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과 이재오 특임장관.
정 의원은 이번에도 ‘물갈이 0순위’로 이상득 의원을 올릴 태세다. 정권 초기에도 이 대통령 눈치 안 보고 이 의원에게 반기(反旗)를 든 전력이 있는 만큼 탈MB를 선언한 지금에 이르러선 더욱 강도 높게 퇴진론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정 의원은 5월11일 “이상득 의원이 내년 총선 공천을 받는 순간 수도권에서 (한나라당이) 전멸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상득 의원(6선)은 내년에 당선되면 국회의장을 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수도권 의원들이 이 의원의 공천신청을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도 수도권 소장파를 앞세워 ‘SD 퇴진론’을 들고 나올 것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그렇다면 총선 출마에 대해 이 의원은 어떤 입장일까. 이 의원은 최근 사석에서 재출마 여부에 대해 “나는 초선 의원을 지내고 두 번째 출마할 때도 총선 한 달 반 전에야 결심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행간의 의미로는 출마 쪽에 기운 것으로 보인다. 지역구인 경북 포항에선 그의 출마를 거의 기정사실화한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그렇게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이 의원은 동생인 이 대통령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정치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 대통령보다 정치를 먼저 시작했는데 대통령의 형이란 이유로 불출마 압력에 시달렸던 일에 대해서도 억울해한다. 그는 7월13일 경북 출신 의원 모임에서 “나이는 문제가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모임 도중 경북도당 위원장으로 선출될 의원의 나이가 화제에 오르자 “차가 1년 만에도 고장이 날 수 있고 10년이 지나도 깨끗한 차가 있다”고 했다. 76세인 그는 다른 자리에선 “세계 어느 나라도 나이를 공천기준으로 하는 나라가 없다. 나는 끝까지 내 할 일을 다 하겠다”고 했다.
공천을 둘러싼 이상득·정두언의 암투 양상에서 염두에 둬야 될 인물이 있다. 이 의원의 보좌관 출신으로 이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자 야당이 제기하는 각종 권력형 의혹의 핵인 박영준 전 차관이 그 당사자다.
“내가 세다는 소문이 외국에도…”
정 의원과 박 전 차관은 이 대통령과 함께 서울시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이명박 정부의 창업 1등공신이다. 대선후보 경선 캠프에서 정 의원은 선거 전략을 맡았고 박 전 차관은 선진국민연대 등 조직을 담당했다. 그러나 지금 두 사람은 세상에 둘도 없는 원수지간이 된 것으로 보인다. 정 의원의 권력사유화 발언으로 박 전 차관은 청와대를 떠나 2년여간 야인생활을 해야 했다.
정 의원 등과 일부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행보와 논리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의 실세인 박 전 차관이 한나라당 간판으로 총선에 나서는 건 가뜩이나 민심이반으로 고전 중인 수도권 선거에 악재가 된다. 이에 대해 당사자인 박 전 차관은 ‘정 의원 등이 정략적 차원에서 책임을 덮어씌우는 것이며 실제로는 정부에서 국익을 위해 열심히 일한 것밖에 없으므로 민심이반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지도 않다’고 본다.
박 전 차관은 최근 기자에게 “대구, 그 중에서도 중·남구 선거구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출마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북 칠곡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고령-성주-칠곡 선거구 출마가 예상되기도 했는데 “초·중·고를 다닌 대구지역에 나가서 유권자의 심판을 받겠다”고 했다. 대구 중·남구는 그가 18대 총선 때도 진지하게 출마를 검토했던 곳이다. 당시 이 대통령이 “정권 초기인 만큼 곁에 남아서 도와달라”며 만류하는 바람에 뜻을 접고 청와대에 들어갔다가 불과 4개월 만에 눈물을 삼키며 나왔다.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국회의원을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다”고 했다.
그는 근황을 묻는 질문에 “청와대와 정부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느라 미처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찾아보고 있다”고 했다. 총선 출마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보였다. 8월 말이나 9월 초 총리실과 지경부에서 2년6개월 동안 일한 경험을 토대로 책을 펴낼 계획이라고 한다. 책이 나오는 때가 총선 출마를 공식화하는 시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