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대통령은 ‘서민 대통령’을 지향한다. 정부는 서민 정책을 쏟아낸다. 그렇다면 이 정책들은 서민의 삶을 펴주는 효과를 실제로 낼까. 추가경정예산은 공공 일자리를 늘리므로 친(親)서민으로 분류될 수 있다. 반면, 경유세 인상과 탈(脫)원전은 기름값·전기료 인상을 초래하므로 반(反)서민에 가까울 수 있다. 문 대통령의 ‘서민 지수’를 알아봤다.
정치인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다. 중앙정치 무대에서도 지방정치 무대에서도 선거 때도 평상시에도 변함이 없다. 그래서 서민경제가 좋아졌는가? 대체로 그렇지 않다.
요즘 한국 경제는 회복 국면에 본격적으로 접어들었다. 적어도 상장법인의 경우에는 명백히 그렇다. 코스피 상장법인의 1분기 매출액은 455조5500억 원으로 지난해 대비 8.35% 증가했다. 영업이익도 38조8900억 원으로 25.34% 올랐다. 코스닥 상장법인도 마찬가지다. 같은 기간 매출액이 37조521억 원으로 12.12% 증가했고, 영업이익도 2조1378억 원으로 20.80% 증가했다. 2분기는 어떨까? 상장법인의 매출과 영업이익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삼성전자는 2분기 매출이 60조 원을 넘어선 가운데 영업이익만 무려 14조 원이라고 알려왔다. 사상 최대치다.
반면에 서민의 생활수준을 알려주는 가계소득 증가율은 저조하다. 통계청이 5월 발표한 2016년 소득분배지표를 보면 1분기 가계소득이 459만3000원으로 1년 전보다 0.8%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마저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실질소득은 1.2% 감소한 것이다.
서민의 삶 나날이 악화
서민의 사전적 의미는 ‘경제적으로 중류 이하의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통계적 기준으로 볼 때 하위 40%, 그러니까 소득 1, 2분위에 해당하는 사람으로 보면 정확할 것이다. 정치권이 서민경제를 살리겠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쳐왔지만, 그 성적은 저조하다. 그래서 이제는 제대로 따져봐야겠다는 생각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자유한국당 훙준표 후보는 ‘당당한 서민 대통령’을 표어로 내걸었다. 보수 정당 후보가 서민경제를 살리겠다는 공격적 선언을 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뒤지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문재인의 경제비전: 사람중심 성장경제’를 발표했다. 이른바 ‘소득주도성장론’이다. 문 대통령에게 ‘사람’은 서민을 의미하고 ‘소득’과 ‘성장’도 서민에 방점이 찍혀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이후 최근 가장 심혈을 기울여온 것은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이하 추경)이다. 시정연설을 보면 문 대통령이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지 뚜렷해진다.
“특히 주목할 것은 1분위 계층의 소득감소가 5분기 동안,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추경을 편성해서라도 고용을 개선하고, 소득격차가 더 커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추경안 편성에 주도적 역할을 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이런 설명을 내놓기도 했다. “최하위 1분위(하위 20%) 계층은 물론, 차상위 2분위(하위 20∼40%) 계층까지 소득이 줄고 있다…일자리 추경은 이들 계층의 소득 감소에 대한 시의 적절한 대책으로, 추경의 상당 부분이 이들 계층에 해당된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재난에 가까운 상황이다.”
상장법인의 사정만 보면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다. 재난하고는 거리가 멀다. 다만 서민경제가 어려울 뿐인데, 그것을 재난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상장법인의 호황이 낙수효과를 유발해 서민경제에도 활기를 불어넣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상장법인이 직원 급여를 올려주고 고용을 늘리면 낙수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서민경제도 풀릴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효과를 더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 대부분의 전문가 진단이 그렇다. 그렇다면 국가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 세제 개편과 예산 편성으로 강제 분배에 나서야 하는 것이다. 추경은 후자에 해당한다. 이번 추경은 서민경제 활성화라는 본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서민 대통령으로서 문재인 대통령의 첫 시험대라 할 수 있다.
서민경제는 대체로 3가지 차원으로 나눠볼 수 있다. 수입-저축-지출이 그것이다. 수입은 소득을 말하고 지출은 소비를 말한다. 소득 지수로는 국민소득지표, 가계실질소득, 소득불평등지표, 소득분배지표, 실질임금증가율 같은 것이 존재한다. 저축 지수로는 가계저축률과 가계부채율지표가 존재한다. 소비 지수로는 엥겔지수, 물가지수, 실질소비증가율, 생활물가지수, 경제고통지수 같은 것이 존재한다. 서민경제 지수도 결국 이렇게 수입, 저축, 소비와 관련된 지수로 나눠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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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값, 전기료 오르면…
그러나 최근 국내 대기업은 글로벌화 전략에 따라 해외 투자에 더 적극적이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국내 낙수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대기업 정책에 관심이 모아진다. 문 대통령은 법인세 인상에 반대하면서 조세 감면 축소를 예고했다. 대기업의 세금 부담은 늘어날 전망이다. 세금이 증가하는 가운데 채용도 확대하고 비정규직 규모도 줄여야 한다. 대기업은 국내에서 이런 생고생을 하느니 해외 투자를 우선 고려할 것이 분명하다. 해외 투자가 느는 만큼 국내 일자리 창출 기회는 줄어든다. 이처럼 서민을 지향하는 정책이 결과적으로 서민의 삶을 더 팍팍하게 만드는 측면이 없지 않다.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인상하겠다는 방안도 단기적으론 서민을 위하는 방안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영업 위축과 고용 감소로 인해 서민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효과가 나올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 측은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경유세를 인상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또한 탈(脫)원자력발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서민경제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경유 가격을 휘발유 가격만큼 올리면 경유차를 운행하는 서민은 엄청난 부담을 느낄 게 뻔하다. 탈원전은 전기료 인상을 초래한다. 이 역시 서민 가정에 큰 부담이 된다. 전기료가 오르면 다른 물가도 덩달아 오른다. 서민은 상대적으로 더 빈곤해질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 부동산 가격도 상승 흐름을 타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전월세 가격도 오르고 당연히 외식 단가도 올라간다. 예전엔 별 부담 없이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할 수 있었는데, 이조차 부담스러워질 수 있다. 이러면 서민은 문재인 대통령을 서민 대통령으로 체감하기 어렵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