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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고전 ‘당의정’

  • 고승철│저널리스트·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koyou33@empas.com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고전 ‘당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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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는 것 모두가 선물이다

중국 송대의 스님 원오극근(圓悟克勤·1063~1135)의 ‘벽암록’에 관한 글을 보자. 화두(話頭)를 깨달으려 용맹정진하는 선승들의 교과서이니만큼 일반인이 뛰어넘기엔 너무도 높은 벽 같단다. 기존의 세계를 깨지 않으면 어디에도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벽암록’이 전해준다고 한다. 이 글을 쓴 채운님은 “내가 믿고 있는 것뿐 아니라 사유하는 나 자신까지도 부정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가장 불온하고 혁명적인 텍스트”라고 선언한다.

100살 넘게 장수한 20세기의 대표적인 석학 클로드 레비-스트로스(1908~ 2009)의 저서 ‘야생의 사고’에는 뉴기니 원주민 가후쿠-가마족의 축구 경기가 소개된다. 양 팀이 동점 골을 넣을 때까지 며칠이고 공을 찬다는 것이다. 이들은 경기를 의례로 받아들였기에 승부를 결정짓지 않고 무승부를 이뤄낸단다. 레비-스트로스는 원주민들의 이런 사유(思惟)를 ‘야생의 사고’라 명명하고 야생은 야만이 아님을 역설했다. 이 부분의 필자인 신근영님은 “타자든 자연이든 교감과 공존은 나의 것에 대한 탐욕을 버리지 않는 한 이뤄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북아메리카 인디언 사회의 의례였던 포틀래치. 마을 축제 때 손님들에게 온갖 음식과 선물을 푸짐하게 나눠주는 행사다. 베풀고, 받고, 되갚고…. 이렇게 재물과 정(情)이 서로에게 돌아간다. 이런 행태를 분석한 명저 ‘증여론’은 인류학이란 새로운 학문의 물꼬를 텄다. 마르셀 모스(1872~1950)가 저자. 호혜적 선물 주고받기는 평화공존을 위한 실천적 지혜다. 공동체 삶을 구현해가는 필자 이희경님은 “모스의 ‘증여론’을 통해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세상, 매일 ‘리바이블’시켜야 하는 평화와 사랑의 세계를 꿈꾼다”고 털어놓았다.

조선의 대학자인 다산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제주, 강진 등에서 18년간이나 유배 생활을 했다. 낡은 움막에서 기거하며 수백 권의 책을 집필했다. 그의 인간적 고뇌가 가득 담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가운데 두 아들에게 띄운 글이 돋보인다. 폐족(廢族)이어서 과거를 볼 수 없어 벼슬은 못 하지만 학문에 정진하기에는 오히려 더 낫다고 격려한다. 서평을 쓴 문성환님은 다산의 치열한 학문 활동에 대해 “어쩌면 그것은 한 지식인이 자신의 실존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혹은 정직한 방법이 아니었을까”라고 정리했다.



재상 벼슬을 마다하고 시궁창에서 살기를 자원한 쾌남아 철학자가 누구일까. 장주(莊周·기원전 365~290)다. 그는 흔히 장자(莊子)로 칭해진다. 그의 논변을 모은 고전 ‘장자’는 “만물은 모두 똑같다”며 인간의 오만을 꾸짖었다. 만물이 함께 살려면 다른 존재의 삶을 온몸으로 감지해야 한단다. 필자 길진숙님은 “다스린다는 행위가 없는데도 잘 돌아가는 세상. 그런 무위(無爲)의 세상이 장자가 상상한 공동체다. 국가 없이 살기를 꿈꾸고 국경 없는 사회를 꿈꾸는 당신에게 ‘장자’는 든든한 벗이 되어줄 것”이라 말했다.

고전 문학, 인간 욕망을 다루다

‘고전 톡톡’이 다룬 책 가운데 문학 작품도 적잖다. 이광수의 ‘무정’, 루쉰의 ‘아Q정전’, 카프카의 ‘변신’,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등 동서고금의 명작이 수두룩하다.

한국에서는 ‘삼국지연의’‘서유기’ 등에 비해 덜 알려진 중국 고전이 ‘홍루몽(紅樓夢)’이다. 청대의 작가 조설근(曹雪芹·1715~1763)이 남긴 대하소설이다. 480여 명의 등장인물이 벌이는 파란만장한 이야기는 한번 책을 잡으면 내려놓기가 어려울 만큼 흥미진진하다. 겉보기로는 연애소설이지만 인간 욕망의 허무함을 묘파한 구도(求道) 소설이기도 하다. 당대의 문화, 사회, 정치, 복식, 음식 등 다양한 배경을 파악할 수 있게 하는 박물학적 보고(寶庫)여서 이 작품을 연구하는 학문을 ‘홍학(紅學)’이라 하기도 한다. ‘홍루몽’을 분석한 최정옥님은 “인간만이 자연현상과 인간사에 온갖 의미를 부여하며, 가짜니 진짜니 하며 얽매이며 연연해한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문호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의 대표작 ‘죄와 벌’은 도입부부터 섬뜩하다. 가난한 청년이 전당포 주인 노파를 도끼로 살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법학도인 청년은 스스로 범행 이유를 찾았으나 결국 실패한다. 그 점이 자신의 죄라고 여긴다. 그는 자수하고 시베리아 수용소로 간다. 이 작품을 소개한 안명희님은 “주인공들은 천상이 아니라 지상에 있다. 이 지상적 존재들이 겪는 고통과 비극, 그리고 그를 돌파하기 위한 갈등과 투쟁이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전편에 펼쳐진다. 그들은 피안(彼岸)이 아니라 차안(此岸)의 세계에서, 한정된 조건 안에서 싸워 자유를 얻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 책은 청소년이 읽어도 좋겠다. 논술용이니 독서용이니 하며 급조한 고전풀이 참고서보다 훨씬 알찬 책이다.

신동아 2011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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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철│저널리스트·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koyou33@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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