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호

“뇌의 비밀을 푸는 자가 경제를 지배한다”

세계 뇌 과학 선두주자 예일대 이대열 교수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1-08-23 13: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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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전두피질은 ‘인간이 인간답게 하는 역할’
    • 손실 혐오하는 개미 투자자, 뇌 과학으로 투자 훈련 가능
    • 원숭이와 가위바위보 실험 “원숭이도 후회하며 배운다”
    • “한국 뇌 과학, 일본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
    “뇌의 비밀을 푸는 자가 경제를 지배한다”
    인생은 의사 결정의 연속이다. ‘오늘 뭐 입지?’하는 단순한 고민부터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큰 결정까지. 선택은 피할 수 없다. 그만큼 의사 결정은 어렵다.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뇌는 우리 몸에서 최종 의사결정을 내리는 ‘본부’ 역할을 한다. 20세기 현대과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해왔지만, 뇌 내부 연구를 시작한 지는 20년 정도다. 세계 뇌 과학 연구의 선두에 선 한국인, 예일대 신경생물학과 이대열(45) 교수를 8월8일과 10일 두 차례 만났다.

    이 교수는 1989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95년 미국 일리노이대 신경과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웨이크포레스트대, 로체스터대에서 조교수 생활을 하다 2006년 예일대 교수로 임용됐다.

    경제학, 심리학, 생물학, 뇌 과학…. 이 교수는 학부, 석사, 박사 전공이 모두 다르다. 그런 이 교수를 두고 한국 뇌 과학 연구의 원로인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 조장희 소장은 “이대열 교수야말로 21세기형 융합 인재”라고 평했다. 경제를 공부한 그가 왜 꼬불꼬불 복잡한 뇌에 천착하게 된 걸까? 그가 웃으며 답했다.

    “학부 때 공부를 열심히 한 건 아니지만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왜’란 근원적인 질문이 생겼어요. 경제학은 인간의 의사결정,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이잖아요. 더욱 근원적인 답을 찾기 위해서는 의사 결정을 최종 승인하는 뇌에 대해 연구해야만 했습니다.”

    그의 연구 분야는 ‘신경경제학’이다. 신경경제학은 뇌 실험을 통해 경제학적 ‘효용’과 관련된 인간의 선택을 분석하는 학문으로 ‘인지신경학’의 한 분야다. 이 교수는 의사 결정을 할 때 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원숭이를 이용해 연구한다.



    여름휴가를 맞아 한국을 찾은 이 교수는 에너지가 넘쳤다. 다른 사람보다 말이 두 배는 빠른데도, 그 안에 논리가 어긋나거나 단어를 잘못 말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간간이 던지는 유머도 때마다 적절했다. “교수님 뇌에는 제 뇌보다 성능 좋은 엔진이 달렸을 것 같다”고 했더니 그가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제가 종종 하는 말인데, 세계 과학이 발전하려면 머리 나쁘고 성실한 과학자는 열심히 실험을 하고 머리 좋은 과학자는 그 데이터를 분석해서 이론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저는 원숭이들이랑 씨름하면서 아기자기한 게임을 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원숭이, 사람 등 영장류 뇌의 가장 큰 특징은 전전두피질(전전두엽)이다. 인간은 전전두피질이 뇌 앞 상당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거대하다. 원숭이의 뇌에서도 사람보다는 비율이 적지만 전전두피질이 뇌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반면 쥐, 고양이 등 포유류의 뇌에는 전전두피질이 아주 작다. 이 교수는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뇌 부위가 전전두피질”이라고 말했다.

    모든 결정은 ‘시간 간 선택’

    사람은 여러 가지 행동 중 하나를 선택한다. 말을 할 때도 수많은 단어 중 하나를 고른다. 이 교수는 “모든 결정은 ‘시간 간 선택(인터템퍼럴 초이스·inter-temporal choice)’”이라고 주장한다. ‘시간 간 선택’이란 현재의 선택은 과거, 현재, 미래 중 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현재 1000원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당장 목을 축이기 위해 1000원짜리 음료수를 사 먹을 수도 있다. 반면 목마른 걸 참고 1000원을 아껴두면 나중에 더 가치 있는 소비를 하거나, 은행에 넣어 돈을 불릴 수도 있다. 이 교수는 이러한 ‘시간 간 선택’을 할 때 전전두피질 뉴런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연구한다.

    이를 알기 위해 이 교수는 원숭이로 실험한다. 목이 마른 원숭이의 머리를 고정시키고,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게 한다. 화면에는 빨간 점과 파란 점이 각각 하나씩 나타난다. 원숭이가 빨간 점을 보면 주스를 세 방울 주고, 파란 점을 보면 주스를 두 방울 준다. 10분 정도 실험을 반복하면, 목이 말랐던 원숭이는 주스를 한 방울이라도 더 먹기 위해 계속 빨간 점만 본다. 이 교수는 “모든 생물은 ‘보상(reward)’에 반응한다”고 덧붙였다.

    상황을 바꾼다. 빨간 점과 파란 점 사이에 노란 점들이 생긴다. 이 노란 점은 1초에 1개씩 사라지는데, 노란 점이 다 사라져야 주스를 먹을 수 있다. 노란 점 개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주스를 주는 시간이 지연된다.

    빨간 점 주변에 노란 점이 8개고 파란 점 주변에 노란 점이 없다면? 원숭이들은 계산하기 시작한다. 원숭이가 빨간 점을 선택하면 8초를 기다렸다가 주스 한 방울 더 먹을 수 있다. 파란 점을 선택하면 한 방울 적지만 주스를 바로 먹을 수 있다.

    이 교수는 “원숭이 한 마리당 1주일 동안 하루 300~400번 연구를 하면 일정한 패턴이 나온다. 원숭이들은 대부분 빨간 점 옆에 노란 점이 6개 있으면 기다리지만 8개 있으면, 기다리지 않고 바로 먹을 수 있는 파란 점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원숭이들은 주스 한 방울 더 먹기 위해 6초를 기다리는 일은 가치 있지만, 8초까지 기다릴 가치는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 교수는 원숭이들이 이런 고민을 할 때 뇌 내부의 움직임을 연구했다.

    “뇌의 비밀을 푸는 자가 경제를 지배한다”

    예일대 신경생물학과 이대열 교수와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 조장희 소장이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에서 만났다.

    “전전두피질 내 뉴런은 주스의 양뿐 아니라 주스가 제공되는 시간도 같이 정보처리를 합니다. 1~2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원숭이 전전두피질 내에서 엄청난 계산이 발생합니다. 그 결과 뉴런이 수천 가지 변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판단해 선택하는 거예요. 정말 신기하죠?”

    뇌 과학으로 투자성향 파악

    인간 역시 ‘시간 간 선택’을 한다. 가장 좋은 보상은 돈이다.

    실험 대상자에게 제안한다. 1만원과 2만5000원이 있다. 1만원을 선택하면 지금 바로 100% 준다. 하지만 2만5000원을 선택한다면 동전 앞면이 나오면 2만5000원을 주고 뒷면이 나오면 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통계학에 나오는 ‘기대치’(경제학에서는 ‘기대 효용’)란 개념을 따지면 1만원의 기대치는 1만원, 2만5000원의 기대치는 1만2500원이에요. 50% 확률로 돈을 받으니까요. 단순히 기대치만 비교하면 2만5000원을 선택하는 게 더 합리적입니다. 그런데 모든 실험 대상자가 꼭 2만5000원을 선택하는 건 아니에요. 인종, 재산 수준, 성별 등에 따라 결과가 다릅니다. 저는 뇌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런 계산을 하는지, 뇌의 움직임을 연구합니다. 더불어 리스크에 대한 사람의 성향도 파악하죠.”

    ‘시간 간 선택’과 ‘리스크에 대한 태도’에 따라 사람을 분리할 수 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사람은 ‘리스크 선호(risk preference)’, 주가가 뛸 가능성이 높아도 펀드나 직접투자보다 적금을 선호하는 사람은‘리스크 반대(risk obverse)’, 반면 리스크를 추구하는 것 같지만 기대치에 영향도 많이 받는 사람은 ‘리스크 중립(risk neutral)’ 성향이 있다. 이는 경제학, 특히 투자학과 관계가 깊다.

    “모든 사람이 보험사를 차리거나 혹은 공격적 주식투자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전전두피질의 역할을 파악하면 사람의 투자 성향을 파악할 수 있죠. 어디에 투자할지 고민하는 것 자체가 ‘시간 간 선택’이기 때문에, 이 분야를 연구하면 경제 컨설팅 연구에도 상당히 도움이 되죠.”

    8월6일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한 단계 낮추면서 한국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다. 8일 코스닥이 10% 이상 폭락하면서 거래를 잠시 중단하는 ‘서킷브레이커’가 발동했다. 8월8일에는 장 중 한때 코스피지수가 1684.68포인트까지 떨어지면서 위기감이 감돌았다.

    ‘시간 간 선택’ 비밀 알면 정신병 치료도

    하락장을 주도한 것은 개미투자자였다. 공황 상태에 빠진 개인들이 8월8일 하루만 7000억원 넘게 주식을 팔아치우며 투매 행렬에 동참했다. 시장에 손절매(추가 손실을 막기 위해 손해 보고 파는 것) 물량이 쏟아졌다. 상당수 전문가는 개미투자자들에게 지금 투매하지 말 것을 권고했지만 이 조언은 통하지 않았다.

    “행동 경제학에 ‘손실혐오(lose aversion)’란 개념이 있어요. 사람은 이익을 추구하는 것보다 손실을 피하려는 성향이 더 강해요. 1만원을 얻는 건 크게 생각 안 해도, 갖고 있던 1만원을 잃는 건 끔찍하게 생각하는 겁니다. 개미투자자들의 반복적인 손절매 행태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는 신경정신병 역시 ‘시간 간 선택’의 오류에서 온다고 주장한다. 즉, ‘시간 간 선택’의 비밀을 알아내면 정신병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원치 않는 생각에 사로잡혀있고 한 가지 행동만 계속 반복하는 ‘강박장애’는, 오지도 않을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생기는 거예요. 지금 손은 깨끗한데 언젠가 손에 세균이 번식해 바이러스에 감염될 거란 강박 때문에 반복적으로 손을 씻는 거죠.

    반면 ‘우울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어 생기는 거예요. ‘약물중독’ 역시 미래를 고려하지 않은 채 현재의 쾌락만 좇는 거죠. 뇌 연구를 통해 ‘시간 간 선택’ 장애를 파악하면 이런 질병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후회는 인간을 발전시킨다

    또 하나, 그가 주목하는 것은 후회(regret)다. 그는 “후회란 인간이 갖는 가장 고차원적인 감정”이라고 말했다.

    “후회와 실망(disappointment)은 다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자장면 마니아인데, 기대만큼 자장면 맛이 없었다면 ‘실망’하죠. 그런데 예상과 상관없이, 자장면을 다 먹고 난 후 옆 사람이 먹는 걸 보면서 ‘아, 짬뽕을 먹었다면 얼마나 맛있었을까. 짬뽕 먹을 걸 그랬다’ 생각하는 건 ‘후회’입니다. 인간의 삶은 후회를 거듭하며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이 교수는 원숭이가 후회를 하는지, 후회할 때 뇌 속 뉴런은 어떻게 변하는지 실험을 통해 밝혀냈다. 이용한 방법은 가위바위보다. 원숭이와 컴퓨터가 가위바위보를 하게 한다. 원숭이가 이기면 주스를 세 방울 이상 먹고, 비기거나 지면 못 먹는다. 그 안에서 재밌는 패턴이 발견됐다.

    “만약 원숭이가 바위를 내고 컴퓨터가 보자기를 내 원숭이가 졌다면, 원숭이는 ‘아 만약 내가 가위를 냈으면 주스를 마실 수 있었는데…’하고 후회합니다. 그러면 다음 판에는 가위를 낼 가능성이 높죠. 이렇게 전 판의 결과는 다음 판에 영향을 미칩니다.

    더욱 복잡한 계산이 가능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실험을 통해 후회는 이후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는 세계 최초로 ‘원숭이가 학습을 한다’는 명제를 밝혀낸 실험입니다. 저는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대전제하에서 후회에 대한 더욱 깊이 있는 연구를 할 계획입니다.”

    현재 이 교수가 사용하는 예일대 연구실은 세계적인 뇌 과학 연구자였던 고(故) 패트리셔 골드먼 래킥(Patricia Gold-man-Rakic)이 사용하던 곳이다. 그는 전전두피질의 전기회로망을 처음으로 발견하고 연구한 학자로 뇌 과학 연구의 선구자다. 그는 2003년 7월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 교수는 “골드먼 래킥 교수는 그동안 뇌 과학 연구에서 선구적인 업적을 이뤄냈다. 아마 지금 살아계셨다면 노벨상 수상도 문제없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예일대 골드먼 래킥 연구실 이어받은 건 행운”

    예일대에 비상이 걸렸다. 본래 원숭이를 이용한 뇌 과학 실험은 투자비용이 많이 든다. 원숭이 사육장도 크게 마련해야 하고 실험 기기도 고가(高價)다. 동물 실험을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비해, 안전장치도 철저히 마련해야 한다. 예일은 골드먼 래킥 교수의 연구실을 비워두지 않기 위해 세계적인 원숭이를 이용한 뇌 과학 연구자 10여 명에게 교수직을 제의했다. 하지만 한결같이 거절했다.

    이 교수는 “당시 예일에서 스카우트한다는 소문이 들리면 원래 그 학자를 데리고 있던 학교에서 엄청난 제안을 해 다시 붙잡았다. 원숭이 뇌 과학 연구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귀했고, 2003년 당시 미국 경제가 호황이었기 때문에 미국 대학들의 자금사정도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골드먼 래킥 교수 덕에 당시 같은 분야 학자들의 연구비가 전반적으로 늘었다. 뇌 과학 연구에서 큰 업적을 남긴 래킥 교수는 죽어서도 뇌 과학 연구에 도움을 준 셈”이라고 덧붙였다. 마땅한 연구자를 찾지 못한 예일은 당시 40세 ‘초보교수’ 이던 이 교수에게 제의를 했다. 이 교수는 예일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제가 살면서 받은 가장 큰 복이 바로 골드먼 래킥 교수의 연구실을 물려받은 겁니다. 그만큼 겸허하게 노력해, 이 분야 연구에 한 획을 그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최근 동물의 권리가 중시되면서, 동물을 이용한 과학 실험에 반대하는 주장도 거세다. 이 교수 실험실에서 현재 이용하는 원숭이는 9마리. 매년 1~2마리씩 새로 들여온다.

    “저희 연구실에 들어오고 싶다는 학생들에게 늘 묻습니다. 원숭이를 이용해 단순히 호기심을 해소하고 싶은 게 아니라 이 연구가 정말 인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지를요. 저 역시 원숭이 실험하기 전에 일부러 목마르게 하려고 물을 안 주거나, 주렁주렁 실험 기계를 달아야 할 때 마음이 안 좋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은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1950년대 소아마비 백신을 만들기 위해 원숭이 5000마리가 희생됐습니다. 그 원숭이의 희생 덕에 많은 아이가 소아마비로부터 해방됐죠. 과학기술 발전의 혜택을 받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지나치게 동물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가당착 아닌가요?”

    원숭이를 이용한 실험은 굉장히 엄격한 가이드라인이 적용된다. 이 교수는 “아무나 원숭이 잡아서 실험하면 감옥 간다”며 “원숭이에게 투여하는 약물 1cc만 늘리려 해도 꼭 학교에 허락을 받아야 한다. 동물 실험이 끝나면 모두 죽인다는 생각도 편견이다. 우리 연구실에서 ‘제대’하면 더욱 살기 좋은 동물 번식터로 가서 행복하게 산다”고 덧붙였다.

    “동물 실험 비판은 자가당착”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서울에서 열린 월드사이언스포럼에서 “10년 내 뇌 연구 7대 강국에 진입하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007년 “국내 뇌 연구 역량을 집중할 수 있는 거점 연구기관을 만들겠다”고 발표했고 올 6월3일 “대구에 ‘한국뇌연구원’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17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한국뇌연구원은 한국 뇌 과학 연구의 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교수는 “지금이라도 한국에 뇌 연구원이 설립되고 국가적으로 뇌 연구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1990년을 ‘뇌 연구 10년’으로 선언했고 일본도 ‘21세기는 뇌 연구의 세기’로 규정했다”며 “아직 한국 뇌 과학은 국제적 수준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며 아쉬워했다.

    “일본의 경우 제가 아는 원숭이 이용 뇌과학연구소만 50개가 넘어요. 실제는 더 많겠죠. 우리나라는 원숭이를 이용해 뇌 실험하는 연구소가 서울대에 단 두 곳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직 멀었어요.”

    이 교수의 취미는 악기 연주. 키보드와 기타 연주가 수준급이다. 그는 한국 신경과학계 석학들이 만든 록밴드 ‘엉터리즈(Ungteoriz)’의 리더다. 정민환 아주대 교수, 최준석 고려대 교수 등이 이 밴드 멤버다. 이름과 달리 실력이 상당하다. 이 교수가 한국에 올 때마다 잼 세션(자유 연주)을 연다.

    이와 별도로 이 교수는 매주 유튜브에 연주 영상을 올린다. 스스로를 트레이닝하기 위해서다. 그중에는 조회수가 300건 넘은 영상도 많다. 엉터리즈의 목표는 올해 안에 자작곡 하나 발표하는 것. “인터뷰 마치고 고대 최준석 교수와 홍대에 가서 로컬 밴드를 점검할 계획”이라며 멋쩍게 웃는 그를 보니, 그 뇌 속이 더욱 궁금해졌다.

    뇌까지 들여다보는 뉴로마케팅

    시청자, 제품은 안 보고 김태희 얼굴만 본다


    “뇌의 비밀을 푸는 자가 경제를 지배한다”
    현재 뇌 과학 연구가 가장 많이 활용되는 분야는 마케팅이다. ‘뉴로마케팅(nero-marketing)’이란 소비자의 뇌를 들여다보고 소비자의 의식 너머, 무의식과 잠재의식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마케팅 방법.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을 통해 뇌 내부의 변화를 포착하는 것은 기본. 시선추적, 심리검사, 동선추적, 생체신호, IAT 등 뉴로마케팅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뉴로마케팅이 한국에 상륙한 지는 4년 정도. 현재까지 기아차가 K7을 출시하면서 뉴로마케팅을 편 것을 비롯해 LG전자, 삼성전자, 나이키 등이 뉴로마케팅을 이용해 전략을 수립했다.

    인지부조화의 빈틈을 파고든다

    KT&G의 자회사 KGC라이프앤진은 올 9월, 홍삼 함유 스킨케어 화장품을 출시한다. 그런데 스킨케어 화장품은 효과가 눈에 즉각적으로 보이지 않는 제품이라 “부드러워요” “기름져요” 등과 같은 설문 대상 소비자의 ‘말’만을 통해 기능을 검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실제 화장품을 발랐을 때 기분이 어떤지, 감정 변화가 어떤지, 얼굴 어느 부분이 불편한지 등을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측정해야 한다.

    뉴로마케팅 리서치 전문기관 ‘브레인앤리서치(Brain&Research)’는 ‘소비자가 생각하는 좋은 피부란 무엇인가’를 시선추적(eye-tracking)을 통해 조사했다. 먼저 화면에 6명의 얼굴을 띄워놓고, 표본 50명에게 “누구의 피부가 좋은가?”라고 물었다.

    화면을 보지 않고 말로 답했을 때는 응답자 50.8%가 볼을 보고 판단한다고 답했고, 눈(32.8%), 이마(7.0%), 코(5.8%) 순으로 답했다. 그런데 6명 얼굴 화면을 띄워놓고 응답자 시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동공의 크기, 심장박동 등을 파악하니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응답자 39%가 눈을 보고 좋은 피부를 선택한 것이다. 볼을 보고 좋은 피부를 선택한 응답자는 9.7%에 불과했다.

    두 번째로 뇌파를 이용했다. 어떤 스킨케어 제품을 발랐을 때 안정감이 높고 스트레스가 적은지 측정했다. 뇌파에는 알파파와 베타파가 있는데, 알파파가 높으면 편안하고 베타파가 낮으면 스트레스가 많다. KGC라이프앤진은 이 결과를 토대로 홍삼 함유량 비율을 조정했다.

    제품 가격을 선정하는 데도 뉴로마케팅이 이용된다. CJ오쇼핑은 중국에 진출할 때 ‘어떤 가격대의 제품을 판매해야 좋을까’ 고민했다. 브레인앤리서치는 중국인 표본을 설정해 fMRI 조사를 했다. 가격을 불러줬을 때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즉각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브레인앤리서치는 fMRI 조사를 통해 중국인 소비자들이 150위안(약 2만5000원) 이하는 ‘뭔가 문제가 있는 싸구려 상품’이라 인식하고, 340위안(5만7000원) 이상은 ‘너무 비싸다’고 인식함을 밝혀냈다. 이를 통해 홈쇼핑에서 판매할 수 있는 제품은 150~340위안 사이 가격대여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광고 제작에도 뉴로마케팅이 이용된다. 시청자의 시선 움직임에 따라 제품 노출 위치를 정하고, 시청자의 집중도에 따라 모델 노출 시간도 조정한다. 김태희가 출연한 LG전자 휴대전화 광고의 경우 시선을 분석하면 모델의 얼굴과 몸에 시선의 80%가 가고, 휴대전화에는 시선이 10%밖에 가지 않는다. 모델이 사라지고 휴대전화만 노출될 때 갑자기 관객 집중도가 떨어진다. 이는 좋은 광고라고 볼 수 없다.

    예쁜 샤라포바는 나쁜 모델

    나이키 광고 역시 뉴로마케팅의 재밌는 예다. 나이키는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인 마리아 샤라포바와 세레나 윌리엄스를 광고모델로 기용했다. 특히 샤라포바의 경우 실력뿐 아니라 미모를 갖춰 인기가 높다. 나이키는 2010년 샤라포바와 7000만달러(약 756억원)에 종신계약을 맺었다.

    둘 중 누가 더 나이키 홍보에 도움이 될까? 단순히 생각하면 예쁘고 인기 많은 샤라포바 광고 효과가 높을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브레인앤리서치의 연구 결과는 달랐다. 시선추적을 한 결과 샤라포바의 경우 얼굴 시선점유율이 74%고 모자에 달린 나이키 로고는 4%만 노출됐다. 반면 윌리엄스는 얼굴 시선점유율이 36%에 불과했으나 모자에 붙은 나이키 로고 시선점유율은 15%에 달했다. 허리춤의 나이키 로고도 샤라포바의 경우 14% 노출에 불과했지만, 윌리엄스는 29% 노출됐다. 결국 두 모델 중 브랜드를 효율적으로 홍보한 광고모델은 윌리엄스라는 것.

    브레인앤리서치 박정민 사업부 팀장은 “매년 기업에서 야심 차게 내놓는 신상품 중 80%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 나름의 마케팅 전략을 짜고 설문조사했겠지만 그 결과가 다 좋은 건 아니다. 뉴로마케팅은 기존 마케팅의 한계를 극복하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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