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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문학이 바라본 ‘문명’의 얼굴

  • 고승철│저널리스트·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koyou33@empas.com

한국 인문학이 바라본 ‘문명’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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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문학이 바라본 ‘문명’의 얼굴

‘문명 안으로’<br>김민정 등 9명 지음, 한길사, 299쪽, 1만6000원

2009년 초여름, 이화여대에서 지구사연구소를 개설한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읽었다. 세계사(世界史)가 아니라 지구사(地球史)라니? 연구소 문을 여는 기념강연 연사로 거대사(巨大史·Big History)의 창시자 데이비드 크리스천 교수가 초청됐단다. 거대사는 또 무엇일까?

궁금증을 풀려고 6월16일 강연장을 찾았다. 백발을 휘날리며 연단에 선 크리스천 교수는 “거대사는 민족과 국가 중심의 역사를 뛰어넘는 지구 전체의 큰 역사”라면서 “137억년 전에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하고 46억년 전에 지구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통 크게’ 역사를 바라보는 셈이다. 호주 맥쿼리대 교수인 그는 인류 문명에 대해서는 “지역사에 매몰되면 전체 그림(whole picture)을 보기 어렵다”면서 시야를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명은 인간이 지구상에 남긴 결과물이다. 집을 짓거나, 길을 만들거나, 논밭을 일구는 등 유용한 일을 한 결과 말이다. 흔히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라 하면 나일,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등을 일컫는다. 이런 강변의 거대한 고대 문명 이외에도 소규모 문명권이 세계 여러 곳에서 존재했다. 문명은 발상지에서 이웃으로 옮겨가 새로운 문명을 낳곤 했다.

세월이 흘러 과학기술문명이 발달하면서 대도시, 대규모 공장, 우주선, 핵무기, IT기기 등이 양산됐다. 문명 발달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휴대전화, 자동차, 고속전철, TV, 컴퓨터 등 온갖 문명의 이기(利器)를 사용하는 현대인은 “문명이란 무엇인가?”란 화두에 대해 고구(考究)할 필요가 있다.

‘문명 안으로’라는 책을 보니 그 화두에 대한 전문가들의 치열한 고민이 담겼다. 문명의 기원, 문명과 야만, 문명의 표준, 조선과 문명 등 문명을 열쇳말로 한 13편의 글이 실렸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문명연구사업단이 ‘문명의 허브(hub), 한국 인문학의 새로운 구상’이라는 주제로 3년여 연구한 성과를 정리한 것이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은 ‘인간·문명·세계에 대한 탐구’를 활동목표로 출범한 조직이다. 이 책은 ‘문명공동연구’라는 총서(叢書)의 첫 번째다. 함께 나온 ‘문명 밖으로’는 총서 두 번째 책이다. 김헌 서울대 HK 연구교수가 쓴 ‘문명 안으로’의 서문을 옮겨보자.



인문학뿐만 아니라 인문학 인접 학문 전공학자 스물세 명이 모여 세계의 문명을 한반도의 반쪽 땅에 살면서 연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어떻게 한국 인문학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지 좀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계획하며 이제 다시 새로운 출발점에 선다. 이 시점에서 지난 3년간의 연구 성과를 모아 책으로 펴내는 일은 참으로 뜻 깊다. … 매월 한 명의 필자가 작성한 글을 놓고 다른 사람들이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형식의 세미나가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각자의 글쓰기 스타일이 부딪치며 사소한 문제에 얼굴을 붉혔던 적도 있다. 중요한 개념의 번역을 두고 심각한 논쟁이 오가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서로의 뜻을 이해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생산적인 방향으로 글을 만들어갔다.

서양 근대문명 발상지는 피렌체

문명(civilization)이라는 개념은 언제 생겼을까. 여러 학자는 계몽주의 시대인 18세기 중반에 영국과 프랑스에서 거의 동시에 생긴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 단어의 뿌리는 고대 로마시대에서 찾을 수 있다. 라틴어 시민(civis)과 도시(civitas)와 관련 있다는 것이다. ‘civilization’을 글자대로 번역하자면 ‘도시화’가 된다. 이 부분에 대해 안성찬 서울대 HK 연구교수는 “근대 이래 서양의 문명화 과정과 지난 세기 이래 동양의 문명화 과정이란 농촌 중심에서 도시 중심으로 인간의 생활공간이 옮아가고 이에 따라 생활양식도 변화하게 된 것을 가리킨다”고 설명했다. 근대 서양에서 이런 변화가 가장 먼저 이루어진 곳은 르네상스의 중심도시 피렌체라고 한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국력을 집중했다. 총포, 선박, 철도, 건축 등을 도입하는가 하면 서적을 들여와 번역에 몰두했다.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들어가자”라는 뜻인 탈아입구론(脫亞入歐論) 주창자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1835~1901)는 ‘문명론의 개략’이란 저서에서 문명이란 단어를 처음 썼다. 후쿠자와는 조선의 젊은 개화파 인물인 김옥균, 박영효 등을 부추겨 갑신정변을 일으키는 배후 역할을 하기도 했다. 아시아의 맹주를 꿈꾸던 일본은 당시의 중국을 비(非)문명국으로 규정했다. 일본의 지배세력은 일본이 문명국으로 얼른 자리 잡아 아시아를 제패하겠다는 야심을 품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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