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지 밖 마을 진료를 나가기 위해 방탄조끼를 착용한 박석산 교수(오른쪽에서 세 번째).
“우리를 납치하면 큰돈이 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는 거죠. 탈레반이 외국인을 납치한 뒤 석방 대가로 돈을 요구하면, 가장 많이 주는 게 한국인이라고들 했어요. 현지에 가보니 샘물교회 사건뿐 아니라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은 납치 사건이 더 있더라고요. 건설 공사장에서 납치됐다가 탈출한 한국 근로자가 있고, 우리 기업 건설 현장에 고용된 외국인을 납치한 뒤 우리나라에 대고 돈을 내놓으라고 한 경우도 있었어요.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민간인이 납치돼도 테러범과 타협을 안 한대요. 직접 가서 구해오면 구해왔지. 그러다보니 탈레반이 우리나라 사람을 더 노리는, 그런 경향이 있었어요.”
▼ 납치 근로자 탈출 소식은 처음 듣네요.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납치사건이 그 외에도 더 있나요?
“가끔 있었어요. 그럴 땐 비상이 걸리죠. 기지 주변 마을 학교 진료나 외부 회의 참석 같은 활동을 일절 못하고 안에만 있어야 해요. 기지 안은 철통 경비 덕분에 안전하지만, 수시로 포탄이 떨어집니다. 포탄 공격을 하루에 세 번 받은 적도 있어요. 대전차포나 박격포 공격을 받으면 사이렌이 울리고 다급하게 ‘인커밍(Incoming·포탄이 날아온다)’을 외치는 방송이 나와요. 그럼 숙소에서 자다가도 방탄조끼 챙겨 입고 방공호 구실을 하는 병원으로 뛰어야 합니다. 숙소는 나무로 지어져 포탄에 파괴될 수 있거든요. 제가 부임하기 직전인 2009년에는 우리 병원 100m 옆에서 포탄이 터졌대요. 박격포가 터지면 막사 하나 정도는 그대로 무너지기 때문에 위험하죠.”
박석산 교수를 비롯한 의사 5명, 간호사 8명과 임상병리사, 물리치료사, 약사, 행정지원자 등 총 23명으로 구성된 대한민국 의료진은 아프가니스탄 도착 후 한 달 반 만인 2010년 4월 11일 파르완주 바그람 미 공군기지에서 한국병원 개원식을 열었다. 이용준 외교통상부 차관보, 박해윤 주(駐)아프가니스탄 한국대사, 한영태 KOICA 사회개발부장 등 국내 인사와 바시르 살랑기 아프간 파르완주 주지사, 미군 관계자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한국병원은 연면적 3000㎡, 30병상 규모로 내과와 외과 등 5개과 진료실과 초음파실, CT실, X-ray실, 심전도실, 병리실, 물리치료실 등의 검사·치료실을 갖추고 있다. 약 200명을 진료할 수 있는 이곳은 이때부터 아프간 주민에게 무료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2차 의료기관 구실을 하고 있다.
박 교수는 한국병원 개원 전인 2010년 3월부터 현지 의료진을 선발해 한국의 인제대 백병원으로 보냈다. KOICA와 백병원이 아프가니스탄 의료 수준을 높이기 위해 마련한 의료종사자 교육프로그램 연수를 위해서였다. 지금까지 인제대 백병원에서 교육받은 아프간 의료종사자는 90명이 넘는다. 박 교수는 아프간 한국병원에서 근무하는 현지 의료인을 대상으로 매주 의학과 컴퓨터를 가르치기도 했다.
현지인과의 갈등
▼ 병원에서의 일과는 어땠나요?
“정식 진료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예요. 그런데 우리병원에서 근무하는 현지 의료인들은 오후 3시 반이면 일을 끝내고 싶어했죠. 병원에서 셔틀버스로 약 2시간 거리인 카불에 사는데, 날이 어두워지면 가는 길에 공격당할 수 있다며 서두르는 거예요. 또 퇴근 후 다른 병원에서 일하는 ‘투잡’을 하기 위해서이기도 했고요. 현지 의사나 간호사, 물리치료사들은 수입이 많지 않아서 대부분 투잡을 해요. 우리 병원 직원들도 퇴근 뒤 카불에 있는 개인 진료실에서 서너 시간씩 일을 더 하더군요. 아프간 의사의 한 달 월급이 200달러 정도인데, 투잡을 하면 추가로 월 200~300달러를 벌 수 있다고 했어요. 우리 병원의 현지 의사 월급이 700달러쯤 됐는데, 일반 의사보다 두세 배 많은 월급을 받으면서도 투잡을 하더라고요.”
▼ 현지 의료진을 채용해 일자리를 주고, 현지인을 대상으로 무료 진료 봉사도 했으니 다른 외국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생활했을 것 같습니다.
“아니요. 우리도 위협을 많이 받았어요. 그쪽 정서가 그래요. 예를 들면 자기들이 원하는 사람을 진료해달라고 부탁하는데 우리가 안 된다고 할 때가 있잖아요. 절차와 시스템대로 병원을 운영해야 하니까. 그러면 앙심을 품죠.”
▼ 의료진과 현지인 사이에 갈등이 생기거나, 의료진이 현지인의 공격으로 다친 적도 있나요?
“바그람 기지 근처 마을 사람들과 갈등이 일어난 적이 있어요. 우리는 기지 밖으로 못 나가니까 마을 사람들이 전날 밤부터 병원에 찾아온 환자를 문 앞에 줄 세워요. 그러면서 돈을 받고 자기들 마음대로 새치기를 시키곤 했죠. 매일 수백 명이 줄을 서는데 당일 모두 진료를 받지는 못하거든요. 그 덕분에 줄 세우는 걸 담당하는 마을 사람들이 적지 않은 돈을 챙기는 거예요. 10~15달러를 받은 적도 있다고 들었는데 아프간에서는 엄청난 액수입니다. 그렇다보니 우리는 무료로 진료하는데, 환자들은 ‘돈 내고 치료받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요. 상태가 괜찮아 약을 처방하지 않고 가라고 하면 ‘돈은 다 받고 왜 그냥 보내느냐’며 화를 내지요. 한번은 돈을 안 내고 줄 선 임신부가 마을 사람들한테 구타당하는 걸 본 적도 있어요. 한국병원에 가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소문이 도니까 이미지가 오히려 안 좋아지는 것 같더군요.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 싶어서 줄 세우기 관행을 싹 없앴어요. 그것 때문에 마을사람들과 분쟁이 생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