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멀티미디어시대의 클래식 캐릭터 16

여자의 빛나는 ‘세 치 혀’ 아둔한 남자를 일깨우다

세헤라자데 vs 리시스트라테

  • 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여자의 빛나는 ‘세 치 혀’ 아둔한 남자를 일깨우다

3/4
“우리가 소리쳐도 여자들이 문을 열기를 거절하면 문에 불을 질러 연기로 그들을 질식시켜야지!”

‘고약한 여인들을 모조리 불태워 없애야 한다’며 분노와 광기를 앞세우는 남성들. 그러나 아크로폴리스에 스스로를 가둔 여성들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들이 불에 타죽을 위기에 처하자 도처에서 ‘여성 원군’이 도착한다. 파업 소식을 들은 여인들은 저마다 ‘우리 아낙네들이 타죽지 않도록’ 물동이를 들고 와서, 리시스트라테가 주도한 여성들의 총파업 선언에 열광적으로 동참한 것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잠자리를 무기로 남성을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과 광기를 끝장내고 평화와 사랑으로 가득한 일상을 되찾는 것이었다.

남성들은 여성들이 ‘섹스 파업’까지 불사하면서 참아야 했던 슬픔과 분노의 원인이 무엇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로, 다짜고짜 여성들의 파업을 ‘오만불손한 하극상’으로 판단하고 그녀들을 불에 태워 죽이겠다며 아우성친다. 그러나 아내가 집에 없으니 잠자리뿐 아니라 ‘삶’ 자체가 멈춰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남성들은 아내를 되찾기 위해 협상에 나선다.

“아아, 난 어떻게 되는 거지? 가장 예쁜 상대를 빼앗기고 어디서 상대를 구하지? (자신의 남근을 가리키며) 이 고아는 누가 돌보지?”

-아리스토파네스 지음, 천병희 옮김,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단국대학교출판부, 2006, 267쪽



3 ‘세 치 혀’의 위대한 힘

‘리시스트라테’에서 여성들의 총파업으로 완전히 기가 질린 남성들은 드디어 자신들의 ‘진짜 두려움’을 고백한다. 우리가 여성들에게 조금이라도 자유를 허용하면 저들은 틀림없이 남성들보다 뛰어난 전사가 될 것이라고.

“여자들이 기마술을 익히게 되면 난 우리 기사들을 명단에서 지워버리겠소. 여자는 날 때부터 승마의 명수인 데다가 말을 타기 좋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들은 달리는 말에서 미끄러지는 일이 없거든요. 아마조네스족을 보시오!”

남성들은 드디어 여성을 폄하하는 것은 ‘여성을 길들이기 어렵기 때문’임을 인정한다.

“세상에 여자보다 더 제어하기 어려운 것은 없어. 불도 그렇게 다루기 어렵지 않고, 표범도 그렇게 뻔뻔스럽지는 않아.”

남성들은 ‘여인 없는 삶’의 끔찍함을 경험한 후 진정한 행복의 원천은 ‘전쟁 영웅의 화려한 무용담’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임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드디어 오랜 전쟁을 끝내고 각자의 ‘아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깨닫는다. 아내에게 당한 이 뼈아픈 ‘패배’가 그 어떤 전쟁의 승리보다 달콤한, 진정한 삶의 ‘승리’임을.

세헤라자데는 여성으로서 보기 드문 용기와 무한한 재치와 경탄스러운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무수한 책을 읽었을 뿐 아니라 기억력 또한 비상하여 한 번 읽은 것은 결코 잊는 법이 없었다. 그녀는 철학, 의학, 역사, 각종 예술에 능통했으며 당대의 가장 뛰어난 시인들을 능가하는 훌륭한 시를 짓곤 했다.

-앙투안 갈랑 엮음, 임호경 옮김, ‘천일야화’, 열린책들, 2010, 33쪽

3/4
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목록 닫기

여자의 빛나는 ‘세 치 혀’ 아둔한 남자를 일깨우다

댓글 창 닫기

2023/04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