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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민주화 돌풍과 미국의 고뇌

쇠퇴기 접어든 패권 시험하는 ‘원칙 vs 이익’의 딜레마

  • 김기정|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kimkij@yonsei.ac.kr

중동 민주화 돌풍과 미국의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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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미국의 실제 속내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국익을 앞세워왔던 미국 외교의 전통도 그러하거니와 현재(顯在)하는 이익을 확실한 수단을 통해 확보해야 한다는 국내 목소리도 높기 때문이다. 중동 지역의 민주화는 적극 환영하고 이를 지원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이 지역에서 가져야 할 이익 또는 지금 확보한 이익은 정세변화에 따라 타격을 입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국익을 위해 군사력을 강화하고 때에 따라 노골적인 군사력 사용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익을 위해서는 동맹국의 독재정권이나 인권탄압에 대해서 눈감아준 적도 비일비재하다.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개입정책이 정당화되기도 했고, 남미의 군사독재정권을 지원한 것이나 1980년대 초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력으로 진압했던 전두환 정권을 미국이 용인했던 것도 그러한 판단 때문이었다.

현재 아랍권 국가 중에 미국과 가장 가까운 맹방은 사우디아라비아다. 석유나 무기판매에 걸려 있는 이익도 긴요했지만 사우디와의 우호적 관계를 통해 역내에서 영향력을 확보함으로써 지역 안정화를 도모할 수 있다는 이점도 컸다. 지금까지 미국의 어느 대통령도 사우디 왕정의 독재와 비민주성을 비판한 적은 없다. 이익에 대한 판단 때문이다.

이렇듯 가치와 이익, 이상과 현실의 복합적 공존 때문에 미국 외교정책은 혼선이 빚어지기 일쑤다. 이집트 민주화가 결국 무바라크 퇴임으로 한 고비를 넘기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미국의 태도는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집트의 정치개혁을 강력하게 촉구했지만 조 바이든 부통령은 무바라크 대통령은 독재자가 아니고 하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무바라크 퇴임 결단을 촉구하려 보냈던 미국 특사가 뜻밖에 무바라크와 절친한 인물이었고 이에 따라 혼선이 가중되는 일도 있었다. 민주화라는 매력적인 카드와 오랜 동맹국 이집트와 관련된 이익에 대한 판단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아파와 수니파



중동지역의 민주화는 1980년대 세계를 휩쓸었던 민주화 확산 이후 부활한 세계적 변혁 현상이다. 세계정치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미국은 이를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1980년대의 변혁기도 그랬지만 중동 민주화의 경우도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강조해왔던 미국 외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민주주의 전도사로서 미국은 세계정치의 민주화를 선도해가는 국가이고, 중동 민주화는 미국 외교정책의 승리 혹은 미국 가치의 승리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반면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이 석유 공급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2003년 이라크전쟁도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앞세우긴 했지만 미국 석유자본의 이익이 요인이 됐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런가 하면 사우디를 비롯해 미국 무기에 대한 높은 구매력은 군수자본의 이익과도 맞물려 있다. 석유자본의 이익이나 군수자본의 이익은 늘 수면 아래에 잠복해 있지만, 그 외에 미국이 공론화하고 있는 중동 지역에서의 핵심이익으로는 이스라엘과 전략적 협력을 유지하는 것, 반(反)테러 및 이란 핵개발 저지를 위해 역내 국가들의 협력적 관계를 도모하는 것, 우여곡절 끝에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는 중동 평화조약 등이 있다. 이것들이 모두 미국이 전략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사안이고 보면 요컨대 역내 질서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유지하는지가 미국에 당면한 문제가 된다.

이렇게 놓고 보면 중동 민주화 사태를 바라보는 미국의 현실적인 고민은 명확해진다. 열기가 확산돼 미국의 맹방 사우디까지 흔들릴 때 과연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가 첫 번째 쟁점이다. 가치와 이익 사이에서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역내 불안정이다. 이집트처럼 친미성향을 보여왔던 국가들이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 친미로 남을 것인지 쉽게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란 혁명 때처럼 과격한 이슬람 정권이 들어서지는 않을지, 반미 친(親)이란 성향의 정권이 탄생하지는 않을지 고민이 깊다. 특히 이스라엘은 최근 시위확대로 인해 중동 곳곳에 이슬람 원리주의나 과격한 성향의 정권이 들어설 경우 자국의 안보가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번 민주화 열풍이 아랍권 내부의 묵은 갈등을 수면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른바 시아파와 수니파 간의 갈등이 그것으로, 바레인 시위 사태가 그 단적인 사례다. 바레인은 시아파가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18세기 이래 소수 수니파 왕족이 통치하고 있다. 이번 민주화 열풍 속에서 시아파는 시위를 이끌고 있다. 바레인에서는 2월14일부터 시위가 격화됐고,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해 6명이 사망하고 200명 이상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니파 왕족이 정권 퇴진 위기까지 몰리게 되면 같은 수니파 정권인 사우디가 바레인을 침공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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