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플이 이 룸에 들어가면 몸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올 때마다 다르다. 지금은 좀 이른 시간이다.”
종업원이 “연휴 땐 손님이 적다. 지난 추석 연휴 때도 거의 없었다. 지난주엔 제법 있었는데, 이번 주는 연휴라 예약이 거의 없다”고 거들었다. 주초엔 사람이 적고, 목·금·토요일에 많다고 한다. 일요일은 영업을 안 한다.
홀 안에서 여성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투명한 커튼 너머로 남자의 상체가 보였다. 안에서 사랑을 나누는 모양이었다. 커플 한 쌍이 안에 있다고 했다. 좀 자세히 보려고 몸을 일으키자 김씨가 “솔로는 홀 안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했다. 사랑을 나누는 광경을 서서 구경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이곳만의 규칙과 예의
“홀은 커플만 입장이 가능하다. 솔로는 바에 앉아 관전만 할 수 있는 게 이곳의 룰이다. 커플이 초대했을 때만 들어갈 수 있다. 물론 솔로끼리 마음이 맞으면 파트너가 돼 들어갈 수 있다. (홀 옆에 있는 룸을 가리키며) 저 룸에 들어가면 다른 손님들이 관전은 물론, 터치도 가능하다. 물론 당사자가 싫다고 하면 안 되지만 그 방에 들어가는 자체가 몸을 공유하겠다는 암묵적 표현이라고 보면 된다.”
실내를 둘러봤다. 바 뒤로 가발이며 ‘오페라의 유령’에서 봄직한 가면들이 수십 개 진열돼 있었다. 콘돔이 담긴 바구니도 보였다. 바이브레이터 등 자위기구와 수갑, 채찍, 밧줄 등 SM 용품들도 종류대로 놓여 있다. 원하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행거엔 여자 옷들이 걸려 있다. 다양한 디자인의 슬립, 망사 속옷, 코스프레 의상 등 과감한 의상도 눈에 띈다. 자리로 돌아오며 김씨에게 “저 옷 입으면 예쁘겠다”고 농을 건네자 “핼러윈데이 파티 때 입은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웃었다.
홀에서 사랑을 나누던 남자가 화장실로 가는 게 보였다. 팬티 바람이었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잠시 후 여자가 슬립 차림으로 지나갔다. 둘 다 30대 후반으로 보였다.
“가끔 다 벗고 돌아다니는 남자도 있다. 중년이라 몸이 좋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여기는 다 자유다. 하고 싶은 것, 해볼 수 있는 걸 마음대로 다 할 수 있다. 물론 상대가 받아준다면.”
출입문이 열리고 한 여성이 들어왔다. 이 가게 주인 예시카다. 단아한 용모에 마른 체격으로 40대 중반쯤 돼 보였다. 목소리가 성우처럼 특색이 있으면서도 편안했다. 본인은 “날카롭고 사납게 보여 고민”이라고 했지만 미소가 상대방을 편하게 만드는 인상이었다. 대가 세다는 건 느껴졌다. 하긴, 이런 장사는 웬만한 남자도 하기 힘든 일이다. 아무래도 뒤를 봐주는 이들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종업원과 단둘이 운영한다고 했다. “위험하지 않으냐”고 묻자 “지금껏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이런 곳도 필요한 사회”

화장실 남자 소변기 위에 여자 속옷이 걸렸다.
▼ 술에 취한다든지, 이런 저런 이유로 싸움이 날 수도 있을 텐데.
“가게 룰이 ‘술 취하면 입장불가’다. 커플당 한 병 이상 술을 팔지 않고, 술주정을 하면 바로 퇴장시킨다. 단호하게 하니까 회원들이 나를 무서워하면서도 신뢰한다.”
▼ 불만을 품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6년 전 초창기에. 불법영업을 한다고 신고하는 바람에 검찰까지 갔다. 검사가 ‘회원들끼리 밀폐된 공간에 모여 무슨 짓을 하든 그건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더라.”
▼ 불법은 아니지만 합법도 아닌 듯한데.
“이걸 문제 삼는다면 정말 한국을 떠나고 싶다. 성은 국가권력이 개입할 영역이 아니다. 특정 개인이 자신과 정서가 다르다 해서 색안경을 끼고 인정하지 않는 편견을 바로잡고 싶었다.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프라이버시와 성적 자기결정권은 인정받아야 한다. 그게 행복추구권이다.”
그는 손님들에게 욕을 먹어가면서까지 원칙대로 확실하게 관리하는 건 합법화를 위해서라고 했다.
“돈 벌려고 이 장사를 하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에 이런 곳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손해를 보더라도 모범적인 사례를 만들어 그들이 터부시하는 이 업소의 성격과 진실을 알리고 싶다. 정도를 지키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자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
▼ 외국은 어떤가.
“일본은 ‘해프닝 바’라고 해서 3000~4000개, 미국은 공식적으로 300개 이상 있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많은 곳에 이런 업소가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선 관광가이드북에 업소 소개 문구를 넣는 등 국가적으로 인정하는 관광산업이다. 그들도 투쟁 아닌 투쟁을 거쳐 합법화했다. 세금 내며 떳떳이 장사한다.”
국내엔 2009년에 처음 생긴 이후 수 년째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곳이 몇 군데 있다고 한다. 그는 “종종 유사업소가 나타나 물을 흐릴 때가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알바를 고용해 솔로 여성 손님 행세를 하게 하는 곳도 있다. 사실상 커플바를 가장해 성매매를 하는 셈이다. 이런 곳은 진짜 커플들이 갔다가 발길을 돌린다. 금방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이런 곳이 많아지면 우리 같은 업소들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이 장사가 밖에서 보면 엄청난 수익을 내는 줄 아는데, 절대 돈 버는 구조가 아니다. 철학과 중심 없이 너무 쉽게 덤벼드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