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터널을 지나
이윽고 용복리 삼거리. 천등산 입구에서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인데 길가에 ‘화암사’ 진입로를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다. 이곳에서 키 작은 대추나무들이 서 있는 갈림길로 들면 화암사까지는 외길이다. 절간까지 가는 좁은 포장도로 주변의 풍경은 지극히 고요하고 아름답다. 대둔산, 천등산 쪽에서 봤던 우람한 풍광과는 대조적이다. 더 이상 차가 나아갈 수 없는 지점, 그 너른 공터가 절간 주차장인 셈이다. 사방이 숲과 산으로 둘러싸여 아연 폐쇄공간에 든 느낌을 갖게 된다.
화암사로 오르는 산길은 숲의 터널이다. 열대의 밀림에라도 든 듯 공기도 습하다. 숲을 벗어났다 싶으면 골과 바위벽이 나타나는데 이때부터 길은 턱없이 좁아지며 미끄럽기도 하다. 바위벽을 돌고 골을 건너면 물소리 요란한 폭포를 마주하기도 하는데 산길을 걷는 이는 시의 표현처럼 계곡이 나오면 외나무다리가 되고, 벼랑이 막아서면 허리를 낮추기만 하면 그만이다.
산과 골의 형세를 봐서는 도무지 근처 어디에도 절집이 있을 성싶지 않다. 특히 골의 끝자락에서 풍경을 가리고 선 높다란 바위벽을 마주하면 더욱 그러하다. 사람마저 드물었던 그 옛날, 역적모의는커녕 나그네 등짐 뺏을 궁리조차 해본 적 없었을 스님네들이 무슨 깊은 생각을 하고 남 들어서는 안 될 말씀을 나눈다고 이런 궁벽한 곳에 절집을 짓기로 마음을 먹었을까 싶은, 희한한 생각까지 들지 않는바 아니다. 이렇듯 꼭꼭 숨은 절을 볼라치면 문득 조정권의 짧은 시 한 편도 머리에 스친다.
독락당(獨樂堂) 대월루(對月樓)는
벼랑꼭대기에 있지만
옛부터 그리로 오르는 길이 없다.
누굴까, 저 까마득한 벼랑 끝에
은거하며
내려오는 길을 부셔버린 이.
- 조정권 시 ‘독락당(獨樂堂)’ 전문
절은, 바위 벼랑 앞에 층층으로 설치된 철 구조의 보행로를 통해 절벽 위를 오른 뒤, 그 위편에 선 아름드리 고목을 돌아서야 만난다. 흔적으로 봐서는 예전엔 절벽 틈새로도 길이 있었던 듯싶은데 사람의 내왕이 쉽지 않다 여겨 근대에 이런 구조물을 세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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