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내고 3억 번다? 공천헌금의 정치학

[Special Report | 돈과 권력, 정치권의 뫼비우스 띠] 대상만 달라질 뿐 공천헌금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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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26-01-20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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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억에 시의원 된 김경, 4년간 3억 활동비 받아 ‘남는 장사’

    • ‘밀실 공천’ 폐해 막으려 국민경선 ‘상향식 공천’ 도입

    • ‘돈 정치’ 차단 위해 정치자금 기부자 실명제 도입

    • 돈으로 권력 잡고, 권력으로 돈 버는 나쁜 정치

    • 지방의원 고액 후원금, 공천 염두 둔 대가성 가능성↑

    • 총재→시·도당, 다음은 강성당원 동원력 큰 ‘정치 인플루언서’?

    1월 15일 김경 서울시의원이 공천헌금과 관련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공공범죄수사대에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1월 15일 김경 서울시의원이 공천헌금과 관련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공공범죄수사대에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김경 서울시의원이 2022년 지방선거 때 지역구를 강서구에 둔 강선우 국회의원에게 ‘1억 원’을 공천헌금으로 줬다는 의혹이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여기에 당시 공천관리위원회 간사이던 김병기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2020년 4월 총선 전, 자신의 지역구인 동작구의 기초의원 두 명으로부터 1000만 원과 2000만 원을 받았다가 선거 이후 돌려줬다는 의혹이 제기돼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민주당은 공천헌금 사건에 연루된 강선우·김병기 두 의원을 ‘제명’했다. 돈 안 드는 깨끗한 선거, 투명한 정치 구현을 위해 선거법과 정치자금법 등을 대폭 강화했음에도 여전히 공천헌금 얘기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민주당 주장처럼 강선우·김병기 두 의원의 ‘개인적 일탈’일까, 아니면 구조적 원인이 있는 것일까.

    수직계열화된 정치구조가 근본 원인

    “지방선거 당시 도의원 공천을 희망하는 한 인사가 찾아와 현찰 5억 원이 든 가방을 두고 간 것을 알고 깜짝 놀라 다음 날 되돌려줬다. 당시 기초단체장은 10억 원, 광역의원은 5억 원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았다.”

    2026년 얘기가 아니다. 28년 전인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공천헌금과 관련된 일화를 다룬 동아일보 1998년 9월 5일자 보도 내용의 일부다. 당시는 IMF 외환위기로 나라 경제가 크게 위축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지방선거 공천을 향한 헌금 규모는 지금보다 몇 배 이상 많았다. 당시 보도 내용 중에는 지방선거뿐 아니라 총선 때의 공천헌금 얘기도 여럿 등장한다. 

    “1996년 4·11총선 당시 자민련 모 부총재와 모 당무위원이 ‘당이 전국구 상위권 후보 공천 과정에서 130억여 원의 공천헌금을 요구한 내용이 담긴 녹음테이프를 확보하고 있다’며 공천헌금설(說)을 주장, 큰 파문을 일으켰다”는 내용과 “총선 후 정모 전 의원이 ‘전국구 공천을 위해 현금 1억 원을 라면박스에 담아 자택에서 총재에게 줬다가 총선 후 반환을 요구해 5000만 원씩 2차례에 걸쳐 돌려받았다’고 주장했다”는 내용 등이다.



    200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2001년에도 공천헌금 얘기는 언론에 자주 등장했다.

    “(2002년 지방선거를 1년 앞두고) 영호남 등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지방선거에 출마할 인사들이 해당 정당의 실력자나 관계자 등을 찾아가 공천헌금 수수를 타진하는 등 은밀한 거래가 시작되고 있다. 또 일부 단체장과 출마 예정자들은 기초단체장의 경우 수억 원에 달하는 공천헌금 문제로 고민하고 있으며, 돈을 마련할 길이 없어 출마를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현직 단체장들이 정당 공천을 받기 위해 해당 지역 지구당위원장에게 줄을 서는 경우도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도 내용을 보면 ‘공천=당선’인 특정 지역에서 공천헌금 규모가 월등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당시는 당 총재나 측근들이 공천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할 여지가 많은 ‘하향식 공천’이 주로 이뤄져, 공천을 매개로 한 ‘은밀한 거래’가 지금보다 더 횡행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한국 정치는 2002년 대선 때 ‘국민경선’이 도입된 후 제왕적 총재, 계파 보스 중심의 ‘하향식 공천’에서 벗어나 경선에 참여한 당원과 국민 뜻에 따라 후보가 결정되는 ‘상향식 공천’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소수 권력자 중심의 ‘밀실 공천’이 다수 당원과 국민이 참여하는 ‘광장 정치’로 변모한 것이다.

    공천헌금 논란으로 민주당에서 제명된 강선우(위)·김병기 의원. 뉴스1, 동아DB

    공천헌금 논란으로 민주당에서 제명된 강선우(위)·김병기 의원. 뉴스1, 동아DB

    국민경선 도입, 오세훈법 통과 후 ‘금권정치’ 감소

    또한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대기업으로부터 대규모 불법 정치자금을 트럭을 이용해 받았다는 이른바 ‘차떼기 사건’ 이후 ‘돈은 묶고, 입은 푼다’는 취지로 정치자금법이 대폭 강화된 것도 큰 몫을 했다. 당시 관련 법을 발의한 이가 오세훈 서울시장이어서 일명 ‘오세훈법’으로 통한다. 법안의 핵심 내용은 법인 및 단체의 정치자금 기부를 금지해 돈 정치를 차단하는 대신, 정치자금을 투명하게 관리하기 위해 정치자금 기부자 실명제를 도입한 것이 특징이다.

    ‘상향식 공천’이 일반화하고, 돈 정치를 막기 위한 오세훈법이 시행된 후 한동안 정치권에서 공천헌금 논란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이후에도 공천헌금은 그 행태가 달라졌을 뿐 완전히 근절되지 않았다는 게 정치권 인사들의 얘기다.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전국 선거를 여러 번 치러본 한 인사는 “공천을 매개로 한 정치자금 제공은 과거에 비해 액수는 줄었을지 몰라도 완전히 사라지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직계열화된 정당 구조상 하부에 있는 정치인들이 공천 과정에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공천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상부 정치인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하고 정치자금을 후원하는 것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당은 당원 ▷기초의원 ▷광역의원 ▷기초단체장 ▷국회의원(원외 당협 or 지역위원장) ▷시·도당 ▷중앙당 구조로 수직계열화돼 있다. 김영삼(YS)과 김대중(DJ)·김종필(JP) 등 3김이 활동하던 시기, 지방선거 공천은 중앙당이 주도한 ‘하향식 공천’이 일반적이었다. 그 때문에 당 총재나 그 측근을 대상으로 한 ‘공천 로비’가 횡행했다. 특히 3김이 영남은 YS, 호남은 DJ, 충청은 JP 식으로 지역 맹주로 군림한 탓에 해당 지역의 경우 ‘3김이 주도하는 당에서 공천을 받으면 곧 당선’으로 인식됐다. 그런 까닭에 해당 지역 출마 예정자 사이에 공천헌금 경쟁이 불붙어 그 규모가 타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돈을 주고 공천을 받은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의 경우 ‘본전 이상’을 뽑기 위해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경우가 많아 구설에 오르거나 수사를 받고 사법 처리되기도 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돈으로 권력을 잡으려 하고, 권력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질 나쁜 정치인들의 행태가 아직도 근절되지 않아 지방행정을 좀 먹고 있다”고 개탄했다.

    당 총재 등 일부 실력자 중심의 하향식 공천의 폐단을 막기 위해 각 정당은 중앙당에서 일괄적으로 실시하던 지방선거 공천을 시·도당에 위임했다. 그러자 공천헌금 문제가 중앙당에서 시·도당으로 옮겨갔다. ‘권한 있는 곳에 돈 몰린다’는 속설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공천헌금을 제공하는 이들은 대개 각 당이 내세운 공천 기준에 미달하는 흠결 있는 후보자인 경우가 많다. 김경 서울시의원의 경우 ‘다주택자 공천 배제’라는 민주당 공천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부적격자였다. 그러나 ‘1억 원 공천헌금’ 덕인지 그는 ‘단수공천’을 받아 서울시의원에 올랐다. 서울시의원의 경우 연간 7200만 원, 4년간 총 3억 원 가까운 활동비를 지급받는다. 단순 계산해도 1억 원을 주고 세 배 가까이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그가 시의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서울시 공무원을 상대로 ‘큰소리’치고,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에 서울시 관계기관을 통해 참석하는 ‘특권’을 누린 것은 덤이다. 막대한 공천헌금을 주고라도 기를 쓰고 지방의원이 되려는 까닭은 이처럼 당선만 되면 막대한 혜택을 누릴 수 있어서다.

    실명 공개 피하려 ‘쪼개기 후원’ 하기도

    중앙당에서 시·도당으로 지방선거 공천권이 넘어간 뒤에는 시·도당 공천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대표적 사건이 2018년 제7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불거진 ‘홍문종 사건’이다. 2014년 제6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기 지역 기초단체장 모 예비후보가 수억 원의 공천헌금을 당시 새누리당 사무총장이자 공천관리위원장으로 공천과 선거를 총괄했던 홍 전 의원 측근에게 제공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 이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은 홍 전 의원은 횡령과 배임, 뇌물 수수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이재명 정부 출범 후인 지난해 광복절 특사로 사면 복권됐다.

    지금도 기초의원과 광역의원, 기초단체장 공천 과정에서 현역과 원외 위원장이 중심이 된 시·도당 차원에서 상당 부분 지방선거 공천이 이뤄진다. 이 점에서 공천을 매개로 한 공천헌금과 같은 음성적 거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을 개연성이 있다. 

    특히 연간 500만 원 한도의 개인 후원금 역시 변형된 공천헌금일 수 있다는 얘기가 많다. 후원 내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방의원들이 유력 정치인 또는 해당 지역 의원에게 고액 후원금을 낸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2015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된 고액 후원자 명단과 지방선거 출마자 명단을 비교한 자료에 따르면, 유력 정치인이나 해당 지역 국회의원에게 고액 후원금을 낸 지방 정치인 가운데 상당수가 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으로 이어진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즉 지방의원의 고액 후원금은 공천을 염두에 둔 대가성 후원금일 수 있는 셈이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개인은 연간 500만 원까지 후원이 가능하고, 300만 원 이상 후원한 사람의 명단은 공개한다. 이 같은 제도적 허점을 우회한 편법 쪼개기 후원이 적지 않다는 게 정치 관계자들의 얘기다. 실제로는 연간 개인 후원 한도 500만 원을 꽉 채워 후원하면서도 실명이 공개돼 서로 불편한 상황이 생기는 것을 피하기 위해 명단에 포함되지 않도록 가족과 지인 등을 동원해 이른바 쪼개기 후원을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 이 경우 해당 지역구 의원이 알 수 있도록 후원자 명단을 관리하는 보좌진 또는 회계 책임자에게 ‘누구 누구는 내가 후원했다’고 귀띔한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고액 후원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확실히 드러나도록 일부러 500만 원을 채워 후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 경우는 ‘공천 때 불이익을 주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용이라고 한다. 만약 공천 과정에 ‘컷오프’될 경우 ‘해마다 연간 개인 최고액을 후원했는데도 경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며 동정 여론에 호소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정청래 ‘1인 1표제’ 힘 받을 수도

    강선우·김병기 두 의원의 공천헌금 파문은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한차례 추진했다 좌절된 ‘권리당원·대의원 구분 없는 1인 1표제’를 관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공천헌금 논란’이 지역구 의원 또는 시·도당 공천관리위원회 차원에서 벌어진 일인 만큼 앞으로 지방선거 공천 때  권리당원 비중을 높이자는 주장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점에서다. 

    지금까지 지방선거 공천이 시·도당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당원들 뜻보다는 지역구 의원과 원외 위원장 영향력이 컸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1인 1표제’가 도입되면 대의원 선출 등을 통해 지역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지역구 의원과 원외 위원장의 영향력이 크게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 격언 중에 ‘돈은 권력을 쫓아간다’는 말이 있다. 당 총재에서 시·도당으로 지방선거 공천권이 넘어간 뒤 시·도당 공관위에서 문제가 불거진 것처럼, 만약 ‘1인 1표제’가 도입되면 이번에는 당원들에게 영향력이 큰 ‘정치 인플루언서’에게 정치 헌금이 대거 몰릴지도 모를 일이다. 대상이 달라질 뿐 공천헌금은 형태와 방식을 바꿔 여전히 한국 정치 한편에 똬리를 틀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 



    구자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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