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호

“난 감방 갈 일 안 했다 총선 출마해 심판 받겠다”

‘MB정권 의혹의 핵’ 박영준 격정토로

  • 송국건│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11-08-19 16: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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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당은 날조 전문가 집단”
    • “미얀마 두 번 갔지만 이영수와 무관”
    • 이상득·박영준 공천, 여권의 뜨거운 감자
    “난 감방 갈 일 안 했다 총선 출마해 심판 받겠다”
    지금 여권 내 주류인 친이(친 이명박 대통령)계의 응집력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 친이계는 없다는 말도 나온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가 정권을 내놓은 뒤에도 명맥을 유지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노 세력인 문재인 전 대통령실장,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차기 대권까지 꿈꾸고 있지만 친이계는 ‘1회용 계파’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013년 2월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종료와 동시에, 혹은 그보다 앞선 내년 4월 총선 때 유권자의 손에 의해 정치적 생명을 다할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여권 주류는 이상득-박영준-이재오-정두언 4인 체제 성격이었다. 사실 이들 간 카르텔은 2007년 대선 승리 직후부터 일찌감치 붕괴 조짐을 보였다. 이명박 정부 첫 조각(組閣)과 청와대 참모진 구성,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싸고 이들 이너서클은 극심한 헤게모니 다툼을 벌였다. 그 결과, 이 대통령 취임 불과 1개월 만에 이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의 18대 총선 공천에 반대하는 ‘55인 반란’이 일어났다. 취임 4개월 만에 친이계 핵심 정두언 의원이 이상득 의원과 이 의원의 측근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당시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에 대해 ‘권력 사유화’ 직격탄을 날려 여권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이후 이재오 현 특임장관의 자의반 타의반 미국행, 이상득 의원의 정치 2선 후퇴 선언, 박 전 차관을 겨냥한 영포게이트 파동 등 이상득-이재오-정두언 간 서로 물고 물리는 권력투쟁의 부산물이 쏟아졌다. 친이계는 집권 4년차를 맞은 올해 들어 구심력을 잃고 자멸하다시피 하고 있다. 4·27 재·보선, 6·5 원내대표 경선, 7·4 전당대회에서 친이계는 전패했다. 속으로 곪아왔던 상처가 터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상득-박영준-이재오-정두언 4인 체제

    이재오 장관이 당으로 복귀하면 친이계가 복원될 것이란 시각도 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내년 19대 총선에서 살아남는 게 지상과제인 친이계 의원 상당수는 공천과 당선에 유리하다면 계파 같은 것은 언제든 버릴 태세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친이계와 친박(친박근혜 전 대표)계가 대립하던 시절은 끝났다”고 말한다.



    정권 창출의 주역인 친이계 핵심 3인도 마찬가지다. 총선 공천 등 정치생명을 건 마지막 혈전을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우선 ‘55인 선상반란’을 주도했던 정두언 의원이 이번에도 선제적으로 내부 암투의 장을 열어젖히고 있다.

    정 의원은 ‘탈(脫)MB’를 선언한 상태다. 2010년 6월 전당대회 지도부 경선에 출마하면서 “이제 이명박 정치에서 나와서 정두언의 정치를 하겠다”고 했다. 이후 ‘MB맨’에서 ‘MB 저격수’로 변신한다. 기회 있을 때마다 주군이던 이 대통령을 향해 독설을 쏟아낸다.

    “현안마다 장관 목소리는 없고 대통령 얘기만 있다” “대통령이 경제정책을 잘못한 것에 대해 승복하지 않아서 그 부담을 당이 다 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최근의 민심은 노무현 정부 말기와 거의 같다. 이명박 정부의 최대 문제점을 한마디로 말하면 민심 무시다.”

    이런 정 의원에게 총선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주어졌다. 최근 당직 인선에서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의 소장을 맡은 것이다. 여의도연구소는 총선 공천을 앞두고 각 선거구의 여론을 수렴하면서 전반적인 선거전략을 짜는 곳으로, 공천심사과정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여의도연구소는 현역 의원 지지도 등 ‘교체지수’를 살피기 위해 올 12월과 내년 1월쯤 지역구별로 여론조사를 실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여의도연구소장으로 유력하던 친박계 최경환 의원을 제치고 정 의원이 이 자리를 맡은 것은 ‘탈계파’를 선언한 홍준표 대표와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칼자루의 일부를 쥐게 되자 당장 ‘공천 물갈이’라는 카드를 꺼내 든다. 그는 8월7일 트위터에서 “친서민 정책이 제대로 안 되는 이유는 친서민 정책을 안 써서가 아니라 전혀 친서민이 아닌 사람들이 정책을 결정하기 때문”이라며 “정부·여당이 친서민으로 가려면 정체도 모를 정체성이나 따지며 실은 뒤에서 대기업 옹호하는 사람들을 교체해야 한다”고 했다.

    내부암투와 물갈이론

    “난 감방 갈 일 안 했다 총선 출마해 심판 받겠다”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과 이재오 특임장관.

    7월22일엔 “당 지지율보다 개인 지지율이 현저히 낮은 후보는 교체지수에 반영돼야 한다” “지금 같은 인적 구성으로 간다면 국민이 더는 기대할 것이 없다고 본다”고 했다. 한나라당 인재영입위원장인 주호영 의원이 제기한 ‘현역 의원 40% 물갈이론’에 동조한 것이다. 정 의원은 또 “악역은 그만했으면 좋겠는데 사사로운 감정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지 않으냐. 이명박 정부가, 보수정권이 사느냐는 문제다. 대의를 위해 희생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고민을 솔직히 얘기할 시점이 온 것 같다”고도 했다.

    정 의원은 이번에도 ‘물갈이 0순위’로 이상득 의원을 올릴 태세다. 정권 초기에도 이 대통령 눈치 안 보고 이 의원에게 반기(反旗)를 든 전력이 있는 만큼 탈MB를 선언한 지금에 이르러선 더욱 강도 높게 퇴진론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정 의원은 5월11일 “이상득 의원이 내년 총선 공천을 받는 순간 수도권에서 (한나라당이) 전멸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상득 의원(6선)은 내년에 당선되면 국회의장을 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수도권 의원들이 이 의원의 공천신청을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도 수도권 소장파를 앞세워 ‘SD 퇴진론’을 들고 나올 것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그렇다면 총선 출마에 대해 이 의원은 어떤 입장일까. 이 의원은 최근 사석에서 재출마 여부에 대해 “나는 초선 의원을 지내고 두 번째 출마할 때도 총선 한 달 반 전에야 결심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행간의 의미로는 출마 쪽에 기운 것으로 보인다. 지역구인 경북 포항에선 그의 출마를 거의 기정사실화한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그렇게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이 의원은 동생인 이 대통령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정치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 대통령보다 정치를 먼저 시작했는데 대통령의 형이란 이유로 불출마 압력에 시달렸던 일에 대해서도 억울해한다. 그는 7월13일 경북 출신 의원 모임에서 “나이는 문제가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모임 도중 경북도당 위원장으로 선출될 의원의 나이가 화제에 오르자 “차가 1년 만에도 고장이 날 수 있고 10년이 지나도 깨끗한 차가 있다”고 했다. 76세인 그는 다른 자리에선 “세계 어느 나라도 나이를 공천기준으로 하는 나라가 없다. 나는 끝까지 내 할 일을 다 하겠다”고 했다.

    공천을 둘러싼 이상득·정두언의 암투 양상에서 염두에 둬야 될 인물이 있다. 이 의원의 보좌관 출신으로 이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자 야당이 제기하는 각종 권력형 의혹의 핵인 박영준 전 차관이 그 당사자다.

    “내가 세다는 소문이 외국에도…”

    정 의원과 박 전 차관은 이 대통령과 함께 서울시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이명박 정부의 창업 1등공신이다. 대선후보 경선 캠프에서 정 의원은 선거 전략을 맡았고 박 전 차관은 선진국민연대 등 조직을 담당했다. 그러나 지금 두 사람은 세상에 둘도 없는 원수지간이 된 것으로 보인다. 정 의원의 권력사유화 발언으로 박 전 차관은 청와대를 떠나 2년여간 야인생활을 해야 했다.

    정 의원 등과 일부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행보와 논리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의 실세인 박 전 차관이 한나라당 간판으로 총선에 나서는 건 가뜩이나 민심이반으로 고전 중인 수도권 선거에 악재가 된다. 이에 대해 당사자인 박 전 차관은 ‘정 의원 등이 정략적 차원에서 책임을 덮어씌우는 것이며 실제로는 정부에서 국익을 위해 열심히 일한 것밖에 없으므로 민심이반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지도 않다’고 본다.

    박 전 차관은 최근 기자에게 “대구, 그 중에서도 중·남구 선거구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출마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북 칠곡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고령-성주-칠곡 선거구 출마가 예상되기도 했는데 “초·중·고를 다닌 대구지역에 나가서 유권자의 심판을 받겠다”고 했다. 대구 중·남구는 그가 18대 총선 때도 진지하게 출마를 검토했던 곳이다. 당시 이 대통령이 “정권 초기인 만큼 곁에 남아서 도와달라”며 만류하는 바람에 뜻을 접고 청와대에 들어갔다가 불과 4개월 만에 눈물을 삼키며 나왔다.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국회의원을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다”고 했다.

    그는 근황을 묻는 질문에 “청와대와 정부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느라 미처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찾아보고 있다”고 했다. 총선 출마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보였다. 8월 말이나 9월 초 총리실과 지경부에서 2년6개월 동안 일한 경험을 토대로 책을 펴낼 계획이라고 한다. 책이 나오는 때가 총선 출마를 공식화하는 시점이 된다.

    “난 감방 갈 일 안 했다 총선 출마해 심판 받겠다”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

    그는 “책에서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행정부에서 일하며 느꼈던 생각들을 정리해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이라고 했다. “아프리카 국가를 중심으로 자원외교를 하면서 보람 있는 일도 많았다. 외국에 나가보니 내가 (대통령 측근으로서) 힘이 세다는 소문이 외국에도 꽤 퍼져 있더라. 그 바람에 국가원수급 지도자들도 나를 잘 만나줘 일하기 수월했다”며 웃었다.

    대구 중·남구의 현역 의원은 ‘경제통’인 배영식 의원이다. 여기에다 이 대통령의 또 다른 측근인 박창달 한국자유총연맹 총재도 이 지역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들과의 경쟁도 그렇지만 박 전 차관 입장에서는 또 다른 벽을 넘어야 한다. 정두언 의원이다. 박 전 차관은 “여의도연구소장이 된 정두언 의원이 공천에 결사반대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별다른 대 답 없이 화제를 돌렸다.

    정 의원은 2010년 6월 말~7월 중순 민주당에서 영일·포항 출신 실세들이 민간인 불법사찰의 배후에 있다는 ‘영포게이트’ 의혹을 제기하자 이를 토대로 이상득 의원과 박 전 차관에게 무차별 공격을 퍼부었다. 당시 “그들이 어떻게 해왔는지 비망록으로 정리해서 다 밝히겠다”고까지 했다.

    따라서 이상득·박영준 공천을 둘러싸고 여권이 극심한 내홍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여권 내부의 ‘현역 의원 40% 교체론’ ‘영남권 중진 물갈이론’ ‘이상득 공천 시 수도권 전멸론’은 공통적으로 ‘이상득의 정계 은퇴’를 정면으로 요구하고 있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이상득 의원이 버틸 뿐만 아니라 되레 박영준 전 차관까지 공천 달라고 가세하면 반(反)이상득 진영으로선 혹을 하나 더 붙이는 격인데 수용하겠는가. 2008년 총선 공천 파동 못지않은 충돌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말한다. 대구 출신 한 의원은 “그동안 불거진 의혹만으로도 박 전 차관이 공천심사를 통과하는 데 부담이 될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내 이마에 ‘이명박’ 석자 딱 있다”

    지난 8월2일 민주당 우제창 의원은 이 대통령의 대선조직이었던 ‘국민성공실천연합’의 회장을 지낸 이영수씨가 수조원대의 미얀마 해상광구 탐사개발권을 수주한 배경에 박 전 차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우 의원에 따르면 박 전 차관은 2010년 12월23일 미얀마 에너지부에서 룬 띠 에너지부 장관, 딴 떼이 차관과 잇따라 면담을 하고 이영수씨가 회장으로 있는 KMDC가 미얀마의 4개 해상광구 사업을 수주할 수 있도록 검토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KMDC는 지난 1월 수조원대의 4개 해상광구 동시 탐사개발권을 수주했다.

    6월7일에도 민주당 최영희 의원이 국회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KMDC가 올해 1월 양해각서 단계를 건너뛴 채 미얀마 해상 유전광구 4곳에 대한 개발탐사권을 획득한 배경에는 박 전 차관의 전폭적 지원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최 의원은 미얀마 유전개발 등 박 전 차관의 해외자원개발 업무 전체에 대한 ‘직무감찰’을 김황식 총리에게 요구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의혹에 박 전 차관은 기자에게 “내가 해외 순방을 나갈 때는 경제단체나 업종별 협회 등을 통해 참여기업을 모집했지 (내가) 직접 특정기업을 선별하지 않았다. 미얀마 정부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선 모든 동행기업에 발언권을 줬다. 그 자리에서 기업들이 (자사에) 필요한 부분을 이야기했다”면서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그가 정가(政街)의 이슈인 이영수씨 문제에 대해 직접 해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어 그는 “(2010년 12월 미얀마 정부 에너지부 장관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이영수씨 건을 부탁했다는 우제창 의원의 주장에 대해) 사실관계부터 다르다. 내가 미얀마를 간 것은 2009년 1월과 올해 2월 등 두 차례”라며 “지난번 민주당 이용섭 대변인에 이어 이번에도 사실관계를 날조한 것이다. 날조 전문가 집단도 아니고, 사실관계가 전혀 다른 것을 갖고 계속 공세를 펴는 것은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발끈했다.

    이용섭 대변인은 5월 말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부산저축은행 퇴출 저지 로비를 한 박 모 변호사가 박 전 차관의 친삼촌이라며 박 전 차관의 저축은행 비리 연루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박 전 차관은 “내 친가든 외가든 10촌 이내에 고시 붙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박 변호사와 나의 공통점이라면 박혁거세의 자손이라는 거 말고는 없다”고 힐난했다.

    지난 6월 야당은 박 전 차관이 특정 업체의 카메룬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권 문제에 연관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민주당 김재균 의원은 6월17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문제의 발단은 카메룬 다이아몬드 광산이다. 박 전 차관이 아프리카 자원외교를 위해 가장 심혈을 기울인 나라”라며 “박 전 차관이 밀어준 카메룬 다이아몬드 개발업체가 코코엔터프라이즈인데 주식 불공정거래 혐의로 검찰과 금감원 조사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차관은 차관을 그만두는 과정에서도 구설에 올랐다. 그가 전격적으로 사퇴의사를 밝힌 5월16일은 저축은행 사태가 한창일 때였다. 여권 일각에선 “박 전 차관이 저축은행 문제에 연루된 것 아니냐” “청와대가 박 전 차관에게 사표제출을 요구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에 대해 그는 “총선 출마 준비를 위해 당초 물러나기로 결심했던 시점보다 약간 빨라진 것뿐”이라고 했다. “5월16일 안현호 지식경제부 1차관과 정창수 국토해양부 1차관이 사의를 표명하는 바람에 차관급 후임 인선을 한꺼번에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날 자신도 서둘러 사표를 냈다”는 설명이다.

    그는 차관직을 물러난 뒤 각종 의혹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데 대해선 결백을 주장했다. 그는 “나는 이명박 대통령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언제든 검찰 조사를 받을 수도 있는데, 잘못하면 감방 가는데, 이권에 개입하거나 처신을 함부로 했겠느냐. 나는 감방 갈 일은 안 했다”고 했다. 이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듯이 내 이마에는 ‘이명박’ 석 자가 딱 적혀 있지 않으냐”고도 했다. 정두언 의원이 “이명박 정치에서 나와서 정두언의 정치를 하겠다”고 한 것과 대비된다.

    “정두언은 믿을 수 없는 사람”

    박 전 차관은 2007년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캠프를 꾸렸던 초기부터 정 의원에 대해 깊은 불신감을 가졌다고 한다. 박 전 차관이 주도한 선진국민연대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대선 당시 박 전 차관은 ‘정 의원은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언젠가는 MB에게서 등을 돌릴 것이란 얘기로 들렸다”고 말했다. 박 전 차관은 친이계의 또 다른 핵심인 이재오 특임장관에 대해서도 비슷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정두언·이재오는 정치여건이 변하면 살길을 찾아 떠날 사람들’로 애초부터 인식하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정두언 의원과 이재오 장관은 지금 서로에게도 적대감을 드러낸다. 두 사람은 8월초 트위터를 통해 날선 공방을 벌였다. 이 장관이 일본 자민당 의원들의 울릉도 방문을 막겠다며 독도에서 초병체험을 한 것이 빌미가 됐다.

    “독도 문제에 개인의 인기영합이 끼어든다면 오히려 매국적인 행위라 할 것이다. 국가적인 문제를 놓고 ‘개인장사’는 정말 아니죠”(정두언)→“독도는 혀끝으로 지키는 게 아니다”(이재오)→“독도 문제는 외교부 등 담당부처에 맡겨야지 개나 소나 나서면 개-소판이 되죠”(정두언)→“독도에서 잠을 자고 보초를 선 것은 ‘쇼’가 아니라 현 정부의 강력한 독도 수호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이재오)

    정 의원은 자신의 ‘개-소판’ 발언이 막말 파문으로 비화하자 “앞으로 밤 9시 이후에는 술 먹고 트위터를 하지 않기로 했다. 나이는 오학년(50대)인데 아직도 어른 되긴 멀었나 보다”고 자숙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 장관에 대한 불신까지 거둬들인 것은 아니다. 그는 지난 5월에도 이 장관에 대해 “그동안 독점적으로 국정을 운영해왔다. 한나라당이 지난해 지방선거와 4·27 재·보선에서 패배한 이상 (이 장관이) 국정운영을 더 이상 주도해선 안 된다. 다른 쪽에 기회를 줘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정 의원과 이 장관은 원래 정치적 동지였다. 대선후보 경선이 시작된 5년 전 ‘MB 대통령 만들기’에 의기투합했다. 당시 정 의원은 MB 캠프에서 전략기획단 총괄팀장을 맡았다. 이 장관은 당 사무총장·원내대표·수석최고위원 등을 지내면서 ‘반(反)박근혜’의 선봉에 섰다.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 이 장관은 ‘MB 진영의 군기반장’, 정 의원은 ‘MB의 복심(腹心)’으로 통했다.

    그러나 사실 두 사람의 관계는 일찌감치 틀어졌다. 결정적 계기는 이상득 의원의 총선 불출마를 요구한 55인 공천 항명 사건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정 의원은 이 장관에게도 참여를 요청했지만 청와대의 설득을 외면하지 못한 이 장관은 결국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이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과정에서 이 장관의 도움을 받지 못하자 서운한 감정이 겹겹이 쌓였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分黨될 수도”

    이상득·박영준·정두언·이재오 등 이명박 정부 탄생의 1등 공신들은 정권의 임기가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각자도생의 길로 가고 있다. ‘여기서 밀리면 끝’이라는 각오로 서로에 대해 일전을 불사하는 모양새다. 이들의 암투는 얽히고설킨 구원(舊怨)에 바탕을 두고 있어 극적인 화해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상득 의원과 정두언 의원이 친박계에 우호적이라는 점이 변수가 될 수 있다.

    친이계에서 가장 먼저 이탈한 정두언 의원은 중립지대에서도 벗어나 친박계로 넘어갔다는 말이 정가에서 나오고 있다. 이재오계는 7·4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힘이 급격히 떨어졌지만 여전히 박 전 대표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내년 총선 공천 때 ‘친이계 몫’을 기대하고 있다. 정 의원의 이 장관 공격은 친이계와의 결별을 확실히 하기 위한 제스처로도 풀이된다.

    이상득 의원도 박 전 대표에게 우호적이다. 이 대통령-박 전 대표 사이에 더 이상 충돌이 없고 양자 간 정권 재창출을 위한 협력관계가 형성된다면 이상득계가 공천과정에서 유리한 입지에 설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여권의 한 관계자는 “박 전 대표는 ‘야당’으로 인식되기에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유지하는 것”이라면서 “따라서 이 대통령과 차별화하고 친이계 핵심들과도 선을 그어야 지금의 국민적 지지를 유지할 수 있다. 반면 친이계 핵심들은 자기계파 공천 등 정치생명 유지에 사활을 걸려고 할 것이다. 야합으로 비치는 순간 박 전 대표도 추락하는 형국이므로 총선 공천을 놓고 한나라당 내부에선 분당(分黨)이나 신당 창당에 준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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