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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여기 사는 즐거움’ ④

흙과 예술이 살아있는 자연 사랑의 진앙지

화가 장경희·도예가 김영자 부부의 서산 도적골

  • 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흙과 예술이 살아있는 자연 사랑의 진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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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실하고 기운찬 그림

나는 도적골 작업실에서 봤던 이런저런 갯벌의 모습들이 가로림만 안에 실재하는 풍경임을 확인한다.

“현실을 외면한 그림은 소용없다고 생각했쥬. 삶 속에서 나오는 것이 예술인 거쥬. 생활과 동떨어진 그림은 자칫하면 사기가 돼버리는 거 아니겠슈.”(장씨)

단순한 듯 들리는 이 말이 그의 예술철학이다. 장경희의 화면은 튼실하고 기운차다. 멀리 있는 아름다움을 찾는 게 아니라 가까이 있는 생활 터전을 그린다. 색도 표면에 발린 것이 아니라 갯벌 아래 깊숙한 땅속에서 품어져 올라오는 빛깔이다.

그는 캔버스에 그림 그리는 화가가 아니다. 나무에 형태를 판다. 조소와 회화의 중간 지점이라고 할까. 그렇게 된 건 새로운 물성을 찾아내자는 모색이었다기보다 캔버스 살 돈이 부족해서였다. 창작욕은 넘치는데 비싼 천을 사댈 도리가 없었다. 대신 이사 가는 사람들이 곧잘 버리고 가는 헌 짐들이 있었다. 어느 초등학교가 이사하면서 낡은 책장을 버렸다. 그걸 주워서 싣고 왔다. 잘 마른 소나무 책장은 그림 그리기 좋을 만한 크기의 송판 수백 장을 제공해줬다. 10년 넘게 캔버스 없이도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만한 양이었다. 그 나무에 게를 파고 호미를 새겨 넣었다. 게가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고 호미가 뻘흙 속에 깊이 박히는 화면이 탄생했다.



“저는 작업에 노동이 들어가는 게 좋아유.”(장씨)

번들거리는 게 싫어 유화로 작업해도 린시드 기름은 뺀다고 한다. 그래서 장경희의 그림은 다른 유화와는 다르다. 아주 담백하다. 그림에도 ‘정직’이라는 말이 허용된다면 정직한 그림이다.

그림이 주업이지만 그는 곧잘 헌 나무를 구해와 필요한 것을 뚝딱뚝딱 잘 만든다. 처음 서산 도적골을 내게 소개했던 이가 말했다.

“그 집에 가면 집은 물론이고 옷장도 싱크대도 전부 다 남편이 만든 것 뿐이에요. 그릇은 전부 아내가 만들고! 아마 돈 주고 사 온 것은 가전제품밖에 없을 걸요.”

과연 그랬다. 살펴보면 옷장도 장식장도 그의 그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입화물의 나무 상자나 부서진 집의 헌 마룻장을 뜯어와 만들었다는 가구들은 그의 겉모습처럼, 그리고 그의 말씨처럼, 튼실하고 담백하고 또 정직해 보인다.

모든 것을 긍정한다

우린 다 함께 갯벌로 내려섰다. 말하자면 장경희 그림의 화면 속으로 들어선 셈이다. 세상에, 덩어리진 것마다 모두 굴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바위에, 돌에, 시멘트 다리의 교각에! 초등학교 6학년 새벽이는 능란하게 굴껍데기를 깨더니 제 친구의 입에 넣어준다. 그러면서 일행을 인솔해 굴 따는 시범을 한다. 금방 캐낸 굴이 향기로워 아침바다 여기저기 환호성이 퍼지는데 장경희씨 그물망은 벌써 ‘산꿜파래’로 두둑하다. 길고 검고 향긋한 파래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갯벌엔 여기저기 푹 팬 웅덩이가 있고 파래는 그 물 안에서 긴 머리를 감듯 출렁인다.

흙과 예술이 살아있는 자연 사랑의 진앙지

아내 김영자씨는 집 근처의 차진 흙으로 그릇을 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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