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2월 성균관대 앞 주점가에 ‘포차(포장마차식 주점)’를 냈다가 6개월 만에 문을 닫은 유동석(가명·34)씨는 “입지나 상권과 같이 기초적인 것조차 제대로 분석하지 않았을 정도로 아무런 준비 없이 창업한 것이 가장 큰 실패요인”이라고 말했다.
안 깎아주면 안 팔린다
국내 보험회사에 다니던 유씨는 방카슈랑스 업무를 다루는 은행과 외국계 보험회사들이 성황을 누리면서 회사가 어려워지자 창업을 결심했다. 주점을 운영하고 싶어하던 그는 큰 투자금이 필요없는 ‘포차’를 내기로 했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보험 고객도 많았고 ‘살사’ ‘요가’ ‘독신클럽’ 등 활동하는 동호회도 많기에 지인들만 가게를 찾아도 충분히 장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 근처인 대학로에 가게를 내기로 했다. 시장조사를 해봤더니 대학로 메인거리와 성대 앞 주점가의 임대료는 차이가 컸다. 고민하던 그는 ‘맛과 서비스로 승부하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에 성대 앞에 자리를 잡았다. 특히 입지조건이 좋은 점포가 나와 그의 결심을 재촉했다.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150만원인데다 심지어 가게 전 주인이 권리금을 1년 후에 받겠다고 한 것.
“알고 보면 전 주인은 점포가 워낙 안 나가니까 그런 고육책까지 쓴 건데, 저는 정말 좋은 조건이라고만 생각했죠. 처음 한두 달은 장사가 잘됐어요. 지인들도 많이 왔고 또 학기 초라 학생들이 신입생 환영회 등을 하며 많이 찾았거든요. 하지만 4월 말부터 상황이 달라졌어요. 우선 지인들의 발길이 뜸해졌고 학생들도 중간고사 기간이라 거의 찾지 않았죠. 방학이 되자 정말 손님이 없더군요. 하루에 한두 테이블만 받은 적도 있었죠.”
더구나 학생들의 주머니가 넉넉할 리 없었다. 30명이 와서 10만원어치만 먹고 간 적도 있다. 외지인들을 끌어들이려고 대학로 메인거리에 나가 팸플릿을 돌리며 홍보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굳이 그의 가게를 찾지 않아도 주변에 널린 것이 주점이었기 때문이다. 유씨가 강점으로 내건 가격경쟁력도 쓸모가 없었다. 불경기가 심해 가격 파괴 전문점들이 도처에 깔려 있었다. 적자가 누적되자 그는 초창기에 제공하던 서비스를 없앨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매일 안주 1개를 50% 할인해줬고 금요일에는 소주 2병을 공짜로 줬어요. 하지만 4명이 와서 안주 하나 시키고 소주 한 병만 마시는 경우가 많으니, 매출이 1만원도 나오지 않았죠. 그래서 슬그머니 할인 서비스는 없앴고 무료로 2병을 제공하던 것도 1병으로 줄였어요. 곧 반발이 거세지면서 적자폭이 훨씬 더 커졌죠. 차라리 처음부터 그런 서비스를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주고객인 학생층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거죠.”
유씨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항상 창업에 대해 생각했기 때문에 ‘충분히 준비됐다’고 자신하면서 구체적인 준비를 소홀히 했다. 거기에 불황까지 겹쳐 더는 견뎌낼 수 없었다는 그는 창업한 지 6개월 만에 2000만원 넘게 손해를 본 채 가게 문을 닫았다.
과열경쟁에 경제불황 겹쳐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4년 11월 현재 자영업 종사자 수는 615만2000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27.3%를 차지한다(무급 가족종사자를 포함하면 767만3000명으로 전체의 33.7%). 이런 비중은 OECD 국가(미국 7.3%, 프랑스 8.9%, 독일 10.1% 등)나 일본(10.8%), 우리와 경제구조가 비슷하다는 대만(16%)보다 훨씬 높은 편이다(2002년 기준). 외환위기 이후 급속히 창업자가 늘어나 ‘제 살 갉아먹기’ 식의 과열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덧보태진 극심한 경제불황은 자영업자들을 벼랑 끝에 몰고 있다.
최근 노동연구원에서 전국의 자영업자 1506명을 표본조사한 결과, 4인 가족 월 최저생계비인 101만원도 못 버는 자영업 가구주가 조사대상자의 절반에 가까운 44.36%(668명)에 이르렀다(2003년 기준). 한국음식업중앙회에 따르면 하루 190여개의 음식점이 문을 닫고 있으며 2004년 한 해 동안 10만개 이상의 음식점이 폐업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