본의 나’처럼 ‘애매모호한 영국’이다. 이 늪 같은 현실, 짙은 안개에 싸인 현실에서 어떻게 앞을 헤쳐나갈 것인가. 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 ‘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에 나오는 주인공과 친구들처럼 헤로인에 빠져서는 길을 찾을 수 없다는 게 분명하지만, 영국의 혼돈과 방황이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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