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4월호

미국비자 아메리칸 드림의 벽

  • 최영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cyj@donga.com

    입력2004-11-01 17: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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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행을 원하는 사람이 꾸준히 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미국유학 증가. 미국국제교육연구소에 따르면 미국 내 전체 외국유학생 54만명 가운데 한국유학생은 8.3%인 4만5685명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중국·인도·일본에 이어 네번째로 많은 숫자다. 또 국내 기업들의 미국진출도 비자 신청 증가에 한몫을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 가기가 점점 힘들어진다는 사실이다. 이는 주한미국대사관의 비자 거부율이 점점 높아지고, 심사 양식이 더욱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미대사관에 따르면 최근 미국이 한국인에게 비자 발급을 거부하는 비율(비이민 비자의 경우)은 10명 중 1명꼴로 늘어났다. IMF 이전만 해도 100명 중 3명에 지나지 않던 비자 거부율은 IMF 이후 꾸준히 늘어나서 현재는 10%까지 올라섰다.

    일선 여행사 직원이나 비자 발급 알선·대행업체 관계자들은 거부율이 이보다 더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미국대사관의 비자 발급 기준이 애매하고, 이에 따른 피해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말 미국대사관에서 비자 발급을 거부당한 미혼의 직장 여성 A씨(30세)의 경우다. 그는 10년짜리 관광비자로 2000년에 미국을 보름 정도 여행한 경험이 있었다. 그가 이번에 새로 비자를 신청한 이유는 미국에 1년 정도 어학연수를 가기 위해서였다. A씨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 만 6년 동안 쉬지 않고 직장을 다녔다. 현재는 정보통신 계통의 직장에 다니는데, 그가 받는 연봉은 3000만원 정도.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A씨에 대한 재정보증은 공기업에서 30년째 재직중인 아버지가 섰다. 그의 가족은 모두 10년짜리 미국 관광비자를 가지고 있다. A씨가 준비한 서류는 기본적인 서류에다 옮긴 지 두 달 된 직장의 재직증명서와 갑근세 증명서, 복직증명서 등이었다. A씨는 덧붙여 재정보증인 서류, 부모 비자 사본, 4000만원 정도 되는 아버지의 은행잔고 증명서를 준비했다. A씨의 어학연수를 주선한 유학원은 이 정도면 완벽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대사관에서 인터뷰를 한 결과 A씨는 비자 발급을 거부당했다. 비자가 거부된 이유는 인터뷰 내용으로 짐작되는데, 내용은 대강 이러했다. 이날 A씨를 인터뷰한 담당 영사는 “왜 어학연수를 하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A씨는 “업무상 외국인 엔지니어를 만날 일이 많아서 공부를 하려고 한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영사는 서류를 한장 한장 보다가 “지금 회사에서 근무한 지 얼마나 되었냐?”고 물었다. A씨는 “전에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나서 이 회사로 옮긴 지 두 달이 되었다”고 대답했다. 담당 영사는 “옮긴 지 두 달밖에 안된 회사에서 당신의 무엇을 믿고 복직증명서를 만들어주었냐?”고 되물었다. A씨는 기분이 나빴지만 차근차근 “현재 회사는 스카우트되어서 옮긴 회사이고 미국에 가서 어학연수 하려는 계획은 예전부터 있었다. 현재 회사는 옮길 당시 입사 조건으로 1년간 나에게 공부할 시간을 주기로 했다”고 대답했다.



    인터뷰 결과는 거부였다. 이유는 “두 달밖에 안된 회사에서 복직증명서를 만들어주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화도 나고 실망도 한 A씨는 그 날 이후로 미국 갈 생각을 아예 접어버렸다. 미국에 대한 감정이 극도로 나빠진 것은 물론이다. 그는 어학연수할 나라를 호주로 돌렸다.

    비자 거부 때문에 부부끼리 생이별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B씨는 미국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유학생이다. 그는 지난해 여름에 한국에 들어와서 결혼했다. 당연히 결혼한 아내와 함께 미국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아내의 비자가 거절되었다. 그의 아내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8년 동안 미국에 머물렀던 경험이 있다. 대학 재학과 어학연수까지 모두 합쳐 8년 동안 체류한 것이다. 그후 아내는 한국에 들어왔고, 약 6개월쯤 뒤에 여행도 할 겸 해서 다시 미국에 들어가려다가 비자를 거절당한 경험이 있었다. 당시 거절 이유는 뚜렷한 직업도 없는 미혼여성이라는 것이었다. 이후 B씨와 결혼한 그녀는 다시 비자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한 것이다. 거절된 이유는 첫째, 왜 8년간 미국에 있었냐? 둘째, 결혼했다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이같은 미국대사관의 비자 발급 거부는 9·11 테러 이후 더욱 늘어나고 있다. 9·11 테러 이후, 미국대사관은 비자 발급 기준을 강화했다. 36개 질문항목을 담았던 비자신청양식이 지난 3월4일부터 18개 질문이 추가되어 총 54개 항목의 새로운 양식으로 바뀐 것이다. 새 양식에는 ▲병기·핵·화생방을 포함한 군 특수기술과 교육내용 ▲병역 주특기, 지위 및 병역 기간 ▲전쟁 등의 무력 충돌 개입 여부 ▲지난 10년간 방문했던 국가 ▲이전에 근무했던 직장 2곳 ▲현재 참여하고 있거나 참여했던 사회단체 ▲초등학교를 제외한 모든 학력 사항 등이다.

    이는 미국이 9·11 테러 이후 지난 해 말에 만든 ‘미 애국자법’에 따라 비자 발급 요건과 절차를 더욱 강화했기 때문이다. 미국 법무부는 이 새 정책은 미국을 방문하면서 테러를 계획하는 외국인을 찾아내 범죄 가능성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이를 위해 비이민 비자 신청자들이 내야 할 서류에 출생 등 관련자료를 덧붙이고 테러 행위와 관련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신청자에 대해선 배경조사와 보안관련 자문을 하도록 했다. 이 업무는 미 국무부와 CIA가 공동으로 맡고 있다. 미국은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는 신청자에겐 의심이 풀릴 때까지 비자를 발급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면 많은 이들이 이토록 목을 매는 미국비자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미국 비자는 미국에 입국하기 위하여 필요한 서류이며, 미 국무부만 발급할 수 있다. 일단 미국에 들어오면 입국 신분은 공항을 통과할 때 사용한 비자로 좌우된다. 그리고 다시 미국 영토 밖으로 나가기 전에는 비자는 필요없다. 미국 내에서 신분을 변경하거나, 비자 조건이나 체류조건을 어기면 해당 비자는 무효가 된다.

    비자는 입국 목적에 따라 이민 사증(Immigrant Visa)과 비이민 사증(Non-immigrant Visa)으로 구별된다. 이중 비이민 비자는 A:외교관 등 정부 관계자의 공무수행, B: 상용·관광, C: 통과(경유), D:승무원(선원 또는 항공기 탑승원), E:무역인·투자, F:유학생, G:국제기구 근무자, H:일시적 취업, I:취재·보도, J:교환 연수, K:약혼자, L:주재원, M:직업학교 학생, O:특기자, P:단체·연예인·체육인, Q:문화, R:종교 등 17종류나 된다.

    열일곱 가지나 되는 비자 가운데 일반인이 가장 많이 발급받는 비자는 B비자다. 이 비자는 B1과 B2로 나뉘는데, 기본적인 조건은 한국에 살고 있어야 하고, 거주지를 포기할 의사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비즈니스를 위한 임시방문이어야 하고, 종교단체의 봉사활동이나 미국회사에서 훈련을 받기 위해서도 이 비자를 받을 수 있다. 이 비자를 받을 경우 미국 거주기간은 보통 1년 미만. 방문 목적이 끝날 때는 본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F-1 학생비자도 일반인들이 많이 발급받는 비자다. 이것 역시 한국에 거주하며, 거주지를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발급된다. 미국내 특정 학교 과정을 수료하거나 졸업할 목적이고 공립대학을 제외한 공립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이 조건이다.

    이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충분한 학비와 생활비를 부담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공부를 할 만큼 영어 실력이 있거나, 영어 연수를 하겠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또 공부가 끝난 뒤에는 미국을 떠나겠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이 비자를 가지고 있을 경우 배우자는 취업을 할 수 없다. 그러나 당사자와는 달리 배우자와 자녀는 학비가 저렴한 공립학교에 다닐 수 있다.

    다음으로 흔한 비자가 L-1 주재원 비자다. L-1 주재원 비자는 지난 3년 안에 최소한 1년은 미국이 아닌 외국에서 비자를 신청한 회사의 모회사나 계열회사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어야 한다. 이밖에 미국에 있는 회사에 고용되어 있는 경우도 해당된다. 이 비자는 일시적으로 미국에 오는 것이며, 경영급·간부급 직원(L-1A, 유효기간 7년)이나 특별기술이나 지식을 가진 직원(L-1)일 때 발급된다. 단 이 비자를 받을 수 있는 회사는 미국과 특별한 관계에 있어야 한다. 51% 이상의 회사 소유권이 같거나, 미국이 50% 미만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더라도 경영 또는 관리권을 행사할 수 있는 회사라야 한다는 것. 이 비자를 발급받을 경우 배우자도 미국 내에서 취업할 수 있는 점이 특이하다. 배우자 취업을 위해서는 취업허가증(EAD:Employment Authorization Document)을 받는다. 또 본인과 배우자, 자녀는 학교를 다닐 수 있다. 그리고 본인, 배우자, 자녀가 1년 이상 미국 내에서 거주한 경우에는 거주지의 공립대학교에 저렴한 학비를 내고 공부할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진다.

    이처럼 미국 비자는 17종류나 된다. 이 비자 하나하나가 바로 미국 이민법상의 외국인 ‘신분’이다. 그래서 미국에 입국하면 비자 유형으로 신분이 결정되며, 그 신분으로 체류기간과 혜택 정도가 정해진다. 물론 이 신분은 미국 내에서도 바꿀 수 있다. 가령 많은 한국인들은 비이민 비자와 시민권의 중간 단계인 영주권을 신청하면서 장기 체류신분으로 비자를 바꾸어 영주권을 받을 때까지 기다린다. 이때 미국 내에서 신분이 변경되었다고 해서 비자가 자동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변경된 비자는 국무부를 통해 다시 한국에 가서 받아야 한다. 단 비즈니스에 관한 비자나, 학생비자를 연장할 때는 미국과 국경을 맞댄 멕시코나 캐나다에서도 받을 수 있다.

    현재 앞서 말한 A씨나 B씨처럼 비자를 거부당한 사람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물론 미국이 이처럼 비자 심사를 엄격하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미국은 원래 청교도들이 신대륙으로 건너간 이후 전세계 각국에서 이주 정착한 이민자로 구성된 나라로 이민의 역사가 바로 미국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사실상 모든 자유가 보장되므로 일단 입국한 사람들을 개별적으로 통제하기는 매우 힘들다. 미국이 각국에 있는 자국 대사관을 통해 입국 희망자가 미국에 들어오기 전에 그 자격을 엄격하게 심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국 이민법에서 비자 거절에 관한 사항은 212조에 잘 나와 있다. 212조항은 입국불허조항으로, 해당되는 신청자는 조건에 대한 면제증서(Waiver)를 받기 전에는 비자가 발급되지 않는다. 미국대사관 영사과는 일단 이 조항으로 미국 비자를 처음 신청하는 사람을 평가해서 비자 발급 여부와 종류를 판단한다. 또 미국이민국적법 214조 b항은 ‘모든 외국인은 담당영사가 만족할 정도로 비이민 지위를 획득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 한 이민자로 간주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비자 신청자가 불법체류하지 않겠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 한 모두 불법체류자로 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오래 전부터 미대사관 영사는 모든 비자 신청 한국인을 일단 불법체류자로 보는 데 익숙하다고 볼 수 있다.

    여러가지 조건에 해당되더라도 다음과 같은 특수한 경우에는 비자가 거절된다. 첫째 건강조건 때문에 입국이 허가되지 않는 경우다. 에이즈나 결핵 같은 전염병에 걸렸거나, 예방주사 접종자, 정신병자, 마약중독자는 입국이 허가되지 않는다. 경제조건도 입국 불허조건에 들어있다. 국가 보조가 필요한 사람, 취업 이민자로 노동청 인가를 받지 않은 사람, 의사시험에 합격하지 않은 의과 졸업생, 허가 안된 의료관계 취업인, 세금 때문에 미국 시민권을 포기한 사람이 이에 해당된다. 범법 조건도 해당된다. 윤리 및 도덕에 어긋난 범법자, 마약사범, 두 번 이상의 범법 행위로 총 5년 이상의 형을 받은 사람, 매춘 행위자 등이다. 또 일부다처제 같은 윤리조건도 입국 불허조건에 들어간다.

    또 입국 심사로 추방된 뒤, 5년 내에 입국하는 사람, 미국에 불법으로 체류한 사람, 이민국 조사없이 입국하려는 사람, 밀항자, 밀입국 관계 및 참여자, 이민서류를 위조해 벌금형을 받은 자, 학생비자로 입국하여 위법으로 공립학교에 다닌 사람 등이다. 여기에 국가 안보 조항이 첨가된다. 간첩·파괴 등의 불법 행위자, 테러리스트, 외교관계, 공산당이나 일국일당주의자 등이다.

    일단 비자가 나온 뒤에도 입국이 거부되는 경우가 있다. 첫째, 미국영주권이 있는 경우에도 외국에 180일 이상 나갔다 오거나 외국에서 범죄행위를 했을 때, 또 영주권자가 범법행위로 추방 절차가 진행중인데 외국에 나갔다가 미국에 들어올 때 입국이 거부된다.

    미국 이민법에는 입국해서 미국에 체류하더라도 다시 추방하는 조건도 있다. 추방은 미국에 있는 사람을 법의 집행으로 외국으로 내보내는 절차로 1996년에 새로 법이 제정되어 종전의 추방(deportation) 절차가 폐지되고, 새로운 추방(removal) 절차가 입법화되었다. 추방 조건은 입국 불허 조건과 비슷하나 똑같지는 않다. 그래서 추방명령 재판중에도 영주권을 다시 신청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에 변호사와 신중히 상의해야 한다.

    추방조건을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입국불허조건에 해당하는 사람이 여기에 해당된다. 또 이민법이나 체류조건을 어긴 사람, 임시 영주권이 끝난 사람, 5년 내에 불법으로 입국한 사례를 장려·동조·가담한 사람, 위장 결혼 또는 입국한 지 2년 안에 결혼이 종결된 사람, 간첩·산업스파이·테러리스트·나치·외교정책에 큰 해가 되는 인물로 판명된 사람, 의도적으로 주소변경 신청을 하지 않거나 병역신고법에 위반된 사람, 1년 이상의 실형이 가능한 비도덕적 범죄를 저지르고 입국한 지 5년 내에 유죄판결 또는 집행유예를 받은 사람, 입국 후에 두 번 이상 유죄 판결을 받거나 집행유예를 받은 사람 등이다.

    미국 이민법은 추방된 뒤 입국불허기간도 명시하고 있다. 가장 짧은 기간인 3년 불허는 18세 이상으로 미국에 입국한 후에 합법적인 체류기간을 넘겨 불법으로 180일 이상 1년 미만 머물렀을 때다. 5년 입국불허는 18세 이상으로 미국에 합법적으로 입국한 후에 합법적인 체류기간을 넘겨 불법으로 1년 이상 체류한 경우다. 보통 정식으로 추방당한 경우는 5년 동안 재입국하지 못한다. 또 추방절차중에 외국으로 회피하는 경우는 10년 동안 다시 입국하지 못한다. 두번째 추방당할 경우 20년 이내에는 입국하지 못한다. 또 중범죄인일 경우에는 영구적으로 입국하지 못한다.

    미대사관측은 비자 신청시 이같은 서류와 요건이 꼭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범법자나 위험한 인물만 아니면 자신들에게 한국에 반드시 돌아온다는 점을 납득시키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사례도 있다. 장세동 전 안기부장은 2000년 8월 오른쪽 눈 망막의 실핏줄이 터져 미국 존스홉킨스대학병원에서 치료받기 위해 비자를 신청했다. 그는 12·12사건으로 구속된 경력이 있었다. 원칙적으로 비자 발급이 불가능한 경우다. 미국대사관은 그가 유명인이고 신병을 치료하겠다는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 범법 내용을 가리기 위해 판결문을 번역해서 가져오라고 요구했다. 그의 판결문은 엄청난 분량이었다. 장씨측은 전문을 번역하지 않고, 핵심만 추려 번역해서 제출했다. 당시 미대사관은 정상을 참작해서 단수 비자를 한번 발급했다. 그러나 미대사관은 그 뒤에는 장씨에 비자 발급을 모두 거부했다.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대표인 오연호씨와 인천사랑병원의 이왕준 원장도 운동권 시위 경력 때문에 비자 발급이 어려운 경우였다. 그런데 두 사람은 모두 재판 자료를 영어로 번역해서, 이를 인터뷰 과정에서 잘 설명했기 때문에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해서 미대사관 관계자는 “비자 발급 자격에 문제가 있으면 영사과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된다. 문제는 사소한 것이라도 이를 숨기다가 사후에 드러나는 것이다. 미국 사람과 상대할 때는 문제가 되는 사항이 있더라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비자 심사 과정에서 영사의 주관이 크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셈이다. 이런 모호함 때문에 비자 인터뷰에 한번이라도 떨어진 사람들은 발가벗는 심정으로 재산 관련 서류를 줄줄이 준비하는 곤욕을 치르고, 줄을 대주겠다는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하는 피해자까지 생겨나고 있는 형편이다.

    현재 미국 비자 발급 과정에서 가장 큰 민원 가운데 하나가 인터뷰다.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려야 하고 질문자세가 고압적인 등 과정이 너무 모욕적이라는 것이다. 이 비자 발급 인터뷰에 대한 미국대사관의 해명은 이렇다. 비자를 얻기 위해 모든 사람이 대사관에 와서 인터뷰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미대사관측에 따르면 비이민 비자 신청자 중 25% 정도만 인터뷰가 필요하다고 한다. 대사관이 운영하는 각종 추천 프로그램에 따라 서류 심사만으로 비자를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는 것이다. 또 10%에 이르는 현재의 비이민 비자 거부율도 아시아 전체를 놓고 보면 무척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 대사관측의 설명이다. 다음은 한 미국대사관 관계자의 설명이다.

    “비자를 발급받는 과정은 미국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을 치르는 것이다. 태국이나 아프리카 국민이 한국에 들어올 때 겪는 상황과 같다. 또 한번 거부당한 사람은 두번째, 세번째에도 거부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중복된 사람들이 거부율을 높이는 것이다. 따라서 누가 보더라도 비자 발급이 어려울 것 같은 사람은 비자를 신청하면 안된다.”

    이 관계자는 또 구비서류를 제대로 챙기지 않거나, 정확하게 챙기지 않아 거부되는 사례도 많다고 지적했다.

    “미국 사람들은 한국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할 때 미리 웹사이트에 나와 있는 자료를 챙겨보는데, 한국사람들은 모두 다 여행사에 맡겨버린다. 가령 여행사가 만든 자료는 출생지가 부산인데 서울로 표기될 수도 있고, 기혼인데 미혼이라고 썼을 수도 있다. 한국 사람들은 이런 것을 꼼꼼히 살피지 않고 사인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엉터리 서류를 본 영사는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인터뷰 없이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는 여행사인 대행접수제(TARP)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자격이 필요하다. 만25세 이상이고 한 회사에서 근무한 경력이 1년은 넘어야 한다. 미국대사관이 TARP 이용조건에 소득 수준을 명시하고 있지 않지만 여행업계가 밝히는 기준은 평균 연소득 1700만원 이상 수준.

    여행사 관계자는 “최근 비자 발급이 어려워져 적어도 연소득 1800만원 이상을 안전선으로 본다”고 밝혔다. 미국대사관은 최근 요건이 안되는 비자를 신청하거나 위조서류가 발견되었을 경우 가차없이 해당여행사를 TARP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미국대사관에 따르면 270개나 되던 TARP소속 여행사는 현재 74군데로 줄었다.

    양국간 상거래를 활발하게 하기 위해 신속발급제(BRP)가 적용되는 일부 대기업은 비자 발급에서 여러가지로 혜택을 보고 있다. 대미 교역 규모가 큰 190개 기업 임직원과 배우자, 16세 미만 자녀는 체류기간 90일 이내의 B1(비즈니스용)-B2(관광) 비자를 인터뷰 없이 발급받을 수 있다. 정부는 대상 기업을 800개 기업(교역규모 연 500만달러 이상의 650개 기업과 벤처기업 150개)으로 확대해줄 것을 미국에 요청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미국 비자 발급 과정에 불법과 부정이 판치고 있다. 불법 비자 발급 알선 조직들은 미국측으로부터 몇차례 거부당한 사람과 무직자 등 비자를 받기 어려운 사람에게서 건당 700만∼800만원을 받고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알선조직 관계자는 “무직자라면 꽤 이름 있는 회사에 다니는 것처럼 재직증명서를 만들어 주고 재정이 부족하면 일시적으로 통장에 5000만원 가량 넣어주는 식으로 비자발급 조건을 맞추어준다”고 말했다. 그는 비자발급이 까다로워지면서 최근 수수료가 두 배 이상 뛰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비자를 받지도 못하고 돈만 떼이거나 위조서류로 발급받았지만 미국 입국과정에서 확인되어 쫓겨나는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비자를 받는 데 실패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밀입국을 알선해주는 조직도 상당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문제는 한국의 경제력과 국제적인 지위에 비추어 10%대에 이르는 비자 거부율과 까다로운 심사가 걸맞느냐는 것이다. 미국은 우리나라를 제외한 29개국에 대해 90일간 무비자 여행을 허용하는 비자면제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있다. 미국 하원은 지난 1998년 3월 대부분의 유럽국가와 일본, 호주 등 26개국 국민에 대해 무비자 미국방문을 허용하는 임시법을 2000년까지 연장하면서 한국은 제외했다. 이 29개국에는 안도라, 모나코 같은 소국도 포함되어 있고, 남미의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도 포함되어 있다. 동아시아권에서는 일본, 브루나이, 싱가포르 등 3개국이 들어 있다.

    미국대사관은 이에 대해 비자 면제국이 된다고 하더라도 모든 비자를 완벽하게 면제받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미대사관의 설명에 따르면 비자 면제국의 비자 면제는 단기간의 출장이나 관광, 방문 목적으로 미국을 들르는 경우에만 해당된다. 비자 면제국 국민이라 하더라도 미국에 유학이나 취업 또는 연구활동을 하거나 연예인·예술인으로 공연차 입국할 경우에는 여전히 비자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자격조건은 한국인에게 적용되는 것과 같다. 한국인과 같이 관광방문비자를 받고 미국에 입국하는 사람은 6개월까지 머물 수 있다. 목적이 바뀔 경우 비자 면제국 국민이라 하더라도 본국에 돌아가서 새로 비자를 만들어야 재입국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비자 면제국과 단 하루를 입국하더라도 비자를 받아야 하는 한국을 견줄 수는 없다.

    비자면제국이 되려면 미국 의회의 결정이 있어야 한다. 현재 미국은 의회에서 입국에 관한 모든 규칙을 제정하고 있다. 주재국 대사관은 어떤 나라를 비자 면제국으로 설정할 권한이 없다. 따라서 주한미국대사관은 워싱턴에서 제정한 대로 이민법과 규칙을 실행하는 기관에 불과하다.

    현재 미국인은 비자 없이 한국을 방문하여 30일간 여행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인은 단 하루 동안 미국을 방문하더라도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더구나 IMF 이후 그 거부율이 더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은 9·11테러와는 그다지 상관없는 한국인에 대해 비자 발급 요건을 더욱 까다롭게 만들고 있다.

    이같은 미국의 비자 정책은 최근 한국민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일고 있는 반미 감정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노근리 사건, 용산 주둔 미군 아파트 문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심판 판정 시비, 무역 관세 보복 등으로 이어지는 사건으로 한국인의 반미감정은 어느 때보다 고조된 상태다. 1980년대의 반미감정이 학생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일반인으로 그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양국 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비자 정책의 완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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