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호

취임 6개월 맞은 김승규 법무부 장관

“어느 검사가 존경받고, 어느 검사가 욕먹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5-01-24 17:3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대검 중수부 폐지, 아직은 이르다
    • ‘보따리 가져와 풀어라’ 식으로 수사하던 시대는 끝났다
    • 인권 보호하면서 수사하는 검사에겐 인사로 보답할 것
    • 몇몇 특수사건 조사과정에 피의자가 인간대접 못 받았다는 얘기 들었다
    • 촛불시위 체포영장 사태, 대검에서 마땅히 사전보고 했어야
    • 장관이 검사에게 수사내용 직접 물어볼 수도 있어
    • 인사차별 받았을 때 검사직에 회의 들기도
    취임 6개월 맞은 김승규 법무부 장관
    “아,양반이지요. 인품 훌륭하고. 요즘 시류에 딱 맞는 장관입니다. 장관의 ‘인격 수사론’에 반발하는 검사들도 있는데, 이제는 수사관행이 바뀌어야 합니다. 무리한 수사를 하지 말라는 건 간섭이 아니라 지도편달이라고 봐야지요.”

    과거 검찰 특수수사통이던 최모 변호사의 김승규(金昇圭·61) 법무부 장관에 대한 평이다. 최 변호사의 말이 아니더라도 김 장관은 검찰 재직시 온화하고 겸손한 성품으로 선후배 사이에 신망이 높았다. 또 변호사들이 보내온 전별금과 촌지를 모두 돌려보낼 정도로 청렴하다는 평도 들었다. 1999년 대검 감찰부장이던 그가 대전법조비리사건에 대한 감찰결과를 발표하면서 보인 눈물은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1월12일 오후 경기 과천에 있는 정부종합청사 법무부 청사에서 김 장관을 만났다. 장관실 문밖으로 나와 기자를 맞은 그의 첫인상은 선입견 때문인지 몰라도 참 부드럽고 후덕해보였다.

    인터뷰는 예정시간을 넘겨 2시간 반 가량 진행됐다. 길태기 공보관과 이영렬 검찰4과장이 배석했다. 약 1년 전인 2003년 12월, 강금실 당시 법무부 장관과는 엄숙한 장관실이 아니라 북악산 기슭의 미술관 찻집에서 인터뷰를 했다. 배석자도 없었다. 이 얘기를 꺼내자 김 장관은 “그래요. 그렇게 해야 편하게 얘기할 텐데…” 하며 웃었다.

    하긴 관가(官家)에서는 이런 식의 인터뷰가 정상일 것이다. 강 전 장관의 자유로운 스타일은 예외적인 것이고. 이렇게 보면 법무부와 검찰은 예외와 파격의 나들이에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 것인지 모른다. 다만 김 장관은 강 전 장관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고나 할까.



    모든 법무행정, 인권측면에서 검토할 터

    -취임 6개월을 맞았는데, 그동안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무엇인지요.

    “취임 후 법무·검찰 행정업무의 품격을 높이고, 인간을 존중하는 수사관행을 정착시키겠다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특히 수사관행 개선과 관련해 실력도 있고 인품도 좋은 검사가 수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말에 일부 검사들이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시대 흐름과 국민의 요구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밖에서 보니(변호사 경험) 검찰수사가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경우가 참 많더군요.

    그래서 검사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기 위해 대화를 많이 하고 편지도 보냈습니다. 고맙게도 요즘은 많은 검사가 제 말뜻을 이해하고 잘 따라주고 있습니다. 인격수사는 검찰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입니다.”

    -그와 관련된 질문은 이따가 좀더 구체적으로 하겠습니다. 장관께서는 범죄피해자 보호와 지원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대책을 세우셨는지요.

    “부임해보니 피의자와 피고인, 수용자 인권보호방안은 잘 마련돼 있고 실제로 많이 향상됐는데, 정작 범죄피해자 보호문제에는 소홀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를 연구케 해 지난해 9월 범죄피해자보호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관련법을 만든 후 각 검찰청에 담당관을 두도록 했습니다. 올해 안에 지원센터를 만들 계획입니다. 예컨대 살인사건이 나면 지원센터 직원이 피해자 집에 찾아가 집안정리도 하고 청소도 하고 상담도 하면서 도와주는 겁니다. 또 범죄피해자에게 가해자가 제대로 재판을 받고 있는지, 형은 얼마나 받았는지 등 궁금한 사항을 알려주게 됩니다.”

    -법무부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인권보호입니다. 이를 위해 특별히 추진하는 정책이 있다면요.

    “먼저 잘못된 수사관행부터 고쳐나갈 생각입니다. 피의자 심문 때 변호인의 참여권을 확대하고 긴급체포권 남용을 방지하고 불구속수사 관행이 자리잡도록 하겠습니다. 한마디로 인간을 배려하는 수사관행 정착이지요.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아동, 장애인 전용조사실도 늘릴 것입니다. 또한 법률구조 범위를 확대해 소득이 월 평균 200만원 이하에 해당하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법률구조공단의 무료 소송대행 서비스를 받도록 할 계획입니다.”

    경기 여주에 민영교도소 운영 예정

    그밖에도 법무부는 여러 가지 획기적인 인권향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수용자 거실환경 개선방안으로 감방에 온돌과 개수대를 들여놓을 계획이다. 현재 일부 교도소에서 시범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또 모든 재소자가 실질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게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아울러 인권교재를 만들어 법무부 산하 모든 기관의 직원들에게 교육을 할 작정이다.

    김 장관은 “법무부의 모든 제도와 관행을 인권 측면에서 낱낱이 검토해 잘못된 것은 고쳐나가겠다”고 밝혔다. 기자가 “이 모든 일을 다 추진하려면 장관 오래 하셔야겠다”고 농담을 건네자 웃음으로 화답했다.

    “씨를 뿌리면 거두어집니다. 강 장관이 씨를 뿌린 것도 얼마나 많이 거두어지고 있습니까.”

    민영교도소 운영도 그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법무행정 개선안 중 하나다. 금년에 경기 여주교도소에서 수용자 50명을 선정해 이들을 대상으로 민영교도소 프로그램을 시범 운영한 후 정식으로 민영교도소를 세울 계획이다. 다만 교도소 설립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설득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1972년 브라질에서 판사 변호사 범죄심리학자 세 사람이 민영교도소를 창안해 휴마이타교도소가 탄생했습니다. 브라질 전체 교도소 출소자의 평균 재범률이 75%였는데, 이 교도소 출소자들의 재범률은 4% 미만이었습니다. 교정 사상 유례 없는 기록이었지요. 이 교도소의 자원봉사자들은 자기가 맡은 재소자를 주기적으로 면회해 대화하고 상담하면서 교화에 애썼습니다. 미국에도 이걸 본뜬 민영교도소가 4개 생겨났는데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7~8년 전부터 이를 준비해왔고 현재 아가페라는 재단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외국인 불법체류자 문제는 뾰족한 해결책이 없어 보이는데요.

    “맞습니다. 매우 머리가 아픈 문제죠. 근본적인 대책을 찾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실무자들이 조선족 교회도 가보고 고용주들도 만나 실상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현재 18만명인데 이를 12만명까지 줄일 계획입니다. 학대나 임금체불, 폭행 등 인권침해를 막아주되 체류질서만큼은 철저히 세운다는 게 법무부 방침입니다. 또 그렇게 해야 고용허가제가 정착될 것이고요.”

    화제를 법무행정에서 검찰 쪽으로 돌렸다. 지난해 검찰은 여권이 추진한 공직부패수사처(공수처) 설립에 강하게 거부감을 드러냈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다툼의 핵심이었는데, 공수처에 기소권을 주지 않는 선에서 절충이 이뤄졌다.

    -공수처 설립 논의단계부터 검찰이 심하게 반발했는데요. 공수처에 대한 장관님 생각은요.

    “부패척결은 참여정부의 주요 국정과제입니다. 검찰이 선뜻 수사하기 어려운 부분을 공수처가 수사한다는 데 공감합니다. 그동안 정부 내에서 헌법정신과 형사소송법 원칙에 맞도록 협의하고 조정하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입법과정에서도 그렇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검찰에서는 공수처를 검찰에 대한 견제기구나 정권의 통제수단으로 여기는 시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검찰도 지금 고위공직자에 대해 수사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인지 공수처가 검사들을 주 수사대상으로 삼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는 것 같습니다.

    “글쎄, 수사를 받아야 할 정도로 검사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보진 않습니다.”

    -수사기관이 또 하나 생기는 데 대한 거부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소권 문제가 정리된 이후 검찰 내에서는 어느 정도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어차피 검찰이 기소권을 갖고 (공수처에 대해) 영장 지휘를 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듯합니다.”

    -그래도 마찰의 소지가 있을 것 같은데요.

    “운용의 묘를 발휘하면 잘될 것입니다.”

    인권침해 소지 없애되 안보위해 막도록

    국가보안법 문제는 법무부에서 ‘뜨거운 감자’다. 강금실 전 장관은 국보법 폐지론에 가까웠던 반면 김승규 장관은 이 문제에 대해 가장 보수적인 견해를 가진 집단 중 하나인 검찰의 중론을 반영하는 듯한 발언을 한 바 있다.

    -취임직후 기자간담회에서 “튼튼한 안보형사법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듣기에 따라서는 국보법 존치를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하셨는데요. 이에 대해 여권의 방침과 맞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지요.

    “기본 원칙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것은 곧 국가 존립이나 안정을 위협하는 세력을 방어하는 법적인 시스템, 곧 안보형사법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또 개폐논의를 하는 과정에 법적인 안보공백이 있어선 안 된다는 거죠. 국회에서 여야가 충분히 협의를 하고 국민의 의견도 잘 반영해 만들되 인권침해나 남용 소지가 없고 한편으로 국가안보위해행위를 충분히 처벌할 수 있는 법, 죄형법정주의에도 맞는 법을 만들어달라는 게 법무부의 원칙입니다.

    국민들 사이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으므로 정치권이 통합지향적인 사고로 이 문제를 해결했으면 합니다. 국민통합도 이루고 인권침해 소지도 없애고 국가안보도 잘 지키고.”

    -여당에서 말하는 국보법 폐지 후 형법보완과는 조금 다른 개념인 것 같네요.

    “입법 형식과 내용이야 어떻든 국회에서 판단해 결정해달라, 다만 우리가 얘기하는 원칙은 지켜달라는 것입니다.”

    취임 6개월 맞은 김승규 법무부 장관

    김승규 장관은 취임 초기 “인품 좋은 검사를 특수부에 배치하겠다”고 밝혀 검사들을 긴장시켰다.

    참여정부 출범 후 법무부는 다양한 검찰개혁방안을 마련했는데 중수부 기능 재조정도 그 중 하나였다. 지난해 송광수 검찰총장은 정치권과 법무부 주변에서 중수부 폐지론이 고개를 들자 “중수부를 없애려면 먼저 내 목을 치라”며 공개적으로 반발해 파문을 일으켰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를 질책하자 강금실 장관이 기자회견을 열어 사태를 수습했다. “중수부 폐지는 공식 검토된 바 없다”는 강 장관의 발언 이후 갈등국면은 사라졌다. 하지만 말 그대로 봉합일 뿐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었기에 대검은 정치권과 법무부에 대한 경계의 눈길을 거둬들이지 않았다.

    김 장관은 취임 후 이 문제를 비교적 ‘매끄럽게’ 정리했다. 중수 1, 2, 3과 중 3과를 없앴다. 또 첨단범죄수사과를 신설하는 대신 컴퓨터수사과와 특별수사지원과를 폐지하기로 했다. 폐지되는 두 과의 기능은 기획조정부 산하에 신설되는 과학기획수사관실로 옮기기로 했다.

    -대검 중수부 존폐에 대해 검찰 안팎에서 오래 전부터 논의가 있었는데요. 김 장관 취임 후 일부 부서를 통폐합해 기능을 재조정하는 것으로 정리됐습니다. 중수부 폐지론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중수부 문제는 검찰에서 전부터 많이 연구해왔지요. 이제는 어느 정도 정리됐습니다. 중수부는 전국의 특별수사를 지휘하는 부서로서 검찰의 주임무인 부패척결의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마치 집안의 엄중한 할아버지 노릇을 한다고 할까요. 우리 사회에 부패가 존재하는 한 중수부는 존치돼야 합니다. 또 지검 단위에서는 수사하기가 어려워 중수부가 나서야 하는 사건도 있습니다. 다만 시대상황에 맞게 가능하면 직접 수사를 자제한다는 뜻에서 일부 과를 없애는 대신 첨단기술유출 같은 광역화 고도화된 범죄 수사를 직접 담당하고 일선의 특별수사를 지도하는 기능을 강화하기로 한 것입니다. 앞으로도 운용만 잘하면 별 문제가 없으리라 봅니다.”

    -대검 중수부장과 서울지검장을 지낸 유창종 변호사도 중수부 폐지론자더군요. 대검 중수부를 폐지하고 특수부는 축소하고 형사부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겁니다.

    “원래 검찰의 주 기능은 경찰 수사를 지휘하고 감독해 인권침해를 막는 것입니다. 수사라는 게 본질적으로 인권을 침해하기가 쉽거든요. 그렇기에 검찰이 1차 수사, 특히 특별수사를 하는 것은 검찰이 생긴 취지에 안 맞는다는 얘기지요. 유 변호사는 그에 대한 소신이 강한 분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검찰이 다른 수사기관이 제대로 못하는 수사를 잘해왔기 때문에 국민이 오히려 검찰에 수사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검찰의 특수수사 기능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요. 다만 인권보호적인 수사가 되도록 하고 남용이 없도록 조심해야겠지요.”

    ‘제 식구 감싸기’로 비칠 소지 있어

    -중수부 폐지론자들의 논리는 검찰조직이 장기적으로 수사보다는 수사지휘 기능이 강화되는 쪽으로 개편돼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 사회는 10년 전, 20년 전에 비하면 많이 깨끗해졌습니다. 선진국으로 다가갈수록 점점 부패가 없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검찰의 기능도 자연스럽게 조정되겠지요. 하지만 먼 장래의 얘기죠.”

    검찰 내부에서는 중수부 폐지론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대검의 한 간부는 “과거 검찰에서 중수부 폐지 여론이 있었던 것은 중수부 수사가 검찰조직과 총장에게 부담을 주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대선자금수사 이후 정치권이 검찰의 힘을 빼는 차원에서 거론하는 게 문제”라고 비판했다.

    -법무부의 감찰관실 신설을 두고 대검과 갈등이 있었지요. 대검에 감찰부가 있는데 굳이 법무부가 감찰권을 행사할 이유가 없다는 거죠.

    “갈등이라기보다는 의견 차이죠. 법무부 감찰관실은 대검 감찰부가 비위감찰을 제대로 하는지 지켜보고 잘못된 게 있다면 보충적으로 감찰을 하게 됩니다. 대검 감찰부가 잘하고 있습니다만 국민의 눈에는 ‘제 식구 감싸기’로 비칠 소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법무부에서 이를 감시하면 국민에게 신뢰감을 주겠지요. 감찰을 하더라도 검찰수사의 중립성이나 독립성을 훼손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수사중 사건은 감찰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게 대검 요구였지요?

    “‘구체적 사건에 대한 수사, 소추, 재판에 관여할 목적으로 감찰을 하면 안 된다’고 규정해 놓았습니다.”

    사람대접하면서 수사해야

    김 장관은 신년사에서 2005년을 ‘수사관행 혁신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그가 강조하는 수사방식은 한마디로 인간을 존중하는 수사다. 장관 취임 일성이었던 “인품 좋은 검사를 특수부에 배치하겠다”는 발언은 검찰 안팎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검찰 일부에서는 장관이 강조하는 인격수사에 대해 현실을 무시한 발언이라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특히 이른바 특수통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권 존중은 옳은 얘기지만 앞으로 수사하기 힘들어졌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데요.

    “1995년 안우만 법무부 장관 시절 검찰에서 ‘대친절운동’이 전개됐어요. 처음 시작할 때 검찰 일선에선 ‘수사하는 입장에서 어떻게 친절운동을 벌이느냐’고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수원지검 차장검사로 있을 때 수원지검 검사들을 보니 그게 가능하더라고요.

    인격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검사가 검사답게 수사하고 사람대접하면서 수사하려면 시간이 걸려요. 인권을 존중하는 수사기술을 새로 개발하고 정신자세를 바꿔야지요. 마인드를 바꾸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또 과학수사를 해야지요. 빠른 시간 내에 성과를 얻기에 급급하면 무리한 수사를 하게 됩니다. 피의자가 쉽게 자백을 안 한단 말이에요. 그럼 ‘빨리 보따리 갖고 와서 풀어라. 그렇지 않으면 회사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겁을 줍니다. 그러면 피의자는 일단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자백을 하긴 하는데 허위사실이나 범죄가 아닌 내용을 자백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걸 증거로 삼아 기소유지를 하려니 쉽지 않지요. 그러면 기소유지 과정에 또 무리하게 되고. 무리가 무리를 낳는 겁니다. 결국 재판에서는 무죄가 나오고.”

    김 장관의 인격수사론은 교과서 같은 얘기지만 묘한 감동을 줬다. 그의 말과 표정에 열성과 진정성이 배어 있기 때문에 그런지도 몰랐다. 그의 목소리가 조금씩 높아졌다.

    “인격수사 과학수사는 시대의 흐름이고 국민의 요구입니다. 밖에 나가면 다 존경받는 사장이고 회장이고 선생님인데 그에 맞는 대접을 안 해주면 감정이 상하지요. 사람대접하면서 수사해야 합니다. 제 경험에 비춰 그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이명재 전 검찰총장의 경우 조용조용 수사를 했습니다. 언제 했는지도 모르게. 그분이 기소한 사건은 재판에서 다 유죄판결이 나왔습니다. 구속된 사람들이 나중에 출소해 고맙다고 인사도 하고. 이런 수사가 가능하다 이거에요. 그런데 노력도 안 해보고…. 물론 힘들죠. 이제까지의 관행과 다르게 수사하려니. 그래서 처음엔 거부도 하고 불평도 했지만 이제는 다들 이해하는 분위기입니다. 시대와 국민이 요구하는 것이므로 그대로 따라가지 않으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어요.

    중요한 사건에서 증거법상 무리한 기소를 하면 법정에서 무죄가 나오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검찰수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죠. 기소할 때는 요란했는데 재판에서 무죄가 나오니…. 특별수사일수록 재판에서 반드시 유죄판결이 나올 수 있게 확실한 증거를 확보한 후 기소해야 합니다.”

    자장면 먹을 때는 수갑 풀어줘야지…

    피의사실 공표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국민의 알 권리와 충돌하지만 피의자 인권을 존중해 기소가 되기 전까지는 피의사실을 공표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대검은 올해부터 청사 안에서 피의자의 사진을 못 찍게 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없던 규정을 새로 만든 건 아니고 원래 있는 규정을 올해부터는 철저하게 지키겠다는 뜻이다.

    “사실 수사를 하다보면 무리할 수도 있지요. 검사들의 정의감 때문일 수도 있고 공명심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수사성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권입니다. 인간존중 인권보호가 정의보다 훨씬 더 보편적인 가치입니다. 인권은 적어도 정의와 같이 가거나 그 이상이어야 합니다. 그런 정신으로 수사에 임해야 해요. 그래야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고 존경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검찰이 사는 길입니다. 이렇게 되도록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해야겠죠.”

    ‘조치를 취한다’는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그런 지침을 따르지 않는 검사에게는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는 뜻이냐”고 묻자 김 장관은 잠시 침묵한 후 대답했다.

    “아마 잘 따라올 겁니다. 요즘은 다들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제가 또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고요. 처음엔 오해도 있었지만 이제는 많이들 이해하고 따라오고 있습니다.”

    -장관께서 유난히 인권수사를 강조하는 데는 변호사 경험이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 같은 데요. 사례를 들어 설명해주시면 좀더 쉽게 이해할 것 같습니다.

    “변호사를 하면서 수사현장이나 공판정에 가볼 기회가 많았습니다. 검찰뿐만 아니라 경찰서 공정거래위원회 관세청 등 여러 국가기관에 여러 차례 가 봤습니다. 아울러 검찰에서 나간 사람들, 변호사들, 또 국민들 얘기를 직접 들으면서 검찰수사의 문제점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검사는 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몇몇 특별수사사건의 경우 조사받은 당사자들로부터 사람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조사 받고나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게 고쳐지면 정의를 실현하면서도 국민 신뢰도 얻고 존경도 받을 수 있을 텐데요. 밖에서 많이 체험했지요.”

    -변호사를 하면서 검찰이 진짜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경험도 있을 법한데요.

    “그런 경험, 많이 있지요. 그런데 얘기하기는 좀….”

    김 장관이 망설이자 배석자들도 거들었다. 장관이 변호사 시절 겪은 사건을 얘기하면 해당 검사가 불필요한 걱정을 하게 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기자는 “남의 경험을 얘기해도 되겠냐”는 장관의 ‘타협안’을 무시한 채 “가능하면 직접 경험한 일을 얘기해달라”고 재차 요구했다.

    -예컨대 검사가 상당히 강압적으로 조사를 했다거나 변호인을 심문과정에 참석하지 못하게 했다거나 몇 시간씩 밖에서 기다리게 했다거나….

    김 장관은 웃기만 하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결국 ‘남의 경험’을 듣기로 했다.

    “전에 어느 피의자가 조사를 받다가 식사 때가 돼 자장면을 먹는데 포승과 수갑을 찬 상태였어요. 제대로 먹을 수 있게 수갑을 풀어달라고 부탁했는데 안 들어주더래요. 이런 것이 바로 인간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경우지요. 사람을 존중하면 어떻게 수사해야 할지 답이 다 나옵니다. 밖에서는 다 알아요. 누가 어떻게 수사하는지. 어떤 검사가 존경받고 어떤 검사가 욕을 먹는지.”

    -대형사건에 연루된 몇몇 정치인과 기업인 변호를 맡으셨는데요. 검찰 고위직 출신으로 부담스럽진 않았습니까.

    “변호사란 사형수에 대해서도 변론을 하는 사람입니다. 잘 아는 사람을 통해 변호를 부탁하면 거절하기가 힘듭니다.”

    -범죄사실에 대해 친정인 검찰의 판단과 크게 달랐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몹시 답답하지요. 변호사라면 누구나 느끼는 거지만. 하지만 관점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인정해야지요. 검사적 정의와 판사적 정의, 변호사적 정의가 다르다는 얘기가 있지 않습니까.”

    -조금 불편할지 모를 질문을 하겠습니다. 장관께서 대검 과장 두 명을 직접 불러 보고 받은 것을 두고 말들이 있더군요.

    “수사관행을 바꾸는 문제를 밖에서도 많이 고민했습니다. 결국 과학수사를 해야 하는데, 과학수사는 제가 (2001년) 광주고검장을 지낼 때부터 관심을 가졌던 사안입니다. 그래서 도움을 받고자 만난 거예요. 장관이 과학수사를 강조하려면 예컨대 조사실에 녹음·녹화시설이 얼마나 설치돼 있는지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검사들이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 그 후로는 (부르는 것을) 그만뒀어요.”

    -장관이 검사를 직접 부르는 것을 통제나 간섭으로 여기는 시각이 있는데요.

    “아이, 그건 아니죠. 검찰도 법무부의 외청입니다. 인사권을 갖고 있는 장관으로서 어떤 문제에 대해 깊이 알고 싶어 직원을 부른 게 뭐 문제가 되나요. 저도 대검에 근무할 때 장관한테 보고했는데요. 아무 문제가 안 되죠.”

    -수사와 관련해 보고를 받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겠지요.

    “그것도 못할 것도 없지. 보고를 받는 의도가 중요한 거지요.”

    -장관은 검찰총장을 통해 검사들을 지휘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건 구체적인 수사에 대해 장관이 검사에게 직접 이래라저래라 못한다는 얘기지요. 총장을 통해서만 지휘하라는 거지. 하지만 일반적인 사안의 경우 장관이 얼마든지 검사들에게 얘기할 수 있어요. 장관이 꼭 총장을 통해서만 얘기해야 하는 걸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많아요.”

    -검찰 일부에서는 강금실 장관 때가 더 좋았다는 얘기도 흘러나옵니다. 혹시 그런 얘기 들어보셨는지요.

    “나한테 그런 얘기를 누가 해주겠습니까.”(웃음)

    -강 전 장관의 경우 검찰수사의 독립성을 철저하게 보장하고 정치권 공세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차단해줬는데, 김 장관의 경우 그런 부분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다른 것 같다는 거죠. 검사 부르는 것도 그런 시각에서….

    “장관이 검찰 돌아가는 일을 알아야지요. 검찰 마음대로 하라고 내버려두는 것이 꼭 좋은 건 아니지요. 검찰업무도 국정의 일부예요, 따로 동떨어진 게 아니고. 국정운영 방침에 맞춰야지요.”

    인권강조와 사기가 관계 있나

    지난해 3월 법무부와 대검은 촛불시위 주도자 체포영장 문제로 갈등을 빚었다. 대검의 지침에 따라 서울지검 공안부가 종로경찰서에 체포영장 청구를 지시하면서 사전에 법무부에 보고하지 않은 것이 시비의 발단이었다.

    -촛불시위 주도자 체포영장 사태 때 대검은 사후보고로 충분하다는 논리를 폈고 법무부는 왜 주요 시국사건 관련사항을 사전에 장관에게 보고하지 않느냐고 분개했습니다. 만약 그때 장관이었다면 어떤 판단을 하셨을 것 같습니까.

    “당연히 사전에 알아야지요.”

    -사전에 보고를 받을 경우 영장 청구가 적절치 않다고 판단되면 검찰에 영장을 치지 말라고 지시할 수도 있을까요.

    “사전에 보고는 받되 판단은 검찰에 맡겨야지요. 일반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보통 사후에 보고를 받는데, 최근 있었던 전공노 파업 관련 영장청구 같은 중요 사안의 경우 사전에 보고를 받지요. 그런 중대한 일을 장관이 신문 보고 알면 되겠어요. 관련규정에도 중요한 사안은 보고하도록 돼 있습니다.”

    -인권수사나 인품 강조로 검사들의 수사의지가 좀 위축되지 않았나 싶은데요. 사기진작 방안을 고려하신 적은 없는지요.

    “글쎄요. 인권강조와 사기가 관계가 있나. 봉급을 파격적으로 올릴 수도 없고. 훌륭한 수사를 하면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됩니다. 또 인권보호적인 수사를 하면 국민으로부터 칭찬을 받겠지요. 그게 사기 진작이에요. 그리고 인사를 통해 보답을 받을 겁니다. 진짜 국민이 고마워하는 수사를 하면 돼요. 적법절차 지키고 강압수사 하지 않고도 좋은 수사결과를 낼 수 있거든요. 자연히 좀더 세련된 수사기술을 개발하게 될 겁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수사지요. 반드시 그렇게 될 겁니다.”

    돈 받았다는 오해 받았을 때 힘들어

    김 장관은 DJ정부에서 대검감찰부장, 법무차관, 대검차장, 부산고검장 등 요직을 두루 지낸 후 참여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3월 변호사로 변신, 법무법인 로고스 대표변호사로 활동했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DJ정부 때 검찰은 ‘호남검찰’이라 불릴 정도로 지역편중인사 시비에 휘말렸다. 또한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돼 옷을 벗거나 구속된 검찰 고위직 인사 중에 유난히 호남 출신이 많았다.

    김 장관도 호남 출신이다. 전남 광양에서 태어나 순천매산고를 나왔다. 그렇지만 그는 호남출신 고위직 검사로는 드물게 구설 한 번 오르지 않을 정도로 자기관리를 잘했고 평판도 좋았다.

    -DJ정부 시절 유난히 검찰을 망신스럽게 하는 사건이 많았는데요.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당시 검찰 고위직을 지낸 사람으로서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검찰이 시대 흐름과 국민의 요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잘못된 관행을 답습한 탓도 있었습니다. 다만 일부 사건에서는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사건에 연루된 검찰간부에 대해 가혹할 정도로 엄격하게 단죄한 측면이 있었다고 봅니다. 뒷날 법정에서 무죄판결이 나온 걸로 봐서도. 어쨌든 과거의 잘못을 거울삼아 제도와 관행뿐만 아니라 의식까지도 변화시켜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DJ정부 검찰의 호남편중인사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비판이 있긴 했지요. 어쨌든 공정한 인사는 저의 소신입니다.”

    ‘딱딱한’ 얘기를 하는 데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부드러운’ 질문으로 넘어갔다.

    -검사가 된 특별한 동기가 있습니까.

    “연수원 다닐 때 좋아서 선택했습니다. 적극적으로 정의를 찾아 실현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법업무 중에서도 가장 활동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잖아요.”

    -성품이나 이미지로 보면 판사가 더 어울릴 듯도 싶은데요.

    “당시 시대에 맞는 검찰 이미지가 있었지요.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 나 같은 스타일이 검사직을 더 잘 수행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검사를 천직으로 알고 30년 앞만 보고 살다 보니 어느덧 퇴직을 맞게 되더라고요.”

    -검사가 된 걸 후회하신 적은 없는지요.

    “몇 번 있었지요. 인사가 상당히 불공정하다는 생각이 들 때 몹시 힘들었습니다. 평검사 때 광주에서 2년4개월, 목포에서 2년8개월, 인천에서 2년11개월 연속 지방에서 근무했습니다. 주변부만 맴돈 거죠.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는데도. 그때부터 공정한 인사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이 지나치게 많을 때도 괴로웠습니다. 1993년 8월 서울지검으로 발령이 났는데, 첫 달에 800건을 배당받았습니다. 형사3부 수석이었지요.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해 밤 10시에 퇴근했습니다. 한 1년7개월 그렇게 일하니 무릎이 내려앉더라고요. 걸음도 제대로 못 걷고.”

    김 장관은 이와 관련해 수사비화 한 가지를 들려줬다.

    “피의자에게 돈을 받았다고 오해 받았을 때도 참 견디기 힘들었어요. 검사직에 회의가 들더라고. 인천지검에 있을 때인데, 재산다툼과 관련된 고소사건이었습니다. 고소인이 매일같이 찾아와서 나를 째려보고 가더라고요. 한 달간 열심히 수사해 고소인이 억울하다는 걸 밝혀냈습니다. 그리고는 서울지검으로 발령이 났는데 어느 날 그 고소인이 담배 한 보루를 들고 인사하러 왔더라고요. 와서 하는 말이 당시 고소 상대방이 자신한테 ‘검사에게 약을 먹였으니 네가 아무리 애써도 소용없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이후 조사하는 게 영 불공평해 보여 나를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나중에 결론 나는 걸 보고 미안해서 담배를 사왔다는 겁니다. 담배는 정중히 사양했습니다. 어쨌든 그 사람 때문에 여기저기서 나에 대해 좋지 않은 얘기가 들려올 때는 정말 괴롭더라고요.”

    -DJ정부 때 건강을 이유로 서울지검장과 검찰총장 제의를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지금 장관직 수행에는 문제가 없는지요.

    “아무 이상 없습니다. 서울지검장 내정 소식을 들은 바로 그날 위(胃)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의사가 수술을 하고 한 달은 쉬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인사권자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고사했던 겁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맡아서 하면 되지 꼭 제가 해야만 한다는 법칙이 있나요. 공직자로서의 자세라고 봅니다. 당연한 얘기 아닙니까. 제가 (병을) 몰랐다면 몰라도.”

    -이 자리를 빌려 부인과 자식 자랑 좀 해주시죠.

    “마누라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 하는데….”

    -팔불출 좀 되시죠, 뭐.

    “(웃음) 우리 집사람이 덕이 있어요. 어려운 공직생활에도 잘 참아주고 불평 안 하고. 나이 들수록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편 흠이 있어도 밖에 나가서 절대 얘기 안 하고 덮어주고 조언도 해주고. 조강지처죠.”

    변호사 개업하자 아내가 행복해 해

    2003년 봄 김 장관이 변호사 개업을 하자 부인은 자유로움을 느끼고 무척 행복해했다고 한다. 그동안 못 가본 데를 함께 다녀오기도 했다. 어느 아내나 그렇겠지만, 남편과 함께 여행하는 것만큼이나 즐거운 일도 별로 없을 것이다.

    -부인과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신 게 언제쯤이죠.

    “한 3년 됐습니다. 영화관보다는 음악회를 자주 가는 편입니다. 올해 초에도 신년음악회에 다녀왔습니다.”

    김 장관은 아들만 셋 두었다. 다들 이과를 선택했다.

    “적성과도 관계가 있지만, 그보다는 아버지의 공직생활이 맘에 안 들어 그런 선택을 한 것 같아 제 마음이 좀….”

    -씁쓸하시겠네요.

    “(웃음) 씁쓸하죠. 큰아이는 결혼해 애 둘을 낳았습니다. 둘째는 미국 UCLA에서 나노 기계공학 박사과정에 있고, 셋째는 LG연구원에 있습니다. 둘 다 미혼입니다.”

    김 장관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누군지 물어봤다. 잠시의 틈도 없이 답변이 나왔다.

    “아버님입니다. 아버님은 교직에 몸담기도 하셨는데 제게 아주 훌륭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삶 자체가 모범이었습니다. 제게 신앙을 가르쳐줬고 늘 큰 꿈을 가지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욕설과 거짓말을 용납하지 않았고 도덕적인 삶을 실천하셨습니다.”

    마지막 질문. 김 장관의 다음 일정이 빠듯한 탓에 서두르지 않아야 할 질문임에도 서둘러 물어야 했다.

    -향후 꼭 하시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공직에서 물러나면 사회에 유익한 봉사활동을 할 겁니다. 아내를 위해 외국 여행도 좀 하고요.”

    첫 번째 계획보다 두 번째 계획이 더 매력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인터뷰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