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호

혁명가가 부르는 시대의 노래 어둠이 지나면 새벽이 온다

정태춘 ‘북한강에서’

  • 글·김동률|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 사진·권태균|사진작가·신구대 교수 photocivic@naver.com

    입력2014-01-23 09: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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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의 마을’을 불렀던 음유시인은 1980년대, 격동의 시간을 보내며 운동가로 변신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거칠어지지 않았다. 묵직한 시대정신을 담아냈지만, 생경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여전히 그의 노래에서 깊은 산사의 풍경 소리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는 오로지 노래를 통해 말했다. ‘언젠가 이 어둠이 지나면 그토록 목말라하던 새로운 시대가 온다’고.
    혁명가가 부르는 시대의 노래 어둠이 지나면 새벽이 온다
    테이프를 집어넣고 피아노 건반처럼 생긴 버튼을 꾸~욱 누르면 노래가 흘러나오는 책 크기만한 기계가 있었다. 카세트 리코더다. 30여 년 전 얘기. 브랜드는 당연히 소니였고, 서너 시간을 계속해 들으면 열로 인해 모터를 돌리는 줄이 늘어나는 바람에 고운 노래가 갑자기 외계인의 음성처럼 들리던 그런 기계였다. 원하는 노래를 콕 집어서, 그것도 깜찍한 스마트폰을 통해 듣는 지금 시대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얘기다.

    나는 그때 한 가수의 노래를 듣게 된다. 그리고 그 노래가 주는 그윽하고 깊은 울림에 진한 감동을 느꼈다. 그는 정태춘이었고 그때 들은 노래가 ‘시인의 마을’과 ‘촛불’이다.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사실 그의 초기 노래들은 차라리 한 편의 시에 가까웠다. 인간의 심장을 위무하는 묵직한 메시지가 있었다. 지난해 타계한 조르주 무스타키가 인기를 누리던 당시 이 땅에도 ‘음유시인’ ‘노래하는 철학자’ 같은 말이 유행했고 그리고 왠지 모르게 근사해 보이는 이 같은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 몇몇 있었다.

    나는 정태춘이 여기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나는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음유시인이라는 수식어가 주는 특별한 의미를 이해하게 됐다. 여백과 울림이 있는 그런 노래가 가능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정태춘의 노래에 익숙한 지금의 기성세대 대부분이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 그 시절, 막 대학생이 된 나는 정태춘이 부르는 묘한 분위기의 노래를 듣는 밤이면 왠지 외롭고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하숙집 선반에 숨겨져 있던 소주를 한잔 마시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서정에서 운동으로

    정태춘은 1954년생이다. 경기도 평택에서 농부의 5남3녀 중 일곱째 아들로 태어났고 평택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학창시절 독학으로 기타를 배울 만큼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지만, 음대 진학에는 실패했다. 이후 한동안 방황하던 그는 군에서 전역한 후 그간 습작했던 자작곡을 모아 첫 앨범 ‘시인의 마을’(1978)을 발표하면서 가수로 데뷔한다. 이 앨범에 수록된 ‘시인의 마을’ ‘촛불’ ‘사랑하고 싶소’ ‘서해에서’ 등은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았다. 당시 그의 노래들은 짙은 서정성, 시적인 가사로 기성가수들과 차별됐다. 하지만 격동의 1980년대를 맞으면서 그의 노래는 큰 변화를 겪는다.



    1980년대 후반, 어느 순간부터 정태춘의 노래는 낯설어지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의 정치적 변혁기였던 1987년 6월 항쟁을 거치면서 그는 사회 현실에 대해 한층 직접적인 비판을 담은 노래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노래 곳곳에 묵직한 시대정신이 담기면서 노래에는 깊고 그윽한 서정 대신 아픈 비명이 자리 잡는다. TV 화면에서 사라졌으며 소용돌이치는 현장에서 운동가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전교조 모임, 파업 현장, 사전검열 철폐 집회, 미군부대 이전 반대 시위 현장 등에서, 가수가 아니라 활동가의 모습으로 그는 등장했다. 가수보다는 문화운동가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리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대중이 감탄했던 웅혼한 감성과 시적 노랫말이 있던 자리에는 전투적이고 선동적인 단어들이 대신한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레퍼토리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겨나는 노래들이다. 그래서 이른바 ‘오지리널’ 그의 노래를 사랑하던 사람들은 속상해하고 안타까워했고, 조급한 이들은 그의 곁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공허한 서정성은 필요 없다”는 주장과 함께 점점 더 거친 저항의 노래를 불렀고 그런 그를 어색해하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갔다.

    그럼에도 그는 ‘세상을 바꾸는 노래’를 열심히 불렀다. 지금과는 달리 대중가수의 사회참여가 아주 낯설었고 더러는 진정성조차 의심받기도 하던 그 시절, 정태춘은 무소의 뿔처럼 고난의 행군을 저 혼자 계속했다. 각종 대중 집회나 시위 현장에서 검정 고무신을 신고 북을 치면서 노래하기도 했다. 데뷔 시절 만나 결혼한 가수 박은옥은 훌륭한 지원자였다

    그런 와중에 등장한 노래가 ‘북한강에서’다. 금강산 자락에서 시작된 북한강은 남녘을 향해 쉼 없이 흘러와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에서 끝난다. 강은 여기서 남한강과 합쳐져 한강이 된다. 북한강은 팔당호를 비롯해 청평, 의암, 춘천, 소양, 파로호 등 댐이 만들어낸 호수들을 품고 있다. 송창식 등 강변의 풍광을 좋아하는 예인들이 강기슭 여기저기에 둥지를 틀고 있다. 그래서 강 양안에는 크고 작은 갤러리가 산재한다. 그러나 노래 ‘북한강에서’는 이런 낭만적인 풍광과는 거리가 있다. 노래에는 낭만을 넘어선 깊은 비감, 대도시에서 오는 비극적 서정 같은 것이 담겨있다.

    혁명가가 부르는 시대의 노래 어둠이 지나면 새벽이 온다


    개구리복과 ‘북한강에서’

    30대 어느 날 새벽, 그는 예비군 동원훈련에 소집된다. 서울 근교 초등학교 운동장에 소집당한 개구리복의 30대 예비군 아저씨들은 지금은 없어진 대한통운 트럭에 짐짝으로 던져졌다. 호로도 없는 트럭은 새벽 강 안개를 뚫고 동원훈련장이 있던 북한강변을 쉴 새 없이 달렸고 감수성이 빼어난 낭만적인 30대 아저씨는 개구리복을 입은 그 순간에도 노랫말을 메모하고 콩나물 대가리를 열심히 그려댔다.

    그해 예비군 동원훈련을 마치고 발표한 노래가 바로 ‘북한강에서’였다. 한때 시인협회가 선정한 우리 시대 최고의 노래가 아이러니하게도 군사훈련을 받는 동안 만들어진 것이다. 이 땅에서 군복을 입으면 누구나 개가 된다는 속설과는 대조적으로 그는 개구리복 속에서 우울하고 무거운 비극적 서정을, 그러나 몹시도 결이 고운 노래를 뽑아냈다.



    ‘저 어두운 밤하늘에 가득 덮인 먹구름이/ 밤새 당신 머리를 짓누르고 간 아침// 나는 여기 멀리 해가 뜨는 새벽 강에 홀로 나와/ 그 찬물에 얼굴을 씻고/ 서울이라는 아주 낯선 이름과/ 또 당신 이름과 그 텅빈 거리를 생각하오/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가득 피어나오/ 짙은 안개 속으로 새벽강은 흐르고/ 나는 그 강물에 여윈 내 손을 담그고/ 산과 산들이 얘기하는 나무와 새들이 얘기하는/ 그 신비한 소리를 들으려 했소/ 강물 속으론 또 강물이 흐르고/ 내 맘속엔 또 내가 서로 부딪히며 흘러가고/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또 가득 흘러가오.(하략)’



    음울한 중저음의 목소리로 부르는 정태춘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문득 자신이 강바닥으로 가라앉는 느낌을 받게 된다. 노래는 8년 앞서 발표된 정희성의 시 ‘저문 강에 삽을 씻고’와 일맥상통한다는 느낌을 준다.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 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창작과비평사, 1977)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삶의 고단함을 반추하는 중년 노동자의 모습을 통해 가난한 자들의 아픔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노래와 시는 얼마간의 공통점이 있다. 노래 ‘북한강에서’는 절제된 감정과 차분한 어조로 우리 시대의 현실과 핍박받으며 살아가는 도시인의 슬픔을 노래했다고 한다. 자신의 목소리와 신념을 드러내 강조하지 않고 새벽 강변의 안개 낀 풍경을 통해 삶의 현장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현실참여 노래의 한계를 극복해낸 점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시대를 거쳐오면서 그에 대한 평가는 혼란스럽다. 어둠의 시대, 새벽을 알리는 깊은 울림이라는 상찬이 있는가 하면 지나치게 사회변혁운동에 몸담아온 데 대한 안타까운 비판의 소리가 있다. 그럼에도 그의 노래가 갖는 짙은 서정성과 아름다운 선율, 호소력 짙은 잘 발효된 음색 등을 부정하기 어렵다.

    혁명가가 부르는 시대의 노래 어둠이 지나면 새벽이 온다
    일몰의 고갯길을 넘어가는…

    그래서 그의 노래들은 그 시절 어둠의 공간에서 불렸던 다른 운동권 노래들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권위주의 시대를 관통한 수많은 저항가요의 경우 대개 분노, 저항 등을 날것으로 품고 있었지만 정작 정태춘의 노래에선 거칠고 생경한 대목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그가 사회변혁운동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는 배경 설명을 사전에 듣지 못한 사람들은 그저 아름답고 서정성 짙은 한 편의 시와 같은 가요로 들을 뿐이다. 누군가는 깊은 산사에서 듣는 풍경 소리와 같다고도 평가했다. 그러나 그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어둠의 시대가 끝나고 그토록 목말라하던 새로운 시대가 온다’는 희망을 비로소 깨닫는 것이다. 지금 북한강은 정태춘이 노래했던 30년 전 그 시절 강은 아니다. 이른바 4대강 개발 사업으로 강은 콘크리트 옷으로 완전히 갈아입었다. 소박하고 고즈넉했던 강의 모습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인공의 흔적이 강 전체를 뒤덮고 있다. 끝없이 늘어선 음식점과 카페, 러브호텔이 ‘산들이 얘기하는 나무와 새들이 얘기하는/ 그 신비한 소리를 들으려 했던’ 노랫말의 낭만을 깡그리 지워버린다. 장어구이, 청국장, 갈치조림, 토종닭, 참붕어찜, 설렁탕, 김치말이국수, 올갱이국, 우렁 쌈밥집 사이로 에메랄드, 텔레파시, 힐타운, 베네치아, 알프스, 잉카 등이 둥지를 틀고 있다. 점령군처럼 우뚝 선 강변의 러브호텔들이다.

    그 옛날의 북한강 풍경을 찾기 어려운 것처럼 이제 가수 정태춘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가고 오는 세월 속에 사람들이 그의 노래가 던지는 깊은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된 지금, 그러나 ‘한국의 보브 딜런’이란 비유가 외려 부족한 느낌의 그는 이제 대중의 곁을 떠나 점점 더 은둔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는 스스로 ‘일몰의 고갯길을 걸어가는 고행의 방랑자’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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