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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Asia - 신동아 특약

재스민 혁명, 어디까지 번지나

강대국 이해 얽힌 중앙아시아가 차단벽 될 것

  • 글·게오르기 볼로신| 센트럴아시아코카서스애널리스트 카자흐스탄 주재기자 번역·강찬구| 동아시아재단 간사

재스민 혁명, 어디까지 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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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들 지역기구가 역내 국가에서 소요사태가 벌어질 경우 어떤 형식으로든 개입해 민주화를 추동할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오히려 중앙아시아 국가에 이집트식 위기가 닥칠 경우 CSTO나 SCO가 거꾸로 이를 봉쇄하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두 기구의 회원국들이 모두 인화성이 엄청난 혁명운동의 불꽃을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키르기스스탄에서 벌어진 바키예프 정권 붕괴는 이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리트머스 시험이었다. 수천 명의 소수 우즈벡인이 키르기스스탄 폭도들에 의해 학살당한 남부에서의 폭력사태와 관련해 많은 이가 우려를 표명했지만 CSTO나 SCO 모두 이 사태에 개입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당시 언론 인터뷰를 통해 남부 키르기스스탄에서 벌어진 인종 간 충돌은 군사개입 위협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이끄는 안보기구가 해당 국가의 소요사태에 개입하지 않은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2005년 전임 아스카르 아카예프 대통령을 축출하고 권좌에 오른 바키예프의 쿠데타는 분명 충격적이었지만, 이로 인해 키르기스스탄의 대(對)주변국 관계에 특별한 변화가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당시의 지배적인 관측과 달리 바키예프는 그리 친미적인 성향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바로 그 바키예프를 몰아낸 지난해 민중봉기 역시 주변국들에 별 의미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념적 성향이 아니라 극심한 빈곤 때문에 거리로 나온 국민들은 외교관계가 변화할 정도의 근본적인 변혁을 추구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은 유럽 국가들로 구성된 기구도 마찬가지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에 가입한 카자흐스탄은 2010년 의장국을 맡을 정도로 활발히 참여하고 있지만, 비슷한 시기 미국과 EU의 직접적인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2012년과 2017년 대통령선거를 건너뛰자는 국가 규모의 캠페인을 진행한 바 있다. 당시 유럽 국가들과 OSCE가 보여준 무관심한 행보는 이들이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민주화에 별다른 도움이 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서방국가들의 거듭되는 공언은 자신들의 노골적이고도 잔인하기 짝이 없는 실리주의를 은폐하기 위한 연막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이다.

미약한 시민사회의 한계



더욱이 중앙아시아 공화국들이 가진 민주주의 경험은 극히 제한적이다. 튀니지와 이집트의 경우 독재정권이 유지되는 동안에도 많은 국민이 다양한 시민운동에 활발히 참여해왔고, 극보수 성향에서 극진보 성향까지 다양한 정당이 존재했다. 여기에 해외 여러 기관의 재정적 지원과 원조를 바탕으로 민주화 운동을 이끄는 지도부의 풍부한 학식이 합쳐져 변혁이 피어날 환경이 조성됐던 것이다. 많은 시민이 정치적 염원보다는 사회부조리에 대한 불만 때문에 시위에 참여했다 해도 이들을 조직화하고 교육시킨 것은 분명 민주화 이후 사회상에 대한 자각을 품고 있던 그룹이었다. 중앙아시아에도 민주화를 향한 정치적 동인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사회적 변화를 수용하거나 그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성향이 강하다.

현재 각국의 정치상황은 심각하다. 타지키스탄은 극심한 빈곤으로 몸살을 앓고 있고 지도자들은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탄압을 끊임없이 이어가고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전 대통령의 추종세력들로 인해 고통 받고 있고, 카리모프 정권의 우즈베키스탄은 2005년 안디잔 대학살 당시 페르가나 계곡에 거주하는 극빈층들의 열망을 가혹하게 짓밟은바 있다.

상대적으로 덜 폭압적인 편이라는 카자흐스탄에서도 최근 정부 반대세력에 대한 탄압이 심화되고 있으며, 키르기스스탄은 여전히 혁명 이후의 혼란 정국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이들 5개국은 모두 권력에 관해 공통의 인식을 갖고 있다. 독재자들이 가신들과 친족들로 이뤄진 울타리 안에서 권력을 유지하는 동안 지위를 이용해 경제적 이득을 챙기는 것이다.

중동에서 진행 중인 혁명의 물결을 지켜본 많은 이가 장기 독재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한계를 넘어서면서 민중봉기가 불가피해진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불가피한 흐름이었다면 짐바브웨의 폭압적인 정권은 왜 붕괴되지 않는 것일까.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자체 통화가 사라졌고 국민은 하루 1달러로 버티고 있지만 무가베 정권은 여전히 건재하다.

결국 이론의 한계는 명백하다. 수십 년간 독재정권이 유지돼온 나라들 가운데 리비아와 튀니지, 이집트의 체제가 상대적으로 허약했을 뿐이고, 중앙아시아는 이 나라들과는 상황이 다르다. 더욱이 많은 중앙아시아 국가의 통치자들은 혼란을 무기 삼아 위험에 노출된 자신들의 권력을 더욱 강고히 하고 있다. 여기에 강대국들 사이의 이해관계 다툼, 평화적 변혁을 이끌어야 할 기층 민중조직의 유약함 등이 결합되어 현상 유지가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독재정권 유지가 결국 이들 나라의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에게 돌이킬 수 없는 해를 끼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 ‘Global Asia’는 동아시아재단이 발간하는 국제문제 전문 계간 영문저널이다. ‘21세기 아시아가 열어가는 세계적 변화의 형성과정을 주목한다’는 기조하에 아시아 지역 주요 현안에 관한 각국 전문가와 정책결정자들의 공론장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웹사이트는 http://globalasia.org이다.

신동아 201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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