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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필립 시인의 시드니 통신

대양주·동남아에 한국학 씨앗 심는 ‘한-호 아시아연구소’

일당백 끈기로 노 젓고, 韓流 순풍에 돛 달고

  • 윤필립 在호주 시인 philipsyd@naver.com

대양주·동남아에 한국학 씨앗 심는 ‘한-호 아시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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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4개국과 공동 프로젝트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움직인다고 했던가. 연구소가 출범할 즈음에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한류(韓流) 열풍이 동남아에 불기 시작했다. 비록 대중문화에 국한된 사회현상이지만 한국의 드라마와 대중가요를 좋아하는 사람이 크게 늘면서 한-호 아시아연구소는 순풍을 만난 배처럼 순항했다.

연도를 짚어보니 연구소 활동이 시작될 즈음에 베트남 한류가 시작됐다. 정확하게 동남아의 한류는 1998년 베트남에서 방영된 한국 드라마로부터 시작됐다. 베트남에 본격적인 열풍이 분 것은 2000년이고, 다른 동남아 국가들은 그 후에 시작됐다.

그런데 동남아에서 뜬금 없이 한류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도, 그 징조를 가장 먼저 감지한 곳이 호주라는 것도 뜻밖이다. 이렇듯 호주에서 한류를 빨리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은 동남아 출신 유학생들 때문이다. 호주에서 한국어 또는 한국학을 공부하고 본국으로 돌아간 동남아 출신 유학생들은 자국에 불어온 한류 열풍을 확대재생산하는 한국학의 역군이 됐다.

연구소의 지난 5년간 활동내용을 살펴보니 호주와 동남아 지역의 한국학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한 것이 먼저 눈에 띈다. 호주-동남아-한국을 연결하는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한 것. 특히 동남아의 한류 현상에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을 때부터 앞날을 내다보고 본격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눈여겨볼 만하다.



또한 동남아 4개국 현지인 학자들로 구성된 연구팀과 공동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모든 연구의 인프라, 네트워크 작업을 완성했다. 이렇듯 한국 내에서 한류 연구에 대한 관심이 일기 이전에 기초연구를 마친 상태여서 다른 어느 연구소보다도 높은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연구소는 태국 촐라롱콘대, 말레이시아 말라야대, 인도네시아대, 베트남 호치민 인문사회과학대의 동남아 4개 유수 대학과 연계하여 영문 한국학 학술지를 발간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 5년 동안 대양주, 동남아 지역의 여러 대학과 한국학 학자들을 연계하여 심포지엄, 학술회의, 워크숍, 포럼을 꾸준히 개최해왔다. 특히 심포지엄에는 호주 연방정부 알렉산더 다우너 외교부 장관이 두 차례나 참석해 기조연설을 할 만큼 호주 정부와 학계에서도 그 권위와 영향력을 인정받았으며, 호주의 정책 수립에도 적잖이 기여했다.

권 부소장은 예리한 학자이기 이전에 삶의 멋을 아는 휴머니스트다. “결국에는 일이 남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남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그는 딱딱해지게 마련인 연구소를 맛과 멋이 넘치는 장소로 만든 주역이다. 권 부소장이 베트남에 뿌리내린 한국학의 어제와 오늘을 이렇게 정리했다.

김동인의 ‘감자’가 계급투쟁 그렸다?

“베트남에서 한국학 연구는 1992년 한-베트남 수교 이후 시작됐다. 한국 정부가 적극적인 교류정책을 펼치면서 정부간 정책 및 인적 교류가 시작됐다. 그 결과 2000년에는 약 250개의 한국기업이 베트남에 투자했으며, 한국기업은 총 7만여 명의 현지인을 고용했다. 베트남 표준 가족수인 1가정당 5인을 대입해 추산하면 당시 35만여 명이 한국경제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됐다.

한국 관련 인적자원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한국의 대내외 한국학 지원기관과 현지 대학기관도 한국학에 관심을 가졌다. 국립 하노이 인문사회과학대(1992)를 필두로 국립 호치민 인문사회과학대(1994), 국립 하노이 외국어대(1997), 호치민 외국어 정보대(1998) 등에 한국학 관련학과가 설립됐다.

그래서 우리는 큰 기대를 걸고 2000년 6월 베트남에서 한국 연구에 대한 현지 실태조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다른 동남아 국가들에 비교해 베트남에서 진행되고 있는 한국관련 연구 활동은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당시 한국어 교육 관련학과에서 교육과정 개발과 강의를 주도한 그룹은 베트남에서 한국통 1세대라 일컫는, 북한 대학 출신의 유학파였다. 1960~70년대 북한과 제3세계 국가간 국제교류 확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김일성대와 김책공대에 유학을 다녀온 북한 출신 유학파 인물들이 1992년 수교 이후 급속하게 확대된 한-베트남 관계의 중간고리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이들 북한 유학파 출신에 의한 한국어 교육 및 연구 활동은 남한에서 생각하는 해외 한국학 연구의 발전 모델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었다. 사회주의 이론에 경도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일례로 근대 한국 소설의 거성으로 추앙받는 김동인(1900~51)의 자연주의적 색채를 띤 단편소설 ‘감자’를 소개하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계급투쟁의 내용으로 재해석해 한국어 교재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에 직면해 한-호 아시아연구소는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의 주요 국립대와 함께 한국학 교육을 위한 전략적 교류관계를 만들었다. 베트남의 국립 호치민 인문사회과학대와 협의해 현지의 한국학 연구발전 모델을 개발했다. 특히 호치민 인문사회과학대 위엔 반 타이 부총장의 역할이 지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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