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정치·사회 분야 베스트셀러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읽힌다. 신자유주의 원칙에 대한 탐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1위를 차지한 토마 피케티 교수의 ‘21세기 자본’은 부와 소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조명하고, 양극화 문제와 불평등 구조를 날카롭게 파헤쳤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인간의 생사를 가르는 상황이 신자유주의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양극화 해소 방법에 집중한다.
자본주의의 불합리성을 고발한 책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3위)는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를 강조한다. 권호순 대한출판문화협회 이사는 “이들 책은 신자유주의의 원칙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식함으로써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찾고 그것을 통해 자본주의를 수리해서 쓰자고 말한다”고 분석했다.
경제 관련 베스트셀러 목록에선 이런 기조가 더욱 짙어졌다. 2005년 경제·경영 분야 베스트셀러 1위는 ‘블루오션 전략’이다. 이 책은 애초에 경쟁자가 없는 시장 공간을 창출해야 사업이 성공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전략적인 성공을 거두기 위한 필수조건을 제안한다. ‘미운오리새끼의 출근’(4위)은 성공적인 직장생활 메뉴를, ‘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6위)’은 급변하는 글로벌 시대에 개인과 조직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성공법을 제시한다.
당시 출간된 경제 전망서도 이런 분위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자유주의 경제학자 공병호의 저서 ‘10년 후 세계’(7위)와 ‘10년 후 한국’(10위)은 다가오는 혼란의 시대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를 짚었다. 목차에는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생존하라, 그것은 시대의 사명이다’가 등장한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필요한 생존법을 설파한 것.
하지만 2014년 경제·경영 분야 베스트셀러 목록에선 이전에 볼 수 없던 메시지가 읽힌다.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다. 1위에 오른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가 그렇다. 이 책은 신고전주의 학파를 중심으로 전개된 경제학의 현주소를 지적한다. 아울러 경제학에 접근하는 방법이 다양하다고 주장한다.

경제·경영 분야 베스트셀러 6위 ‘자본주의(EBS 다큐프라임)’는 위기의 자본주의를 구할 대안으로 복지자본주의를 제안한다. ‘관찰의 힘’(7위)은 기업의 오만과 편견을 거론하면서 가난한 소비자들로부터 배울 점을 언급한다. 2014년 경제·경영 분야 베스트셀러에선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경제 서적을 아예 찾아볼 수 없다. ‘식당부자들’(8위), ‘지금 중국 주식 천만원이면 10년 후 강남 아파트를 산다’(9위), ‘부자들의 생각법’(10위) 등 부자를 조명한 경제 서적이 베스트셀러 하위권에 머물렀을 뿐이다.
박정남 MD는 “기업가의 성공 스토리나 재테크 서적이 아닌 경제학 도서가 경제·경영 분야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것은 2008년 ‘나쁜 사마리아인들’ 이후로 6년 만의 일”이라며 “흥미롭게도 두 권 모두 신자유주의와 신고전학파에 비판적인 장하준 교수가 집필했다”고 설명했다.
문학계는 자유경쟁을 옹호하는 신자유주의를 피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다빈치 코드’(1위), ‘모모’(2위), ‘연금술사’(3위), ‘해리포터와 혼혈왕자 제6권 1편’(4위),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5위) 등 모험을 그린 작품들이 2005년 문학 분야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한 것이다.
그로부터 10년 후, 독자들은 ‘재미’에 빠졌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1위), ‘미 비포 유’(3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5위),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14위) 등이 2014년 문학 분야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 소설은 가독성이 뛰어나다고 평가된다. 반면 무거운 주제의 작품은 하위권에 머물렀다. 조정래의 ‘정글만리’와 김진명의 ‘싸드’는 각각 6위와 10위를 기록했다. 독자들이 무거운 이야기보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선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10년간 베스트셀러 트렌드를 분석하면 ‘경쟁→위로→재미→이득’으로 요약된다. 그렇다면 책을 보는 관점이 달라진 이유는 뭘까. 권호순 이사의 분석은 이렇다.
“사람들이 신자유주의가 말하는 대로 경쟁을 했지만 자유경쟁은 해답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됐다.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 사회가 더 이상 국민을 책임져줄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제 개인의 힘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분노, 공감, 위로보다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게 됐다.”
경제불황에 따른 영향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지금은 저성장기이자 경제 정체기다. 문제는 앞으로가 더 안 좋아질 것이란 점이다. 하루하루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해봤자 달라질 것이 없으니 현재를 즐기고 소비하려 한다. 짧고 인상이 강한 소재가 인기를 얻는 이유다. 다만 단순히 재밌어서는 안 되고 보통 이상의 수준을 갖춰야 한다. 독자들이 읽고 얻는 게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박익순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장)
독자가 피로감 호소할 때
앞으로 독자의 눈을 사로잡을 책은 어떤 책일까. 박정남 MD는 “독자들이 ‘피로감’에 휩싸일 때가 베스트셀러 트렌드가 바뀌는 지점이 된다”고 지적한다.
“2005년 자기계발의 시대가 열렸고, 2009년엔 힐링 도서, 2014년엔 짧고 재밌는 이야기, 2015년 상반기엔 독자에게 도움이 되는 도서가 인기를 끌었다. 이를 근거로 예상할 때 2016년엔 컬러링북처럼 감성을 자극하는 책이나 짧은 에세이가 독자의 사랑을 받지 않을까 전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