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호

M&A·주가관리·외자유치… ‘돈 불리기’ 귀재들

  • 이나리·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입력2006-08-11 1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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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바람 몰아치는 난세의 중원. 정파가 흔들리니 사파가 세를 얻는다. 강호 협객, 무사들의 사활을 건 세력 다툼. 절대 고수의 천년 비급(秘)은 누구를 새 주인으로 맞을 것인가….’

    홍콩 무협영화를 통해 익숙한 싸움 구도다. 사회가 혼란스러워지면 ‘제도권’은 힘을 잃게 마련. ‘한몫’ 잡으려는 고수들은 ‘필드’로 쏟아져 나와, 합법과 위법 사이 좁은 담장을 곡예하듯 넘나든다.

    우리 금융권도 마찬가지. IMF 구제금융 사태 후 급변하는 시장 상황 속에서 수많은 전문인력이 대형 금융사를 빠져나갔다. 이들이 찾은 새 일터 중엔 비제도권이랄 수 있는 사설금융사, 이른바 금융 부티크(boutique)가 적지 않다. 돈 장사꾼, 혹은 돈 불리기의 귀재로 통하는 최고전문가집단. ‘큰 딜’ 뒤에는 어김없이 그들이 있다.

    2억 원과 40억 원

    부티크 하면 얼른 떠오르는 것이 고급 숙녀복 매장이다. 프랑스어로 상점, 가게라는 뜻. ‘부티크형 벤처’라는 조어도 있는데, 기술력은 높지 않지만 부가가치가 큰 소형 기업을 말한다.



    부티크 로펌, 리서치 부티크라는 용어도 간혹 쓰인다. 각각 대평 로펌이 놓친 틈새시장을 파고드는 전문 로펌과, 경제·금융 관련 분석 자료를 제공하는 리서치 전문 업체다. 부티크란 한마디로 ‘특정 업무를 수행하는 엘리트 집단’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금융계에도 부티크가 있다. 에이원창투 조효승 사장은 “빅 뱅크의 빅 비즈니스 중 일부를 특정 고객에게 서비스하는 것”이라 정의한다. KTB자산운용 장인환 사장은 “증권사 기능 하나하나를 따로 떼어내 수행하는 전문가 집단”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부티크만의 고유 업무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왜 많은 엘리트가 기존 대형 금융사를 뒤로 한 채 법적·제도적 장치가 미비한 ‘개인사업체’ 쪽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일까.

    핵심은 ‘버는 돈’의 차이다. 1998년 말부터 주식 투자 대행 부티크를 운영하고 있는 민종석(가명) 씨. 투신사 영업 간부 시절, 민씨의 연봉은 2억 원 수준이었다. 부티크 설립 후 거둔 총수익은 40억 원 플러스 알파. 비교도 되지 않는 액수다. “회사 다닐 때는 아무리 높은 이윤을 거둬도 일정 금액 이상은 받을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이 일 저 일 뭉뚱그려서가 아니라 건건(件件)이 대가를 받는다. 처음부터 고객과 ‘번 돈의 몇 퍼센트’ 하는 식으로 약속을 해놓고 시작하기 때문에 많이 벌수록 내 몫도 쑥쑥 늘어난다.”

    세금 차이도 크다. 월급쟁이 시절에는 번 돈의 40% 가량을 세금으로 내야 했다. 절세할 길도, 탈세할 방법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법인 이름으로 사업을 하는 지금은 얘기가 전혀 다르다. 법인세 자체가 개인에게 적용되는 세율보다 훨씬 낮은데다 각종 절세법을 찾기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또 거래 성격상 아예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혹은 세금을 피해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다양한 ‘기법’을 총동원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제도권에선 지켜야 할 법규나 규칙이 너무 많다. 몸이 무거워 급변하는 금융 환경에 신속히 대응하기도 어렵다. 금융의 꽃은 파생상품. 잘되면 높은 이윤을 얻을 수 있지만 위험부담도 크다. 수많은 고객의 돈을 무작위로 관리하는 입장에선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크게 한 번 걸어보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부티크는 어떤가. 제도 밖의 조직이니 만큼 눈치 볼 일이 많지 않다. 정공법이 아닌 암수(暗數)도 들키지 않을 자신만 있으면 얼마든지 활용 가능하다. 고객과 목표가 분명한 까닭에 과감한 배팅도 어렵지 않다.

    정권의 논리, 시장의 논리

    우리 나라 금융 부티크의 ‘효시’는 중앙종합금융 김석기 사장(43)과 ‘파이스트 인베스트먼트(Far East Investment)’박동현 사장(52)으로 알려져 있다.

    김석기 사장은 하버드대 경영학 박사, 월가 출신의 국제금융 전문가. 1990년 홍콩에 종합금융 부티크 ‘킴바코’를 설립했다. 그는 국내와 해외 금융시장 간 주식이나 채권 가격의 차이를 이용한 아비트리지(차익거래) 기법으로 큰 돈을 모았다. 다년간 쌓은 해외 인맥이 큰 힘이 되었다. 국내 유수 기업의 자산 운용, 해외자금 유치에 관여하거나 투자 자문가로도 활동해왔다. 서울대 경영학 석사이자 삼성가 손녀인 제일제당 이미경 이사의 전 남편이기도 해 국내 인맥 또한 만만찮다. 하버드 유학생 출신의 각 분야 전문가들과도 교분이 두텁다. 1995년에는 일부 언론으로부터 ‘전직 대통령 4000억원 비자금’의 관리자로 지목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박동현 사장 또한 탄탄한 해외 네트워크를 자랑한다. 중학교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예일대에서 경제학을, 뉴욕대 경영대학원에서 회계학을 전공했다.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MBA) 졸업 후 뉴욕주 공인회계사 자격을 취득했다. 미 회계법인 PMM사와 메릴린치증권에서 각각 회계사, M·A뱅커로 근무했으며 1989년 한국으로 돌아와 1990년 M·A전문 부티크 파 이스트 인베스트먼트를 설립했다.

    1996년경에는 M·A 부티크가 붐을 이뤘다. 파 이스트 인베스트먼트 외에도 한국M·A(대표 권성문), 프론티어M·A(대표 성보경), 아시아M·A(대표 조효승 채운섭), 코미트M·A(대표 윤현수), 프라임매니지먼트(대표 정현준) 등이 활약했다.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부티크 설립은 잠시 주춤하는 듯했다. 주류를 이루던 M·A 부티크 중 상당수가 문을 닫기도 했다. 그러나 1998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상황은 역전됐다. 부티크 전성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IMF 구제금융 사태 후 달라진 금융 환경을 언급하는 이가 많다.

    “금융시장의 프리미엄은 통제 때문에 생긴다. 예를 들어 모든 증권 거래는 증권사를 통하도록 되어 있다. 진입장벽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구제금융 사태 후 각종 통제가 약화하면서 기존 체제에 구멍이 생겼다.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제도권 대금융사의 프리미엄도 분산되기 시작했다.” KTB자산운용 장인환 사장의 말이다.

    과거 제도권이란 정부의 통제를 받는 것을, 비제도권이란 통제에서 벗어나 있음을 의미했다. 구분이 명확한만큼 각자의 몫도 분명했다. 그러나 이제 그 구분이 무너져가고 있다. 절대 망하지 않을 것 같던 은행들이 문을 닫고, 음지로만 돌던 사채나 ‘큰손’들이 속속 제도권으로 진입중이다. 정권의 논리가 아닌 시장의 논리가 금융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거부는 혼란기에 탄생한다”

    또한 이전에는 제도권 금융이 자본, 우수인력을 독점했다. 외환 위기는 ‘집중의 위험성’을 부각시켰다. 위기 관리를 위해서는 분산 전략이 필요하다. 이 과정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확산된 성과급·연봉제를 통해 종자돈을 마련한 금융사 직원들은 ‘독립’을 꿈꾸기 시작했다. 프리미엄이 낮아졌으니 애써 제도권에 머물 필요도 없어졌다. 금융 구조조정으로 자리를 잃은 10만여 명의 전직금융업 경력자들의 창업 열기도 한몫했다.

    마침 시장 분위기도 무르익었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 문병길 파트너는 “외환 위기와 극적 회생, 금융 시장 개방 등 엄청난 변화가 단시일에 이루어지면서 돈 벌 길이 많아졌다. 거부는 혼란기에 탄생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때마침 일어난 벤처 붐으로 시장에는 ‘사상 최대’의 돈이 풀렸다. 금융권에 있으면서 돌아가는 이치를 모를 리 없다. 여기에 ‘돈이면 다’라는 식의 도덕적 해이가 맞물려 부티크가 양산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에이원창투 조효승 사장은 “수수료(fee) 비즈니스가 자리잡은 것이 주요인”이라고 진단했다. “부티크 업무의 상당 부분은 컨설팅이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컨설팅에 돈을 지불한다는 개념 자체가 서 있지 않았다. 90년대 중반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비로소 수수료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져 갔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는 매킨지 등 해외 유명 컨설팅사에 수십억 원을 지불하는 것이 당연시됐다.”

    고객들도 ‘최고 엘리트들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주는’ 부티크를 선호하게 됐다. 큰 은행이라는 것만 믿고 돈 맡기던 시대는 지났다. 제도권 금융은 신뢰성 면에서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한편 펀딩에 성공한 벤처나 주식시장에서 큰돈을 번 투자자들에겐 누군가 자금을 관리하고 운용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특히 내부에 금융 전문가를 두지 못한 중소기업들에 부티크는 없어서는 안 될 동반자였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경력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부티크에 뛰어들까.

    우선 증권사, 투자신탁, 은행, 종금사 출신이 있다. 국제금융 담당자, 펀드매니저, 채권운용가, M·A전문가, 파이낸셜 컨설턴트, 영업종사자, 선물전문가, 외환딜러…. 변호사와 회계사도 빠지지 않는다. 부티크에 따라서는 세무사가 함께 일하는 경우도 있다. 벤처 관련 업무가 증가한 이후엔 변리사도 합류했다.

    이들의 자산은 고부가가치의 전문 지식이다.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려면 여기에 풍부한 인맥과 실전 경험이 보태져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고객 확보다. 수수료를 지불해줄 고객, 즉 전주가 없다면 순조로운 창업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성공한 부티크 사장 중에는 현장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30대 후반~40대 초반 간부 출신이 많다. 그 정도는 돼야 굵직한 전주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티크 업무라는 것이 믿음 없이는 할 수 없는 일들이다. 오랜 거래로 탄탄한 신뢰관계를 구축한 사람들끼리만 제대로 된 팀워크를 발휘할 수 있다. 전주와의 관계나 동업자들끼리나 다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혈맹’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K투자컨설팅 이수달씨(가명)의 말이다. 이씨도 몸담고 있던 증권사에서 5년 넘게 거래해온 수천억 원 자산가의 권유로 부티크를 시작했다.

    전주는 대개 기업가다. 1000억 원 이상의 자금을 보유한 재산가일 땐 더욱 그렇다. 개중에는 기관이나 기업체도 있다. 이들이 운용이나 컨설팅을 요구해 오는 자금, 혹은 사업 규모는 5000억 원 이상인 경우도 적지 않다. 사채업자나 재벌 그룹 후계자도 끼어 있다.

    사채업자들의 경우, 과거에는 자신의 돈은 직접 관리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금융 기법이 다양해지고, 특히 해외거래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전문성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벤처 투자는 더욱 어렵다. ‘될성부른 나무’를 알아보는 안목부터 코스닥 등록까지의 주가 관리, 회계 관리, 경영 컨설팅 등을 책임져줄 ‘일꾼’이 필요해진 것이다.

    증시 활황이 이어지던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에는 주식 투자 대행을 원하는 사채업자가 부쩍 늘어났다. 얼마 전, K증권과 계약을 맺고 활동중인 모 증권영업팀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자신을 모 신용금고 사장이라 밝힌 그는 “삼성전자 주식 500억 원어치, SK텔레콤 주식 500억 원어치가 있는데 이를 맡아두었다 다음해 초 내게 되팔아줄 수 있느냐”는 제안을 해왔다. 연말이면 기업별 주주명부가 작성되고 거기 이름이 올라갈 경우 기업이나 세무서 등으로부터 주목받게 되므로 ‘위험기간’ 동안만 주식을 위탁했다 되찾아가겠다는 뜻이다.

    세무사 경력 20년의 소프트뱅크웹인스티튜트 문일보 이사는 “전주들은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무엇보다 두려워한다. 한푼이라도 더 쥐기 위해 탈세를 일삼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사건이 터졌는데 세금 20억, 30억 원 내서 무마될 상황일 때엔 군소리 없이 돈을 내놓는다”고 설명한다. 하물며 대리인을 내세워 소리소문 없이 거액을 쥘 수 있다면 전주들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재벌가(家)의 사정은 또 다르다. 이전에는 그룹 내 비서실, 기획조정실 등에 속한 각 분야 전문가들이 나서 자산 관리 및 운용, 상속 문제 등을 관장했다. 그러나 외환 위기 후 사정이 달라졌다. 우선 보안 문제가 제기됐다. 내부 인사들의 움직임은 아무래도 날로 날카로워지고 있는 감시자들의 눈에 포착될 위험이 크다. 또 뭔가 ‘증거’를 남기게 돼 세무조사라도 들어오는 날엔 상당한 곤란을 겪을 수도 있다. 금융 통제가 심하던 시절에는 문제가 생겨도 정치권과 물밑 접촉을 통한 해결이 가능했다. 그러나 경제 환경이 점차 투명해지면서 이 또한 장담할 수 없는 일이 돼버렸다.

    재벌 3세와 부티크

    재벌 2, 3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거나 재계의 주목을 받게 된 것도 큰 변화다. 이들은 아버지, 할아버지 대의 ‘가신’들보다 젊고 마음 잘 통하는 해외파 금융전문가들과 일하기를 즐긴다. 사고방식이 비슷한데다 실적도 훌륭하기 때문. 급변하는 국제 금융 동향을 파악해 신속하고 과감한 베팅을 하기엔 탄탄한 해외 인맥과 월가 근무 경험을 가진 30대 전문가가 유용하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 유수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한 까닭에 네트워크 형성도 잘 돼 있는 편이다. 현재 재벌 3세끼리의 정기 모임이 2~3개 가동중이며, 여기에는 해외금융통인 Y사의 K사장, M·A 전문가인 M사 K사장 등 젊은 금융전문가와 최근 급부상한 벤처기업가들이 여럿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황이 이런 만큼 증권가에는 몇몇 그룹의 주목할 만한 거래에 부티크가 관여했다는 소문이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 지난해 정보통신업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LG그룹의 데이콤 주식 위장매입도 모 부티크가 주도했다는 설이다.

    최근 문제가 된 S그룹 재산상속 건에도 그 2세와 친분이 있는 금융전문가 모씨가 깊숙이 관련돼 있다고 한다. 2세는 계열사 해외주식 매각을 통해 큰 시세차익을 거뒀는데, 그 돈이 다른 재벌 해외법인을 통해 국내로 유입됐다고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누군가 나서 그룹간의 ‘딜’을 이끌어냈다는 소문이다. 방송사를 소유한 모 재벌 사주 아들의 주가조작설, 역시 2세인 모 언론사 사주의 위장 해외자금 도입 건에도 특정 부티크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부티크 중에는 아예 재벌가 자제들이 직접 운영에 참여하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H그룹 J씨, K그룹 L씨, S그룹 L씨 등이다. 베어링증권 출신 J사장이 1990년대 중반 설립한 O캐피털의 경우 J그룹 전담 컨설팅사로 유명하다.

    대다수 부티크는 법인 형태로 운영된다. 자본금은 5000만원부터 수십억 원까지 매우 다양하다. 캐피털, 컨설팅, 투자자문, 파이낸스, 인큐베이팅, 인베스트먼트 등 ‘금융기관’ 냄새를 풍기는 수식어들을 달고 있다. 그러나 사업자등록법 상으로는 ‘기타 법인’일 뿐. 간혹 업종란에 ‘금융거래’라는 글씨가 적혀 있는 경우도 있긴 하다.

    부티크는 동업 형식이 많다. 자본금 확보에 유리하고 이윤을 적절히 나눌 수 있는데다, 동료간 신뢰형성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세 사람이 5억 원씩 출자한 회사라면 각기 5억 원의 담보를 제출한 것과 마찬가지여서 일 하던 중 혹시 돈 욕심이 나더라도 섣불리 횡령하거나 잠적할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다. 공동출자라도 특정인이 대주주가 되는 경우가 많다. 30억 원짜리 회사면 대주주가 10억 원, 나머지 넷이 5억 원씩 분담하는 식이다. 부티크 이름이 ‘OO파트너스’로 돼 있다면 동일한 지분을 가진 두 사람이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각자 다른 직장에 다니면서 밤이나 주말에만 모여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에는 변호사, 회계사, 펀드매니저, 증권사 애널리스트 등 ‘현직’만이 누릴 수 있는 각종 권한을 총동원, 사업 성공률을 극대화한다.

    회사에 따라서는 전주가 직접 사장을 맡는 경우도 있다. 자기 돈의 흐름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고, 다른 자산가들 돈까지 끌어 모아 ‘크게 치고 빠지는’ 전술을 구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주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일하는 사람과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

    “돈 되는 일은 다 한다”

    법인 등록비 5000만 원이면 될 일을 왜 수억에서 수십억 원씩 자본금을 투여하는지 의아할 것이다. 부티크 역시 금융을 업으로 하니만큼 고객들의 신뢰를 얻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본 규모가 크고, 요지에 좋은 사무실을 갖고 있는 쪽이 아무래도 유리하다. 직원 채용, 기본 설비 등에도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간다. 여유자금이 있으면 고객 돈을 운용할 때 살짝 묻어 함께 굴린다. 그 자체로도 훌륭한 수입원이 된다.

    부티크의 영업 범위는 대단히 넓다. “돈 되는 일은 다 한다”는 말을 거리낌없이 할 정도다. 물론 어떤 일을 어떤 방식으로 추진하느냐에 따라 ‘질’과 ‘급’이 달라진다.

    신뢰 제일과 철저한 보안의식, 이윤 극대화가 원칙. 도덕적 비난을 면키 어려운 일이라도 합법적인 길을 찾아내 완수한다. 만일 불법 외에는 방법이 없을 경우, 대부분의 부티크는 일을 포기하고 만다. ‘하루 이틀 하고 말 장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비제도권에서 자금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하는 것이 주업무다.

    탄탄한 신뢰로 맺어진 관계니만큼 전주와 부티크, 혹은 동업자들 사이에는 계약서 없이 일이 진행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일의 성격상 이면계약서를 많이 쓰는데, 이에 대해 업계에선 “인베스트먼트 뱅킹에서 이면계약은 흠이 아니다. 외국에선 일반화된 현상이다. 우리가 너무 나이브한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일단 일이 시작되면 실패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한다. 이때 꼭 필요한 사람들이 변호사, 회계사, 변리사 등 분야별 전문 인력. 사안에 따라 외부의 믿을 만한 사람을 끌어들여 함께 움직이기도 한다. 일이 잘 성사되면 성공보수, 즉 수수료를 받는다. 대개 현금이나 주식이다.

    거액의 자금과 우수한 두뇌가 만나 벌이는 일이어서 실패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혹시 손해를 본다 해도 부티크 쪽에는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상례다. 손해가 일정 수준에 이르면 그 상태에서 아예 일을 접어버린다. 높은 수익(high return)을 거두기 위해선 큰 위험(high risk)을 감수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이 세계의 불문율이다.

    그러나 손실의 책임이 명백하게 부티크쪽에 있을 때엔 재기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문제는 신뢰. 실수한 투자전문가에게 누가 돈을 맡기겠는가.

    사업을 파탄으로 몰고 가는 또 한가지 위험요소는 동업자 간의 불화다. 대개 수익금 배분이 불씨가 되는데, 분쟁이 법정으로까지 비화된 사례도 있다.

    국제통인 부티크의 젊은 사장들은 외자유치, 역외펀드 관리, 헤지펀드 대리 운용 등의 일을 한다. 요즘 증시에서 요주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른바 ‘검은머리 외국인’도 이들인 경우가 많다.

    IMF 구제금융 사태를 전후해 재계, 금융계의 최대 이슈는 외자유치였다. 기관이나 기업이 직접 나서 뛰기도 했지만 전문 지식과 탄탄한 해외인맥을 자랑하는 부티크들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중에는 정체가 명확지 않은 헤지펀드나, 조세피난처인 말레이시아 라부안· 케이먼 아일랜드·바하마 군도 등지에서 유입된 역외펀드가 상당수를 차지했다. 어떤 방식의 어떤 돈이건, 일단 외자유치에 성공한 기업의 주가는 급상승했다. 이 과정에서 대주주, 부티크가 포함된 ‘작전세력’이 엄청난 시세차익을 얻는 사태가 왕왕 발생했다.

    ‘검은머리 외국인’은 실상 국내 ‘큰손’들의 작전자금이지만 외국에서 세탁된 후 역류해 들어오는 자금을 뜻한다. 조세피난지역의 유령 펀드회사에 자금을 유치한 뒤 다시 빼내오는 것. 이들은 국내 증시가 외국 자금의 동향에 민감하다는 사실에 착안, 다양한 ‘작전’으로 거액의 평가이익을 거둬들인다. 이 과정에 일부 부티크들이 참여해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 소식에 정통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워크아웃된 A사는 지난해 말 외자 10억 달러를 유치했다고 밝혔다. ‘외자’의 정체는 실상 A사가 해외법인을 통해 축적해 두었던 탈세 자금. 시중에는 ‘외자유치액과 탈세액이 정확히 일치한다’는 풍문이 돌았다. ‘정부 쪽에서도 이 사실을 감지했으나, 어쨌든 달러가 들어오는 것은 사실이고 또 A사의 뿌리가 호남지역이어서 눈감아줬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자금 유입으로 A사는 상당액의 부채를 상환할 수 있었고 주가도 상승해 마침내 워크아웃 조기 졸업에 성공했다.

    지난 8월 말에는 경영부실로 화의 상태에 놓인 ‘바른손’ 주가가 연일 상한가를 기록해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인터넷 지주회사인 ‘미래랩’이 바른손을 인수하면서 인터넷회사로 변모할 것이란 소문이 나 주가가 두 달 만에 5400%나 폭등하는 이변을 연출한 것이다.

    미래랩의 이정석 사장은 미국 MIT 출신 금융전문가. 그러나 대주주는 미국에 본사를 둔 ‘패러다임 인베스트먼트’로 되어 있다. 미래랩은 바른손 인수 20일 만에 전체 지분의 27.89%를 말레이시아 라부안에 위치한 코베타 인베스트먼트와 밸류이슈어드 인베스트먼트에 매각했다. 이어 전환사채 223억원어치를 발행, 이 대부분을 홍콩에 위치한 로터스아시아 펀드와 코리아인핸스드토털리턴 펀드에 매각했다. 이로써 바른손 지분의 약 50%를 갖게 된 4개 헤지펀드는 투자자금의 10~30배에 이르는 막대한 평가이익을 거둬들였다. 증권전문가들이 바른손의 주가 동향에 의혹의 눈초리를 던지는 이유다.

    지난해와 올 초에는 벤처 관련 부티크가 큰 수익을 올렸다. 기업주, 사채업자, 재벌 2·3세 등 자금력이 풍부한 엔젤(전주)들과 유망 벤처를 짝짓기 해주는 것이 기본. 아예 벤처 설립부터 코스닥 진출까지 관리해주는 ‘풀코스’ 서비스도 등장했다.

    이들은 투자자를 찾지 못해 애태우는 벤처기업엔 단비 같은 존재다. 또 내부에 회계사·변호사 등 전문인력을 두지 못한 회사일 때 코스닥 등록을 포함, 기업 성장에 없어서는 안 될 조언을 얻을 수도 있다. 대가는 주식으로 지불한다.

    ‘왕개미’와 증권사 용병

    문제는 목적이 ‘작전’에 있는 경우다. 벤처컨설팅이나 벤처인큐베이팅 형태의 부티크들로 펀딩, 창업 단계의 재무제표 작성, 코스닥 등록, 주가 띄우기, 주식 처분의 전단계를 ‘코치’한다. 이를 통해 발생한 수익은 대주주, 전주, 부티크가 기여도와 지분에 따라 고루 분배한다.

    (주)마이벤처경영컨설팅 신기동사장은 “우리가 관여하는 회사에는 되도록 개인투자자의 돈은 받지 말라는 조언을 하고 있다. 특히 장외시장 주식 매각을 포함, 갖가지 부가조항이 어지럽게 나열된 계약서는 회사에 독이 될 수 있다. 벤처 컨설팅이나 홀딩스(지주회사), 인큐베이팅, 캐피털 등의 이름을 단 부티크 중에는 불순한 의도로 벤처업계에 발을 들여놓는 곳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벤처 투자와 관련한 최악의 경우는 지난해 잇따라 발생했던 파이낸스 사태다. 파이낸스도 유사금융기관이란 점에서 일종의 부티크라 할 수 있다. 돈을 빌려주는 것이 주 업무여야 할 이곳에서, 벤처투자를 통해 높은 금리를 보장해 주겠다고 약정한 뒤 불특정 다수로부터 거액의 돈을 거둬들인 것. 파이낸스 외에도 금융, 신용, 크레디트, 자산운용, 자산관리, 캐피털, 투자, 인베스트먼트, 펀드, 보증, 선물, 팩토링 등 일반인들이 금융업으로 인식할 수 있는 명칭을 상호로 사용해 비슷한 범죄를 저지른 회사들이 다수 적발됐다.

    부티크 쪽에서는 “유사금융기관이라 해도 우리와 그들은 전혀 다르다”며 불쾌해한다. “그들의 행위는 투자나 금융기법이 아니라 명백한 사기다. 현행법의 테두리에서 특정 고객을 상대로 일하는 우리와는 질이 다른 존재”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부티크 중에는 주식, 채권, 선물, 옵션, 외환 등의 투자 자문이나 대행만 전문으로 하는 곳도 있다. 제일은행 출신들이 모여 만든 ‘제일선물’은 일명 ‘왕개미’로 불리며 선물 시장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외국 기관투자가들에게 국내 및 아시아 경제 동향에 대한 컨설팅을 제공하거나, 외국계 헤지펀드의 국내 운용을 대행하기도 한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증권사 영업 파트의 ‘용병’ 조직. 명함에는 분명 OO증권 부장 또는 차장이라는 직함이 찍혀 있지만, 사실은 팀 전체가 증권사와 한시적 계약에 따라 업무를 진행하는 프리랜서다. 대개 증권사 영업 부서에서 5~10년 이상 근무한 경력자들로 계약사를 옮길 때마다 자신의 고객들도 함께 몰고 다니는 베테랑이다. 고객은 개인일 수도 있고 기업체나 기관일 수도 있다. 특정한 전주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면에서 부티크의 범주에 넣어도 무리가 없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 자연스레 제도권 진입을 고려한다. 제도권이란 투자자문사, 투신운용사, 증권회사 등을 뜻한다.

    증권거래법상 등록법인인 투자자문사에는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투자자문업(납입자본금 5억 원 이상)과 컨설팅 및 투자 대행을 하는 투자일임업(납입자본금 30억 원 이상)이 있다. 증권투자회사법 상 인허가 대상인 자산운용사는 납입자본금 70억 원 이상, 증권투자신탁업법상 법인인 투신운용사는 100억 원 이상이다. 증권회사의 경우엔 증권거래법에 따라 종합증권회사는 500억 원, 자기·위탁매매증권회사는 300억 원, 위탁매매업 전문은 30억 원, 장외매매중개업 전문은 10억원의 납입자본금이 필요하다. 각 법인은 별도 규정에 따라 일정 자격을 갖춘 전문 인력을 의무고용해야 한다.

    부티크 사장들은 독자적으로, 혹은 대기업이나 전주들의 투자를 받아 제도권 금융사를 설립한다. 부티크 운영을 통해 단시일에 거금을 쥘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 동안 시장에서, 또 전주들에게 쌓아올린 신뢰도 큰 몫을 한다.

    “처음부터 제도권으로 독립하는 건 실익이 적다. 그래봤자 적은 자본금으로 할 수 있는 작은 사업일 텐데 성에 차지 않을 뿐더러 수익률도 저조하다. 일단 부티크로 일정 수준 이상의 자금을 끌어 모은 후 제대로 된 모양으로 창업하는 것이 낫다. 든든한 간판이 있어야 오버그라운드에서 진짜 큰일을 낼 수 있다. 돈은 벌만큼 벌었으니 이젠 당당한 기업인으로 명예를 찾겠다고 생각하는 이도 많다. ‘브로커’에서 일약 금융사주로 발돋움하는 순간이다.” S그룹, K그룹의 투자를 받아 자산운용사 설립을 준비중인 박종택씨(가명) 설명이다.

    중앙종금 김석기 사장은 1997년 한누리투자증권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제도권 금융에 안착했다. 1999년 1월, 한누리증권 대주주인 아남반도체에 의해 전격 해임됐으나 같은해 5월 중앙종금 사장으로 화려하게 재기했다.

    한국M·A의 권성문 사장도 군자산업 인수 후 (주)미래와 사람을 거쳐 현재 KTB네트워크를 비롯한 여러 회사의 대주주 겸 최고경영자로 자리를 굳혔다.

    한국M·A를 거쳐 아시아M·A 공동대표를 지낸 조효승 씨는 영국 유학 후 귀국, 올 초 에이원창투를 설립했다.

    신한생명 자산운용팀장 출신 도용환, 산업증권 애널리스트였던 정현철 씨가 공동 대표를 맡았던 경영컨설팅업체 ‘STIC’은 1997년 10월 STIC투자자문을 설립한 데 이어 1998년에는 STIC정보통신을, 지난해 7월에는 STIC IT벤처투자(주)를 설립하는 등 확장일로에 있다. 1998년에는 경영혁신안으로 소액주주들을 설득, 상장 화학업체인 ‘금양’의 경영권을 인수해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최근에는 기업 인수 합병을 통해 지주회사(관계회사의 지분을 50% 이상 확보하고 있는 모회사)로의 변신을 꾀하는 이가 많아졌다. 20, 30대 젊은 사업가들이다.

    대표주자는 한국디지탈라인 정현준사장(33)이다. 95년 프론티어M·A를 시작으로 기업매수전략연구소 연구원, 프라임M·A 사장, 한스글로벌M·A 사장 등을 거친 토종 M·A 전문가. 초기 골드뱅크에 투자해 큰 수익을 올렸고, 코스닥 기업인 한국디지탈라인의 최대주주이자 계열 창투사 대표로 수많은 기업의 인수 합병에 관여했다. 그가 1대 또는 2대 주주로 등재돼 있는 기업만 20개가 넘는다. 지난 8월에는 평창정보통신, 디지털임팩트, 한국디지탈라인 주식 50% 이상을 확보, 순수 지주회사인 디지털홀딩스 설립을 공표했다.

    금감원 “권한도 여력도 없다”

    MCI 코리아 진승현 사장(27)도 화제의 인물. M·A·투자 부티크로 출발, 1998년 현대창업투자 인수에 이어 ‘열린금고’인수 합병에 성공해 금융권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4월에는 아세아종금이 스위스계은행 컨소시엄을 대주주로 영입하는 딜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도 했다. 최근 고창곤 전 리젠트증권 사장과 함께 영국 리젠트그룹을 끌어들여 리젠트증권·리젠트종합금융·리젠트화재 등을 거느린 지주회사 ‘코리아온라인’을 설립했다.

    리타워그룹 최유신 회장도 이들에 뒤지지 않는다. 1997년 하버드대 동창생들과 함께 리타워인베스트먼트를 설립, 4년 만에 29개 인터넷 관련 기업을 거느린 초대형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뛰어난 능력으로 제도권에 안착한 듯한 이들이지만, ‘사파’에 가까운 현란한 금융 기법과 ‘봉이 김선달식’ 자본 축적으로 인해 이런저런 구설수에 휘말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석기 사장의 경우 해외자금 유치에 실패한 중앙종금이 영업정지 상태인데다, 지난 6월 제주은행과의 합병 추진 발표 직전 코리아캐피탈(중앙종금 2대주주)을 통해 중앙종금 주식을 집중 매입한 사실이 알려져 곤혹스런 입장이다.

    정현준 사장은 지주회사 설립을 위한 평창정보통신 주식 공개매수 과정에서 지나치게 낮은 가격에 매도물량이 쏟아진 점으로 인해 주주들의 의혹을 사고 있다.

    진승현 사장도 마찬가지. 한스종금 외자유치 과정에 농간을 부렸다는 혐의가 포착돼 금융감독원의 조사를 받았다. 지주회사 설립 중에도 출자자 대출 등 변칙거래를 일삼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최유신 회장은 기업 인수시 주로 사용하는 기업 인수·개발(M·D) 방식이, 알려지지 않은 기업을 인수해 키운 뒤 그 투자자산에서 자본이득을 얻는다는 점에서 투자라기보다는 투기에 가깝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사실 금융부티크에는 불법적인 요소가 많다. 증권업 인허가를 받지 않고도 주식 거래를 대행하거나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금융업 유사상호를 사용하는 등. 주가 조작 또는 불법 소지가 있는 M·A를 추진하는 경우도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소소한 사안을 적발해 과태료를 물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력이 부족한데다 그럴 필요도 크게 못 느낀다”고 말했다.

    “부티크 업무의 결과는 증권사를 통한 주식 거래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과정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것은 주관사인 증권회사다. 특정 고객과 계약에 따라 조용히 움직이고 있는 데야 굳이 걸고 넘어갈 필요가 없지 않은가. 또 우리에겐 그럴 권한도 여력도 없다.”

    성공하면 감옥, 실패하면 쪽박

    업계의 시각도 천양지차다. 베어링증권 상무 출신인 코아베스트 백경화 사장은 “부티크가 많이 생기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금융에는 규제가 너무 많다. 제도권이라는 말이 통용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또 투신이나 자산운용사 같은 펀드 매니지먼트 회사를 설립하는 데 납입자본금을 요구하는 나라도 몇 되지 않는다. 투자 전문가만 있으면 되지 대자본가가 왜 필요한가. 시장 진입 자체를 막는 처사다. 독점은 부실로 이어져 우리나라에는 외국에 추천할 만한 투자 전문 기관을 찾기가 어렵다. 선진금융기법으로 무장한 젊은 금융전문가들이 나름의 실력을 마음껏 펼쳐보일 수 있는 장이라는 의미에서 부티크는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 문병길 파트너는 “도덕적 해이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부티크를 운영하다 보면 모든 척도가 돈이 된다. 인간관계도, 휴식도 모두 돈으로 치환된다. 땀 흘려 사회에 봉사한다는 보람도 찾을 수 없다.”

    뛰어난 실력을 갖춘 이들이 제도권 밖에서 맴돌아야 하는 우리 금융 현실이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시각도 있다. LG증권 런던 지점에 근무하다 귀국, 지난 5월 리딩증권을 설립한 박대혁 사장(39)은 “인재들이 마음놓고 능력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임 실린 권한을 행사하며 일한 만큼 충분한 보수를 받을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금융의 생명은 신용이다. 제도권에 들어와 있어야 객관성이 보장된다. 법 테두리 안에서 일한다는 마음가짐, 내 욕심을 위해 타인에게 피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도덕률은 매우 중요하다. 부티크가 제도권 금융을 눌러버린다면 경제에 뭔가 큰 문제가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부티크 종사자들은 자신의 처지를 ‘성공하면 감옥, 실패하면 쪽박’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정도’를 걷고 있지 못하다는 자격지심 때문일까.

    내로라는 인재들이 불법의 유혹을 받기 쉬운 부티크에 몰리고, 또 ‘한탕’을 위해 비도덕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는 상황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경제사범에는 유난히 관대한 국민정서, 규제는 많고 감독은 느슨한 정부, 뒷거래가 성행하는 상거래 풍토. 이런 근본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는 한 지극히 한국적인 형태의 ‘투자전문회사’ 부티크는 줄어들지도, 그 영향력이 감소하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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