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호

‘윈 홀드 윈(승리-억제-승리)’ 전략 찾아야

[백승주 칼럼] 한반도 위협하는 ‘트럼프 5중전선’

  •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장·국민대 석좌교수

    입력2024-12-3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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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선에서 진행될 협상에 사즉생 각오로 임해야

    • 과도한 방위비 분담 요구에 초당적 협력 필요

    • 북·미 정상회담 전 우리 정부와 조율하도록 요구

    • 우리 외교의 트럼프 경험 자산 총집결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11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은 힘을 통한 평화를 원하며 갈등과 대결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11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은 힘을 통한 평화를 원하며 갈등과 대결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뉴시스]

    1월 20일, 미국에서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한다. 세계정치의 눈과 귀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쏠리는 날이다. 미국 대통령선거 캠페인 기간과 당선인 기간, 그리고 트럼프 1기 때 그가 세운 정책과 전략이 결재와 횡보를 통해 실제 집행되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은 미국 유권자를 비롯한 상당수 국가는 숨죽이며 그의 행보를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다. 필자 역시 기대보다 걱정이 크다. 트럼프의 당선이 확정된 이후 필자는 멕시코·콜롬비아·파나마를 방문했고, 고위 관료들을 만났다. 그들의 걱정이 우리보다 심각했다. 특히 멕시코는 이민과 관세 문제로 극도로 예민했다. 그러면서도 그들 대부분은 트럼프 승리가 확정되기 이전에 가졌던 복잡한 시나리오를 말끔히 지우고 있었다. 향후 4년간 진행될 트럼프 정책과 충돌하기보다는 적응과 공존을 당위적 생존전략으로 여기는 듯했다. 우리 정부 역시 적응에 집중하고 있다. 당연하다. 오죽했으면, 트럼프의 취미인 골프까지 외교자원으로 끌어들였겠는가.

    우리는 트럼프 2기 정부와 공존을 넘어 공조를 통해 윈윈(win-win)해야 한다. 윈윈전략이란 원론적으로 “두 지역에서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의미다. 1991년 미국 국방부 장관 딕 체니와 합참의장 콜린 파월은 ‘윈 홀드 윈(win-hold-win·승리-억제-승리)’이라는 새로운 전략을 제안했다. 어느 한쪽에서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동안 다른 한쪽의 전쟁은 억제시킨 후 다시 병력을 이동시켜 결국 양쪽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는 전략이다.

    군사전략 용어로 사용된 윈윈전략은 상호 이익, 상생, 시너지 효과 등의 의미가 담긴 대외 전략이다. 트럼프 2기 정부와 윈윈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어렵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여러 전선에서 진행될 협상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반드시 헤쳐나가겠다는 사즉생(死卽生)의 각오가 있어야 한다. 따질 것은 따지고, 줄 것은 주는 과정에서 우리 지도자들은 명운을 건 결단을 해야 한다. 따져야 할 전선과 적극 협력해야 할 전선을 구분하고, 전선 유형별 외교 자산을 전진 배치해야 한다. 개략적으로 다섯 개 남짓한 한미 간 안보 전선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한다.

    제1전선: 방위비 분담 전선

    트럼프는 강공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 이미 트럼프 1기 때 방위분담금을 기존의 500% 인상한 50억 달러 정도를 요구한 바 있다. 이번 미국 대선 기간에도 그는 우리 정부에 방위분담금을 1000% 인상해 100억 달러를 요구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바이든 정부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5년간 방위비 분담 규모에 합의한 상태다. 2026년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은 2025년보다 8.3% 오른 1조5192억 원이며, 2027년부터 2030년까지는 해마다 전년도 분담금에 소비자물가지수(CPI) 증가율을 반영해 결정한다. 한국에서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은 국회 비준을 거쳐야 정식 발효되지만 미국에서는 의회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는 행정 협정이다. 우리 국회는 2024년 11월 28일 SMA 비준에 동의했다. 이에 따라 양국의 SMA가 발효됐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협정안을 파기하려 할 것이다. 강도 높은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2기를 ‘슈퍼트럼프 집권’이라고 한다. 상하 양원을 트럼프가 장악해 미국 의회의 트럼프 견제가 불가능한 권력 장악 상황을 말한다.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까. 우리 여소야대의 정치구조를 역이용해야 한다. 예산심의권을 국회가 갖고 있고, 야당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다. 추가 협상과 비준은 야당 협력 없이 불가능하다. 트럼프 1기 때 우리 측 정은보 SMA 협상 대표(현 한국거래소 이사장)는 초당적 국회의 도움으로 트럼프의 요구를 절충한 적이 있다.

    만약 트럼프가 이미 합의한 정부 간 약속을 파기하고 새로운 방위비 분담 협상을 제안하면 여야가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예산심의 권한을 가진 국회가 초당적 협력을 통해 정부를 지원하고 트럼프의 공세를 제어해야 한다. 트럼프 1기가 과도한 방위비 분담을 요구할 때 필자는 국방위 야당 간사를 맡았다. 당시 정은보 대표를 만나 초당적 협력을 한 것은 물론이다. 민주당도 정부와 협력을 제고하는 길을 가야 한다. 우리 정부도 정은보 이사장 등 트럼프 1기 협상팀의 경험을 활용해야 한다.

    제2전선: 주한미군 철수 전선

    우리 국민과 정부가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의제는 주한미군 철수 여부가 아닐까 싶다. 트럼프가 2만8500명의 주한미군 규모를 줄이거나, 철수를 공식 제안한다면 안보 불안은 역대급으로 커질 것이다. 아마 1968년 후반 닉슨 미국 대통령이 주한미군 일부 사단 철수를 추진한 이후 조성된 안보 불안 수준과 흡사할 것이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닉슨의 주한미군 철수 구상이 만든 안보 불안 상황에서 핵무기 개발과 유신체제 구상으로 대응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첫 국방장관으로 내정된 피터 헤그세스는 해외 미군 주둔 정책을 실험적 수준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인물이다. 사실상 그는 주한미군 규모 축소 정책 추진을 시사한 것이다.

    미국 내 국방 환경 차원에서 미군 지원 인력의 급격한 감소도 이러한 구상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보인다. 미군 지원병의 과부족 인원은 지난해 이미 1만5000여 명에 달했다. 트럼프가 주한미군 규모 조정 또는 철수 구상을 공식 제안하면 안보 불안감이 증폭될 것이다. 정부는 국민의 안보 불안 증폭을 해소할 대안을 확보해 둬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주한미군 철수 제안을 경제적 대가를 지불해 막으려는 정책은 하책 중 하책이다. 트럼프의 거래형 대외정책에 우리 안보가 종속되는 모습을 북측은 물론 전 세계에 보여주는 셈이기 때문이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전략적 위상을 미리 계상해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 필요하다면 비슷한 어젠다로 고민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미국 동맹국들과 공조를 취할 필요가 있다. 주한미군 철수가 기정사실화할 경우, 독자적 핵무장 선언을 검토해야 한다. 주한미군 주둔의 근간인 한미동맹은 한국 안보에 핵심적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 구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트럼프 정부와 공유하려는 노력을 당당하게 실행해야 한다. 야당은 물론 미국 정부와 의회 내에서 공감대를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트럼프 정부가 공식적으로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예방외교가 상책 중 상책이다. 헤그세스 장관 내정자와 인식을 공유하고 정책 소통에 집중해야 한다.

    제3전선: 핵 탑재한 장거리 미사일 한반도 배치

    트럼프는 장거리 미사일을 한국에 배치하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가 2018년 구소련과 체결한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폐기한 이후 미국은 중거리 미사일을 해외에 재배치하고 있다. 이미 독일 재배치를 발표했고, 일본 재배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재배치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공식적으로 발표할 가능성도 있다.

    러시아, 중국, 북측은 반대할 것이다. 상당수 시민단체와 야당은 격렬하게 반대할 것이다. 미국은 인도·태평양전략 차원에서 장거리 미사일 배치와 관련해 한국 정부의 입장을 면밀하게 주시할 것이다. 사드 배치와 유사한 수준의 국론 분열이 진행될 것이다. 현 정부는 장거리 미사일 배치 문제에 대한 태도가 향후 한미동맹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임을 간파해야 한다. 바이든과 합의한 ‘워싱턴선언’ 연장선상에서 이를 신속하게 판단해야 한다.

    트럼프 정부는 김정은과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타이밍은 트럼프가 쥐고 있다. 평화적 북핵 해결의 실질적 진전과 관계없이 트럼프는 대외정책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추진할 것이다. 트럼프는 싱가포르회담 등 세 차례에 걸쳐 김정은을 만난 적이 있다. 트럼프 2기 정부의 수석 국가안보부보좌관으로 지명된 앨릭스 웡 내정자는 그 회담을 준비했다.

    제4전선: 톱다운 방식의 북한 접근

    2017년 12월 필자는 당시 자유한국당 국회대표단(단장 원유철 의원) 일원으로 트럼프 1기 인수위 관계자들을 연쇄적으로 만난 적이 있다. 필자는 그들에게 “트럼프가 북핵 문제를 대외정책 우선순위 중 상위로 끌어올리고 해결한다면, 노벨평화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직접 제안한 적이 있다. 필자의 제안에 대해 인수위 고문 에드윈 퓰너 전(前) 헤리티지 이사장은 당시 웃으면서 “꼭 전하겠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한때 트럼프는 김정은에 대해 “핵미사일을 갖고 장난질하는 미사일 보이”라고 조롱했으나 백악관에 입성한 후 그를 세 차례나 만났다. 결과적으로 세 차례 회담을 통해 김정은에게 기망당했지만 트럼프는 외교적 성과, 주도권 관리 차원에서 성공한 측면이 있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다시 직접 만날 가능성이 크다. 그 타이밍은 우크라이나와 중동의 포성이 잦아진 시점이 될 것이다. 우리 정부가 톱다운 방식의 협상을 즐기는 트럼프의 대북정책을 반대할 명분도 없다. 말릴 절차적 권한도 없다. 트럼프가 북·미 정상회담을 진행시킬 경우 우리 정부와 공개적으로 사전에 조율하도록 요구하고, 이를 관철해야 한다. 사전 조율 과정을 통해 의제별로 우리 입장을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 적어도 트럼프 정부의 공식 발표 훨씬 이전에 그러한 움직임을 파악하고 대응해야 한다. 주미대사관, 외교부는 잠을 자지 말아야 한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듯 한반도 문제에서 우리가 3자로 밀려난다.

    북한 인권 문제는 트럼프 2기와 우리 정부가 인식을 공유하고 긴밀하게 협력할 수 있는 어젠다다.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 마이클 왈츠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와 적극 공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쿠바계 이민자의 아들로 쿠바 난민 인권 문제에 민감한 플로리다 출신’이라는 생태적 정치 DNA를 가진 루비오 장관과 왈츠 보좌관은 북한과 중국 인권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루비오는 중국 내 인권 문제를 근거로 동계올림픽 불참을 주장할 정도로 인권 문제에 관심이 높다.

    루비오 안보외교팀의 북한 인권에 대한 인식을 볼 때 우리 정부와 ‘원팀’이 될 수 있다. 미 국무성과 우리 외교부가 북한 인권 관련 ‘특별 태스크포스(TF)’를 조직·운영하자고 선제적으로 제안할 필요가 있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공동 관심이 트럼프 2기 정부를 상대하는 외교 금맥이 될 수 있다.



    제5전선: 북한 인권 문제

    2017년 11월 8일 트럼프가 대한민국 국회를 찾아 연설했다. 그는 상당히 긴 시간을 활용해 북한 인권 문제를 생생하게 거론했다. “북측 지도자들은 전체주의, 파시스트 체제로 인민들을 교도소에서 생활하게 하고 있다”고 열변을 토했다. 현장에서 생생하게 들었다.

    트럼프에게 대한민국 국회에서 그가 행한 연설을 잊지 않고 북한을 다루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트럼프의 연설문에는 한반도,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가장 체계적으로 담겨 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활약하는 한국 선수까지 언급하고 있다.

    1912년 4월 15일 타이태닉호 침몰 사고로 1514명이 사망하고 710명이 생존했다. 생존자 대부분은 여성과 어린이였다. 약자를 우선적으로 구조하도록 조치한 타이태닉 선장의 배려 덕이다. 선장의 이런 모습은 미국 지도자와 미국에 대한 환상을 심어줬다.

    트럼프 2기 정부에서 이러한 약자 우선주의는 눈곱만큼도 기대할 수 없다. 냉혹한 현실 속에서 예상되는 어젠다, 전선을 잘 관리해야 한다. 1998년 사업가 트럼프를 직접 만나 사업차 거래했던 대우트럼프 임원에서부터 정상회담에 직접 참여한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팀까지 우리 외교의 트럼프 경험 자산을 총집결해야 한다. 그래야 트럼프 2기 정부의 안보 전선, 국익 전선에서 ‘올 윈(All-win)’ 혹은 ‘윈 홀드 윈’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자신감이다. 최근 전쟁기념사업회를 찾은 미국 고위 관리에게 필자는 “대다수 한국인은 미국이 6·25전쟁 당시 한국을 지원한 사실을 잘 기억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자 그는 “6·25전쟁에 미국이 참전한 것은 한국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미국과 인류 정의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미국 관리의 말 속에 답이 있다.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에 ‘미국’만이 아닌, ‘인류와 지구의 미래’라는 큰 그림이 담기길 기대한다.

    백승주
    ● 1961년 출생
    ● 부산대 정외과 졸업, 경북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 국방부 차관, 20대 국회의원
    ● 現 전쟁기념사업회 회장, 국민대 석좌교수, 한중안보평화포럼 회장
    ● 저서 : ‘백승주 박사의 외교이야기’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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